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작 : https://arca.live/b/supernerimk2?category=%EC%86%8C%EC%84%A4&target=title&keyword=%EC%A1%B0%EA%B8%88+%EC%9D%B4%EC%83%81%ED%95%9C


모음 : https://arca.live/b/lastorigin/2071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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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건가... 하여튼, 고급 술집이란 것들은 외관 꾸미기엔 사족을 못 쓴다니까.”

 

 

 

거대한 잉어 모형과 과도하리만큼 반짝이는 네온사인 간판.

일본 전통화과 벽에 모자이크 기법으로 새겨진 거대한 건물은 꼭 몇 백 년 전 건물처럼 나무로 된 멋을 고집하고 있었다.

 

게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난 여전히 VR 세계에 남아 있었고, 이제 저 술집 안에서 시끌벅적 떠들고 있을 키리시마 의원과 덴세츠 간부들 사이의 유착 관계에 대한 증거를 찾아야 한다.

그런 나를 옆에서 토모가 걱정과 질투가 섞인 교묘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자네 생각은 어떤가, 왓슨? 높으신 분들의 허영심이란 정말이지 끝이 없는 것 같군.

지금도 어딘가에서 굶주리고 있을 사람들이 수도 없이 많은데 말이야. 

전에 뉴스 봤나? 바이오로이드 때문에 공장 노동자들이 대량으로 해고됐다는 뉴스 말이다.”

 

“나도 어느 정도 동의하긴 하는데, 지금 따질 일은 아닌 것 같다?

안 그래? 토모?”

 

“... 그러든지 말든지.”

 

 

 

초천재 미소녀 형사. 원래 자신을 소개할 때 리앤이 자주 내뱉는 말이었다.

그렇게나 자부심 넘치는 아가씨가 어색하게 눈물 자국을 훔치고 있었다. 역시 연기는 제 성격에 안 맞는 모양이지.

 

그런 모습을 셜록이 눈치챘는지 옆에서 은근슬쩍 내 어깨에 팔을 두르고 조심스럽게 속닥거렸다.

 

 

 

“혹시 둘 사이에 나 모르는 뭐가 있었나?

운전하는 내내 내 질문에 대답은 자네만 하고. 하여튼 분위기가 여간 살벌해야 말이지.”

 

“하하... 별 일 없었어. 그냥 잠 잠깐 말싸움을 좀...”

 

“말싸움? 자네랑 토모가?

왜, 또 햄버거가 좋나 라멘이 좋나, 그런 유치한 걸 가지고 싸운 건 아니겠지?

지금 우리가 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토모는 몰라도 자네는 꼭 기억하고 있어야 한다...

토모에 이어 자네마저 그렇게 돼버리면... 으으, 상상하기도 싫군.”

 

 

 

몸서리를 치며 부르르 떠는 셜록. 원래부터 이런 사람이란 걸 생각하니 조금 마음이 놓였다.

 

하긴, 원래대로였다면 이 장면이 게임의 클라이막스였을 테니까 긴장하는 게 당연하겠지.

물론 그 클라이막스를 곧이곧대로 해줄 생각은 어림 반푼어치도 없지만.

 

 

 

“에이, 내가 그걸 모를 것 같아? 셜록?

당연히 어떻게 해야 할 지 다 고민하고 있었지. 너, 전에 집행 유예 받았다고 했잖아.

그런 애를 저기 야수들이 득실대는 술집에 홀로 던져 놓을 수는 없으니 물론 내가 가야겠지.”

 

“크흡, 역시 자네 밖에 없다.

이 사건에 자네를 끌어들인 건 내 인생 최고의 선택이라 자부할 수 있어.”

 

“자부심 넘치는 건 좋은데 그건 나중에 합시다.

지금은 바로 나가봐야 하니까. 정장 준비해놨지? 그것 좀 던져줘.”

 

“그래, 그래. 당연하지.

이런 일을 어찌 미루겠나? 당연히 고급 술집에 들여 보내는 데 정장도 아주 깔쌈한 걸로 가지고 왔고!

토모처럼 멍하니 허공만 보고 있어서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는데 다 생각이 있었구만!”

 

 

 

어깨를 들썩이며 차 트렁크에서 접혀 있던 정장을 꺼내 주는 셜록.

딱 봐도 제법 값이 나가 보이는 것을 보니, 이번 사건에 셜록이 얼마나 목숨을 걸었는지 알 법했다.

이렇게 사명감 있는 기자가 세상에 많았으면 좋을 텐데, 참 존경할 만한 인물이 아닐 수 없었다.

 

 

 

“크으, 내가 남정네한테 줄 선물을 사려니 오금이 저리긴 했다만, 이렇게 보니 또 보람이 있군.

아주 잘 어울려. 왓슨.”

 

“갑자기 왠 칭찬 세례? 나한테 빚진 거 있어?”

 

“앞으로 질 생각이라네. 두고 두고 말이지.”

 

 

 

손바닥을 탁탁 털며 나를 위아래로 스캔하는 것이 꼭 예술품을 완성한 조각가의 눈빛과도 같았다.

 

 

 

“흐음... 머리나 좀 세워줄까? 좀 날라리 같아 보여야 의심을 안 받는단 말이지.”

 

“그럴 시간에 잠입부터 하지?”

 

“너무 초조해하지 말게나. 

