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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침 회의 시간에 언뜻 볼 때는 몰랐는데 용의 얼굴엔 유난히도 그늘이 져 있었다. 밤물결처럼 매끄러운 머리카락은 손질이 제대로 안 된 듯 푸석푸석했고 두 눈두덩이는 유난히도 푹 꺼져 있어서 병자의 안색 같았다.


 하긴 병자라는 말이 틀린 건 아닐 테지. 사랑이란 이름의 속앓이를 하는 중이긴 하니.


 그 고민이 부럽다고 한다면 너무 속 좁은 생각일까? 이런저런 생각을 마음 한구석으로 밀어 넣으며 레오나는 용이 내미는 찻잔을 받았다. 그윽한 찻잎의 향기가 코끝을 간질이고 있었다.


 “차 잘 우리네. 난 커피 캡슐밖에 안 쓰거든.”


 “…….”


 레오나가 수북히 쌓인 커피 캡슐을 가리키며 장난스럽게 말했지만 용은 대꾸도 없이 찻잔만 내려다볼 뿐이었다. 무슨 대화가 된다 한들 쉽지 않을 것 같은 예감이 레오나의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사석이니까 말은 편하게 하자, 괜찮지?”


 “…뜻대로 하시오.”


 그렇게 말하는 용의 표정은 여전히 어두웠고, 그 말을 듣는 레오나의 미간은 조금 찌그러졌다.


 “하아, 서로 말 편하게 하자는 거야. 설마 평소에도 그런 시대극 같은 말투 쓰고 다녀?”


 “그대도, 내가 여자로서 딱딱하다고 생각하는 거요? 매력도 없고, 아양도 떨 줄 모르는……?”


 “…….”


 이거 중증이네. 레오나는 속으로 혀를 찼다.


 용은 아예 레오나를 보고 있지도 않았다. 마치 겨울철 줄기 하나만 간신히 남은 갈대처럼 연약해서, 입김이라도 살짝 불면 꺾여버릴 듯 위태롭기 그지없는 모습이었다. 다시 부러움과 시기에 질투까지 어두운 감정들이 부글부글 끓는 진흙처럼 솟아올랐지만……. 레오나는 꾹 눌러 참았다. 약해진 상대를 조롱하는 악취미 같은 건 그녀에겐 없었다.


 “예전에 소문으로 들었던 모습보다야 훨씬 나은데 뭘. 팔이 네 개고 칼을 네 개나 쓰면서 눈에서 광선을 쏜다고 하고, 식사로는 다른 바이오로이드나 철충을 먹고, 마주친 바이오로이드들은 원인 불명의 이유로 3일 안으로 죽는……. 우리 안드바리는 지금도 그 얘기만 들으면 내 품에 찰싹 안긴다니까?”


 짓궂은 그 말의 정체는 예전에 트리아이나가 용에 대해 퍼뜨렸던 괴상한 루머였다. 워낙에 기가 차는 내용인지라 믿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지만, 어쨌든 좋건 싫건 용에 대해 강렬한 인상을 남긴 건 분명했다.


 “…훗.”


 다행히 레오나의 노력이 통했는지 용의 눈빛은 조금 전보다는 훨씬 더 생기가 깃들어 있었다.


 “그대의 위로는 참으로 알기 어렵구려.”


 “미안하게 됐네요, 성격이 이 지경으로 꼬여서.” 레오나는 혀를 삐죽 내밀었다. “그래.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거야, 아니면 듣고 싶은 말이 있는 거야?”


 “딱히 별다른 생각을 가지고 그대를 따라온 건 아니오. 본의 아니게 회의실에서부터 사령실까지 그대가 서…주군과 얘기하며 걸어가는 걸 봤기 때문에.”


 가까스로 ‘서방님’이라는 단어를 입에 담지 않은 건 놀라운 자제력이었지만 이럴 땐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비밀이란 아는 이가 없어야 그 가치가 있는 법. 사령관과 용이 서약했다는 것은 새파랗게 어린 LRL조차도 아는 사실이었다. 그게 다 까발려진 걸 모르는 이는 오직 용 본인밖에 없었다.


 “왜, 사령관하고 싸우기라도 했어?”


 그러니 레오나는 일부러 모르는 채 접근하기로 했다. 내심 장난기가 솟는…건 아니고 어디까지나 자기 문제를 스스로 말하는 게 더 효과적일 테니까. 응, 절대 놀리려는 목적이 있는 건 아니었다. 조금도 말이다.


 “사실은 어, 업무 문제로 조금 마찰이 있었소. 중간에 아르망 님도 조금 끼는 형태가 돼서, 조금, 아니 좀 많이 서로 마찰이 있었는데……. 그만 주군께 심한 소리를 해 버려서…….”


 거짓말을 하는 재주가 없는 걸까, 아니면 그 정도로 마음의 여유가 없는 걸까. 횡설수설하던 용의 목소리는 점차 작아져서, 마침내 둘만 있는 이 고요한 방 안에서도 간신히 들릴 정도로 작아졌다.


 “돌이킬 수 없는, 심한 소리를…….”


