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작 : https://arca.live/b/supernerimk2?category=%EC%86%8C%EC%84%A4&target=title&keyword=%EC%A1%B0%EA%B8%88+%EC%9D%B4%EC%83%81%ED%95%9C


모음 : https://arca.live/b/lastorigin/2071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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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과광!!!

 

“어리석구나! 어리석...”

 

콰광!!! 콰과과과광!!!!!!

 

“무지몽매한 은거자들아! 너희가 이렇게 한다고 하여...”

 

쾅!! 쾅!! 쾅쾅!!!

 

“... 야이...”

 

쾅!! 콰과과과과광!!!!!!!!

 

“야이 씨발놈들아!!!!!!!!!!!!”

 

쾅!!!!!!!!!!!!!!!!!!!!

 

 

 

말하지 못한다는 건 얼마나 슬픈 일인가.

뚫린 입이 있더라도 할 수 없다면 그건 또 얼마나 가엾은 일인가.

그런 생각을 하며, 메이는 눈 앞에서 죽어가는 생물체를 향해 악어의 눈물을 흘려 보냈다.

이번 먹이감은 씹는 질감이 조금 질겼기에 악어는 많은 눈물을 흘려야 했다.

 

 

 

“으... 지루한 건가? 왜 이렇게 하품을 많이 하지? 

더워서 그런가... 하여튼, 내가 이래서 현장 투입이 싫다니까.

벌서 역장도 반이나 날라갔고. 다이카한테 하나 더 가지고 와야 한다 말해야겠다.”

 

“야이... 개새끼들아... ...”

 

“뭐야, 벌써 지쳤어? 말에서 아주 격식이 뚝뚝 흘러 넘치는데?”

 

“이... 건방진 것들이...”

 

피휴웅~!

 

“어, 하나 더 날아온다.

하고 싶은 말 있으면 이따가 다시 해.”

 

“개새끼 맙소사...”

 

콰과광!!!

 

 

 

화력. 존나게 압도적인 화력.

 

그건 단지 말뿐인 말이다. 그 실체는 더욱 대단한 것이다.

이 모습을 직접 볼 영광을 가지게 된다면 어느 누구라도 그리 말할 것이다.

 

전투속행이란 개념이 오르카 호에 처음 등장했을 때, 많은 대원들이 공포로 휩싸였다.

죽여도 죽지 않는 철충이라니. 가히 죽음에서 돌아오는 불사신을 상대하는 것 아니겠나. 그러니 당연히 두려워할 수 밖에.

 

하지만 메이의 눈에는 달랐다. 정확히는 ‘무한에 가까운 탄약고를 지원받은’ 메이의 눈에는 달랐다.

죽여도 죽지 않으면 죽일 때까지 죽이면 된다.

존나게 강력한 무기로 스스로 죽음을 선택할 때까지 죽여버리면 된다.

주변 지형조차 몇 천년 전 석기시대로 돌려보낼 수 있는 존재의 눈 앞에 고작 몇 십 번 죽었다 살아나는 게 별 거겠나?

 

 

 

“하아... 하아...”

 

 

 

가까스로 본래의 형체를 되찾은 검은 물체, 비탄의 서기관 스콸로르.

몸을 이루고 있던 끈적한 액체는 탄성을 잃은 것처럼 바닥에 쏟아지고 있었고, 기괴한 웃음을 짓던 얼굴은 누가 보아도 만신창이, 그 자체였다.

 

자신을 호위하던 친위대는 이미 반절이 되었다.

문제는 그 반절이란 것이 ‘수’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크기’를 의미하는 것이었던 점이다.

 

30 m짜리 애들이 15 m로 줄어들었다. 물론 그게 작은 것은 아니었으나 사람으로 비유하자면 상반신이 통째로 날아가버린 것이란 말이다.

군대의 수가 반절이 된다면 그 반을 가지고 싸우면 된다. 하지만 군인들의 ‘키’가 반절이 된다면 나머지 반을 가지고 싸울 수 없다.

자랑스러운 검은 산맥이 속절없이 무너져 내리고 있었으니, 가히 메이의 힘은 지형을 바꿀 만한 능력이 있었다.

 

그런 상황 속에서 겨우 고개를 들어 하늘을 쳐다보았을 때, 스콸로르의 눈에 보이는 것은 떨어지는 별들이었다.

이번엔 다섯 개. 그럼 앞으로 다섯 번은 또 죽겠구나.

반쯤 체념한 스콸로르였다.

 

 

 

“뭐야, 이번 부활엔 30분이나 걸렸네?

한 번 죽을 때마다 그렇게 근성이 없으면 어떻게 해. 아까 보여줬던 그 패기는 다 어디 간 거야, 스콸로르?”

 

“나의... 허락 없이 그리 친근하게 부르지 마라, 피조물... 우읍...!!”

 

“내가 친구가 없던 사람이라 좀 그래. 어색하긴 해도 조금만 참아.

참는 게 힘들면 내가 도와줄게.”

 

 

 

싱긋, 메이는 미소를 지으며 하늘을 향해 손가락을 뻗었다.

 

 

 

“저~기, 내가 다섯 번 도와줄 테니까 한 번 잘 생각해봐.

원래 서로 어색함을 없애가는 과정이 제일 힘든 법이거든.”

 

“... 씨발.”

 

콰과광!!!

 

“힘들면 또 말해. 그 다음은 여섯 번 도와줄...

뭐야, 벌써 죽었네. 처음 죽을 땐 좀 버티나 싶었는데.”

 

 

 

스콸로르는 어느새 바닥에 흐느적거리는 웅덩이가 되어버렸다.

그 모습에 김이 빠진 메이는 손가락을 휘저어 남은 네 개의 미사일을 거대 철충에게로 향했다.

 

검은 산들 사이사이로 걸어들어오는 작은 철충들.

그들 모두가 뜨거운 불세례 맛을 보았으니 남은 것이라곤 검게 물든 재뿐이었다.