그런 말 못 들어봤어? 5초 먼저 가려다 50년 먼저 간다고.

이번에 걸리면 자네도 감옥행이야. 50년은 과장이었다 쳐도 몇 개월을 금방 사라지겠지.

어차피 이제 다 왔네. 자네라면 분명 성공하겠지. 그러니까 조급해하지 말라고.”

 

“참... 네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오니까 셜록답지가 않네.”

 

“날 놀리는 건 토모한테 배운 거냐? 은근히 사람 마음을 찔리는 게 있네.

인간은 겉모습이 전부다. 겉만 번지르르하면 다 속아넘어가게 돼있으니 얌전히 내 스타일링 실력이나 구경하고 있으라고.”

 

 

 

손에 왁스를 발라 내 앞머리를 뒤로 훌쩍 넘기는 셜록.

워울프가 알려준 스타일과 조금 비슷할까? 차 창문에 비친 모습을 보니 셜록의 헤어 스타일과 아주 판박이였다.

 

만족스러운 듯이 웃음을 지으며 셜록은 내게 소형 카메라와 통신기를 건넸다.

이런 건 또 어디서 꿀떡꿀떡 잘도 구해오는 건지, 보다 보면 이 애도 은근 능력 있는 사람이라니까?

 

 

 

“자, 가서 멋지게 한바탕 하고 오게!

... 아, 물론 그렇다고 진짜 한바탕 하란 얘기는 아니고.

아무리 취재의 끝은 도주가 최고라지만 나도 오늘은 땀 안 흘리고 가고 싶단 말이야.”

 

“... 그거 농담이지?”

 

“당연히 진담이다. 내가 지금까지 도주로 따돌린 AGS들만 해도 세 자리 수는 거뜬히 넘을 거다.

세 자리는 좀 무린가? 뭐, 대충 그 정도라 생각하고 어여 들어가라. 왓슨.”

 

“그래. 그래야지.”

 

 

 

길게 스트레칭 한 번 하고, 뻐근한 목 근육도 한 번 풀어주니 눈 앞의 절경이 선명했다.

 

이 세계에 와서 한 번도 본적 없던 장면. 사람과 문명의 조화가 어지러울 정도로 화려한 세계의 단편.

그 모습을 보이 괜히 옛 생각이 났다.

 

 

 

“아 참, 토모는 내가 어떻게든 풀어보도록 하겠네.

자네가 일을 끝낼 때까지 계속 같은 차에 타고 있어야 할 텐데 계속 저 모양이면 나도 곤란하단 말이지.”

 

“그래, 그래. 나도 좀 화가 풀렸으면 좋겠네.”

 

 

쉽진 않겠지만.

 

 

“그런 의미에서 싸운 이유라도 슬쩍 알려줄 수 없겠나?

내가 아는 거라곤 토모가 햄버거를 엄청 좋아한다는 것 밖에 없단 말이지.

안 그래도 여린 앤데 마구잡이로 말할 수도 없지 않겠나...”

 

“... 셜록?”

 

“응? 불렀나?”

 

“네가 토모랑 같이 다닌 게 얼마나 되지?”

 

“글쎄... 뭐, 오래 됐다면 오래 됐다고 말할 수 있겠지.

그러는 동안 토모에 대해 알아낸 거라곤 햄버거를 엄청 좋아한다는 것 정도였지만.”

 

 

 

백 년 동안이나 그리워했던 친구가 주는 햄버거라.

그건 또 얼마나 맛있을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어 침을 삼켰다.

 

 

 

“그럼 그냥 햄버거 하나만 사다 줘.

대신 비싼 거로. 단품 같은 거 말고 무조건 세트로.

원래 여자 애들이 먹을 거라면 사족을 못 쓴다잖아.”

 

“으음... 그런 간단한 일로 풀릴 것 같진 않던데.

왜, 내가 토모랑 지낸 시간이 있지 않겠나. 저건 분명 엄청 화난 표정이다.

대체 자네랑 뭔 싸움을 했으면 저렇게 될 지 신기할 정도로.”

 

 

 

그 시간이 저 아이를 화나게 만들었다고 하면 믿어줄까?

 

 

 

“... 뭐 어쩌겠어. 우리가 저 애 마음을 들여다 볼 수도 없는데.

그냥 아주, 아주 맛있는 햄버거 하나를 가져다 줄 수 밖에.”

 

“그건... 나도 동의할 수 밖에 없군.

알았으니 자네가 먹고 싶은 것도 말하게. 가게 들르는 김에 자네 것도 사올 테니.”

 

 

 

그렇게 말하며 왓슨은 자신의 수첩을 꺼내 볼펜을 들었다. 먹고 싶은 메뉴가 있으면 말하란 거다.

 

친구란 게 이런 걸까.

슬퍼도, 기뻐도, 평소에 입지도 않는 정장을 입어도 언제나 그랬듯이 대해주는 사람.

 

이걸 보고 가짜 친구라 하기엔 너무 마음 아프다.

그리 생각하며 입을 열었다.

 

 

 

“별 생각 없으니까 네가 알아서 해.

아니면 내꺼 살 돈으로 토모 거 사주던가.”

 

“자네는 토모랑 싸웠다면서 토모 생각만 해주는군.

나보다도 더 친해 보일 정도야.”

 

“왜, 질투나?”

 

“으으, 남정네한테 그런 소리 들으니 온 몸에 닭살이 돋는 구만.

