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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령관의 모습을 오르카 호에서 찾아볼 수 없게 된 지도 벌써 일주일이 지났다.

사령관이 늘 지나던 복도에는 암운이 내리깔린 듯, 어둠과 적막만이 감돌고 있었다.


오르카 호 내부의 분위기에 대해 묘사하는 데 있어서는 처참하다는 말조차 부족했다.

누군가 그때를 회상하며 말하길 마치 모두가 감정을 잃어버린 것처럼 행동했다고 했으니, 우리는 그 말에서 당시의 분위기를 단편적으로나마 엿볼 수 있다.


그리고 시간은 더욱 흘러, 어느새 사령관이 보이지 않게 된 지 딱 한달째가 되던 날이었다.

지휘관들이 모두 모여있는 회의실에서 고함치는 소리가 들렸다.


"마리, 네가 그런 작전을 내지만 않았어도 이렇게까지 되지는 않았잖아!"

메이가 말했다. 그녀의 눈에는 다크서클이 짙게 내리깔려 있었다.


"지금 뭐라고 했나?"

마리가 말했다. 메이를 노려보는 그녀는 누가 보더라도 수척해 보였지만, 눈에는 살기가 담겨있었다.


"네가 그 멍청한 미끼 작전을 내서 사령관이 저렇게 됐잖아! 내말이 틀려?"


메이가 말했다. 그녀는 이제 악에 받쳐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사령관의 부재로 인해 메이의 정신은 한계에 달했고, 결국 무너지지 않기 위해 그녀의 정신은 도피처를 찾았다.

하지만 마리의 정신이라고 멀쩡한 것은 아니었다.


"멸망의 메이.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모르겠군. 그렇게 잘났다면 둠 브링어가 폭격으로 전부 쓸어버리지 그랬나?

철충들이 지나치게 산개해 있어서 폭격의 효율이 나오지 않는다고 했던 건 누구였지?

아아.... 이제 생각해보니, 사령관이 저렇게 된 것은 둠 브링어의 무능 때문 아닌가?

그런데 왜 그 탓을 내게 돌리지?"


사실 티를 내지 않았을 뿐이지, 마리는 이미 무너져 있었다.

메이가 말한 것처럼 자신이 사령관을 저렇게 만드는 단초를 제공했다는 죄책감이 그녀를 안에서부터 갉아먹었다.

그러던 중 날아온 메이의 날카로운 비수는 마리가 그나마 유지하던 이성조차 사라지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이후로도 사령관이 있었다면 절대 용납하지 않았을 언사들이 오고갔으나, 아무도 말리지 않았다.

그것을 말리기에는 나머지 지휘관들 역시 더 이상 이성적으로 대응할 여력이 남아있지 않았다.

다른 지휘관이 그 싸움에 끼어들었다면, 분명 둘의 싸움이 아닌 지휘관들의 싸움이 되었을 것이다.


지휘관들조차 이런 상황이었으니 일반 바이오로이드들의 분위기는 말할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오르카 호에 드리워진 어둠은, 더욱 짙어져만 가고 있었다.



사령관은 자신의 눈앞에 있는 패널을 바라봤다.

옆으로 넓은 직사각형의 모양을 한 패널은 파란색 빛을 발산하고 있었다.


그는 이 패널을 통해 한달간 무언가에 홀린 사람처럼 일을 했다.

아무도 만나지 않았지만, 대면하지 않고 처리할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했다.


아르망처럼 오르카 호 내부의 일을 처리하는 바이오로이드들은 그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예전과는 상황이 달랐다.

지금 사령관에게서 일까지 뺏는다면 그가 어떻게 될 지 모른다. 그런 생각에 그들은 사령관이 계속 일을 하도록 둘 수밖에 없었다.


그는 잠시동안 패널의 오른쪽 아래에 있는 수백개의 메세지를 쳐다봤다.

그는 오른손을 들어 손가락을 '메세지' 버튼으로 가져갔다가, 손을 부들부들 떨며 다시 내려놓았다.


그는 그 수많은 메세지가 마치 그 작전에서 죽은 원혼들이 자신을 원망하는 말인것만 같았다.

메세지들이 그런 내용이 아닐 것이라는 것쯤은 그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메세지를 열 수 없었다.


