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일은 그때 므네모시네가 나에게 보여주었던 영화 한편으로 부터 비롯되었다.



“관리자님. 본 개체에게 요청하신 방주내의 모든 데이터의 전송을 완료했습니다.”


“수고했어 므네모시네.”


방주에 정박한 이후 오르카호의 대원들에게 강제적인 휴가를 받아 할일없이 빈둥대던 와중 방문한 므네모시네. 마침 그녀가 오르카호에 전송한 데이터 안에는 인류가 보존한 문화 예술 기록들도 같이 저장되어 있다는 생각에 나는 물었다.


“혹시 전송한 데이터중에 영화같은 영상물도 있어?”


“검색중. 전체 약 3천여편의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영화, 영상기록물이 남아있습니다. 총 재생시간은 약 7천여 시간으로 예상됩니다. 현실적으로 이 모든 영화를 연속해서 보기는 힘드므로 원하시는 분류를 지정하여 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흠… 뭐가 좋을라나…. 아.  그래. 과거의 인류가 미래를 예상한 작품은? 그중에서도 이왕이면 결말이 희망찬 것으로.”


“요청 확인. 키워드와 줄거리로부터 리스트를 필터링 하여 지금 디바이스로 전송하였습니다.”


압수당한 업무용 태블릿 대신 지급받은 간이 태블릿으로 이전에 들었던 영화 포스터로 짐작되는 이미지들이 좌르륵 올라오기 시작한다. 정렬기준을 이리 저리 원하는대로 바꾸며 스크롤을 올렸다 내렸다 하기를 잠깐, 내 눈에 한 영화의 제목이 들어왔다.


‘인터스텔라’


오비탈 와쳐 대원들이 입을법한 흰색의 복장을 입은 남자가 서있는 이미지와 그 옆에 가로로 선이 그어진 빛나는 원이 새까만 배경위에 존재하는 뭔가 알수 없는 이미지가 내 시선을 사로잡았다.


“인터스텔라……”


“해당 영화를 시청하시겠습니까?”


“좋아. 지금 따로 바쁜일 없으면 므네모시네도 같이 볼래?”


“요청 확인. 스케줄을 점검해본 결과 해당 영상의 시청은 충분히 가능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므네모시네의 답변에 나는 옷장 서랍속에 흐레스벨그의 방문용으로 고이 모셔놨던 스피커와 빔프로젝터를 꺼내 벽면에 설치하고 의자에 같이 앉았다. 티타니아와 비슷하게 조금은 서늘한 공기가 느껴지는 므네모시네의 팔에 슬쩍 몸을 기댄채 방의 불을 끄고 영화를 재생했다. 그렇게 시작된 영화는, 내 예상보다도 훨씬 더 신비롭고 감동적이었다. 포스터의 그 기호는 블랙홀에 의해 일그러진 빛이었다는 사실부터 멸망해가는 지구에서 살아남기 위해 어떻게든 발버둥친다는 내용까지. 특히 We will find a way. We always have.(우린 답을 찾을 것이다. 늘 그래왔듯이.) 라는 그 대사는 그동안 내가 해온 노력에 대해 옛 인간들이 남겨준 보상과도 같았다.


그렇게 몇달의 시간이 지나고 사고는 갑작스럽게 터졌다.



“사령관님. 적군의 소탕이 완료되었습니다.”


델타의 마리오네트에 의해 점령된 지역을 수복하기 위해 스틸라인의 소규모 부대가 작전을 나갔다. 이전의 거센 저항들과는 달리 이번 지역은 생각보다 수월하다는 판단에 생각보다 여기는 상대방에게 중요한 거점이 아니라고 생각하던 참이었다.


“레후상병님. 여기 이녀석 뭔가 좀 이상하지 말입니다?”


“브라우니. 지금 사령관님께 보고중입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보고중인 레프리콘의 카메라 너머로 보이는 마리오네트는 아직 숨이 끊어지지 않은듯이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다. 창조된 생명체이긴 하나 저들도 결국 베이스는 인간의 유전자, 더이상 괴롭지 않도록 빨리 숨을 거두게끔 명령하려던 찰나, 갑자기 마리오네트의 복부에서 작은 폭발이 일어났다.


“콜록! 뭐지? 느낌이…. 레프리콘 상병님 목이.. 콜록….”


“브라우니…켁….숨이…..”


불현듯 머리속에서 ABC 공격에 대한 정보가 떠올랐다.


“숨쉬지마! 지금당장 그자리를 빠져! 부관! 근처에서 정찰중인 2제대에게 연락해 빨리!”