허튼 소리할 거면 수첩 그냥 집어 넣는다?”

 

“하하, 진짜 먹을 생각 없으니까 안 사와도 상관 없어.

난 빨리 일부터 해치울 생각이니까.”

 

 

 

평소에 돈도 없는 녀석이 꼴에 친구라고 아껴주기는.

하긴, 지금 하는 일이 일개 기자가 건들만한 스캔들이 아니긴 하지.

하지만 가난한 집안에선 용이 나와도 나무 뿌리 달인 죽이나 대접할 수 있을 뿐이다.

우리에겐 햄버거가 그런 죽이었다.

 

 

 

“그래, 뭐... 나중에 안 사왔다고 화내지나 말게.”

 

“내가 애냐. 됐으니까 빨리 가서 햄버거나 사오도록 해.

토모 진짜 삐지겠다.”

 

“알았다. 알았어. 지금 차 타고 갔다 올 테니까 조금만 기다리고 있게.

대충 30분이면 사올 수 있을 거야. 그 정도는 기다릴 수 있겠지?”

 

“물론 기다려야지.”

 

 

 

그 사이에 이 일을 전부 끝내버릴 생각이니까.

 

 

 

“혹시 막 무모하게 저기 들어가려나 그럴 생각이라면 진작에 포기해라.

적진 한 복판에 내 친구를 툭 하고 떨굴 생각을 하니... 으으, 닭살 돋는 표현이긴 하지만 눈물이 날 지경이군.”

 

“오글거린다는 거 알면 빨리 가기나 해.”

 

“빨리 빨리, 아주 입에 붙었구만. 왓슨.

그럼 기다리고 있게. 혹시 헌팅 같은 거 들어오면 적당히 무시하고!”

 

 

 

그렇게 말하며 셜록은 낡은 봉고차에 올라타 골목길을 벗어났다.

화려하고 고매한 것만이 허락된 향락의 거리엔 어울리지 않는 차가 떠나간다. 마치 누군가 재촉하듯이 엔진을 탈탈 털어가며 배기음을 낸다.

 

그 작은 창문 틈에서 토모가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어쩌면 리앤이려나. 뭐, 그건 상관 없겠지.

 

 

 

“후우... 이제야 갔네.

하여튼 말이 너무 많으면 조금 곤란하다니까. 안 그래? 팬텀?”

 

“... 네. 그렇군요.”

 

“사령관, 혹시 저 토모라는 자와 했던 말싸움 때문에 피곤하다면 그냥 우리가...”

 

“아냐, 괜찮아. 레이스.

앞으로 30분씩이나 남았으니까 그냥 조금 여유롭게 하면 되겠지.”

 

 

 

골목의 어둔 그림자 사이로 두 명의 바이오로이드가 베일을 벗고 모습을 드러냈다.

 

보라색 머리카락은 참으로 숨기에 적합했다. 그에 반에 하얀색 백발은 드문드문 눈에 띄웠다.

그저 태생부터 암살자로 태어난 자와 그렇게 자라난 자의 차이겠지. 

이런 임무에서 든든하기로 따지면 둘 모두 백중세였으니 천군만마를 얻은 자의 기분이 이러했을 것이다.

 

 

 

“팬텀이랑 레이스는 VIP 룸부터 털어봐. 난 메인 CCTV 실로 들어가볼 테니까.

대충 얼마 정도 걸릴 것 같아?”

 

“우선 건물의 크기가 조금... 크네요.

내부 도면이나 설계도도 없어서 길을 헷갈릴 가능성도 있겠고.”

 

“나... 나도 마찬가지다.

경비 시스템을 우회하려면 어느 정도 파악을 해야 할 테고, 그러다 보면 시간이...”

 

“시간이?”

 

 

 

둘 다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나에게 물었다.

 

 

 

“5분 정도 걸리겠군요.”

 

“그... 나는 선배에 비해 쉬운 임무니 4분이면 될 거다. 아... 아마.

컨디션이 안 좋으면 5분 정도 걸릴 수도 있고...”

 

 

 

역시, 스페셜리스트는 뭔가 달라도 다르다.

 

 

 

“그 정도면 충분하고도 남지.

카메라랑 녹음기 줄 테니까 키리시마 의원 위치 파악하면 보고해줘.

촬영이 가능한 각도라면 안에서 하는 이야기도 10분 정도 촬영해주고.”

 

“알았다. 사령관.

그럼 지금 움직이면 되는 건가?”

 

“그건 사령관님께서 선택하실 일이다. 레이스.

너무 급하게 하는 것도 안 좋아.”

 

“아... 알았다. 선배. 미안하다...”

 

 

 

팬텀이라면 존경해 마지 않는 레이스가 당사자에게 꾸중을 들으니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철옹성 같은 건물을 5분만에 털어버린다는 애들 입에서 나오기엔 너무 귀여운 말투였다.

 

아무튼, 못해도 셜록이 돌아왔을 땐 우리 손에 촬영된 증거가 들려 있을 것이다.

그 모습을 셜록이 보면 무슨 반응을 보일까? 그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짜릿해 견딜 수가 없다.

 

 

 

“이제 들어가자. 애들아.”

 

 

 

내 말이 끝나자 마자 어둠 속으로 녹아 든 두 명.

망토가 사락, 하고 흩어지는 소리를 들으니 골목의 그림자 전체가 내 편이 된 것처럼 든든했다.

