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 모음집   


“뭐야, 아직 안 갔어?”

 

강의를 마치고 방으로 나온 리마토르는 연구를 이어가던 닥터와 마주쳤다. 빨간 머리의 바이오로이드와 대화 중이었던 닥터는 그를 보자 가벼운 물음을 던졌다.

 

“잠깐 AGS들과 대화하고 가는 길이었어요.”

 

그는 그녀의 말에 답하면서 닥터와 대화 중인 바이오로이드를 훑어봤다. 붉은 머리칼에 175 정도의 늘씬한 키, 가슴팍이 다 찢어진 옷을 입은 굉장히 ‘호리호리한’ 체형이-

 

“그런 식으로 강조 넣어서 서술하지 마세요.”

 

자연스럽게 제4의 벽을 파괴하는 발언을 한 그녀는 리마토르를 썩 호의적이지 않은 눈으로 바라보았다.

 

“아, 무례를 범했다면 죄송합니다.”

 

“애시당초 호리호리한 게 아니라 그냥 없는 거라서 문제죠. 그래서 닥터, 너라면 좋은 방법이-”

 

“나앤 언니, 내가 몇 번 말했어. 아무리 과학이 발달한다 하더라도 되는 게 있고 안 되는 게 있다고 했지? 지금처럼 가슴이 클 공간이 필요하다고 옷을 다 찢어서 와도 안 될 건 안 되는 거야.”

 

“닥터! 제발 부탁이야. 너라면 무에서 유를 창조할 수 있잖아!”

 

나이트 앤젤이 닥터에게 매달렸으나 닥터로써도 방법이 없었기에 자신에게 매달리는 그녀를 내칠 뿐이었다. 받아들일 수 없는 현실을 부인하는 것이 무척이나 안타까웠으나, 그녀로서도 그 광경을 보며 동정의 눈길을 보내는 리마토르로써도 방법은 없었다.

 

“흐윽... 과학은 전부 거짓이야...”

 

눈물을 줄기로 흘리며 과학을 부정하는 그녀의 말에 닥터는 참지 못하고 대꾸했다.

 

“과학을 못 믿겠으면 신에게 가서 빌던가. 코헤이 교단에나 가봐.”

 

“내가 안 해봤겠어? 신은 죽었어!”

 

“이야, 니체랑 같은 말씀을 하시는군요.”

 

말이 나온 본질은 다르지만 도달점이 같은 놀라운 광경에 리마토르는 자신도 모르게 말이 목에서 튀어나오는 걸 막지 못했다. 그의 말을 들은 나이트 앤젤은 그를 째려보며 말했다.

 

“불난 집에 부채질해요?”

 

“죄송합니다...”

 

한이라는 감정을 형상화한다면 분명 그녀의 째려보기는 훌륭한 교보재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며 리마토르는 고개를 숙였다. 나이트 앤젤이 눈물을 닦으며 발걸음을 옮기자 그는 그녀의 뒤를 쫓았다.

 

“왜 따라와요.”

 

“아... 어디 가나 궁금해서요.”

 

아직 채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가시가 돋힌 그녀의 말에 그는 주춤거렸다. 그의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그녀는 새침하게 대답했다.

 

“닥터가 말한 대로 신한테 가서 빌어봐야죠.”

 

“저도 안내해주세요. 구미가 당기네요.”

 

“학자가 종교에 관심을 보이시다니 특이하네요. 닥터는 종교라면 딱 질색하던데.”

 

“실증적인 발견을 중시하는 과학은 믿음을 요구하는 종교와는 거리가 있으니까요. 하지만 종교는 신앙의 근거를 대기 위해 논리학과 형이상학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만큼 철학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교부철학과 유불도 사상이라는 개념을 생각하면 바로 이해가 올 겁니다.”

 

“철학은 과학이랑 정반대네요. 실생활이랑 많이 떨어진 만큼 말이죠.”

 

자신을 보고 실컷 비아냥대던 메이도 그렇고, 부관인 나이트 앤젤도 철학에 냉소적인 시선을 보내자 리마토르는 둠브리어가 모두 이런 투인가 추측하며 그녀들을 회유할 방법을 찾고자 머리를 빠르게 돌렸다.

 

“그렇게 떨어진 건 아니에요. 과학이라는 학문이 생활에 미치는 것을 연구하고자 철학의 분과로 과학학이라는 학문이 등장할 정도로 철학은 생활과 연계되어 있습니다.”