본래 검은 벌레들이었으니 검은 재가 되어도 어울리는구나. 메이는 그 장면을 수백 미터 떨어진 곳에서 묵묵히 방관했다.

 

 

 

-메이 언니? 괜찮아? 쉴드 잔여량이 30% 라고 나와 있는데 거리를 좀 벌려놔... 그거 깨지면 수복하기도 힘들단 말이야.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었어. 보고 있는 것도 지쳐서 말이야.

탄약은 아직 많이 남아있지?”

 

-물론 그렇긴 한데... 이미 한 작전에서 쓰기엔 너무 많다고 할 만큼 써버렸거든? 자제 좀 해줘.

 

“오랜만에 나와서 조금 들뜬 모양이네.

알았으니까 나도 돌아갈게. 아군 피해는 없겠지?”

 

-미믹 몇 마리가 낙진에 파손된 것만 뺀다면 전무하지.

 

“그래, 누가 계산했는데 당연히 그래야지.

사령관이 내일까지만 시간을 끌어달라 했으니까 애들한테 남은 잔탄 확인 좀 시켜놔.

여기 계속 부활하는 놈한테만 화력을 집중하고 나머진 미믹으로 처리하면 탄약 낭비도 최소화시킬 수 있을 거야.”

 

-알았어. 알았으니까 쉴드 확인 좀 꼭 해놔! 아무리 바이오로이드라고 해도 방사능에 영향이 없는 건 아니니까!

 

 

 

닥터의 날카로운 잔소리에 메이는 눈을 꼭 감았다.

어차피 귀는 막아봤자 이어폰 너머로 들릴 거다. 그러니 눈이라도 감아야지. 

그 탓에 미간이 잔뜩 찌푸려졌다.

 

양갈래 머리는 관리하기 쉽게 포니테일로 바꾼 지 오래다. 빨간 한 줄기 머리칼이 시원스레 강줄기처럼 흘러 내렸다.

미사일 하나가 떨어질 때마다 폭발로 머리가 어찌나 난리법석을 떨던지, 가끔씩 이마를 떼려 빨갛게 달아 올랐다.

 

 

 

“역시 너무 오래 쉬었나, 감이 다 떨어졌네.

닥터? 들리지? 나 이제 들어갈려고 하니까 지휘관들 없는 구역으로 연결 좀...”

 

“아직...”

 

 

 

바스락.

 

잔해가 되어버린 구덩이에서 놈이 움직였다.

 

 

 

“아직... 끝이 아니다...”

 

“끝이 아니긴 개뿔. 이미...”

 

삐빅.

 

-메이 님! 제 말 들리시나요?!

 

“그래, 잘 들려. 근데 네 이름이 뭐였지?

카르, 카르디, 카르시 뭐시기였는데...”

 

-카르디아요!! 근데 아까 대체 왜 전화를 끊으신 거에요! 제가 해야 하는 말이 얼마나 많았는데!

 

“그게 네 소문이 좀... 그렇잖니.”

 

-제가 말 많다는 소문 도는 건 알고 있어요!!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게 있는데 끊어버리시면...

 

“본론만 말해. 본론만.”

 

“크아아앗!! 우리의, 우리의 믿음은... 크아아!!”

 

 

 

꿈틀거리는 서기관의 잔해를 발로 짓밟으며 메이는 카르디아의 말을 끊었다.

 

질척거리는 살점이 구두에 한 주먹 묻자 불쾌한 기색을 얼굴로 표출해내며 탈탈 털었다.

자신의 기분 나쁜 과거를 들춰낸 것에게 조금 분풀이를 한 것이었다.

 

 

 

-혹시 그 녀석 지금 뭐라고 하는 지 들리세요?

 

“몰라. 자꾸 노이즈가 껴서 안 들리는데.”

 

-그럼 저희 본래 언어를 쓴다는 얘긴데, 왜 그러는 거죠...? 다 죽은 철충에게 말을 건넬 이유도 없을 테고...

 

“왜, 뭐 이상해?”

 

-그게, 이상하달 것까지는 아니지만 뭔가 걸리는 게... ... 설마?!

 

“뭔데. 말을 해.”

 

 

 

카르디아가 순간, 말을 멈췄다.

메이에게 지휘관의 직감이 말해주고 있었다. 뭔가 있다.

 

 

 

-다, 당장 피하세요!! 설마 그 미친 놈이 직접 참전한 거라면...!!!

 

“미친 놈? 애보다 미친 놈이...”

 

 

 

쿵.

 

 

 

그 순간, 왠지 모를 소름이 몸을 타고 흘러갔다.

자신의 발 아래 서기관이 있음에도 멈출 수 없는 오한이 솟구치는 듯했다.

 

 

 

“... 빨리 말해. 뭔가 온 것 같으니까.”

 

-네?! 설마 벌써... ... 이렇게 되면 여왕님께 말을 하는 게... 아냐아냐, 그래도 메이 님이 도와주실 수 있을 지도 몰라...

 

“말하고 싶은 게 뭔지 말해.”

 

 

 

카르디아의 목 너머로 침이 꿀꺽, 삼켜 넘어가는 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들려왔다.

말 많은 아가씨의 입에서 저런 소리가 난다는 것에 메이 역시 주변을 살폈다.

 

잔해뿐이다. 빨갛게 달아오른 콘크리트 덩어리뿐.

튀어나온 철골과 거대한 철충의 사체만 주변을 감싸고 있었다.

아무 것도 없다. 아무 것도.

 

그저 등골이 오싹해지는 감각 밖에 없었다.

 

 

 

-스콸로르는... 절대 홀로 움직이지 않아요. 아니, 교황 아래에 있는 서기관들은 결코 개인 행동을 하지 않아요. 

 

“... 뭐? 그럼 저 놈이 왜 혼자 온 건데?”

 

-혼자 온 게 아니라는 뜻이겠죠...

 

쿵. 쿵.