 

 

 

자, 그럼 GM도 없는 김에 한 번 해보자.

세계를 구할 최악의 치트 플레이를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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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리시마 의원 위치 파악했습니다. 사령관님. 촬영 시작합니다.”

 

“나... 나도 확인했다. 사령관.

다른 각도에서 찍은 영상도 필요할 테니 확보해두겠다...”

 

“오케이. 거기서 10분 정도만 촬영하고 내 쪽으로 합류해.

나도 방금 운 좋게 CCTV실에 숨어들어왔으니까.”

 

 

 

덜컹 덜컹.

CCTV실 안의 캐비넷 속에 숨은 나는 이어폰의 볼륨을 줄이며 조심스럽게 밖을 살펴 보았다.

 

안에 있던 직원이 잔뜩 술에 쩔어 있었기에 화장실로 나온 틈을 타 안으로 진입할 수 있었다.

혹시 몰라 팬텀이 내게 소음기가 달린 수면총을 주긴 했다만, 이왕이면 이걸 내 손으로 쓰고 싶진 않단 말이지.

 

 

 

-어서 오게나, 키리시마! 요즘 얼굴 보기가 참 힘들어~ 카사사긴지 뭔지, 거 야쿠자 보스도 같이 데리고 왔구만.

 

-하하, 키리시마 의원님의 미천한 그림자 무사까지 기억해주시다니, 영광입니다.

 

-거 뭐, 조직은 잘 되고 있고? 키리시마가 거는 기대가 크다고 들었네.

 

-하하하, 과분한 말씀이십니다. 안 그렇습니까? 키리시마 의원님?

 

-아이고, 너무 그렇게 겸손하게 굴지 않으셔도 됩니다. 나중에 의원님들께서도 카사사기 씨의 도움 많이 받으실 겁니다.

 

-그런가? 하긴, 다른 사람도 아니고 키리시마 자네가 하는 얘기니 한 번 믿어보겠네. 그나저나 요즘 아주 바빴던 모양이야?

 

-허허, 아시지 않습니까? 제가 요즘 법안 하나 때문에 처리할 일이 있다는 거. 대신 사죄의 의미로 아주 거하게 쏘겠습니다!

 

“사... 사령관, 이것도 찍어야 하나?”

 

“일단은... 그래.”

 

 

 

레이스가 보내온 영상을 스마트폰으로 보던 나는 순간 올라온 빈혈에 이마를 집어야 했다.

영상 속에서 줄줄이 방 안으로 들어오는 아이들의 모습이 너무도 익숙했기 때문이었다.

 

 

 

-이번에 특별히 덴세츠에 부탁해서 만든 바이오로이드입니다. 접내용으로 쓰기엔 더할 나위 없죠!

 

-어허, 이거 내 딸내미가 보던 프로그램에 자주 출연하던 년 같은데, 맞나? 이름이 뭐였더라, 8월... 8월 뭐시기였던 것 같은데.

 

-하하, 8월의 만월야 말씀이시군요? 덴세츠에서 열심히 찍고 있는 아동용 특촬물인데 딸 분께서 자주 보시나 봅니다. 어째, 불편하시면 다른 걸로...

 

-아니, 이렇게 보니 또 나름대로 먹는 맛이 있겠구만. 키리시마. 이번에 아주 센스가 좋았어~

 

-하하하! 원하시는 게 있으시면 말씀만 하십쇼! 아이쿠, 술잔이 비셨습니다. 의원님. 제가 한 잔 올리겠습니다!

 

“저건... 오르카 호에 있는...”

 

“... 생각하지마. 레이스.”

 

 

 

모모. 접대용이라고 데리고 온 바이오로이드가 하필이면 모모였던 거다.

우리 오르카 호에도 있는 아이, 똑같은 촬영용 옷을 입고 있으니 레이스는 누가 누군지 분간할 수조차 없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내 눈엔 너무도 선명하게 달랐다.

애초에 저기 있는 모모’들’ 중에서도 똑같은 애가 한 명도 없는 것처럼 보였으니까.

 

 

 

-안녕하세요~ 어린이 친구들~! 여러분의 사무리아 마법 소녀 모모에요~!

 

-아... 아아아.... 안녕하... 으읍!!

 

-쯧쯧, 저건 뭔데 벌써부터 저러고 토를 싸지르나, 키리시마? 혹시 불량품을 가져다 준 건 아니겠지?

 

-허허허, 의원님께선 불쾌하게 여기실 수 있으시겠지만 제게 개인적으로 요청을 해주신 분이 계셔서요. 곧 개인방으로 모실 테니 너무 괘념치 말아 주시지요.

 

-말 한 번 잘하는구만, 키리시마. 저런 년들이 또 따먹는 맛이 일품인데 그걸 몰라 보고, 에잉 쯧쯧...

 

-하하, 그래, 내가 잘못했네. 이 사람아. 그럼 각자 골라 잡자고.

 

 

 

어떤 모모는 마약에 쩔어 눈 앞에 있는 사람이 누군지도 분간하지 못하는 반면, 또 다른 모모는 잔뜩 겁에 질린 채 구토를 연신 내뱉었다.

 

그 애들을 데리고 온 자들이 잠시 밖에 나갔다가 어떤 카트를 끌고 나왔다.

