전편 모음집 : https://arca.live/b/lastorigin/1507448 




 “잘먹겠습니다!”

 그렇게 말한 토모는 포크를 집어 카레가 묻은 치킨을 찍어먹었다. 치킨을 씹으며 맛을 본 토모는 행복하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배 위에 먹을 것이라곤 생각도 못했던 음식이었다. 당연히 비행기 기내식같은 레토르트나 에키벤 수준의 도시락 정도겠거니 하고 생각했던 마츠시타는 본격적인 레스토랑이 있는 신오가사와라마루의 내부시설에 조금 놀랬다.

 토모의 맞은편에 앉은 마츠시타의 앞에는 아무 그릇도 없었다. 그저 반쯤 빈 생수병이 놓여있었고 마츠시타는 언제라도 마실 수 있도록 생수병의 뚜껑을 반만 잠가놓고 있었다.

 “마츠시타는 안먹어도 되는 거야?”

 토모는 조금 걱정된다는 눈빛으로 마츠시타를 바라보며 말했다. 마츠시타의 얼굴에는 웃음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괴로움과 고통으로 가득한 마츠시타의 얼굴은 한시라도 빨리 이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말하고 있었다.

 “속이 안좋아서 그래. 뭘 먹던 금방 게워낼 거 같아.”

 흔히 말하는 배멀미였다. 파도가 잔잔한 도쿄만을 벗어나기 전, 점심시간 즈음에는 배에 타는 것도 별거 아니구만. 이라고 생각한 마츠시타였지만 도쿄만을 벗어나 본격적인 대양으로 배가 나아가자 마츠시타는 자신이 잘못 생각했다는 것을 깨닫고 말았다.

 점심에 무엇을 먹었는지 마츠시타는 기억을 더듬을 필요가 없었다. 화장실 변기 앞에서 무엇을 먹었는지 확인할 수 있었으니까. 배는 좌우앞뒤위아래로 흔들렸고 마츠시타의 머리는 그 이상으로 핑핑 돌았다.

 “마츠시타는 어부의 딸이면서 왜 배멀미를 하는 거야? 배 위가 땅처럼 느껴져야지.”

 “뭐가 어부의 딸이야. 우리집이 대대로 어부긴 했지만 나는 배에 별로 타본 적 없어. 있었다 해도 대부분의 시간을 난간 붙잡고 발아래 바다만 보고 말았겠지.”

 마츠시타는 그렇게 말하고는 긴 한숨을 쉬었다. 더  길게 한숨을 쉬고 싶었던 그녀였지만 배가 아파와 그녀는 작은 신음소리를 내며 배를 쥐어잡았다.

 “이렇게 맛있는 걸 못먹다니 아쉽네.”

 이번에 토모는 음료로 주문한 패션후르츠 주스를 한모금 마셨다. 그것을 보고 마츠시타는 원래 그녀의 계획을 떠올렸다. 바다를 바라보면서 토모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맥주를 한캔 까는 것이었다.

 “배에서 맥주를 먹으면 안되는 거 아냐? 음주후 난간에 가까이 오지마시오라 적혀있던데.”

 “사고가 일어날 수 있으니까 그런 거지, 난간에서 먼 의자에 앉아서 먹는 건 괜찮을 거야. 뭐가 되었건 지금 먹을 상황은 아니겠지만.”

 책상에 머리를 파묻은 마츠시타는 짜증난다는 듯, 낮은 목소리로 다시 신음을 늘어트렸다.

 “내일 아침이면 나아질 거야. 그러잖아. 사람은 진화의 동물이라고.”

 “적응의 동물이야.”

 어지럽고 배가 아픈 마츠시타였지만 토모의 잘못된 단어선택은 놓치지 않았다.

 “잠이나 잘걸 그랬어. 아니지. 잠이 올 리가 없어. 수면제라도 가져왔어야 해. 장거리 여행의 필수품이야. 수면제.”

 토모는 쟁반위에 있는 주스컵을 보았다. 컵안에 담긴 주스의 표면은 테이블과 수평을 이루지 않고 좌우로 천천히 오가고 있었다. 배멀미에 약한 사람은 힘들 수밖에 없었다. 잔잔한 강이나 호수가 아닌 주변에 섬 하나 없는 대양이었다.

 배는 파도를 헤치며 나아갔고 부서진 파도는 바닷물이 되어 갑판과 난간, 토모가 밥을 먹는 레스토랑의 창문을 적셔갔다. 차에도 기차에서도 멀미에 무너지지 않았던 마츠시타였지만 장거리 쾌속선에 패할 것이라곤 생각도 못했다.