그는 더 이상 맞서 싸울 기력이 남아있지 않았다. 그러나 그에게 기대를 건 바이오로이드들을 배신할 수도 없었다.

불이 모두 꺼진 채 패널의 파란 빛만이 남아있는 사령관실은 그의 심정을 대변해주고 있었다.


그는, 말도 안 되는 이상을 추구했기 때문에 그들이 죽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 사령관실의 문틈으로 종이 한 장이 비집고 들어와 떨어졌다.

팔랑, 팔랑 하고 떨어지는 그 종이를 멍하니 바라보던 사령관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종이를 확인하기 위해 사령관실의 불을 켰다.

한동안 불이 켜지지 않았던 탓인지 형광등은 깜박거리며 오랫동안 켜지지 않았다.


불이 켜지자 그의 눈은 갑작스러운 빛에 적응하지 못해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이윽고 빛에 익숙해진 눈은 엉망이 된 사령관실의 모습을 비추고 있었다.


그는 널브러진 침구류나 엉망이 된 책상 같은 것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고 종이를 응시했다.

글씨가 빼곡하게 적힌 A4용지였다.


천천히 걸음을 옮겨 그 종이를 집어든 그는 적혀있는 글을 읽어내려갔다.



사령관님, 저는 그 작전에서 전사한 레프리콘 507의 동기입니다.


첫 문장을 읽는 순간, 그의 가슴이 내려앉았다.

그는 당장이라도 종이를 찢어버리고 도망치고 싶은 충동에 휩싸였다.

그러나 그가 생각하기에 이것은 그의 원죄이며 업보였다.

자신이 감당해야 할 몫이라고 생각한 그는 다시 글을 읽었다.



사령관님, 저는 그 작전에서 전사한 레프리콘 507의 동료입니다.

저는 사령관님께서 왜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시는지 알고 있습니다.

분명 저희에 대한 죄책감 탓일 것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사령관님의 잘못이 아닙니다.

저도 함께 전투했으니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생환자 모두에게 물어봤지만, 아무도 사령관님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사령관님이셨기에 자신이라도 살아돌아올 수 있었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레프리콘 507은 이번 전장에서 만났던 녀석입니다.

그 녀석이 마지막 날, 그러니까 4일째 되던 날에 저에게 이렇게 말하더군요.

'자신이 살아돌아가길 원했던 분이 있기에 자신은 이번 전투에서 살아남으려고 하겠지만, 죽는다고 해도 후회는 없다'고요.


결국 그 녀석은 마지막 전투에서 죽었습니다.

사실, 그 녀석이 죽은 것은 제 탓입니다.


제가 잠시 정신이 흐트러진 사이 날아오는 공격을 그 녀석이 대신 맞았습니다.

하지만 심각한 부상을 입고 죽어가는 그 순간까지도 저에게 말했습니다.

사령관님께서는 너무나 상냥하셔서 자신들의 죽음을 지나치게 슬퍼하실지도 모른다고.

그러니 사령관님께, 이것이 당신의 잘못이 아니며 아무도 사령관님을 원망하지 않는다고 전해달라더군요.

그러고는, 혼자서 누군가에게 죄송하다는 말을 하더니 숨을 거뒀습니다.


사령관님, 저희같은 말단의 죽음에도 슬퍼해주시는 것은 너무나 감사한 일입니다.

하지만 사령관님, 계속 슬픔에 빠져 스스로를 망치는 것은 저희들이 바라는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분명, 죽은 레프리콘 507과 다른 부대원들도 원하지 않을 겁니다.


저희 모두를 지키겠다고 말씀해주신 그날처럼, 다시 일어서서 저희를 이끌어주세요.



글을 모두 읽은 사령관의 눈에서는 눈물이 흘렀다.


동시에, 사령관은 과거 기억의 방주에서 보았던 한 이야기를 떠올렸다.

재해석된 이카루스의 이야기. 그 이야기는 이랬다.


이카루스는 원대한 꿈을 가지고 있었다.

그 꿈이란, 언젠가 자신이 태양에 도달하리라는 것이었다.


이카루스는 꿈을 이루기 위해서 끝없이 노력했다.

어떻게든 더 높이, 더 높이...

태양에 더 가까이, 가까이...