다행히도 지역 소탕여부를 점검하던 레드후드와 작전중인 스틸라인 제대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던 슬레이프니르가 소식을 듣고 급하게 달려온 덕에 주변의 대원들이 목숨을 잃는 일은 없었다. 그러나 화학무기에 가까이 있던 브라우니 둘은 적어도 1년정도 특수한 호흡기를 달아야 생활이 가능한 수준으로, 조금 거리가 있던 레프리콘은 성대에 이상이 생겨 계속해서 치료를 받아야만 하는 심각한 상태였다.


그런 모습들을 보며 나는 다시금 지금 이 오르카호에서 나를 위해서 싸워주는 대원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휩싸였다.


내가 이들이 나를 위해, 내가 바라고자 하는 이루는 목적을 위해 목숨을 잃을정도로 위험한 일을 하게 할 자격이 있는가.


분명 이 바이오로이드들은 뇌속에 각인된 명령에 의해 내 명령이라면, 아니 부탁이라 하더라도 거리낌 없이 달려들것이다. 하지만 그걸 정말 한다면 나는 멸망전 인류와 무엇이 다르지?


그때 내 머릿속에 예전에 므네모시네와 같이 봤던 영화가 떠올랐다. 계획이 세워졌고 행동은 빨랐다. 주저없이 닥터를 찾아가 이 지구를 벗어나 우리들이 살수있는 행성으로의 이주에 대한 얘기를 꺼냈다.


“농담이라 생각했는데… 오빠 표정이 그 어느때보다 진지해보여. 역시 저번의 그 사건이 원인인거지?”


나는 작게 고개를 끄덕이고 우리들이, 우리가 몸을 담고 있는 이 오르카호 전체가 다른 행성으로 이주할 수 있는  방법과 그 기간이 얼마나 걸리는지를 물어봤다.


닥터의 예상으로는 6개월 정도. 길다고 하면 길고 인류가 멸망한 시간에 비해선 아직 한없이 짧은 그런 기간이었다. 


그 6개월은… 지금은 어떻게 지나갔는지 제대로 기억도 나지 않는다.


알터리움이라는 미지의 광물과 닥터와 아자즈, 그렘린, 포츈등의 공학계열 바이오로이드들의 노력, 우리가 한번도 접해본적 없는 우주환경에 대한 오비탈 와쳐 소속 대원들의 노력 등. 거기에 갑작스런 내 알수없는 행보에도 나를 따라준 함 내의 바이오로이드들의 지지가 없이 이 모든것이 가능했을까?


전세계를 돌면서 아직 합류하지 못한 바이오로이드들을 구출해내고, 어떻게 소식을 안건지 무적의 용과의 재전투를 위해 자신의 수하 바이오로이드들과 함께 투항한 감마를 냉동수면시키는 등 지난 6개월은 예상하지 못한 사건의 연속이었다.



그리고 그 많은 사건 가운데서도 가장 예상하지 못한것은 칸의 방문이었다.


“사령관. 잠시 할 얘기가 있네.”


“아 칸이구나. 어서와. 무슨일이야?”


“최근 함내에서 돌고있는 소문에 대해 사령관과 조금 얘기를 나누고 싶어서 말이지.”


정보의 누출과 함내 인원들의 소요를 위해 가능한한 정보의 공개를 통제하고 있었지만, 이미 어떤 일이 벌어진다는 것은 어느정도 함내에 소문이 퍼진 모양이었다.


“어쩔수 없네. 칸이 직접 나를 찾아올 정도면 좀 많이 무거운 주제인거 같은데. 맞지?”


“맞아. 멸망 이전에 제조된 바이오로이드들중 일부가 나를 찾아왔다. 우린 이 별에 남겠다고 말이지.”


처음 칸의 말을 들었을땐 칸은 나와 같이 가지 않는것인가 하는 걱정이 있었다. 다행히도 그런 걱정은 기우였다.


“물론, 나는 사령관과 함께 갈 것이다. 이 지구에 잠든 전우들과 더이상 함께할수 없다는건 아쉽지만 그것말고도 아직 내겐 사령관과 함께 해야할 많은 일들이 있으니까.”


사연은 이러했다. 멸망전 제조된 바이오로이드들은 짧던 길던 자신이 살았던 환경이나 자신과 같이 있던 주인에 대한 추억이 있었다. 개중에는 아직 자신의 이전 주인을 잊지 못하는 경우도, 자신이 살았던 곳에 대한 추억을 잊지 못해서 향수병을 앓는 이들도 존재했다. 아주 간단하고 당연한 얘기인데도 그런 가능성을 전혀 고려하지 못한 자신을 자책하면서 그렇게 지구에 남길 원하는 바이오로이드들이 거주할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는것도 같이 진행했다. 