 “잘먹었습니다.”

 토모는 합장을 하며 말했고 그 말을 들은 마츠시타는 힘겹게 고개를 들었다.

 “아, 다 먹었어? 돌아갈까?”

 고개를 끄덕이며 쟁반을 들고 일어선 토모의 뒤를 마츠시타는 힘겹게 따라갔다. 자리에서 일어나자 어지러움은 더 크게 느껴졌다. 몸이 더 흔들리기 때문이었을까. 조금 걷던 마츠시타는 자리에서 조금 휘청하고 말았다.

 “마츠시타, 술은 그만 마시라니까.”

 토모는 화들짝 놀라며 마츠시타를 부축해주고는 말했다.

 “안마셨어. 마실 힘도 안들어.”

 어쩌면 마시는 게 도움이 될지도. 마츠시타는 하나를 떠올렸다. 술을 마시고 거하게 취한다면. 그렇다면 어차피 어지러운 건 어지러운 거고, 술의 힘으로 잠에 들 수 있을 것이었다.

 “토모. 잠시만 매점에 들리자.”

 라고 말한 마츠시타가 사온 것은 팩에 든 사케였다. 가장 독한 것으로. 한번에 마시면 꿈나라 혹은 꾼 꿈마저 필름속으로 사라질 수 있는 것으로.



 마츠시타와 토모의 자리는 2등석이었다. 하룻밤을 보내야 하는 여객선의 자리는 의자가 아니었다. 이불을 깔 수 있는 바닥이었다. 다섯명분의 이불을 깔 수 있는 공간은 문도 아닌 커튼으로 외부와 분리되어있었다.

 필연적으로 모르는 사람과 공간을 공유해야 했고 심지어 전자기기를 충전할 수 있는 콘센트단자마저 공유해야 했다. 방에 돌아왔을 때 같은 방을 써야 하는 세 사람은 술판을 벌이며 시끄럽게 떠들고 있었고 마츠시타와 토모는 반대편 구석에 이불을 펼쳐야 했다.

 마츠시타는 자신이 예약한 2등석이 이런 것을 알고 후회했지만 개인방과 공간이 주어지는 2등 특실이나 1등실의 가격이 너무 비쌌기에 엄두도 낼 수 없었다. 그리고 그래봐야 하룻밤이었다. 무슨 일이 일어나건 그래봐야 하룻밤에 일어날 일이었다. 그리고 마츠시타는 하룻밤을 순식간에 보낼 수 있는 것을 손에 들고 있었다.

 “후.”

 마츠시타는 심호흡을 하며 뜨듯하게 데워진 팩의 뚜껑을 열었다. 술냄새가 공기중 퍼지며 마츠시타의 콧속으로 들어왔다. 마츠시타는 술을 잘먹는 편은 아니었다. 잘 먹었다면 술을 먹고 전 남자친구와 하룻밤을 보내겠는가.

 안주라도 사올걸. 술을 마시기 전, 마츠시타는 침을 꿀꺽 삼켰다. 그런 걸 삼킬 때가 아니야. 그렇게 생각하며 팩을 들어올려 입으로 가져갔다.

 꿀꺽꿀꺽꿀꺽. 마츠시타는 올라오는 알코올향을 눈 질끈 감고 참으며 억지로 술을 목구멍으로 넘겼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마츠시타는 술을 다 먹은 것이 기억나지 않은 것이었다.

 “엣.”

 마츠시타는 눈을 뜨며 벌떡 일어났다. 창가로는 햇빛이 들어왔고 멀미는 느껴지지 않았다. 그리고 그 직후 엄청난 두통이 마츠시타의 머리를 강타했다.

 “으아아아...”

 관자놀이를 손가락으로 누르며 마츠시타는 주위를 바라보았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불을 깔고 자고 있었고 마츠시타의 방 역시 마찬가지였다. 분명 조금전까지 술을 먹던 사람들은 먹다남은 술과 안주를 한쪽에 몰아넣고 자고 있었고 토모 역시 마츠시타의 옆에서 새근새근 자고 있었다.

 마츠시타는 무슨 일이 있었는가 기억을 떠올렸지만 그녀가 떠올릴 수 있는 것은 기억의 몇몇 장면과 두통 뿐이었다. 그녀는 다시 인상을 쓰며 관자놀이를 눌렀다.

