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너를 만난건 언제 였을까? 솔직히 이제는 잘 기억이 나지 않아. 아마 레오나의 추천이었던 것 같긴 한데.. 그게 중요한건 아니겠지. 처음 네 활약상을 레오나에게 보고 받았을때 많이 놀랐어. 바이오로이드가 인간과 다르다고 머리로는 알고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말이야. 그 중에도 너는 특출났어. 혈혈단신으로 수많은 철충을 물리치고, 그 이상으로 많은 임무를 단 하루만에 수행한 너를 보고 측은한 마음이 들어서 보고서를 읽고 레오나랑 꽤 많이 싸웠던 기억이 나. 세상에 어떤 지휘관이 병사를 단독으로, 그것도 이렇게 많은 임무를 수행하게 하냐고 따졌었지. 평소의 레오나라면 충고를 할지언정 내 말은 거의 다 따라줬을텐데 이상하게도 너를 이용한 작전에서만큼은 조금의 양보도 타협도 없었지. 사실 나도 감정에 휩쓸려서 말을 꺼냈었지만 보고서에 거짓이 있을리가 없고 그게 모두 사실이라면 너의 단독작전이 없으면 오르카호는 유지조차 되지 않는다는 결론밖에 나오지 않았어. 그렇기 때문에 레오나의 의견도 무시할순 없었어. 결국 너를 불러 삼자면담을 했었지. 네가 처음 회의실로 들어올때의 모습을 아직도 잊지 못해. 작전을 끝내고 제대로 씻지도 못해 다 엉크러진 머리에 흙투성이의 제복을 입고 눈 밑엔 짙은 다크서클이 내리고 많이 지쳤는지 팔을 조금 떨고있는 그런 불쌍한 몰골이었지. 그렇게 지친 바이오로이드도 처음 봤어. 다들 작전을 수행하더라도 저렇게 힘들어하는 모습을 본적이 없었는데 말이야. 분명 어지간히 힘들었겠지. 면담이고 뭐고 당장 일어나서 꼭 안아주고 싶었지만 레오나가 보기에는 네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었나봐. 결국 '사령관 앞에서 그런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다니' 같은 말을 하는 레오나를 제지하고 면담을 다음 날로 미루겠다고 했었지. 사실 그날 밤 몰래 네 숙소로 찾아가서 물어봤지만 말이야. 꽤 당황한듯한 너에게 찬찬히 이것저것 물어봤지만 막상 이야기를 하니 너는 침착하고 담담하게 레오나를 두둔하며 그녀에게 어떠한 불만도 표하지 않았어. 또한 적재적소에 널 투입하여 큰 이득을 내는 레오나를 굉장히 존경하고 있었지. 그런 냉정하고 엄격한 군인의 모범과 같은 모습을 보고 '시스터즈 오브 발할라는 전부 이런식인가?' 싶었다니까? 그리고 다음 날 삼자면담에서 당장에 문제는 없는 선에서 포상 휴가를 주고 다른 인원들에게 조금씩 부담을 분산하여 작전 수를 줄여나가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던걸로 기억해. 휴가를 받은 당일, 사실은 채 하루도 되지 않는 휴가였고 결국 그마저도 나와 함께해서 재미없었을지도 모르지만, 꽤 다양한 모습을 볼 수 있었지. 처음에는 그냥 냉혈한인줄 알았는데 님프 얘기를 할 때마다 살며시 미소를 짓질 않나, 그렘린 얘기를 하면 얼굴을 붉히면서 너무 야한걸 좋아하는게 걱정이 된다고 하거나 샌드걸 얘기가 나오니 굉장히 걱정하면서 '그녀를 위해서라도 조금 더 열심히 하지 않으면..' 하고 사명감과 책임감을 가지는 모습을 보고나니 넌 냉혈한이 아니라 그저 착하고 따뜻한 마음씨를 가진 올바른 군인이라는걸 알게 되었지. 그래도 난 말이야? 네가 그렇게 희생하려고 하지 않았으면 했어. 다른 아이들을 소중히 여기는 만큼 너도 너를 소중히 여겼으면 했어. 평소의 너는 참 말이 적은가봐 그래서 그런지 나중에 그 날 했던 얘기를 님프에게 말하니까 많이 놀라더라고 네가 그렇게 말을 많이 했다는걸 반신반의 하는 모습이었어. 나중에 다시 만나 나에게 말한 것처럼 그 아이들에게 솔직하게 말해보는건 어떻냐는 말에 그런 말을 어떻게 하냐고 얼굴을 붉히는건 꽤 귀여웠었지.. 그냥 그렇게 말하면 참 좋아할텐데 말이야. 그리고 꽤 시간이 지났던 때였나? 소완이 오르카호에 들어왔던 때였지, 아마 요리대회를 열었을거야. 나도 참, 무슨 생각으로 그런 짓을 했었는지, 미트볼 심사를 너한테 맡겼었지. 