카트 속에 남긴 것은 연장이었다. 망치, 톱, 실과 바늘, 나사와 못, 각양각색의 연장이 기괴한 분홍색으로 꾸며져 있었다.

 

 

 

-난 좀 ‘잘라’ 먹어야 소화가 편해서 그런데, 상관 없겠지, 키리시마?

 

-물론입니다. 전에도 그렇게 드시지 않으셨습니까? 제가 아주 풀코스로 모실 테니 원하시는 대로 하시지요!

 

-역시! 내 마음 알아주는 건 자네 밖에 없다니까? 내 이 참에 키리시마 법안을 아주 통과할 수 있도록 힘 좀 써봐야겠어!

 

-하하! 말씀만 들어도 아주 천군만마를 얻은 듯합니다! 전처럼 다시 ‘재조립’하셔도 상관 없으니 오늘 아주 원 없이 풀고 가시죠.

 

 

 

노인 하나가 모모의 젖가슴을 변태처럼 문대며 다른 손으론 톱을 들었다.

다른 노인은 반쯤 정신이 나간 모모의 치마를 찢곤 속옷을 들춰내 짐승처럼 달려들었다.

 

영상 속에 버젓이 담기는 바이오로이드 경시 행태.

허나 이 영상이 문제가 된다면 대기업 간부와 키리시마 의원, 야쿠자 보스가 만나기 때문이었지, 모모를 학대했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죽여버리고 싶다. 지금 당장이라도 달려 나가 모가지를 비틀어 뜯어버리고 싶다.

하지만 참아야 한다. 순간의 감정 때문에 밖에 있는 대원들을 곤란하게 만들고 싶진 않았으니까.

저러는 것들도 결국 철충에게 다 죽겠지, 그리 생각하며 삭히는 수 밖에 없었다.

 

 

 

“... 선배... 나 조금 머리가 아프다...”

 

“앞으로 5분 남았다. 레이스. 조금만 버텨라.

이제 이런 광경은 안 봐도 된다.”

 

“... 알았다.”

 

 

 

누군가 모모의 목에 칼을 들이밀며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미친 듯이 발광하며 미안하다 연신 소리를 내지르는 모모. 하지만 탐욕스러운 인간들은 그런 모모의 얇은 목에 칼날을 쑤셔 박으려 안간힘을 썼다.

 

목뼈가 칼에 긁힐 때마다 비명을 내지른다. 도살장에 끌려가는 돼지처럼 소리를 내뱉는다.

그럴 수록 지배욕이 채워지는 인간들. 아니, 괴물들은 그 모습에 더욱 즐거워하며 모모의 몸을 유린해나갔다.

 

 

 

“... 팬텀. 레이스. 정 힘들면 그냥 나와라.”

 

“네? 사령관님, 하지만 아직 시간이...”

 

“이미 접대 영상까지 다 찍은 마당에 증거로 쓰기엔 충분해.

괜히 고어 필름을 셜록에게 가져다 줄 필요는 없겠지. 그냥 끝내자.”

 

“... 알겠습니다.”

 

 

 

스마트폰 너머로 전송되던 영상이 끊겼다. 레이스가 일을 마쳤다는 증거였다.

이런 짐승들의 모습을 더 이상 찍게 내버려두고 싶지 않았다. 아마 내가 말했으니 알아서 잘 빠져나갈 것이다.

 

나중에 나가면 심리 치료라도 같이 해줘야지. 그런 생각을 하며 CCTV실의 영상을 지워갔다.

우리가 입구에 들어올 때의 잠깐 찍힌 것만 빼돌리면 됐기에 문제될 것은 없었다.

 

그 때.

 

 

 

철컥.

 

“움직이지 마세요. 기자 분.”

 

 

 

나긋나긋한, 그리고 익숙한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렸다.

총알이 장전되는 섬뜩한 소리와 함께, 짙은 검은색 머리카락이 내 볼을 찔렀다.

 

 

 

“시라유리...”

 

“보지도 않고 맞춰주시는군요.

역시 당신은 보통내기가 아니에요. 제가 사람 보는 눈은 있는 편이죠.”

 

“우리 사이는 거래로 끝난 거 아니었나?”

 

“원래라면 그래야 했죠.

하지만...”

 

 

 

스르륵. 내 머리를 겨누고 있던 총이 시라유리의 허리춤 안으로 들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이대로 내버려두기엔 당신이 너무 아까워요.”

 

“... ...”

 

“당신도 이미 알고 있겠죠.

당신과 함께 다니는 그 토모, 사실 그 애는 080 기관에서 유심히 지켜보고 있는 애라는 걸.

아니, 그 애의 감시역이 저라는 것도 알고 계실 거에요.”

 

“... 그게 지금 이 행태랑 무슨 상관인지 모르겠네.”

 

“사실, 이 일이 끝나면 셜록 키무라 씨는 정리될 예정이었어요. 너무 많은 일을 기억하고 계실 테니까.

당신 역시 마찬가지죠. 알면 안 되는 것을 너무 많이 알아버렸어요.

토모 양은 기관에서 관리하는 영재니 기억 소거를 하든 뭘 하든, 어떤 방식으로든 재사용을 위한 준비를 마칠 계획이었죠.

어쩌면 이것 역시 알고 계셨으려나요.”

 

 

 

그렇게 말하며 시라유리는 등 뒤에서부터 내 어깨를 팔로 감쌌다.