 “아, 마츠시타. 일어났어?”

 토모는 헝클어진 머리로 눈을 반쯤 뜨고 마츠시타에게 말했다.

 “토모, 어제 무슨 일 있었어?”

 “훗.”

 토모는 입꼬리만 올릴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반응, 무언가 있는 것이 분명했다. 마츠시타는 궁금해 참을 수 없었다.

 “뭐야, 토모. 뭔 일 있었던 건데.”

 “글쎄? 난 잘 모르겠는데?”

 토모는 이번에는 어깨를 으쓱했고 그것은 다시 마츠시타의 직업정신을 자극했다.

 “대체 뭐가... 으으윽.”

 마츠시타는 토모에게 더 캐물으려 했지만 두통과 뒤늦은 배멀미가 한번에 몰려왔다. 심호흡을 반복하며 마츠시타는 간신히 속을 가라앉힐 수 있었다. 숙취와 멀미라니. 이 얼마나 끔찍한 상황이란 말인가. 술로 밤을 순식간에 보낼 수 있었지만 그 대가는 길고 짙게 남아있었다.

 마츠시타가 뒤늦을 후회를 할 때, 방송이 울려퍼졌다.

 -현재시작 오전 6시를 알려드립니다. 본선은 오전 7시에 오가사와라 치치지마 후타미항에 도착할 예정입니다. 아직 주무시고 계신 승객 여러분께서는 일어나셔서 하선을 준비해주시길 바랍니다. 다시 한번 알려드립니다. 현재 시각 오전 6시입니다....

 “마츠시타, 오가사와라래! 도착했나봐!”

 토모의 말에 마츠시타는 애써 미소를 지었다. 배에서 내리면 최소한 배멀미만은 낫겠지. 숙취는 내려서 아무 매점에 들어가 숙취해소제를 사면 나아질 테고.

 “마츠시타, 아침밥 먹자! 배고파! 마츠시타도 해감해야지!”

 “해장.”

 마츠시타는 간신히 일어나 이불을 대충 한쪽으로 밀어넣었다. 조금전 방송으로 많은 사람들이 일어난 모양이었다. 여기저기서 웅성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마츠시타의 옆에서 자던 사람들도 일어나 이불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마츠시타 저거봐. 곧 오토지마에 도착한대! 섬 이름이 왜 이래?”

 복도를 걸어가던 토모는 홀로그램 전광판에 뜬 안내를 가리키며 말했다. 父島. 이름 그대로 아빠섬이라는 뜻이었다. 그리고 토모는 그 글자를 아빠라는 의미로 오토지마라 부르고 말았다. 이 섬의 이름은 그보다는 더 단순했다.

 “치치지마야.”

 “치치지마? 그러면 하하지마도 있겠네. 이름 웃기다.”

 “있어. 하하지마.”

 하하지마. 엄마섬이라는 뜻이었다.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형섬, 남동생섬, 누나섬, 여동생섬도 있었다. 섬의 이름을 모두 합치면 6인 가족 하나가 나왔다. 다른 곳에서는 보기 힘든 특이한 이름들을 가진 제도였다.

 마츠시타는 창밖을 슬쩍 바라보았다. 수평선 근처에 섬이 보였다. 아마도 저곳이 오가사와라겠지. 긴 여행의 끝이었다. 아니지. 긴 멀미의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물론 지금 당장은 토모의 맞은편에 앉고 싶다는 생각 뿐이었다.

 “잘 먹겠습니다!”

 토모는 그렇게 말하고는 일본식 아침 정식을 맛있게 먹기 시작했다. 밥과 된장국, 연어구이와 채소 절임과 계란이었다. 날계란을 밥 위에 올린 토모는 신나게 아침밥을 먹기 시작했다. 한 것이라고는 가만히 있는 것 뿐이었는데 잘도 소화가 된 모양이었다.

 “잘 먹었습니다!”

 잠시 정신을 잃었던 마츠시타는 토모의 말에 화들짝 잠에서 깨었다.

 “마츠시타, 잤지?”

 “피곤하고 머리가 아픈걸. 내리면 일단 쉬자고.”

 “남들은 배위에서 쉬는데 마츠시타는 배에서는 절대로 못쉬는 모양이네. 돌아갈 때는 어떻게 하려고?”

 “아.”

 20시간의 걸친 뱃길의 끝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평생 오가사와라에서 살 것이 아니라면 결국 도쿄로 돌아오는 이 배에 다시 타야 했다. 2등 객샐과 배멀미와 숙취. 아마도 이 일을 다시 반복해야겠지.

