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정오, 오랜만에 수면으로 부상해 있는 오르카 호.

드넓은 갑판 한 구석 가장자리의 난간에 두 인간이 기대어 대화하고 있다.

한 명은 긴 갈색 머리에, 바이오로이드에 비하면 떨어지지만 그래도 인간 기준으론 미인인 젋은 여성.

한 명은 금발과 구릿빛 피부에 담배를 피우고 있는, 딱 봐도 불량해 보이는 젋은 남성이었다.


"그나저나 사제님은 참 열정적이고 독실하시죠. 어쩜 그 연세에도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리시는지, 후후."


오전 코헤이 예배에서, 여느 때처럼 구원자님에 대한 신앙심을 열변을 토하며 간증하던 늙은 사제를 떠올리며 여성이 웃자,

담배 연기를 내뿜던 금태양은 코웃음을 치고는 대꾸했다.


"노친네가 진작부터 라인을 아주 잘 탄 거지. 전쟁 끝나면 교황 성하 되실 영감탱이 아니겠어?"


"아이구~ 또 그렇게 만사를 삐딱하게만 보신다. 아 설마 그 신앙심이 가짜겠어요?"


"아, 물론 그게 진또배기 광신인 건 알지. 엔젤이가 인증했는데 뭐. 어쨌든 결과가 그렇다는 거라고."


여성이 핀잔을 주자 금태양은 아무렇지도 않게 너스레를 떨면서 말했다.


"아아~ 우리도 이렇게 열심히 일하는데, 전쟁 끝나면 적어도 나라 하나씩은 받아야 되는데 말이야. 안 그래?"


"...진심으로, 전쟁이 끝나면 총사령관님께서 봉건제를 시행하실 거라고 생각하세요?"


"아니, 그냥 희망사항이지. 절대 그럴 양반이 아닌 건 나도 알아. 그래도 우리가 최소한..."


여성이 어이없어하며 묻자 금태양은 아무렇지 않게 실실 웃으며 말하더니, 별안간 목소리를 확 낮추고 내뱉었다.


"......삶아지지는 않아야 될 거 아니야."


그 순간, 시간이 멈춘 것 같은 정적이 둘 사이에 흘렀다. 잠시 후 여성은 굳은 표정으로 나지막하게 말했다.


"금태양 씨. 총사령관님의 눈과 귀는 어디에나 있어요."


"씨바, 들으라고 해! 들으라고 하는 소리니까!"


그러나 금태양은 주저하기는커녕 오히려 급발진하더니 화를 내며 소리쳤다.


"들으면 뭐 어쩔 건데? 내가 원래 이런 놈인 건 저항군의 모두가 다 알고 있는데.

내가 어줍잖게 가식적으로 굴면 오히려 더 의심하겠지! 애초에 가식 떨 줄도 모르고, 떨고 싶지도 않아!

그리고 까놓고 말해서 내가, 우리가 총사령관한테 뭐 반역을 하겠어, 뭐를 하겠어?

모의전 할 때마다 모든 사령관들이 한꺼번에 덤벼도 혼자 처발라버리는 괴물한테? 미쳤다고?

반역은커녕 총사령관이 짖으라면 짖고 뛰라면 뛰고 기라면 기고 있는데, 이 정도는 솔직하게 말할 수 있는 거잖아!"


한참을 울분을 토하던 금태양은 겨우 숨을 고르고는, 담배를 한 모금 빨고 연기를 내뿜은 뒤 조용히 말했다.


"......그 새끼가 깝치다가 어떻게 되었는지, 너도 똑똑히 봤잖아. 근데 반역은 무슨.

결국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계속 소처럼 일하면서 부디 그분께서 우리를 도축장으로 보내지 않길 비는 수밖엔 없다고."


금태양이 들고 있는 담배가 미세하게 떨리는 것을 보고 있던 여성은, 이내 한숨을 쉬고는 그를 타일렀다.


"그래서,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애매하게 삐딱선 타실 거예요? 숙청당하긴 싫으면서 또 공손하게 굴기는 싫고.

애초에 총사령관님께서 저희를 섭섭하게 대하시는 것도 아닌데, 그냥 금태양씨 혼자서 틱틱대는 거잖아요.

그리고 진짜 아양을 떨라는 게 아니잖아요. 웃는 낯에 침 못 뱉어요. 그냥 조금이라도 유연해질 생각은 없으세요?"


"흥, 내가 지금 와서 총사령관 바짓가랑이 매달려가지고 형님 형님 거리면 참 잘도 이뻐해 주겠다.

그냥 난 천성이 이런 놈이니까, 하고 싶은 말 다 하면서 살 거다. 그래야 나중에 뒈져도 후회는 덜하겠지."


"아니, 그러니까 바짓가랑이에 매달리라는 게 아니라... 하아."


금태양이 끝내 고집을 꺾지 않자, 여성은 안쓰러운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더니 결국 자리를 떴다.

그를 뒤로 하고 걸어가던 여성은 잠시 발걸음을 멈추더니, 고개만 옆으로 살짝 돌리고 말했다.


"금태양 씨가 계속 스스로를 나쁜 사람이라고 주장하는 건 자기 자유지만, 최소한 저는 동의하지 않아요.

진짜 나쁜 사람은 그렇게 매 작전마다 극도로 신중하고 피해를 최소화하는 전술을 쓰지 않거든요."


그리고 여성은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걸어가던 그녀의 등 뒤로 금태양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면 너는? 사실 나쁜 년이라서 그렇게 매번 과격하고 막나가는 전술을 쓰는 거냐?"


걸음을 멈춘 여성은 잠시 그대로 서 있더니, 빙글 돌고는 금태양을 향해 활짝 웃어 보이며 대답했다.


"그럴지도요?"


그리고 다시 빙글 돌고는, 이번엔 명랑한 몸짓으로 폴짝폴짝 뛰어가는 것이었다.

멀어지는 그녀의 뒷모습을 착잡한 표정으로 바라보던 금태양은, 마지막 한 모금을 빨고는 담배를 바다에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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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항군에 인간 사령관들이 여러 명 있고, 철남충은 총사령관으로 군림하고 있는 설정임. 저항군 규모도 그만큼 커졌고.

근데 머리속에 막연한 설정과 몇 가지 장면은 떠오르는데, 그걸 구체화해서 하나의 스토리로 길게 쓰기가 너무 어렵네......

아! 내가 1화 빌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