그러던 어느 날 이카루스는 자신이 날아서 태양에 도달해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고는 밀랍으로 날개를 빚어내, 마침내 하늘로 날아오른다.


그러나 이카루스가 태양에 점점 가까이 다가갈수록, 무언가 잘못되어갔다.

밀랍으로 만든 이카루스의 날개는 점점 녹아내리고 있었다.


이카루스는 본능적으로 깨닫는다.

살기 위해서는 즉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하지만 이카루스는 돌아가지 않았다.

태양을 향해 더욱, 더욱 가까이 다가갔다.


이카루스에게 태양은 더 이상 단순한 목표나 꿈이 아니었다.

그가 태양에게 도전하는 긴 시간동안 그것은 그의 이상이 되었다.


이카루스는 이상을 향해 한 걸음 더 나아갈 수만 있다면 죽어도 좋다고 생각했다.

그것을 향해 지금까지 달려왔는데, 이제 와 죽는 것이 두려워 포기한다면 어쩐지 다시는 이상에 도전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이카루스는 결국 태양을 향해 날다 어느 순간 날개가 녹아 추락했고, 죽었다.

사람들은 태양에 도달하려 했던 이카루스를 미련하다며 비웃었지만 죽은 이카루스는 웃고 있었다고 한다.



이 이야기를 읽은 사령관은 죽음 앞에서도 꺾이지 않은 이카루스가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이카루스의 이상이 숭고하다고 생각했고, 그를 비웃던 사람들이야말로 신념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자신 역시 이카루스처럼 꺾이지 않고, 주변의 어떤 것에도 굴하지 않고 이상을 향해 나아가겠다고 다짐했었다.


사령관은 이카루스가 떨어져서도 죽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생각해보았다.

이카루스가 죽지 않았다면 분명, 다시 또 다른 방법을 찾아내 날아올랐을 것 같았다.


사령관은 거울을 보았다.

관리가 되지 않고 있는 얼굴과 덥수룩하게 자란 턱수염, 사형수처럼 자라난 머리카락.

그가 스스로 보기에도 완벽한 폐인이었다.


그의 모두를 살리겠다는 신념은 한 번 꺾였다.

그리고 그는 스스로의 신념이 꺾이자 자신이 어느새 이카루스를 비웃던 사람들이 되어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런데 이 편지는 사령관을 원망하지 않는다고, 그 이상과 신념으로 다시 자신들을 이끌어달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는 어설프게나마 자신의 머리를 잘라내고, 수염을 밀었다.

깔끔하게 목욕을 하고, 옷을 갖춰입었다.


이카루스는 추락해 죽었지만, 그는 아직 살아있었다.



한 달간 아무도 걷지 않았던 복도에 발걸음이 울려퍼졌다.


그의 죄책감이 아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그는 여전히 모두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한 달간 칩거해 있던 것에도 미안함을 가지고 있었다.

그의 총기가 돌아오자, 자신이 칩거한 것이 얼마나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을지에 대한 감이 왔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이 만들어낸 이 모든 상황을 원래대로 돌려놓고 나면, 편지를 쓴 사람에게 찾아가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한 번 꺾여 다시는 일어서지 못할 것 같았던 자신을 끌어올려준 누군가.


그것이 누구인지를 찾아낼 생각은 없었다. 동료의 죽음은 그 자체로 괴로운 기억일테니.

그저 그는 이 모든 일이 끝나면 생환자 모두에게 한 명씩 찾아가 이야기를 나눌 것이다.


그리고 모두에게 미안함과 고마움을 동시에 전할 것이다.


그의 눈은 비가 온 뒤 더욱 단단해진 땅처럼, 마찬가지로 한번 꺾인 뒤 더욱 단단해진 그의 신념을 담고 빛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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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나온 완결편입니다. 이렇게 늦게 된 이유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사실 제가 요 며칠 코로나에 걸려서 앓아누웠습니다. 그래서 글을 쓸 수가 없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엔딩에 대해서는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심사숙고 끝에 고른 결말인데, 마음에 드셨으면 좋겠습니다.


이렇게 해서 "그래서, 이 병력을 미끼로 쓰자?" 시리즈는 완결이 나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읽어주신 분들, 정말 감사합니다.


또 소재가 떠오른다면, 다른 시리즈로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