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느 때처럼 사령관과 나들이를 나가는 날.

약속 시간보다 조금 일찍 나와 사령관을 기다리던 므네모시네는 남는 시간 동안 데이터를 관리하기로 한다.

오르카호가 가져온 새로운 데이터들의 취합이 아직 끝나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게 므네모시네는 원격으로 데이터에 동기화하여 정리를 시작한다.


그러던 그때.

그녀는 조금 특이한 제목의 영상들을 발견한다.


[희귀영상! 칸 대장님의 칸구리 모드♡]

[간호사 다프네씨의 다정한 신체검사♡]

[초민감 경호원 금란씨의 3초 절정 시리즈♡]

......

...

.


"이상한 제목들이군요...."


대체 무슨 내용인지 짐작도 안 가는 제목들.

허나 그렇다고 배제할 수는 없다.

그녀에게는 인류 마지막 방주의 책임자로서 인류가 남긴 기록이라면 무엇이든 보관해야 할 의무가 있었다.


므네모시네는 초고속 데이터 탐색 기능을 활용하여 그 수많은 영상들에 동시에 동기화한다.


"흐으읏!?"


그러자 마치 파도처럼 살색의 향연이 밀려와 그녀의 머릿속을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수천 배의 속도로 동시에 재생되는 수백 개의 영상들.

머릿속을 가득 울리는 그녀들의 신음소리와 거친 숨소리.


[뀨, 뀨우...? 큭, 우, 웃지 마라...! 그러니까 너구리 울음소리 같은 건 모른다고 하지 않았나...! 흐읏...!]

[주인님, 안 돼요.... 아직 시술 중인데.... 지금 하면 정말 생겨버려요.... 우리의 아기가....]

[하아... 하아... 주, 주인님... 부디 조금만 휴식을.... 하아아...! 이대로라면 소첩, 정말 이상해져버릴... 하악...! 또, 또 갈 것 같...! 아아아!]


데이터 관리의 효율을 위해 데이터 그 자체에 직접 동기화하는 므네모시네.

그녀에게 그 영상들은 단순한 시청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마치 그 현장에 직접 있는 듯한, 내가 그 주인공이 된 듯한 강렬한 추체험.


그녀는 차 한 잔 마시기에도 부족한 그 짧은 시간에 수천 배의 속도로 수백 번의 절정을 뇌 속으로 직접 경험하게 된 것이다.


므네모시네는 한동안 그 자리에 굳이 꼼짝도 하지 못했다.

지금 이 순간 아주 조금이라도 움직인다면, 아주 약간의 자극이라도 가해진다면 간신히 머릿속에 붙잡아놓고 있는 이 강렬한 기억들이 온몸에 퍼질 듯한 기분이 들었다.


마치 깨지기 직전의 빙하처럼.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그대로 와르르 쏟아질 것 같은....


그리고 그때.


"저기, 괜찮아?"


사령관의 손이 그녀의 어깨에 닿았다.

므네모시네의 눈에 사령관의 얼굴이 가득 담겼다.


빙하가 무너지고 말았다.


"아아...!? 흐앗...! 하아아아아...! 아아아...!"


소리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말 그대로 생명체의 첫 울음소리와도 비슷한 소리가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그녀의 기나긴 삶에서 그녀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세상에 흘러나온 첫 목소리였다.


고양감이라는 단어로는 턱없이 부족한 뜨겁고도 애타는 감정이 그녀의 몸을 지배했다.

생애 처음 느끼는 감정이었지만 조금 전 영상들을 통해 그녀는 이 감정을 무엇이라 부르는지 알고 있었다.


므네모시네는 사령관의 손을 붙잡고 자신의 감정을 그대로 공유했다.


"가고 있습니다.... 계속, 계속, 계속... 멈추지가 않습니다, 관리자님...."


감정이라는 것을 잊고 마치 차가운 얼음과도 같았던 그녀.

그녀의 마음이 조금씩 녹아내리고 있다는 증거일까.


그녀의 눈가에 촉촉히 눈물이 고이고.

그녀의 원피스 다리 사이가 조금씩 젖어들었다.


더는 이성적인 판단이 들지 않았다.

한 번 와르르 쏟아져 내리기 시작한 그 기억들은 므네모시네의 머릿속을 완전히 잠식해버리기에 이르렀다.


그래서일까.

므네모시네는 자신의 가장 원초적인 존재 이유인 방주의 관리자로서의 사명을 더 크게 자각하게 되었다.

더 늦기 전에, 이 몸이 녹아버릴 것 같은 '간다'에게 몸을 완전히 빼앗기기 전에 사명을 다해야 한다는 본능이 깨어나고 말았다.


므네모시네는 사령관을 덮쳐 쓰러트렸다.


"관리자님, 본 개체 므네모시네.... 방주의 관리자로서 사명을 다할 수 있게 해주셨으면 합니다...."


그녀가 원피스 자락을 천천히 들어올렸다.


그녀의 하얀 아랫배와 끈적하게 무언가 늘어지고 있는 다리 사이가 훤히 드러났다.


아름다운 꽃밭.

그녀가 유일한 취미로서 애정을 다해 키워온 방주 한구석 그녀의 소중한 쉼터.


"마지막 인간님의 씨앗을...."


그곳에서 그녀는 자신의 아랫배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여기에 넣어주셨으면 합니다...."


또 하나의 소중한 것을 품기 위해.


아마 그녀는 몰랐으리라.

단순히 자신의 사명을 지켜야 한다는 본능에 의해 이루어진 이 충동적 행위.

설마 그 행위를 일컫는 단어가 있으리라고는.


"혹시 모르니 가득.... 오늘도, 내일도, 모레도.... 전부 제가 안전하게 보관하겠습니다...."


옛 인류는 이를 '발정'이라고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