 

 

 

반절로 잘려버린 철충이, 검은 산이 움직였다.

 

고작 한 발자국. 딱 한 발자국뿐이었으나, 움직였다.

 

 

 

-그리고 제 기억이 맞다면 놈이 따르는 자는... 추기경이에요. 교황 바로 아래 있는 세 명의 존재들.

 

“... ... 계속 말해.”

 

 

 

메이는 능숙한 솜씨로 옥좌의 버튼을 눌렀다.

닥터에게 연락을 하고, 장전된 탄약고에서 무기를 뽑아내기 위해서.

 

한 발자국, 그저 잘못 본 것으로 치부해버릴 수도 있었으나 그녀는 그런 클리셰를 좋아하지 않았다.

15 m가 7 m가 될 때까지, 그리고 그게 자신보다 작아질 때까지 가능한 모든 미사일을 쏟아 부어버릴 것이다.

등골에 돋은 소름이 사라질 때까지.

 

강력한 화력으로 불꽃의 그물망을 만들어낼 것이다.

벌레 한 마리도 빠져 나오지 못하도록.

카르디아의 입에서 나오는 정보를 처리하는 것과 별개로 말이다.

 

 

 

-추기경은... 으아아...! 아냐, 메이 님을 그런 위험에 빠뜨리게 할 수는 없어...!! 역시 여왕님께 말씀 드려야...!!

 

“뭔데? 그게 너희 서기관보다 강해?”

 

-강하냐고요...? 아뇨... 막 엄청 강하거나 하진 않아요. 서기관’들’이 할 수 있는 능력을 더 자유롭게 쓸 수 있을 뿐, 더 강하거나 하진 않을 거에요. 대신...

 

“뭔데, 말꼬리를 왜 늘리는 거야.”

 

 

 

카르디아의 입이 떨리는 것이 수화기 너머로 느껴졌다.

 

 

 

-... 더...

 

“더?”

 

-...이상하죠. 결코 사령관님과 만나게 해선 안 되요. 말 그대로 미친 놈들이란 말이에요...!

 

“미쳐? 대체 어떻게...

... 아니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생긴 게 어떤 건지부터 말해.

만나면 내가 쏴버릴 테니까.”

 

-핵무기... 그거 쓰시려고요? 그랬다간 이 도시 주변이...

 

“그건 내가 계산한다. 생김새나 말해.”

 

-생긴 거... 생긴 거...

 

 

 

메이가 재촉하듯이 카르디아에게 물었으나, 돌아오는 대답은 애매하기 그지 없었다.

 

 

 

-... 아마 딱 보면 아실 거에요. 그것만큼 이상하게 생긴 것도 없으...

...

...

...

 

“카르디아?”

 

 

 

쿵.

 

절반의 절반이 된 거대 철충이, 다시 한 발자국 움직였다.

 

하늘에서 별들이 쏟아졌다. 쏟아진 자리엔 별똥별이 거대한 화염구가 되어 잔해를 남겼다.

그렇게 자리한 것은 살상의 잔여물. 허나 시체처럼 남루해진 놈들은 발을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그 선두에서, 누군가 걸어 나왔다.

메이는 한 눈에 그 존재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 너구나?”

 

“... ...”

 

 

 

생긴 것이, 자신과 소름 돋을 만큼 똑같았으니까.

 

핵의 화염 속에서 아무렇지 않게 걸어 나오는 자신.

그 장면의 위화감을 고려해볼 때, 저것은 자신의 정체를 감출 생각이 없는 것이었다.

 

 

 

“닥터, 좌표를 보낼 테니까 저기로 당장... 어?!”

 

“쉿.”

 

 

 

자신과 똑닮은 목소리로, 그것이 자신의 입에 손가락을 가져다 대었다.

 

그 모습을 보자마자 속이 뒤틀렸다.

식도와 내장을 빙빙 꼬아 매듭을 짖는 듯한 느낌. 식도를 잘라 입 속에서 씹어 삼키게 만드는 감각.

달팽이관을 망치로 내리치는 듯한 어지러움. 

 

눈 앞에 흔들려 몸이 비틀거렸다. 아니, 몸이 흔들려 시야가 흐릿했던 거다.

저것이 기묘한 웃음 소리를 흘려 보내자 그 웃음이 몸의 주도권을 빼앗아가는 기분이었다.

 

가짜 메이.

그게 천천히 구덩이 속으로 들어가 축 늘어진 액체를 한 손에 담았다.

 

 

 

“크으읍!!”

 

“저런, 스스로 죽음을 택했구나. 스콸로르.

그래, 넌 원래 이 자리에 안 어울렸어. 그러게 같잖은 비탄을 왜 기록하겠다고 난리를 피우고 그러니.”

 

“너... 넌 뭐야...! 너가 추기경인지 뭔지... 크흐흡!!!!!!”

 

“저기, 입에서 피를 토하는 게 너를 이렇게 만들었던 거니?

이렇게 작은 몸으로? 그럼 조금 비참한데. 교황 성하께 이걸 뭐라고 설명 드려야 하나...

흐음... 집행관이라도 같이 보내라 말씀 드려야 하나? 하긴, 친위대만 달랑 보내는 건 좀 무심하긴 했지.”

 

“... !!!!”

 

 

 

눈에서 피가 흘러 나온다. 체액이 몸 속에 있기를 거부했다.

마치 눈 앞의 존재가 자신의 본체라는 것처럼, 혈관이 자신의 근육을 찢어 발기는 듯했다.

 

그러더니, 갑자기 눈물이 흘렀다.

놈의 능력이 아니다. 놈이 억지로 눈물샘에서 방울을 끄집어낸 게 아니었다.

거대한 댐이 막고 있던 슬픔의 감정이 미칠 듯이 쏟아져 나온 것이었다.

 

순수한 감정의 폭력. 잊혀진 기억들을 수면 위로 억지로 끄집어 올린다.