내 볼을 손가락으로 쿡쿡 찌르면서.

 

 

 

“저도... 제가 왜 이런 짓을 하는 지 모르겠군요.

그 영상은 제게 넘기고 그만 돌아가세요. 셜록 키무라 씨가 처리될 때 당신은 빠지도록 해줄테니까.”

 

“이왕이면 그 애도 좀 빼줬으면 좋겠는데.”

 

“그건 힘들겠네요. 이 모든 사건의 중추가 그 사람이니까.

하지만 당신이 그렇게까지 부탁한다면... 제가 발품을 좀 팔아보죠.”

 

“내가 뭐라고 그렇게까지 해주는 거지?”

 

“... 저도 제가 왜 이렇게 하는지 모르겠는데 그 대답에 대답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셨나요?

어쩌면 사람들이 말하는 ‘친해지고 싶다’는 감정 때문일 지도 모르겠네요.”

 

 

 

두근, 두근, 뛰는 시라유리의 심장 소리가 등을 타고 흘러 넘쳤다.

적어도 날 위협하러 온 애는 아니구나. 그걸 확인하자 마자 식은땀이 한 줄기 주륵, 하고 흘렀다.

 

그걸 놓치지 않고 손수건으로 닦아주는 시라유리.

앉아 있는 내 어깨 너머로 고개를 슬쩍 들이밀며 내 표정을 확인하는 모습은 왠지 모르게 벚꽃을 떠올리게 했다.

 

 

 

“... 예쁘네.”

 

“어머, 이런 상황에서도 꼬시려는 건가요?

다른 사람이라면 이미 차여도 대차게 차였을 거랍니다.”

 

“농담 한 번 섬뜩하게 하기는.”

 

“농담 아닌데.”

 

“...”

 

“... 농담이었어요.”

 

 

 

시라유리는 머쓱하게 내 눈길을 피하며 내 몸을 더 강하게 끌어 안았다.

 

 

 

“... 저도 사실 친구가 뭔지 잘 몰라요. 학생회장 노릇을 하고 있긴 하지만 원래 그런 자리에 앉아 있을 수록 고독한 법이죠.

선량한 사람인 척은 할 수 있어도 자신을 온전히 내려놓을 수 있는 곳은 찾을 수 없었죠.

그냥... 그렇게 사는 거에 익숙해졌어요. 당신을 만나기 전까지는.”

 

“...”

 

“당신이 말했죠? 친구란 게 뭐냐고.

그때부터 계속 생각했어요. 왜 하필 그런 말을 하고 가버린 건지, 왜 그런 말로 제 머리를 어지럽게 하는 건지, 그 때문에 당신이 미웠던 적도 있었죠.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히 알겠더군요.

어느 순간부터 제가 당신과 친해져 하고 싶었다는 걸.”

 

 

 

고개를 살짝 돌려 등 뒤를 쳐다보았을 때, 시라유리는 자신의 권총을 하염없이 매만지고 있었다.

 

다만 얼굴이 터질 듯이 빨개져서는 어렵사리 내 눈길을 피하는 데에 전념했다.

 

벚꽃이 어울리는 사람은 홍조가 나도 분홍빛으로 발그레 빛이 났다.

 

 

 

“뭐 때문일까요, 제가 알고 있는 모든 걸 당신이 알고 있다는 느낌 때문이었을까요?

지배 당하는 쾌감? 그것 때문에 서로 친구가 되고 싶은 걸까?

이렇게 말하고 나니 조금 변태 같네요. 후후.”

 

“... 그래서 지금 나를 구해주러 왔다는 거야?”

 

“엄밀히 말하면 당신’만’ 구해주러 온 거죠.

셜록 키무라 씨와 토모, 당신까지. 셋 모두를 구하는 건 진작에 포기했어요.

그 중에 제가 할 수 있는 것까지만 해보겠다 마음 먹었을 뿐이죠. 그 셋 중 제겐 당신이 가장 중요하고요.”

 

“내가 뭐라고 그렇게까지...”

 

“그냥 기적이라고 해두죠. 불현듯 찾아오는, 이유 모를 기적.

당신이 제 마음에 어떻게 들어왔는지 저도 설명할 수 없는데 그걸 어떻게 다 표현하죠?

그냥 그렇게 된 것 같아요. 제가 좋아하는 표현은 아니지만.”

 

 

 

찰칵. 찰칵. 권총의 방아쇠가 왔다 갔다, 간담을 서늘하게 만드는 소리를 냈다.

시라유리의 향기가, 내 목덜미에 자신의 턱을 비스듬이 끼워넣는 아가씨의 향기가 찌릿하게 풍겨왔다.

 

친구가 되는 출발점, 그 시작선에 서는 것은 평생을 첩보원으로 살아온 아가씨에게도 어색한 것이었다.

그리 생각하니 나 역시 왠지 모를 위화감에 등골이 오싹해졌다.

 

 

 

“... 시라유리.”

 

“네. 대답하세요.”

 

 

 

하지만 한 순간의 기적에 현실을 놓칠 순 없는 법이다.

 

 

 

“미안하게 됐다.”

 

 

 

밖에서 싸우는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난 이 게임을 끝내야 한다.

그리고 그 엔딩엔 시라유리가 꼭 필요했다.

 

단지 내 친구로서의 시라유리가 아닌,

악당으로서의 시라유리가.

