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써보는 글이라 가독성이나 개연성 부분에서 많이 부족할 수 있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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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발바르 제도에서의 여러 사건들이 지나간 이후의 어느날, 무념무상에 빠져있던 사령관은 갑자기 바닷바람이 쐬고싶다며 혹시 모를 위험에 대비해야 한다는 리리스의 경호 제안도 받아들이지 않은 채,이 근처만 잠깐 돌고 오겠다며 오르카호 밖으로 나왔다.       
 
 산책하기엔 적당한 밝기였다. 극지방의 백야 덕분에 시간상으로는 한밤중이지만, 주변의 설원은 훤히 들여다 보았다. '그러고 보니, 혼자서만 돌아다닌게 얼마만이었더라?' 라는 생각을 하면서 이곳 저곳 돌아다니다 보니 어느새 오르카호와는 조금 멀리 떨어진 곳 까지 오게 되었다. '조금 멀리 왔나? 하루 종일 밝으니까 시간감각이 없어지나 보네, 적당히 돌아보다 가야겠다.' 라고 생각하던 찰나, 이곳이 고위도 라는 것을 증명이라도 해보이겠단 듯이, 급작스럽게 몰아치는 서리폭풍이 불기 시작했다. 눈보라를 피할 곳을 찾아 헤메던 사령관은 침엽수림 안으로 들어가게 되었고, 잠시 쉬어가던중, 사령관의 머릿속에 문득 한 가지의 생각이 스쳐갔다. '그런데, 정찰 보고에 따르면 이 근처엔 숲이 없었는데... 그렇다면, 이 숲은 도대체 뭐지?' 생각을 이어가려던 찰나, 숲 안에서 울려퍼지는 기묘한 선율에 홀린듯이 서서히, 한걸음, 또 한걸음 선율의 진원지로 나아갔다.

 선율이 퍼지는 곳은 빛조차 거의 들지 않아 보이는 수많은 나무들 사이에 지어진, 아니 지어졌던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 더 적절해 보이는 무너져가는 나무집이었다. 아주 오랜 세월동안 이곳에 있었다는 듯이, 얼어붙고 이곳 저곳이 부서진 나무 벽들이 무너져가는 지붕을 간신히 지탱하고 있는 형상이었다.
 이 을씨년스러운 폐허의 문을 조심스레 열고 안으로 들어간 사령관은 얼어붙은 목재의 폐허를 서서히 둘러 보던 중, 한 방에서 그의 발걸음을 이끌리게 한 선율이 들려왔다.

 문을 열고 방 안으로 들어가보니, 여러 악기와 가구로 추정되는 부서진 목재, 수많은 통조림더미들 사이에 누군가 있었다. 수척하지만 익숙한 자태의 바이오로이드, 마치 한마리 삽살개가 연상되는 덥수룩한 은회색 머리, 뮤즈였다. 뮤즈가 나를 보더니 당황과 공포감이 느껴지는 표정을 지으며 선율이 멈추었고, 그녀에게 어째서 이런 곳에 있는지 영문을 몰라 물어본 사령관에게 돌아온 대답은 예상 밖이었다. "이...인간님? 인간님...이신가요?"

프로듀서.
 그것이 뮤즈가 평소에 나를 부르는 호칭이다. 하지만 여기있는 뮤즈는 나를, 아니 인간이라는 존재를 거의 볼 수 없었다는 듯의 반응이었다. 의문을 잠시 접은 채 어째서 이런 곳에 있는지에 대해 묻자, 뮤즈는 사연을 이야기하기 시작했고, 나는 충격을 금할 수 없었다.

 자신은 멸망 이전에 모듈에 오류가 발생해 폐기될뻔 한 자신을 독일인 음악가가 구입하여 슈바르츠발트의 오두막에 거주하며 수많은 음악을 만들었고, 남성 그 자신도 여러 음률을 지어가며 지냈다고 말했다.
평화롭게 지내던 어느날, 자신의 주인이 공포에 질려, '이유는 묻지 말고, 악기 챙겨서 빌헬름스하펜 외곽의 내 오두막으로 가야해. 지금 당장.' 이라는 말 한마디를 꺼내면서 상황은 바뀌었다. 남자는 방에 틀어박혀 신들린듯이 음악을 연주했다.기묘한 수정으로 장식된 악기들-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리라, 아코디언, 플루트, 바순과 수많은 악기들-이 좁은 방안에서 울려퍼졌다. 그렇게 며칠째, 주인의 명령이기에 군말없이 따라왔지만, 그녀의 의문은 커져만 갔다. 어째서? 대체 무슨 일이기에 이리 공포에 질려가며 도망치듯 나라의 끝에서 끝까지 달려와 이곳으로 오게 된걸까? 그렇게 셀 수 없이 많은 시간이 지났고, 결국 기력이 쇠한 남자는 죽기 직전 뮤즈를 불렀다. '여기를 떠나선... 안된다..이게 내 처음이자...마지막 명령이다.......' 이 말을 뱉어내며 남자는 가쁜 숨을 토해내고 있었다.
그리고, 이 한 마디를 더 남기고 남자는 결국 숨을 거두었다. '뭘 해도 상관 없지만...매일 빠짐없이 연주해... 한 소절만이라도 좋으니.... 적어도 하루에 한번은...... 음악이 울려야만 해....'