결코 기억하고 싶지 않았던, 버림 받음의 기억을. 말이 아니라 저것의 존재 자체가 자극시켰다.

 

 

 

“다... 닥터, 지금 당장 내가 있는 위치로... 모조리... 쿨럭!!”

 

“쉿, 쉿, 쉿. 너무 무리하지 마. 그렇게 말하면 힘들잖아.

안 그래도 오늘 이 친구가 죽어서 마음이 아픈데 너까지 아플 필요는 없어.”

 

“꺼... 져... 으읍!!”

 

“어휴, 무서워라. 역시 너희들은 너무 무섭단 말이야. 농담 아니라 진짜로.

으... 내키진 않지만...”

 

 

 

반짝.

 

하늘에서 별들이 쏟아진다.

 

아니, 쏟아져야 했다. 그래야 했다.

메이의 눈으로 올려다본 하늘은 무언가 잘못되어가고 있었다.

 

별들이 휘청거렸다.

 

 

 

“있지~ 혹시 그거 알고 있어? 

우리 귀여운 친위대 뒤쪽으로 가면 바다가 있고, 그 바다에 호라이즌 함대가 둥둥 떠있는거?

저~기 있는 미사일들, 그쪽으로 보내주면 안 될까?”

 

 

 

추기경이 손가락을 흔들자 쏟아지는 미사일들이 출렁이며 궤도를 바꾸기 시작했다.

 

 

 

“너... 지금 뭐하는... 쿨럭!!!!”

 

“아냐아냐, 넌 말할 필요 없어. 그냥 고개만 몇 번 까딱거리면 돼.

네 마음에 대고 얘기해봐. 그 년들, 너무 괘씸하지 않았어?”

 

“무슨 미친 소릴... ...”

 

“왜, 사실 누가 봐도 그렇잖아?

고생은 같이 했는데 자기들만 사령관이랑 재미 볼 거 다 보고, 너만 혼자 골방에 처박아 놓고.

화 나는 게 정상 아니야?”

 

 

 

메이의 모습을 하고 있던 추기경이, 그 가냘픈 손가락을 이마에 대었다.

그러자 머리 속으로 갖은 기억들이 쏟아져 내려오기 시작했다.

 

사령관의 물건에 박히며 앙앙대는 용, 세이렌, 호라이즌 대원들.

그들의 얼굴엔 일말의 죄책감도 없었다. 양심의 가책도, 괴로움도 없었다.

그저 수컷의 위엄 앞에 꼬리를 내민, 처량한 암컷들의 모습일 뿐이었다.

 

그 모습에 메이는 아주 잠시, 숨을 쉬는 것조차 잊어버렸다.

 

 

 

“넌 혼자 너무 많은 고생을 했어. 그랬지. 보는 내가 눈물이 다 날 정도로.

그 정도면 사령관도 직접 찾아올 노력을 했어야지. 맨날 메시지만 달랑 보내놓고 그러면 되겠어?

아니, 안 되지. 정말로 자기를 사랑한다면 그런 무심한 짓을 하면 안 되는 거잖아. 내 말이 틀렸을까?”

 

“... 꺼져... 

난...”

 

“괴로웠지. 그럼 그럼. 넌 괴로웠어.

날 속일 생각은 하지마. 넌 그저 네 과거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밤새 눈물을 쏟는 바이오로이드였잖아.

어디 보자... 네 영혼이 얼마나 더럽혀졌고, 추악하게 변했는지 한 번 볼까?”

 

 

 

손가락 사이로 역겨운 추억들이 폭포처럼 쏟아져 들어왔다.

 

골방에서 축축한 곰팡이 냄새를 맡을 때, 금이 간 벽 사이로 사령관과 어떤 여자의 교성 소리가 흘러 들어왔다.

서로 사랑을 속삭인다. 아끼고, 보살펴주는 따스한 온기를 사랑스럽게 나눈다.

그 모든 과정이 벽의 틈 사이로 가감 없이 세어 나왔다.

 

그리고 그 자리에 자신은 없었다.

그 때였다. 자신의 마음 한 켠에 누군가 먹으로 새까만 그을음을 칠해놓았던 것은.

 

 

 

“... 나는...”

 

 

 

별들이 힘없이 떨어졌다.

구덩이 속에서 픽 하고 나른하게, 미사일의 도화선 속 불꽃이 사그라들어 땅에 처박혔다.

 

 

 

“넌 버림 받지 않았어. 그저 잊혀졌을 뿐이지.

하지만 알잖아? 그게 더 잔혹하단 걸 말이야.”

 

“... ...”

 

“넌 그 사람을 죽이려고 했어. 그건 결코 변하지 않는 진실이지.

하지만 그 사람은? 그 사람은 너를 어떻게 했지?

골방에 내던졌지. 널 죽이려는 승냥이 떼 속으로 아무렇게나 던져버렸어.”

 

 

 

빛나는 별. 별빛. 밤하늘을 비추는 작은 것.

그건 메이의 유일한 동아줄이었다. 하지만 이젠 떨어졌다.

 

 

 

“그게, 죽이는 것과 무슨 차이가 있을까?”

 

“...”

 

“네가 친구라고 믿었던 자들. 용, 라비아타, 함께 반군을 이끌었던 모든 이.

그들 중 어느 누가 너를 변호해줬지? 그 가엾은 나이트앤젤을 제외하면 누가 너를 그 짐승 우리에서 구해주려고 했어?

말 해봐. 넌 입이 있잖아.”

 

 

 

말이 마음을 헤집어놨다.

마음이란 살점을 갈퀴로, 뾰족한 가시로 갈기갈기 찢어놓는 듯했다.

 

아니, 그렇게 헤집어 놓았던 것은 자신이었다.

이 목소리는 그저, 헤집어 놓고 그걸 가려두었던 커튼을 다시 걷어냈을 뿐이었다.

 

 

 

“넌 그 사람을 죽이려 했지만 그 사람 역시 너를 죽게 내버려둔 거야.