 

 

 

“애들이 기다리고 있어. 내 친구들이.

그 일을 끝내기 위해서라도 난 여기서 멈추면 안 돼.”

 

“... 저, 지금 차인 건가요?”

 

“그렇게 표현하고 싶다면.”

 

“... 재미있네요. 전에 당신이 말해준 세토우치라는 남학생의 이야기 기억하시나요? 여자 애 둘과 남자 애 하나의 삼각 관계.

어제 그 아이가 여자애 둘 중 하나를 골랐어요. 한 명은 차인 거죠.

저와 토모, 그리고 당신 같이.”

 

“... ...”

 

 

 

어디선가, 또 다른 누군가의 이야기는 멈추지 않고 흘러간다.

가짜 세계의, 가짜 사람들의 세상에서도.

 

 

 

“친구가 되고 싶었는데, 결국은 적으로 남게 되려나요.

그럼 언젠가 제가 죽을 때 당신의 얼굴이 가장 마지막으로 보이면 좋겠군요.

그렇게 죽는 게 조금은 드라마틱할 테니까.”

 

“... 미안하다.”

 

“아뇨, 그러실 필요 없어요. 각자만의 사정이 있는 거니까요.”

 

 

 

시라유리. 예정에 없던 인물의 등장에 머리 속이 새하얀 백지처럼 멍청해졌다.

 

지금 이게 최선의 선택이었을지언정, 내가 택하고 싶은 선택지는 아니었다.

그리 생각하며 입술을 조용히 씹었다. 등 뒤에는 내가 별로 보고 싶어할 만한 광경이 없을 것 같아서.

 

 

 

“한 가지... 부탁해도 될까.”

 

“네, 말씀만 하세요.”

 

 

 

그리고 그 순간까지도, 난 이 게임을 끝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일을 처리해야 한다면... 최대한 빨리 해줄 수 있겠어?

가능하다면 오늘 밤 내로.”

 

“키무라 씨를 잡으러 가는 거 말씀이신가요?

제가 요청하면 어렵진 않겠죠. 하지만 왜...”

 

“그냥... 이 촌극을 눈 앞에서 빨리 치워버리고 싶거든. 게임을 끝내야지.

키무라가 잡히면 내가 구해낼 거야. 그럼 거기서 끝이야.”

 

 

 

셜록 키무라가 시라유리가 이끄는 기동 타격대에게 잡히고 코헤이 교단 내부 지하실에 감금된다.

그걸 나와 토모, 둘이서 힘을 합쳐 구해내는 것으로 키무라는 기사를 작성할 수 있고, 세상에는 키리시마 스캔들이 터진다.

게임의 원래 스토리가 그러하니 내가 키무라를 구하는 그 순간, 게임은 엔딩을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너무 진중한 모습을 보였던 탓이었을까, 시라유리가 의미 모를 웃음을 지으며 내 볼을 손가락으로 찔렀다.

 

 

 

“재미있네요. 역시 당신들은 재미있어요.”

 

“그게 무슨 뜻이지?”

 

“제가 여기에 어떻게 왔는 줄 아세요?

전에 말씀 드렸다시피 저는 키리시마 의원이 약속을 잡았다는 것까지만 알고 있지, 위치나 시간 정보는 모르고 있었어요.

하지만 지금 여기, 저는 당신 앞에 서있죠. 그게 무슨 의미일까요?

당신은 추리를 잘한다 하셨으니 떠올리는 것도 어렵지 않겠죠.”

 

 

 

그러고 보니 시라유리도 자세한 내용은 모른다고 했다.

그럼 학원에 있는 키리시마 딸에게 물어본 걸까? 아니, 시라유리가 그렇게 친근하게 물어보고 다닐 아이는 아니다. 

사적으로 그런 걸 물어보면 의심을 살 테니 당연히 몸을 사렸겠지.

 

애초에 그 정보를 알고 있던 내가 다른 사람에게 알려준 적도 없다.

기껏해야 여기 와야 하는 토모랑 키무라 정도만 알고 있을 뿐이지.

...

... 설마?

 

 

 

“네. 토모 양이 저에게 이곳의 위치 정보를 보내주더군요.

그런데 덧붙인 말이 참 재미있어요.”

 

“... 뭐라고 했는데?”

 

 

 

시라유리가 주머니에서 자신의 스마트폰을 꺼내 내게 보여주었다.

문자 메세지를 표시하는 말풍선 속에 그런 말이 적혀 있었다.

 

-게임을 빨리 끝내버리자.

 

토모가 했던 말이었다.

 

 

 

“후후, 재미있지 않나요? 당신이 했던 말과 똑같은 말을 하다니.

토모 양의 말투에서 조금 절박함이 느껴졌던 건 그 때문이었을까요?”

 

“...”

 

“왜... 그러시죠...?”

 

 

 

... 토모라면 알고 있었을 거다. 아니, 저기 있는 건 리앤이니 모를 리가 없었겠지.

시라유리가 키무라를 납치하는 사건이 빨리 발생하면 발생할 수록 내가 게임을 일찍 끝낼 수 있다는 걸.

 

그래서 지금 여기에 시라유리를 보낸 것이다.

내가 이 게임을 끝내기 위해 꼭 필요한 최후의 인물을 보내 끝내게 하려는 것이었다.

 

바보. 초천재 미소녀 형사는 무슨.