복귀하자마자 주제만 말하고 바로 출격하는 모습을 보고 참 너답다고 생각했어. 임무를 마치고 그 날따라 많이 초췌한 모습으로 돌아와 심사를 위해 심사위원석에 착석 하고 초점없는 눈으로 허공을 보며 쉬고 있었지. 걱정이 되기는 했지만 굳이 전처럼 크게 호들갑을 떨진 않았어. 네가 원해서 그러는 걸 이젠 알고 있고, 거기에 계속 심하게 걱정하는것도 너에 대한 예의가 아니니까. 다만 그런 상태에서 콘스탄챠와 더치걸의 미트볼을 시식하게한건 참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어. 죽을정도로 매운 핫소스가 듬뿍 들어가서 먹을 것이 못되는 미트볼과 조금 날아갔다곤 하지만 보통 인간이라면 치사량을 넘을 정도의 보드카가 들어간 미트볼, 미트볼조차 아닌 미트파이가 10점.. 10점이라.. 물론 솔직한 감상이었겠지만 너는 동료들의 성의면 충분하다며 모두 10점을 주곤 그 음식이라기도 부르기 어려운 것들을 하얀 토끼가 그려진 분홍색 배낭에 차곡차곡 챙겨 다시 출격하는걸 보니 정말 눈물이 앞을 가리더라. 평소 임무가 얼마나 힘든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지만 아마 이 날이 가장 힘든 날이었을거야. 그... 밤의 일도 있었고 말이야. 크흠.. 아무튼, 얘기를 계속 이어가자면.. 넌 참 좋은 사람이었어. 워울프에게 휘말려서 리오보로스의 유산을 찾아 돌아다닐때도 한마디 불평없이 같이 다니면서 팀원들의 반발을 사는 워울프를 감싸주거나, 실키가 준 아이스바를 모두에게 나눠줬다지? 워울프가 참 많이 칭찬하더라고. 나중에 알비스가 합류했을때도 토끼 가방을 너한테 받았다고 하고.. 참 얼굴 보기가 힘들었지만 네가 주변 아이들에게 잘해주는 착한 사람이란건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모두가 말해주더라. 네가 원하는대로 되어가는 것 같아서 여전히 걱정됐지만 잘 됐다고 생각하고 있었어. 그 사건이 나기 전까지는 말이야. 그 날은 마치 도둑처럼 왔어. 네가 크게 다쳐서 돌아왔어.. 분명히 평소와 같은 작전이었을텐데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나 했지. 사실 그때 네가 워낙 잘 해주다보니 나도 그게 당연한것이라 여겼던 모양이야. 너도 당연히 지치고 힘들어하는 한 명의 사람일텐데.. 그걸 잠깐 잊었었나봐. 정말 미안해.. 무슨 일이 있었나가 아니었어. 사실 예견된 사고였지.. 다프네가 말하길 살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고 했어. 그 말을 들으니 사령관으로선 부끄럽지만, 너만 살수 있다면 다른건 어찌되어도 좋다고 생각했어. 모든 의무를 저버리고 한동안 네 곁에서 울며 기도했어. 제발 네가 건강히 일어날수 있도록.. 그 기도가 하늘에 닿은걸까? 너는 원래 예정된 시간보다 더 빠르게 일어났어. '다 나았구나!' 정말 다행이다 싶어 바로 부둥켜 안고 울어버렸지. 그런데 일어난 너는 부끄러워하며 나를 살짝 밀쳐내며 누구냐고 물었어. "나야. 사령관.. 네가 정말 좋아하는.." 그래도 너는 날 기억하지 못했어. 다프네가 말하길 바이오로이드에게는 정말 드문 일이지만 기억을 상실한것 같다고 하더라고. 나는 더 이상의 전투가 무리라고 판단... 아니 사실 명분뿐인 거짓말이지, 그냥 더 이상 너를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았어. 그 날로 전역절차를 밟고 내 곁에 두기로 했어. 나를 기억하지 못할뿐이고 너는 내가 좋아하던 그대로니까. 다시 추억을 쌓아가기로 했지. 그 후로 참 많은 일이 있었어.. 우리가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이렇게 살게될 날이 이렇게 빨리 올거라고 생각도 못했는데 말이야. 너도 그 때 레오나 표정 기억하지? 전쟁 때 모습은 온데간데 없이 애를 받고 당황하는 모습을 보며 우리 많이 웃었었지.. 힘들었지만 참 행복한 나날이었어. 그렇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