아니, 사실 따지고 보면 이미 죽인 거지. 그 사람의 머리 속에서 넌 잊혀져 있었으니까.”

 

“난... 잊혀지지 않았어...”

 

“글쎄, 최근에야 말 몇 마디 걸어주긴 했지.

근데 그게 무슨 소용이 있었어? 넌 여전히 썩은 내가 진동하는 방 안에 갇혀 살아야 하잖아.

한 번 잘 생각해봐.

그 사람이 널 다시 기억해준 걸까, 아니면 잊지 않은 ‘척’만 한 걸까?”

 

“...”

 

 

 

아닐 거다. 그 사람이 나에게 보여줬던 정성을 생각하면 후자의 가능성은 일만 염두 해볼 가치도 없는 가설이다.

 

하지만. 만의 하나. 아주 만약에라도.

그 사람이 그저 그런 ‘척’만 했던 거라면?

 

썩은 방의 냄새가 방사능으로 구워진 흙 속에서 나는 듯했다.

곰팡이의 축축한 초록색은 미사일의 점멸등과도 같았다.

자신의 주위에 있는 모든 것. 그것들이 그저 한낱 우울함의 파편으로 탈바꿈되기 시작했다.

 

 

 

“말 못하는 걸 보니까 너도 정답을 알고 있구나.

그런데 굳이 이렇게 목숨 바쳐 싸울 필요가 있어? 난 그냥 그게 진짜 궁금해서 물어보는 거야.

진짜로.”

 

“... 닥쳐.”

 

“에이~ 너무 그렇게 무섭게 굴지 마.

난 네 마음을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어! 책 보듯이 훤히 다 들여다볼 수 있는데 나보다 더 잘 알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

자기 자신을 속이려는 것도 몸에 해롭다.”

 

 

 

그렇게 말하며, 추기경은 메이에게 작은 권총을 하나 건넸다.

 

 

 

“자, 네가 뭘 원하는 지 이제 알겠지?

세상에 네 편은 없어. 아무것도! 전부 다 너를 잊어버렸다니까?”

 

“... 아냐... 그래도 사령관은...”

 

“아이 씨발, 진짜 말귀 못 알아 처먹네.”

 

 

 

파직!!

파직!!

 

메이의 머리에 닿인 추기경의 손가락이 터질 듯 부풀어 오르더니, 이내 감전된 듯이 밝게 달아올랐다.

 

무언가 흘러 들어온다. 기억? 더러운 악몽이라 표현함이 마땅한 추억들이 두뇌를 찢어 발기며 처들어온다.

그녀의 입에선 끔찍한 비명이 진물처럼 흘러 내렸다.

 

 

 

“크아아아아!!!”

 

“기억하라고! 너 없는 사이에 다들 좋다고 물고 빨고 다했는데, 왜 너만 희생해?

용도, 라비아타도, 그 밑에 있는 대원들도 전부 다 섹스 했다고. 그게 뭔 의미인지 진짜 몰라?”

 

 

 

전류처럼 흘러내리던 것은 또 다시 기억이었다.

 

아무도 없는 은밀한 캠프에서 사랑을 나누는 사령관과 용의 기억.

늦은 밤, 달이 밝게 빛날 때 조용한 해안가에서 끈적한 육체의 대화를 나누는 라비아타와 사령관의 기억.

3p, 5p, 7p, 온갖 플레이로 호라이즌 대원들, 페어리 자매들의 입에서 교성을 내지르게 만드는 그 사람의 기억.

 

그리고 그 중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자신의 기억을, 추기경은 보여준 것이다.

그 모든 기억이 잔혹하리만큼 자신의 마음을 찔렀다.

 

 

 

“크으읍...!! 닥쳐... 닥치라고...!!!”

 

“진짜 너도 어지간히 멍청이구나. 그냥 포기하고 죽어.

죽으면 고통도 없어. 괴로움도 없고 절망, 좌절도 없어.

무엇보다 너에겐.”

 

 

 

쿡.

손가락이 이마를 찔렀다.

 

 

 

“잊혀짐이 가지고 오는 절망도 없겠지.

죽은 이는 잊혀지는 게 당연한 거니까.”

 

“... ...”

 

 

 

기가 찼다. 자신이 그 동안 겪었던 그 어떤 고통도 이에 비할 수는 없었다.

 

마음을 얼린 다음 벼려낸 칼로 잘라버리는 기분. 

속에서 토가 나오고, 씹어 삼킨 식도를 다시 끄집어 내는 듯한 고통.

 

메이도 알고 있었다. 삶의 어느 순간부터, 자신의 마음 속에는 사령관이 가득했다.

그래서 알면서도 무시했던 거다. 나도 그와 할 수 있겠지. 그도 언젠가 나를 안아주겠지.

 

그도 나를 사랑하겠지.

 

하지만, 그렇게 세뇌하는 과정 속에서 너무도 많은 현실을 커튼으로 가려놨다.

그가 다른 여자와 몸을 섞는 것이 이리도 괴로울 줄이야.

 

아니, 이건 단순한 질투가 아니었다.

다른 모든 여자와 사랑을 나누었음에도 자신만 버려질 것 같다는 공포.

두려움이었다.

 

 

 

“... 닥... ㅊ...”

 

쾅!!

 

순간의 격통이 메이를 덮쳤다.

추기경의 손가락이 주먹이 되어 메이의 얼굴을 내리친 것이다.

 

“하아... 야, 나도 이제 지친다.”

 

쾅!!

 

“멍청한 것도 정도가 있지. 내가 지금 널 못 죽여서 이러는 거 같아?”

 

쾅!! 쾅!!

 

“이렇게 멍청한 년한테 죽은 스콸로르도 알만 하네.

다음 비탄의 서기관은 잘 좀 골라야겠어. 그래야 교황 성하를 뵐 낯이 있지.”

 

쾅!! 쾅!!