이 상황에서도 날 도와주려는 거냐.

 

 

 

“... 시라유리.”

 

“네. 이번엔 또 뭘 부탁하시려고 그러시나요? 절 시원하게 차셨던 분이.”

 

“...

우리도 다른 곳에서 다르게 만났다면 친구가 됐을 거야.

아주 친한... 친구.”

 

 

 

오르카 호에서 만났다면, 내가 나로 온전히 있을 수 있는 현실에서 너란 존재를 만났다면, 우린 분명 둘도 없는 친구가 될 수 있었을 거다.

 

 

 

“이번엔 희망 고문인가요.

뭐... 나쁘진 않네요. 그런 뻔한 얘기를 듣는 것도.”

 

“...”

 

“아무튼, 당신들이 말하는 그 ‘게임’이라는 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제가 도움을 드릴 수 있다면 드려야겠죠.

여기, 코헤이 교단의 교회 주소에요. 이곳 지하실에 셜록 키무라 씨를 감금시킬 계획이었으니 기억하고 계시라구요.”

 

 

 

위치 정보를 알게 되면 아마 못해도 1분은 더 아낄 수 있을 것이다.

그만큼 밖의 대원들이 시간을 덜 벌어줘도 되겠지. 지금 이 아이가 수많은 사람의 목숨을 구한 것일 수도 있다.

 

 

 

“... 왓슨. 그게 본명은 아니지만 토모는 그렇게 불렀죠.

저도 그렇게 부르면 조금 매력적으로 보이려 나요? 당신이 토모 양 대신 저를 선택할 정도만 되면 좋을 텐데.”

 

“... ...”

 

“그래요. 왓슨 씨. 당신은 그런 사람이 아니겠죠.

그 정도 정보 수집력을 가지고 있었으면서 고작 낡은 사무실을 전전하는 기자 생활을 하고 있을 정도니까.

뭐가 됐든 당신과 전 많이 다른 삶을 살아왔을 거에요. 정의로운 당신들과 저는 수백 광년은 떨어져 있을 테죠.”

 

 

 

다시 한 번, 시라유리는 나를 끌어 안았다.

다만 이번에는 등 뒤가 아닌 내 앞에서 안은 것이었다.

 

심장 소리가 더욱 선명했다.

 

 

 

“하지만 말이에요. 전 그냥 당신과 친해지고 싶었어요.

평생 다른 사람의 인생에 기생해서 정보든, 생명이든, 뭐든 돈이 될 만한 걸 뽑아 내며 사는 저도 당신과 친해지고 싶었다구요.

참... 어울리지 않는 짓이네요. 저조차 모르는 정보를 정의를 위해 사용하는 당신만큼 저와 어울리지 않는 사람도 없을 텐데.”

 

“... 그러니까 기적이라고들 하는 거겠지.

나도 너와 친해지고 싶었거든.”

 

“그럼 두 개의 기적이 일어난 셈인가요?

좋네요. 재미있어요. 그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난 확률도, 그렇게 기적이 일어나도 친해질 수 없는 저희의 사이도.”

 

 

 

친구란 게 뭔지, 그냥 관계일 뿐인 관계에 친구라는 이름표를 붙이는 게 왜 그리도 어려운지, 나는 모르겠다.

 

다만 한 가지 알 수 있었던 것은, 

그게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란 것이다.

 

친해지고 싶다는 마음부터도, 친구라는 관계의 출발선도 설명할 수 없는 마력과도 같은 끌림이 있었으니까.

 

 

 

“... 그냥 한 번만 불러볼게요. 왓슨 씨.

당신과 친해지고 싶어서 정말 기뻤어요. 그런 감정은 이미 다 죽어버린 줄 알았는데.”

 

 

 

화면 속 모모처럼 바이오로이드가 희롱 당하고, 인간이 그들의 피를 빨아먹는 사회에서도 친구라는 게 존재했다.

셜록과 토모처럼, 시라유리와 나처럼, 서로 친해지고 싶다는 인간의 본능은 끈질긴 생명력을 자랑했다.

 

그게 그저 이 VR 세계 속에서 끝나지 않도록 마음을 다잡았다.

안겨 있는 시라유리를 한 번 꼬옥 안아주고, 어깨를 부드럽게 밀쳐냈다.

시라유리 역시 알았다는 듯 내게서 떨어져 나갔다.

 

 

 

“... 말씀해주신 대로 키무라 씨는 최대한 빨리 잡아드리죠. 지금이 밤 11시쯤이니 오늘 밤 자정, 아니, 새벽 2시쯤에 진행하도록 하죠.

키무라 씨가 기사를 올리는 게 확인되면 즉시 진행하도록 할 겁니다. 

대신 고문하는 건 제 권한이 아니기 때문에 많이 고통스러울 거에요. 최대한 빨리 구하도록 하세요.

이 사람도 당신의 친구일 테니까.”

 

“맡겨두라고.”

 

“그래요. 당신이 그렇게 말하니 한결 편안하군요.

... 

그럼 끝내봐요. 이 게임을.”

 

 

 

의미 모를 이야기를 하듯이 시라유리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다만 눈물 끝에 물방울이 져있었기에 깜빡이는 불빛 속에서도 얼굴이 참으로 아름다웠다.

 

보랏빛 벚꽃.

시라유리는 그게 참 어울리는 아가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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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절대 애 호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