 “수면제 살 수 있겠지?”

 “오또상 간바레는 팔 거야.”

 “술은 이제 싫어.”

 두 사람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다시 방송이 울렸다.

 -본선은 곧 오가사와라 치치지마의 후타미항에 도착할 예정에 있습니다. 터미널에 도착하면 하선 준비에 시간이 걸리니 승객 여러분께서는 서두르지 마시고 천천히 하선을 해주시길 바랍니다...

 “다 왔나봐.”

 마츠시타는 고개를 돌려 밖을 보았다. 창밖으로 오가사와라의 치치지마가 보였다. 숲으로 뒤덮인 섬에는 여기저기 사람의 흔적이 보였다. 일본같다면 일본같은 풍경이었다. 마츠시타가 평소 생각하던 남쪽의 섬의 분위기는 잘 느껴지지 않았다. 야자수는 잘 보이지 않았고 넓게 펼쳐진 모래사장, 산호초도 보이지 않았다. 기대에 비해 조금은 실망했던 것도 사실이었다. 오키나와에 비하면 너무나 일본적인 풍경이었으니까.

 “마츠시타, 가자!”

 다 먹은 음식을 퇴식구에 넣고 온 토모는 마츠시타의 손을 잡아당겼다. 갑자기 일어선 마츠시타는 배멀미를 걱정했지만 섬 근처에 온 덕분일까, 배멀미는 조금전보다 확실히 줄어들어 있었다.

 방으로 돌아가 짐을 챙긴 마츠시타는 토모와 함께 배의 출구로 걸어왔다. 문은 이미 열려있었고 문 밖으로 섬의 접안시설을 볼 수 있었다.

 “와! 더워!”

 토모의 말대로 남쪽의 여름열기가 문을 통해 바닷바람과 함께 들어오고 있었다. 뜨거운 바람이었다. 마치 온풍기의 앞에 선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이 점은 확실히 남국이라 해도 좋을 것이었다. 아니, 좋은 것이 아니었다.

 배는 멈추었고 배의 출입구를 향해 계단이 올라왔다. 승무원이 출구를 막고 있던 줄을 치우자 사람들은 천천히 배에서 내리기 시작했다. 마츠시타와 토모 역시 그 뒤를 따라 천천히 배에서 내렸다.

 “우와! 남극이야!”

 “남극은 훨씬 남쪽이고. 이럴 때는 남국이라 하는 거야. 남극이었으면 내리자마자 땀이 흐르진 않겠지.”

 토모의 말에 마츠시타는 손부채질을 하며 말했다. 어디가 일본같은 분위기란 말인가. 공기부터 남국이었다. 오키나와였다. 아까는 보이지 않았던 야자수마저 있었다. 관광객들을 반기는 주민들이 플랜카드를 흔들고도 있었다. 이것을 보니 확실히 관광에 의존하는 동네처럼 보였다.

 “마츠시타, 이제 어디로 갈 거야?”

 “편의점. 숙취해소제사러.”

 마츠시타는 휴대전화를 꺼내 주변의 편의점을 찾았다. 작은 섬이라 생각했지만 지도를 본 마츠시타는 의외로 제법 갖출 것은 갖춘 마을의 모습에 조금 놀랬다. 그리고 생각보다 훨씬 큰 섬의 모습에 더더욱 놀랬고.

 “그 다음엔?”

 “호텔. 일단 가서 쉴 거야. 지금 상황은 도저히 뭘 할 수 없을 거 같으니까.”

 휴대전화를 주머니에 넣은 마츠시타는 주위를 돌아보았다. 사람들은 신나는 얼굴로 사진을 찍고 있었고 주민들은 관광객들을 반기며 호객행위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부두의 한켠에서는 크레인과 지게차가 배에서 화물들을 내리고 있었다. 당연한 것이었지만 화물에서 덴세츠라는 글자는 볼 수 없었다.

 배멀미가 사라진 건 다행이었지만 이제는 육지멀미가 다가오고 있었다. 숙취는 가실 생각을 하지 않았고. 취재는 조금 뒤로 미루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 이런 소란스러운 부둣가에서는 일을 하기도 어려울 테니까. 멘 가방을 고쳐멘 마츠시타는 토모와 함께 미리 찾아놓은 편의점을 향했다. 숙취해소제를 사고 잘 되면 수면제도 같이 살 생각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