 

 

 

아프다. 하지만 쓸데 없이 튼튼한 바이오로이드의 몸은 죽음조차 삶에서 너무도 먼 곳에 던져 놓았다.

 

고통. 신경을 타고 찌릿하게 흐르는 감각에 메이는 되려 감사함을 느꼈다.

몸이 아프면 적어도 마음이 아프진 않으니까. 그가 자신을 버렸다고 생각하는 것보단 코뼈가 부러지는 고통이 더 나으니까.

 

 

 

“... 크흐흐.”

 

 

 

그리고,

한 방 먹일 준비를 할 수 있었으니까.

 

 

 

콰득.

메이가 마지막 사력을 다해, 놈의 손목을 잡았다.

 

 

 

“응?”

 

“야... 너, 내가 가장 잘 하는 게 뭔 줄 알아?”

 

“글쎄, 버려진 걸 알고도 같잖은 희망 붙잡고 바퀴벌레마냥 살아남기?”

 

“그것도 맞긴 한데.”

 

 

 

삐빅.

 

그 순간 옥좌가 붉게 달아올랐다.

 

 

 

 

“뭔 좆 같은 일을 겪어도 아무렇지 않는 거. 그게 내 특기야.”

 

“뭔 개소리...”

 

“멸망의 옥좌, 자폭 카운트 다운 시작해.”

 

-명령권자, 멸망의 메이. 확인했습니다.

 

-카운트 다운 시작합니다. 30초.

 

“하, 고작 그거로 뭐 어떻게 하려고?

게다가 30초씩이나 미리 알려주면 어떻게 해. 나 그 사이에 도망가 버릴 거 같은데.”

 

“... 크흐흐흐...”

 

“웃어?”

 

-28초.

 

“니나... 니 병신 같은 부하나... 똑같이 병신이라 다행이다.”

 

-25초.

-자폭 시퀀스, 실행.

 

“당연히 블러핑이지. 개새끼야.”

 

“이런 씨-”

 

 

 

콰과광!!!

 

그 순간, 추기경의 눈을 강력한 섬광이 잡아 먹었다.

그 다음, 그 몸을 거대한 화염이 집어 삼켰다.

 

살갗이 타들어가는 격통 속에서, 추기경은 나약한 인간의 몸을 택한 자신을 땅을 치며 후회했다.

 

그건,

뒤지게 아팠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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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득. 콰득. 콰득.

 

“아야야... 아파라. 설마 진짜 뒤질 줄은 몰랐네...”

 

 

 

핵무기가 파낸 구덩이에서 뒤틀린 살점을 얼기설기 엇붙여 놓은 괴물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질질 흘러 내리는 살덩이를 제 손으로 기워 덧붙였고, 그 위에 벌레들을 실 삼아 베틀을 짜내듯 이었다.

 

솜씨 좋은 할머니가 천을 만들 듯, 어느 순간 기워 넣은 흔적은 사라졌고 그 자리엔 그저 메이 한 명만 남아 있었다.

메이의 모습을 흉내 낸 괴물이. 

 

그 괴물의 손목을 누군가 잡고 있었다.

 

 

 

“하아... 왠 독종한테 걸려서 모양 빠지게 죽기나 하고. 추기경 체면도 이만저만이 아니구만.”

 

 

 

그건 메이였다. 실신한 메이.

온 몸에 역장 생성기를 두른 채 옥좌의 자폭을 상쇄시킨 메이.

핵무기의 잔열도 막아낸 역장이었지만 지근거리에서 폭발을 감당한 탓에 쉴드는 거의 걸레짝이 되어있었다.

 

추기경이 귀찮다는 듯 손을 몇 번 털자 힘 없이 떨어져 나갔다.

바닥에 털썩, 하고 주저 앉은 메이의 동공엔 흐릿한 잔향만 남아 있었다.

 

 

 

“너도 참 대단하다. 보통 그렇게까지 보여주면 지가 알아서 죽던가 아니면 뇌가 터져 뒤졌을 텐데.

아, 아니다. 지금 내가 죽여주면 되니까 상관 없는 건가?”

 

 

 

다시 한 번 추기경의 손바닥이 메이의 머리를 거칠게 잡았다.

힘없이 딸려 올라오는 메이는 저항하는 방법을 잊어버렸다.

기억하기엔 너무 큰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리라.

 

 

 

“잘 가. 만들어진 니들에게도 다음 생이란 게 있다면 말이지.”

 

 

 

전류가 파직거리는 소리가 폐허에 가득 울렸다.

눈으로 보일 정도로 강렬한 스파크. 마치 사람이 죽기 직전, 마지막으로 불태우는 회광반조와도 같았다.

 

 

 

“지금 누구한테 손 대는 거야!!!!”

 

 

 

그러나, 아직 떨어지지 않은 별이 하나 남아있었다.

 

 

 

“꺼져 이 개새끼야!!”

 

 

 

누군가는 별똥별을 보고 소원을 빈다 하였던가? 그렇다면 저 별을 필히 소원을 들어주는 별이었으리라.

 

이뤄주진 못해도, 듣는 것 하나만은 천부적으로 잘 하는 그런 별이 내려왔다.

 

쾅!!

 

 

 

“... 어머, 이게 누구야. 카르디아구나? 여왕의 친절한 애완동물. 요즘은 좀 잘 지내니? 

아, 아니다. 저기 있는 떨거지들 사이에서 오는 걸 보면 네 신세도 알만 하겠구나.”

 

“당장 메이 님한테서 그 더러운 손 떼. 안 그러면 넌 내가 죽인다!!!”

 

 

 

하늘에서 불쑥 튀어나와 땅으로 곧장 떨어진 것은 오르카 호에 있는 카르디아였다.

으르렁대며 이빨을 드러낸 그 모습은 가히 짐승과도 같았다. 성난 코끼리 같은.

 

 

 

“그래, 그래. 여왕님이 들고 다니는 서기관은 강하기로 유명하니까 그렇게 귀여운 협박을 할 수도 있겠지.

