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그녀가 그 ‘철혈의 레오나’인가?”


메디치 가문의 수장 조반니 디 피에로 데 메디치가 레오나의 주위를 돌며 그녀를 꼼꼼히 살폈다. 이내 조반니는 만족스러운 웃음을 짓고는 레오나를 데려온 남자의 어깨를 두드렸다.


“아주 잘해줬네 코시모. 아주 수고했어.”


“아닙니다. 조반니 씨. 메디치 가문을 위해서 한 일인데 수고라니요. 하하하. 저… 그럼 약속하셨던 것은…?”


“물론이지. 우리 메디치 가문은 앞으로도 자네를 계속 후원하고 더 나아가 자네 사업을 적극적으로 도와줄 걸세.”


조반니의 말을 들은 남자는 거듭 허리를 숙이며 조반니에게 감사를 표한 뒤 방을 나갔다.


쪼르륵-


“한 잔 하겠나?”


조반니의 제안을 레오나는 거절했다. 하지만 그는 개의치 않다는 듯 여유롭게 웃으며 와인잔을 기울였다.


“간단하게 내 소개를 하지. 난 조반니 디 피에로 데 메디치라네. 보다시피 메디치 가문의 수장이지. 편하게 조반니라고 부르게나. 안타깝지만 시간이 많지 않으니 거두절미하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지. 내가 왜 자네를 데려왔는지 알겠나?”


레오나는 짚이는 구석이 있었으나 확실하지 않기에 일부러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그녀의 대답에 조반니는 살짝 실망한 기색을 보였지만 이내 표정을 바꾸고는 그녀에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이유는 간단하네. 내 아들 놈 때문이야… 로베르토 디 로렌초 데 메디치. 혹시 기억하나?”


조반니의 말에 레오나는 그녀가 전선에 있었을 당시 같은 부대의 보급 장교였던 로베르토를 떠올릴 수 있었다. 그는 장교였지만 자신의 가문을 믿고 부대 내에서 온갖 비리와 부정부패를 저질렀고, 툭하면 그녀를 비롯한 부대 내 바이오로이드들와 여군들에게 추파를 던졌다. 특히 레오나에게는 그 정도가 심했기에 그녀는 그를 아주 싫어했다. 


레오나의 표정을 본 조반니는 헛기침을 했다.


“크흠! 그래, 내 아들 놈이 워낙 개차반이었다는 건 나도 아네. 녀석을 잘못 키운 내 죄지… 녀석은 오직 자기만 생각하는 그런 놈이니까. 근데… 그 오만방자한 녀석이 내 앞에서 무릎 꿇고 빌더군. 자넬 살려달라고. 자네에게 목숨을 빚졌다고 말이야.”


그 말에 레오나는 모든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 부대가 삼안에 의해 속수무책으로 습격을 당했던 그날 밤. 레오나는 필사적으로 남은 병력을 모아 지휘를 하고 있었다. 바쁜 장교들 틈에서 로베르토는 아무것도 못 하는 짐짝이었고, 걸리적거리는 그를 치우기 위해 레오나는 부대장에게 로베르토가 죽은 수송 장교를 대신해 부대 내 부상병과 비전투 바이오로이드의 후방 수송 임무를 맡을 것을 건의했다. 부대장은 그걸 받아들였고 그것이 로베르토의 목숨을 살린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로베르토가 부대를 떠나고 얼마 안 있어 폭격이 시작되었지. 듣기로는 정말… 찰나의 순간이었다는 군. 아들놈의 부대에 폭격이 떨어졌다는 소리에 난 황급히 녀석에게 연락을 했네. 수화기 너머로도 겁에 질려 덜덜 떠는 게 훤히 보이더군. 급히 집으로 오라고 얘기했지만 녀석은 찾아야 할 게 있다고, 자기 눈으로 보기 전까진 갈 수 없다고 떼를 썼지. 그래서 녀석이 직접 그 현장으로 갔고 거기서 자네를 발견한 걸세.”


잠시 말을 멈춘 조반니는 와인잔을 기울여 목을 축이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자네는 정말이지… 운이 좋았다고 밖에 말할 수 없는 상태였네. 신체는 80% 이상이 가동 불가능한 상태였고, 전투 모듈도 훼손돼서 사실상 폐기해야 되는 상태였지만 로베르토는 포기하지 않았지. 우리 가문이 후원하는 의사, 과학자, 정치인, 예술가 등등 모두에게 연락을 취해서 어떻게든 자네를 수복하기 위해 노력했다네. 다행히도 신께서 도우셔서 자네의 수술이 잘 이루어졌고 이렇게 내 앞에 서 있게 된 걸세.”


말을 마친 조반니는 손수건으로 입가를 닦았다.


“아, 그리고 한가지 자네가 알아야 할 것이 있네. 이번 수술은… 아주 큰 수술이었네. 사실상 자네를 처음부터 다시 만드는 것과 같은 작업이었지. 특히 자네의 모듈을 담당했던 이들이 꽤나 진땀을 흘렸지. 그들이 자네의 모듈을 다시 만들고 업그레이드하면서 한가지 기능을 제거했네.”


업그레이드했다면서 기능을 제거했다는 말에 레오나는 고개를 갸우뚱 했으나 곧 그것이 무슨 말인지 깨닫고는 온몸이 뻣뻣하게 굳었다.