 죽음이 그를 데려가며 바다의 침묵을 되찾도록 도왔다, 그와 그녀의 선율이 멈추었다면 그리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남았고 선율도 죽음의 품에 안기지 않았다. 그 후로 빌헬름스하펜에는 수많은 선율이 울려퍼졌고, 오랜 세월동안 계속되었다. '그 날'이 있기 전까지는 그녀의 생명이 바다의 선율을 끊기지 않도록 하였으나, '그 날', 세계가 혼돈에 빠졌고, 빌헬름스하펜의 여인도 평온한 선율을 지켜낼 수는 없었다.

'그 날' 철충이 이곳에 도착했다.

그 혼돈을 피할 수 있으리라 생각 했지만, 바이오로이드는 주인의 유언을, 명령을 죽어서라도 지켜야 했지만, 죽음의 공포가 그녀를 머리속을 덮쳤고, 약간의 오류가 있던 모듈이 압도적인 공포를 견디지 못해 정상적인 사고를 할 수 없었고, 세계의 혼돈 속에 검은 바다 속에 묻혀버린 선율은 들리지 않았다.
 철충은 물러갔지만, 그녀는 그곳에 있었다. 공포에 질려 주인의 명을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 간단한 것 조차 할 수 없었다는 자책감, 그리고 주인이 죽어가면서까지 막아내려는 것을 목도한 공포와 같이.

 갑작스레 돌풍이 불었다. 귀를 찢는 듯한 바람소리에 할 수 있는 것은 공포에 질려 주저앉는 것 밖에는 없었다. 그리고 심해에서 무언가 올라 오기 시작했다. 전설 속의 크라켄 이라고도, 잊힌 고대의 존재라고도 불릴 듯한 기괴한 존재가 모습을 드러냈다, 후세의 누군가가 '별의 아이'라고 명명할 심연의 거수가 지상에 머리를 내밀었다.

 거수의 목소리가 그녀에게 닿았다. 귀를 거치지 않고 정신으로 바로 들어오는 듯한 괴성을 버티지 못하고 이성은 광기에 자리를 내주었다. 수없이 울리는 괴성을 버티지 못한 그녀는 정신을 잃었고, 악기에 장식된 수정의 빛. 그것이 빌헬름스하펜의 마지막 기억이었고, 정신을 차리니 누군가가 이곳으로 인위적으로 옮겨온듯이 바닷가의 집과 극지에 어울리지 않는 나무들만이 주위에 무성할 뿐이었다.

"...그 이후로는 그 괴물이 깨어나지 못하도록 조금이라도 연주를 하고 있습니다...제 이야기는 여기까지 입니다."

사령관은 이야기를 듣고는 한가지 제안을 했다,
이곳에서 벗어나 오르카호에 합류하지 않겠냐고. 그녀는 죽은 주인의 명령을 거역 할 수 없다며 이곳에 남겠다고 했다. 사령관은 어쩔 수 없이 그 곳을 떠났지만, 내일 다시 찾아와도 되냐는 제안을 했고, 그녀는 받아들였다. 사령관은 오르카호에 돌아왔고, 기다리던 바닐라에게 한소리 듣긴 했지만, 머릿속으로는 그 뮤즈에 대한 생각이 떠나가지 않았다.

 다음 날, 이번엔 무조건 같이 가겠다는 리리스를 차마 두고 갈 수 없어 함께 그 숲이 있던 곳으로 떠났지만, 그곳에는 애초부터 어느 무엇도 없었다는 듯이 황량한 설원과 철썩이는 겨울바다, 그리고 해변가에 버려진 기묘한 빛을 내는 부서진 수정장식 비올라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