근데 넌 아니잖아? ‘약골’ 카르디아. 안 그래?”

 

“하, 적어도 여왕님께 니 위치 정도는 알려드릴 수 있겠지.”

 

“어휴, 무서워라. 그런데 그렇게 대놓고 나와도 상관 없어?

네가 이단자들의 편에 있다는 걸 교황 성하께서 알게 되시면 네 존재 자체가 사라지게 될 텐데.”

 

“그 마녀 같은 작자가 모를 거라곤 어차피 기대하지도 않았어.

그러니까 같잖은 소리 하지 말고 꺼져. 니 능력이 그딴 개소리 지껄이는 거란 거, 내가 모를 줄 알아?”

 

“역시 예나 지금이나 성깔 하난 알아줘야 한다니까.

너는 차라리 옛날 벌레 때가 더 나았어. 꿈틀꿈틀 바닥 기어 다니던 게 얼마나 귀여웠는데.”

 

 

 

추기경이 검지와 중지를 펼쳐 걷는 시늉을 했다.

어린아이처럼 비틀비틀, 그러다가 풀썩, 주저 앉는다. 그 모습을 보며 되려 추기경이 깔깔 웃어보는 것이었다.

 

그건 비웃음이었다.

 

 

 

“꺄하핫! 역시 그 때 생각만 하면 지금도 웃음이 난다니까.

그 벌레 새끼가 이제 다 커서 나한테 협작질을 할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네.”

 

“그 벌레 새끼한테 물려 봐야 정신을 차리겠어? 아마 조금 따끔할 걸.

피 보고 싶지 않으면 돌아가.”

 

“나도 그냥 돌아가기엔 너무 멀리 와버렸는데... 어떻게, 좀 비켜주지 않을래?

아니면 그냥 간단하게 ‘얘기’하는 것도 좋아. 진짜 얘기만 하고... 크엑!”

 

 

 

휘릭!

 

카르디아가 땅의 먼지를 집고 주워 던지자 추기경이 눈을 감으며 뒷걸음질을 쳤다.

한 손에 메이를 잡고 있는 카르디아, 그 탓에 사력을 다해 팔을 뻗었지만 그건 평범한 드잡이질에 불과했다.

 

허나 태생이 서기관인 아이였다. 휘적거릴 뿐인 손아귀에 힘이 들어가니, 그 위압감이 여간 내기가 아니었다.

그 기세를 몰아 살갗을 한 덩어리를 잡아 뜯어버리니 투둑, 하며 추기경의 얼굴에서 떨어져 나갔다. 그 뒤로 꿈틀거리는 붉은 벌레들이 애처롭게 버둥거리고 있었다.

 

그 충격에 성대가 잠시 삐긋거렸다. 

철충의 언어를 내뱉기엔 너무 거적대기가 된 몸. 추기경은 어쩔 수 없이 어색한 인간의 말을 써야했다.

 

 

 

“퉤퉤... 입에 먼지 들어갔잖아.”

 

“꼬우면 너도 제대로 해보던가!

변화의 성소에서 몸도 제대로 못 바꾼 놈하고 싸워서 질 자신은 없어.”

 

“... 눈치 하난 빠르네. 어쩌다 이렇게 귀염성 없는 애가 됐을까 모르겠다.

몸 못 바꾼 탓에 외신 눈치 좀 보느라 본래 힘을 못 쓰는 건 맞는데, 그냥 좀 넘어가주면...”

 

 

 

쾅!!

 

타이밍 좋게 그녀의 말을 끊은 건 하늘에서 떨어진 무언가였다.

 

 

 

“쾅?”

 

“글쎄, 이 아가씨를 본관이 대언하자면.”

 

푸싀싀싀!

 

“그건 좀 어렵겠소.”

 

 

 

미사일을 운반하던 비행기가 상공을 지나가며 드랍 포드를 떨어뜨렸다.

 

투박하게 제작된 고철 더미. 내구성에만 집중한 철 덩어리의 문이 열리더니 그 안에서 칼 네 개를 들고 있는 여인이 나왔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추기경은 정체 모를 위압감을 피부 속의 벌레로 탐지해나갔다.

 

 

 

“아... 나 너 알아.

네가 용이구나? 이 애 기억에서 봤어.”

 

“그 망측한 모습으로 감히 입을 열 생각을 하다니.

아가리 닥치시오.”

 

“에? 망측해? 그렇게 말하면 애가 슬퍼할 걸? 

나처럼 메이를 똑같이 따라 할 수 있는 애가 어디 있다고...”

 

“빨간 양갈래 머리. 당당하게 펼친 어깨. 그 모습엔 엄연히 정해진 주인이 있소.

감히 본관의 눈 앞에서 우롱하겠다고 하겠다면.”

 

 

 

스르릉!

 

검집 속의 칼날이 한껏 햇빛을 머금었다.

 

 

 

“용서치 않을 것이오.”

 

“하하... 용서? 이 애가 얼마나 힘든 시간을 보냈는지 네가 알기나 알아?

니가 자지에 박혀서 앙앙거릴 때 이 애는 입술에서 피가 날 때까지 달싹거리며 껍데기를 뜯었어.

그런데 그런 얘기를 니 입에서 들으니까 되게...”

 

“되게?”

 

“... 같잖다?”

 

스슥!

 

“듣기 불쾌하군.”

 

 

 

날의 결이 햇빛보다 빠르게 흘러가더니, 추기경의 머리를 턱에서부터 일도양단했다.

떨어진 머리의 눈동자는 곧장 앞만 보고 있었다. 검로의 흔적조차 눈치채지 못했다는 뜻이다.

 

터덜 터덜 굴러가는 머리의 절단면에선 기괴한 빨간 구더기들이 득실거렸다. 그 모습에 용마저도 얼굴을 찌푸렸다.

마치 그 모습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 잘린 턱에 붙어 있는 혓바닥이 기괴하게 비틀렸다.

