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 말하게 하지 마, 델타. 네 사소한 감정 때문에 우리의 소중한 자원을 낭비할 수 없어.”


레오나 앞에 서 있던 레모네이드 델타는 화가 머리 끝까지 나자 참지 않고 그대로 표출했다. 하지만 그녀의 히스테릭한 비명과 행동에도 레오나는 조금의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만 나가봐. 난 이제 좀 쉬어야 되거든. 얘들아, 손님 나가신다.”


레오나의 수하들이 델타와 그 일행들을 향해 총구를 겨누자 델타는 피가 날 정도로 입술을 꽉 깨물었다. 하지만 달리 뾰족한 수가 없었기에 쿵쿵거리며 밖으로 나갔다.


“하… 어떻게 같은 레모네이드인데도 저렇게 다를 수 있는 거지? 오메가가 유독 뛰어난 건지 아니면 델타만 유독 뒤떨어진 건지 모르겠어.”


찰칵-


레오나가 담배를 입에 물자 어느새 다가온 발키리가 조용히 불을 붙여줬다.


후우-


레오나가 내뿜은 연기가 공중에서 바닥으로 천천히 내려앉았다. 그 연기를 눈으로 좇던 레오나는 책상 위에 놓인 액자에 시선이 고정됐다.


“로베르토…”


액자 속 사진에는 그녀의 남편이었던 로베르토와 과거의 그녀가 활짝 웃고 있었다. 인간과 바이오로이드의 결혼 혹은 동거가 아예 없었던 건 아니지만 여러모로 터부시 되던 때에도 로베르토는 그녀에게 청혼을 했다. 레오나는 여러 차례 현실적인 이유를 내세우며 거절했지만 그 모든 걸 받아들이고 포옹하려는 로베르토를 끝내 거부하지 못하고 식을 올렸다. 로베르토는 아버지 조반니의 뒤를 이어 가문을 물려받았고 과거의 그를 아는 사람들은 의문을 가질 정도로 성실하게 가문을 잘 이끌었다. 가문을 이끄는 그에게 있어 단 하나의 흠은 레오나 뿐이었다. 모두가 그에게 인간 여성과 다시 결혼할 것을 제안했지만 그는 단칼에 거절했다. 오히려 남들 보라는 듯 레오나와 그 사이에 딸까지 둘 정도였다.


“베아트리체…”


레오나는 피던 담배를 내려놓고 딸의 사진을 어루만졌다. 로베르토와 레오나의 사랑의 결실이었던 딸 베아트리체는 엄마를 닮아 탐스러운 금발을 가진 무척이나 아름다운 소녀로 성장했다. 훌륭한 가문의 아버지와 명석한 두뇌의 어머니 그리고 그 사이의 아름다운 딸. 비록 바이오로이드일지언정 그녀는 자신이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여자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생각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망할 벌레 놈들.”


2차 연합 전쟁이 벌어지던 중 갑작스레 나타난 철충 무리에 의해 세계는 파국을 맞이해야 했다. 메디치 가문 또한 그 불행을 피해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필사의 노력으로 철충은 막아냈지만 그보다 더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다. 휩노스 병. 제일 먼저 남편 로베르토가 잠들었고 가문의 사용인들이 잠든 후 마지막으로 레오나의 딸 베아트리체가 그녀의 품 안에서 잠들었다.


“요새 그 벌레들은 어때?”


레오나의 건조한 물음에 발키리는 최근 메디치 패밀리의 상황을 보고했다. 최근 한 달 동안 이탈리아에서 철충은 델타와 메디치 패밀리의 활약으로 인해 거의 보이지 않게 되었다. 유럽의 바이오로이드들은 철충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다만 델타의 그 잔인한 성격 때문에 많은 이들이 피렌체로 넘어와 레오나의 패밀리에 들어가기를 바라고 있었다.


“델타… 오메가의 반이라도 따라갔으면 오늘 같은 대접은 받지 않았을 텐데 말이지.”


아메리카는 오메가, 유럽은 델타가 세력권을 형성했지만 오메가와 달리 델타는 그녀의 질투의 대상인 오드리를 학대하는 것에만 정신이 팔려 밑의 부하들을 제대로 돌보지 않았다. 그 결과 그녀는 많은 이들로부터 두려움의 대상이지만 존경은 받진 못했다. 반면에 레오나는 인류 멸망 전부터 메디치 가문에서 익힌 여러 능력들을 토대로 맨땅부터 시작해 현재의 조직을 이루었기에 많은 바이오로이드들로부터 존경과 선망을 동시에 받아왔다


“농장을 좀 더 늘려. 포도는 됐고 쌀이나 밀처럼 주식으로 쓸 수 있는 곡물들 위주로 말이야. 앞으로 우리들이 먹여야 할 입들이 더 늘어날 테니 그거에 대비해서 이번엔 좀 더 많이 만들라고 전해. 참, 현재 우리가 소유한 자원이 얼마나 되지?”


레오나의 물음에 안드바리가 보고서를 그녀에게 내밀었다. 깔끔하게 정리된 보고서를 보며 레오나는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이 정도면 델타에게 오드리 개체의 유전자 씨앗을 건네는 대가로 상당한 양의 토지를 뜯어낼 수 있을 정도다. 레오나는 델타에게 보내는 편지를 적어 발키리에게 건냈다.