“역시 소문대로 머리 회전이 빠르군. 그래, 원래 바이오로이드들에게 기본적으로 탑재되어 있던 ‘인간에게 절대 복종’이라는 기능이 자네에게는 없네. 자네의 욕구, 소망, 희망 그런 것들에 따라 자유롭게 결정하고 움직이는… 뭐랄까, 간단하게 말하자면 자네는 이제 ‘자유 의지’를 가지게 되었다는 말이네.”


조반니의 말에 레오나는 눈앞이 아찔했다. 자유의지라니. 이건 마치 의자가 자기 위에 앉을 사람을 결정하겠다는 것만큼이나 터무니없는 말이었다. 하지만 이런 터무니없는 일이 그녀의 현실이 됐다. 그런 그녀를 안쓰럽게 봤는지 조반니가 말없이 와인 한 잔을 건넸다.


꿀꺽-꿀꺽-


이번만큼은 레오나도 거부하지 않고 그가 건넨 와인을 받아 단숨에 들이켰다.


“자네 심정을 나도 충분히 이해하네. 왜냐하면 나도 무척이나 혼란스러우니까. 이건… 정말 전대미문의 사건이야. 바이오로이드에게 자유의지라니… 하지만 어쩌겠나, 이미 일어난 현실을 받아들이는 편이 자네에게 좋을 걸세.”


빈 잔을 치운 조반니가 조심스럽게 두 손으로 레오나의 손을 잡았다.


“혼란스러운 와중에 부담을 주고 싶은 건 아니지만… 이 늙은이의 소원을 하나 들어줬으면 하네.로베르토, 내 아들 옆에 있어주게. 그 애는 지금까지 누구를 위해 부탁을 한 적도, 그렇게 무릎 꿇고 울어본 적도 없는 녀석이야. 오만방자하고 부족한 녀석이지만 그래도 나에겐 너무나도 소중한 아들이네. 그 녀석이 자네로 인해 바뀌고 있어. 그게 사랑인지 뭔지 나는 함부로 판단할 수 없네. 하지만 어느 누구든지 바뀌는 과정에 서 있을 때는 매우 불안정하고 위태롭네. 그래서 이리저리 휩쓸리고 엇나가기도 쉬운 법이지. 난 자네가 내 아들 곁에서 그 녀석을 잘 잡아주고 이끌어줬으면 하네. 부디 내 부탁을 들어줄 수 있겠나?"


레오나는 조반니가 자신에게 명령이 아닌 부탁을 한다는 것에 놀랐고, 자기가 그 부탁을 거절할 수 있다는 사실에 또 한 번 놀랐다. 이전까지 그녀를 옥죄어 왔던 본능과 고통이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레오나는 잠시 멍하니 서 있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고맙네, 정말 고마워..."


똑똑-


"실례합니다. 곧 다음 일정을 위해 이동하셔야 합니다."


방으로 들어온 집사가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며 말하자 조반니는 말없이 레오나의 손등을 쓰다듬고는 방을 빠져나갔다.


"도련님께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절 따라오시죠."


하녀를 따라나선 레오나는 내심 인간인 그녀가 자신에게 무슨 해코지를 하진 않을까 걱정했지만 곧 그것이 기우였음을 깨달았다. 하녀를 비롯한 집안 사람들은 그녀를 바이오로이드라고 깔보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를 진짜 인간처럼 극진히 대했다.


"레오나!"


하녀를 따라 정원에 들어서자 정신 사납게 서성이던 로베르토가 그녀에게 달려왔다. 


"괜찮아? 수술은 잘 됐다고 들었지만 어디 뭐 이상한데는 없어? 그러고보니 당신 모듈을 담당한 사람이 뭔가 손을 썼다고 들었는데..."


레오나는 가만히 로베르토를 응시했다. 늘 언제나 여유만만하고 남을 깔보던 그가 초조하고 구석에 몰린 사람처럼 안절부절 못하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이 참 낯설고 신기하다는 생각과 동시에 그가 물벼락 맞은 고양이처럼 보여 자기도 모르게 입을 가리고 웃고 말았다.


"웃는 거 보니까 괜찮은 게 맞는 것 같네...요."


인간도 아닌 바이오로이드에게 경어를 썼다는 사실도 잊은 채 로베르토는 레오나의 미소에 헤벌레 웃었다.


“진작에 이렇게 웃어주지 그랬어…요.”


로베르토의 한탄에 레오나는 눈을 부릅뜨고는 그가 한 파렴치한 짓들을 당하고 웃을 수 있는 사람도 바이오로이드도 없다고 매섭게 말했다. 레오나의 기세에 눌린 로베르토는 어깨를 움츠리며 연신 미안하다는 말밖에 하지 못했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할 거야? 우리 집에 머무는 거야?”


간신히 정신을 차린 로베르토의 물음에 레오나는 알 수 없는 미소를 짓더니 그대로 몸을 돌려 저택 안으로 걸어갔다. 뒤에서 로베르토가 쩔쩔매는 모습이 안쓰럽긴 했지만 그동안 당한 것들에 대한 복수라고 생각하니 속이 시원했다. 어차피 그와 평생 같이 있을 텐데 조금은 놀려도 괜찮을 거라 생각하며 레오나는 활짝 웃었다.



[비컴 휴먼 대회] 레오나 데 메디치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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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컴 휴먼 대회] 레오나 데 메디치 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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