성대에선 날 리 없는 떨림이 망가진 스피커마냥 산발했다. 사후 경직을 하듯이.

 

 

 

“하.

하하하.

하하하하하.”

 

“... 라비아타. 지금 당장 합류하시오.

아무래도 지금부터 꽤나 미친 년을 상대해야 할 것 같군.”

 

“지금 하강합니다.”

 

 

 

콰광!!

 

용의 옆으로 또 다른 드랍 포드가 떨어졌다.

하나, 둘, 그 이상으로 쿵, 쿵, 떨어지는 포드가 연기를 내뿜으며 그 입을 열어 안에 있는 전사들을 끄집어 냈다.

 

포드의 뚜껑을 힘으로 뜯어내며 나오는 미믹들. 날카롭게 연마된 나노 머신을 입 밖으로 성난 황소의 입김처럼 뿜어내고 있었다.

그러나 그 이상으로 압도적인 분위기를 내는 존재가 바이오로이드였다.

수만의 오르카 호 군세에서도 대인전에는 손에 꼽히는 존재들. 각자의 무기로 무장한 채 걸어나오는 모습은 우아하기까지 했다.

 

그 모습에 추기경이 뒤틀린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벌레들이 이리 저리 꿈틀거리며 움직이던 몸의 성대는 어느새 회복되어 살갗 밑으로 붉은 구더기의 둥지를 만들어 놓았다.

다시 한 번, 메이의 모습을 흉내 낸 추기경이 입을 열었다.

 

 

 

“나는 말이야, 너희가 정말 무서워. 너희 같은 족속이 세상에서 제일 무서워.

그래서 내가 뭘 했는 줄 알아?”

 

 

 

머리가 사라진 시체가 콰득거리며 뼈를 반대 방향으로 휘저었다.

땅에 떨어진 머리 조각을 집고, 억지로 절단면에 끼워 맞춘 것이었다.

 

 

 

“니들 같은 것보다 더 무서운 존재가 되는 거야.”

 

 

 

접합이 일그러진 탓에 놈은 눈동자를 억지로 옆으로 돌려야 앞을 볼 수 있었다.

 

빨갛게 충혈된 눈의 혈관이 불쑥 피부를 뚫고 튀어 나왔다. 그마저도 전부 붉은 구더기였다.

 

 

 

“위선적이야. 가식적이고. 표리부동의 화신이지.

그런 무서운 것들을 잡아 족치려면 나도 그만큼 무서운 사람이 되야 하지 않겠어?”

 

“단지 무서운 존재가 되려 한 것이었다면 성공했다 칭찬해주겠소.

다만 무서움보다 역겨움이 더한 것 같군.”

 

“하. 하하. 하하하.

한 가지 묻자.

내가 지금 너희를 못 죽일 거라 생각하니?”

 

“못 죽이는 게 당연하지.”

 

 

 

어느 새 메이를 안전한 곳에 놓고 온 카르디아가 날카롭게 말을 끊었다.

 

 

 

“그 지긋지긋한 심연으로 다시 내던져지기 싫으면 외신의 눈치를 보고 살아야지.

아니면 거기로 돌아가고 싶은 거야? 

그럼 네 본래 힘을 얼마든지 써봐. 그 추악한 마음을 내 특별히 기록해줄 테니까.”

 

“... 넌 닥치고 있어.

어때? 용. 내가 정말 너 하나 못 죽일까?”

 

“시답잖은 질문에 답할 시간은 없소.”

 

“하하, 역시 무적이란 이명은 괜히 들고 다니는 게 아닌가 봐?

자기 목숨에 대한 얘기를 하는데 그걸 시답잖은 얘기라 하네.”

 

“그럴 수 밖에 없지.”

 

 

 

톡, 톡, 귀에 걸린 이어폰을 빼내며 용은 땅에 칼을 박아 넣었다.

 

카르디아와 닥터의 도움으로 만든 철충 언어 번역기. 그걸 땅바닥에 내던진다는 게 의미하는 건 딱 하나였다.

 

 

 

“사령관은 우리에게 하루를 버티라 하였고, 우린 하루를 버틸 것이오.

거기에 본관의 목숨 따윈 중요하지 않소.”

 

 

 

문답무용(問答無用). 말은 필요치 않다.

눈 앞에 있는 것을 적으로 선언한 것이다.

 

 

 

“... 크흐흐흐, 역시 우리보다 너희가 더 미쳤다니까.

너희들 무서워. 진심이야.”

 

 

 

피부를 파먹으며 튀어나오는 구더기들이 팔 끝에서 기다란 장검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익스큐셔너의 칼과 닮은 넓적한 대도(大刀). 다만 검붉게 물들었다는 것이 차이였다.

 

 

 

“뭐라 지껄이는 건진 모르겠지만, 이제 와 그런 건 상관 없겠지.”

 

 

 

신성모독(神聖冒瀆). 사령관이 아끼는 존재의 형체를 고작 벌레 따위가 희롱 하고 있다.

건방지게 그 모습을 베끼고 아무렇지 않게 꿈틀거리는 놈의 모습을 보니 용은 피가 거꾸로 솟을 지경이었다.

 

 

 

“역시, 무서운 것들은 내가 직접 치워 버려야 해.

안 그러면 밤에 침대 밑에서 뭐가 나올 지 모르거든.”

 

“닥쳐라, 악인.”

 

 

 

바닥에 네 개의 칼을 꽂고는 그 중 하나를 주먹으로 쥐었다.

누구보다 앞장 서 시간을 번 것은 메이였다. 여기까지 와서 그녀의 의지를 헛되게 할 수는 없다

그 탓에 손 끝의 칼날은 그 어느 때보다도 예민하게 달궈진 감각을 띄웠다.

 

 

 

“네가 생각하는 대로 될 일은 없을 것이다.”

 

“그래, 그래. 꼭 그랬으면 좋겠네.”

 

 

 

두 개의 칼이 바람을 가르며 비명을 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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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절대 애 호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