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로운 젖보지 랜드에 쏟아지는 유성우는 땅을 불태우고, 하늘을 붉게 물들이며 모든 것들을 앗아갔다. 

이런 와중에도 머리에서 쏟아지는 뇌수를 흩뿌리며 고개를 묵묵히 가로 젓는 노인의 표정이란 

처량함, 슬픔, 해탈이 아닌 미소가 걸려 있었다.


"난 이미 결심을 했어."


"할배요! 일단 살아야 미래가 있는 거 아니겠소? 고집 좀 꺾으시오!"


필사적으로 노인을 붙잡는 젊은이의 손을 차분히 붙잡고 노인은 회상하기 시작했다.


"자네나 떠나게, 늙은이는 죽을 자리를 알아보는 법이지."


"할배! 도대체 왜 그러는거요? 왜 살 길을 놔두고 이렇게.."


젊은이는 노인을 포기하지 못한 듯 계속해서 그를 강제로 끌어 당기려 했으나, 노인은 자리에 주저 앉아 가슴팍의

주머니에서 사진 한장을 꺼내 그에게 보여주었다.


"예쁘지?"


"아이고, 이 아낙네가 누구길레!"


"내 마누라여.. 내 라생을 이 여편네와 함께했지.. 계속 언제나 함께였어."


"그럼 그 아낙네도 데려 오시오! 당장 떠나야 안전하단 말이오!"


젊은이는 그 사진을 되돌려주며 역정을 냈으나, 노인은 구조의 손길을 내미는 젊은이의 어깨를 토닥여주고

다시 작은 오두막 집으로 들어가며 미소를 보였다.


"허허, 젊어서 그런지 목청도 좋구나.. 허나 어쩌겠나? 내 여편네가 미운 정도 정이요, 그간 쌓아 올린 정도

정인지라 내 차마 버릴 수 없어서 말이네."


"할배!"


"애석하게도 내 마누라는 이곳에서 움직일 수 없어서 말이네, 그러니 내 어쩌겠는가? 나 좋다고 매번 들어오면

헤헤 웃어주고, 심심해 보이면 홀딱 벗고 젖통을 흔들며 아양을 떨어주는 예쁜 마누라인걸? 자네는 먼저 가시게.

난 여기까지라 생각하고 말이네. 여편네가 불타는 숲 속 오두막에 홀로 남았는데, 남편이란 놈이 어떻게 혼자

훌쩍 떠나버리겠느냐 이것이네.. 그러니 이만 가시게나."


젊은이는 노인의 눈에서 결의를 느꼈다. 늙고 초라한 모습의 남자에게서 느껴지는 범상치 않은 기세.

그것은 침몰하는 배의 선장이 최후를 배와 함께 하겠다는 그것과 비슷했다.


"그렇소.. 그럼 이왕 이렇게 된 거 옆에서 악기라도 연주해 주겠소."


"멍청한 소리 말고, 목숨을 소중히 하게나. 내 옆에서 악기나 켜지 말고, 소중한 마누라 젖이나 한번 더 만져주란 말이네."


"할배요.. 알겠소.. 할배도 몸 조심하시구려."


젊은이가 떠나자 노인은 오두막 안에서 다소곳이 기다리는 여인에게 다가가 그녀를 안아주며 속삭였다.


"두렵게해서 미안하구나, 소완.. 걱정말거라, 난 마지막까지 너와 남을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