 

“하, 그럼 어디 한 번 제 가슴을 크게 만들어주시죠. 아주 빵빵하다 못해 옷이 터져서 찢어질 정도로요.”

 

리마토르의 말에 나이트 앤젤은 코웃음을 치며 그에게 난제를 던졌다. 그런 상황을 예측하지 못한 그는 순간 답을 찾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그녀가 결국에 철학자는 말뿐이라는 지적을 입 밖으로 꺼내기 직전, 순간 그의 뇌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논리학 내용에 리마토르는 입을 열었다.

 

“논리적으로 당신의 가슴이 아주 크다는 걸 증명해드리죠.

 

한 번 생각해봅시다. 가슴이 작으면 옷이 찢어지지 않나요?”

 

“그렇죠.”

 

그의 질문에 그녀는 ‘뭐 이런 걸 묻냐’라는 식으로 쳐다봤으나, 리마토르는 재차 질문을 던졌다.

 

“나이트 앤젤 씨의 옷은 찢어졌나요?”

 

“...그렇죠.”

 

“그럼 나이트 앤젤 씨의 가슴은 크네요.”

 

“어...?”

 

말도 안 된다고 반박을 하려고 한 그녀였으나, 묘하게 앞뒤가 맞아 떨어지자 그녀는 순간 생각에 혼선이 왔다.

 

“못 알아들으셨나요? 다른 방법으로 해드리죠.

 

나이트 앤젤 씨나 메이 대장은 가슴이 크죠?”

 

“그렇죠.”

 

“메이 대장은 가슴이 크죠?”

 

“네.”

 

“그럼 나이트 앤젤 씨의 가슴은 크네요.”

 

“잠깐만요. 대장이나 저 둘 중 하나만 가슴이 크다고 했는데 어떻게 그렇게 나오는 거에요?”

 

허점을 찾았다며 이의를 제시한 그녀였으나 리마토르는 여유롭게 되받아쳤다.

 

“전 메이 대장이나 나이트 앤젤 씨의 가슴이 크다고 했지, 두 분 중 한 분만이라는 전제를 달지는 않았습니다.

 

사령관님이나 저는 키가 180을 넘긴다고 해도, 사령관님은 190이고 저는 185니 사실 아닌가요?”

 

“어....?”

 

자신이 제시한 논리가 무너지는 걸 보며 나이트 앤젤은 할 말을 잃었다. 그녀를 보고 장난기가 발동한 리마토르는 다시 그녀에게 말을 꺼냈다.

 

“아직도 못 믿으시겠어요? 한 번 더 증명해드리죠.

 

가슴이 큰 사람들은 찢어진 옷을 입습니다. 나이트 앤젤 씨는 찢어진 옷을 입고 있습니다. 그러니 나이트 앤젤 씨는 가슴이 큽니다.”

 

말이 안 되지만 뜯어보면 말이 되는 그의 공격에 그녀는 생각이 꼬여 과부하가 걸리고 말았다. 그 자리에서 앞으로 발걸음을 내딛지도 못하고 생각에 골몰하고 있는 그녀를 보며 리마토르는 자신이 너무 심했나 반성하며 그녀에게 제안했다.

 

“복잡한 것 같은데 코헤이 교단까지 가면서 천천히 설명해줄게요. 방금 제가 나이트 앤젤 씨께 보여드린 건 논리학에서 말하는 기초적인 논증 방법으로, 각각 후건부정과 선언 삼단논증, 조건삼단논증이에요.

 

물론 전부 논리적으로 맞는 건 아닙니다. 선언 삼단논증은 제가 일부러 선언지 긍정 오류를 일으켰으니까요. 그렇지만 이런 간단한 논리트랩만으로도 나이트 앤젤 씨가 계속 고민한 걸 보면 제가 일으킨 오류가 성공했나 보네요.

 

하나씩 뜯어봅시다. 논리학이라는 학문은 논리적 구성을 다루는 학문이에요. 더 자세한 내용은 다음 편에서 다뤄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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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길게 쓰고 싶은데 피곤해서 여기서 끊을게. 이번 강의 주제는 논리학과 종교철학. 과연 나이트 앤젤은 논리학과 신을 향한 믿음으로 거유가 될 수 있을까?


흠결 많은 글이지만 읽어주는 모든 이에게 감사를 표한다. 늘 건강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