그리고 마침내 오늘, 그날이 찾아왔다.


“엔진 점화 시작!”

“엔진 점화 시작! 1번부터 3번 엔진 가동완료!”

“4번부터 6번까지 가동 완료! 모든 엔진 정상입니다!”


저 까맣고 광할한 지구 밖 공간을 향한 도약을 시작하기위한 목소리가 함장실을 채운다. 닥터가 준비한 홀로그램 계기판 위로 내가 모르는 온갖 용어들과 함께 비어있던 항목들이 하나씩 초록불로 점멸한다. 곧이어 덜컹 거리는 느낌과 함께 함선이 이전과는 다르게 우우웅 하는소리를 내며 떨리기 시작한다. 익숙한 풍경에서 느껴지는 어색한 불협화음에 조금씩 심장의 박동이 빨라진다.


“도약엔진 가동 준비 끝!”

“워프 필드 생성준비 끝!”

“워프 필드 좌표 지정 완료!”


홀로그램의 모든 항목에 초록불이 들어오자 함장실 내부를 돌면서 상태를 확인하던 콘스탄챠가 내게 다가온다.


“사령관님. 모든 준비가 끝났어요. 이제 출발 버튼을 누르면 도약이 시작될거에요.”


어느새 쓰일일 없던 책상의 한쪽 구석에 커다란 빨간색 버튼이 올라와 있었다. 이제. 이제 출발이다. 저 우주 너머의 공간으로. 우선은 화성에 들러 오비탈 와쳐의 인원들을 모두 구출한뒤, 그다음엔 3천여 광년 너머의 지구와 비슷한 환경을 지닌것으로 예상되는 행성으로.

그곳이 아니라면 또 다른 어딘가로. 우주는 넓고, 해야만 하는 일은 아직 많이 남았으니까.


멸망전 데이빗 보위라는 가수의 노래가 한곡 떠오른다.


Ground Control to Major Tom


Ground Control to Major Tom


저 우주너머엔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 설레이는 기분과 함께 버튼을 누른다.


Take your protein pills and put your helmet on


“모두 충격에 대비하세요! 10초전!”


Ground Control to Major Tom


“9!, 8!, 7!, 6!”


Commencing countdown, engines on 


“5초전! 4초전! 3초전!”


Check ignition and may God's love be with you


“2초전! 1초전! 가동!”


워프필드가 눈앞으로 들이닥치며 시야가 새하얗게 물든다. 다음번 내가 다시 눈을 뜨면 무사히 화성에 도착해 있겠지? 지구밖에서 바라보는 우주의 풍경은 과연 어떨까? 머릿속에 피어오르는 갖가지 의문을 억누르며 손을 더듬어 내 옆에 있는 내가 제일 사랑하는 사람의 손을 잡는다.

end.



제 처음이자 아마도 마지막일 라스트오리진 팬픽일것 같습니다.


이번주 월요일에 처음 사건이 터지고 화요일쯤 라오가 살아날 가능성이 있을까? 라는 질문에 너무나도 짙은 회의감이 들때 '그렇다면 적어도 내가 만족할 엔딩을 내 스스로 만들자.' 라는 목적으로 이 글을 처음 쓰기 시작했습니다. 더불어 라오를 더이상 접속하지 못하지만 손에서 놔주지 못한 사람들에게 이 세계를 마무리하는 대체엔딩을 만들어주고 싶었습니다.


그런의미에서 소설의 마지막 문장은, 사족같더라도 절대로 뺄수 없는 문장이었습니다. 저기서 손을 잡은 캐릭터는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이 제일 좋아하는 캐릭터를 넣어주세요.


정말 이번 한주는 저 스스로도 내가 어떻게 이 한주를 살았지? 싶을 정도로 울적한 한주였습니다. 더불어 이 라스트오리진이라는 게임을 내가 얼마나 상상이상으로 좋아했는가 를 깨닫는 한주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얘기를 듣는것만으로도 머릿속이 새하얘지는 주피디의 공개방송 요약본을 보면서 저는 아직 라스트오리진이라는 이 게임이 아직은 살아 있을수 있구나 하는 믿음이 어느정도 회복되었습니다. 정말 다행입니다.


모든건 언젠가 끝나기 마련이니 이 라스트오리진이라는 게임도 언젠가 그 생명에 끝이 올때가 있을것입니다.


그때가 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그 마지막은 서로 웃으면서 이 라스트오리진이라는 게임덕분에 즐거웠다고 얘기할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랍니다. 이게임의 문구처럼.


함께해요. 이 세상의 마지막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