“베라하고 알비스를 델타에게 보내. 말하는 건 베라가 어련히 잘 할거고, 여차하면 알비스가 보호해줄 테니 걱정할 거 없어. 참, 알비스 주머니에 초콜릿을 넉넉히 넣어줘. 그리고 델타가 보는 앞에서 아주 맛있게 먹으라고 전해. 델타가 쓰러지지나 않으면 좋겠네. 후훗.”


델타가 자신의 편지로 괴로워할 모습을 상상하자 한껏 기분이 좋아진 레오나는 내려놨던 담배를 집어들어 다시 맛있게 피기 시작했다. 발키리가 방을 나가고 잠시 후, 정찰을 나갔던 샌드걸이 들어왔다.


“수고했어, 샌드걸. 오늘도 별다른 소식은 없는 거지?”


샌드걸에게 담배를 건네던 레오나는 평소와 다른 분위기에 놀라움과 흥미를 동시에 느꼈다. 샌드걸은 아무 말없이 태블릿을 그녀에게 건넸다. 샌드걸이 건넨 태블릿에 설치된 영상을 틀자 화려한 무대 공연이 펼쳐졌다.


“이게 뭐야, 멸망 전 무대인가? 이걸 왜… 아니, 잠깐 이건 스카이나이츠잖아! 얘네가 대체 왜 아이돌을? 그리고 찍힌 날짜는… 삼일 전?! 샌드걸, 이게 대체 뭐야?”


샌드걸은 그 영상이 삼일 전 패밀리의 영토 최외곽에서 우연히 잡은 주파수를 수신한 결과물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현재 라비아타가 이끌던 저항군에 최후의 인간이 사령관으로 합류했으며, 지금 보고 있는 영상도 그 인간의 주도로 만들어져 현재 전 세계로 송출되고 있다고 보고했다.


“말도 안 돼… 인간은 모두 휩노스 병으로 죽었어. 단 한 사람도 빠짐없이! 근데 이제 와서 최후의 인간이 남아있다고?”


레오나는 재빨리 머리를 굴렸다. 그들의 목표가 뭘까? 저항군은 기본적으로 펙스의 야심을 막고 인류의 재건을 목표로 하는 집단이다. 그렇다면 그들의 사령관인 인간도 기본적으로는 그들과 같은 목표를 두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인간이 따로 꿍꿍이가 있을지도 모르니 그 부분은 아직 속단하기는 이르다. 최후의 인간이 있다는 걸 지금 자기 말고 또 누가 알고 있을까? 아시아쪽의 바이오로이드들? 어쩌면 펙스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들의 주적은 저항군이니까. 레모네이드 오메가가 알고 있다면… 델타도 알고 있을 것이다.


쾅!


“이런 썩을 년이!”


레오나는 자기가 델타에게 놀아났다는 사실에 화를 참을 수가 없어 책상을 주먹으로 내리쳤다.


“어쩐지 델타가 그렇게 모욕을 당하고도 의기양양했던 것이 마음에 걸렸는데, 이런 중요한 사실을 숨기고 있었다니…”


안드바리가 건넨 물을 단숨에 들이켜 마신 레오나는 재빨리 냉정을 되찾았다. 지금 상황은 인간이라는 존재 하나로 크게 바뀌었다. 판이 변수 하나로 완전히 뒤집힐 처지인 것이다. 이미 우위에 서기에는 늦었다. 하지만 평소의 배 이상으로 빨리 움직인다면 그 우위는 언제든지 뺏는 게 가능하다. 지금은 우왕좌왕할 때가 아니라 빨리 움직여야 할 때였다.


“안드바리, 빨리 뛰어가서 발키리를 잡아. 그리고 편지는 불태우라고 해. 델타에게는 내가 직접 갈 테니. 샌드걸. 인원을 모아서 정보망을 아시아 쪽으로 늘리고 저항군이 보내는 신호를 잡는 일에 집중해. 필요하다면 발키리를 데려가도 좋아.”


안드바리와 샌드걸은 레오나에게 짧게 대답한 뒤 곧바로 방을 빠져나갔다. 레오나는 수화기를 들고 전화 다이얼을 돌렸다. 몇 번의 신호음이 간 뒤 수화기 건너편에서 오드리가 밝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안녕, 오드리. 내가 지금 옷 한 벌이 필요해서 말이야. 빨리 좀 만들어 줘야겠어.”


오드리는 레오나의 후원을 받고 있었기에 무례한 그녀의 주문을 군말 없이 받아들였다. 오드리가 어떤 옷을 원하는지 물었다.


“너희들이 문리버 회장을 위해 만들었던 옷이 좋겠어. 그걸 나에게 맞게 수선해서 보내줘. 왜 그게 필요하냐고?” 


어리둥절한 오드리의 질문에 레오나가 싸늘하게 웃으며 말했다.


“델타, 그 년을 미치게 만들어야 하거든.”



[비컴 휴먼 대회] 레오나 데 메디치 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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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컴 휴먼 대회] 레오나 데 메디치 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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