 “…….”


 하긴 반지까지 던지고 나왔다고 했지, 아마. 어떻게든 찾으려고 발악을 했는데 결국 못 찾았다고, 사령관이 반쯤 혼이 빠진 눈으로 그렇게 얘길 하긴 했었다.


 “그래서 나한테 뭘 요구하고 싶은 건데? 사령관이랑 화해하게 다리라도 놔 달라는 거야?”


 “그, 그런 의미로 말한 건 아니오. 다만 업무에 지장이 생겨서, 그게…….”


 “어머나 업무라니. 팔자 편한 소리만 하고 있구나. 누구는 사령관의 마음 한 조각 얻어보려고 있는 발버둥 없는 발버둥을 치는 판인데.”


 “그, 그대는 서, 아니 주군께 마음이 있는 거요?”


 용의 눈동자가 다시 불안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그대‘는’이라니. 마치 자기는 관심 없는 척 끝까지 숨기려는 그 말에 레오나는 기가 탁 풀릴 지경이었다. 그러면서 한없이 불안한 표정이라니 이거 말과 행동이 전혀 맞지 않았다. 슬슬 진심으로 짜증이 나는지라 이번에는 레오나도 손을 내밀어주지 않았다.


 그저, 만년설 같은 서늘한 눈빛으로 용을 바라볼 뿐이었다.


 “당연하지.”


 “…….”


 “오르카에 있는 대원들 중에서 과연 사령관에게 호의도 안 가지고 있는 애들이 있을까? AGS까지 포함해도 없을걸? 마성의 남자잖아, 사령관은. 조금만 더 페로몬이 짙어지면 철충들도 동료로 받아달라고 제 발로 기어 올걸.”


 “…그렇겠지. 주군께서는 모두에게 사랑받으시는 분이니까.”


 용의 목소리는 한층 더 우울해졌다. 그야말로 자존감이 살짝 회복됐다가 다시 바닥까지 곤두박질치는 느낌이었다. 그렇다 해도 레오나의 말투엔 용서가 없었다.


 “그 반대급부라고 해야 할까 본인은 참 맹하지만 말이야. 여자 맘도 모르고, 어수룩하고, 회의 시간에 늦고, 잊을 만 싶다 하면 대형 사고 한두 건 터뜨려 주고……. 가끔 생각해보면 이게 사람인지 돌인지 구별이 안…….”


 “그만.”


 그 도발이야말로 효과가 있던 걸까. 용이 드물게 분노 깃든 눈빛으로 레오나의 말을 잘랐다.


 “아무리 그렇다 한들 우리들의 주군이오. 없는 자리에서 함부로 말하는 건 삼갔으면 좋겠소.”


 “어머, 왜 그래? 화라도 났어? 사령관과는 업무적인 관계라며?”


 “…….”


 역시 용은 거짓말을 못 하는 성격이었다. 빈말로라도 아니라고 하질 못하는 걸 보니. 커다란 바닷빛 눈동자엔 삽시간에 눈물이 그렁그렁해졌고, 그 안타까운 모습에 레오나는 저도 모르게 깊게 한숨을 쉬었다.


 “미안해, 일부러 모르는 척해서. 사실 너랑 사령관이 서약한 거 알아. 며칠 전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알고.”


 “그, 그런……. 주군께서……. 하지만 비밀이었는데…….”


 “착각하지 마. 사령관이 알려준 거 아니니까. 알 만한 사람들은 한참 전부터 알고 있었어. 암만 넓어도 잠수함 하난데 그런 거 감춰봤자 얼마나 감춰지겠어.”


 “히끅.”


 “…….”


 어지간히도 충격을 받은 모양인지 용은 딸꾹질까지 할 정도였다. 그 모습을 보며 레오나는 알 만한 사람들은 안다고 일부러 줄여 말한 게 정답이란 걸 깨달을 수 있었다. 만약 오르카 전체에서 그걸 모르는 사람이 누가 있냐고 핀잔을 줬다면 그대로 바다에 다이빙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아니면 해체기에 제 발로 들어가거나.


 “자, 이제 돌려 말할 것도 없으니 솔직하게 말할게. 아르망을 부추긴 거, 나야. 그리고 사령관도 간접적으로나마 부추긴 것도 나고. 그러니 원망하려면 나부터 원망해.”


 한마디로 용이 반지까지 빼서 던지게끔 한 파국을 초래한 장본인이라는 뜻이었다.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그러나 용은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일어났을 일이오. 꽃이 조금 일찍 떨어졌다 해서 바람을 탓할 수는 없는 법.”


 “문학적이구나? 다행이네. 하도 기운이 없어 보여서 예의상 한 말이었거든. 솔직히 진짜로 원망했다면 실망했을 거야.”


 “하아, 정말이지 용서가 없구려.”


 “당연하지. 내 입장에서 보면 너나 아르망이나 얼마나 분통 터지는 줄 알아? 적어도 너희 둘은 사령관에게 선택이라도 받았잖아. 날 봐. 연애 상담이란 상담은 다 해주면서 보답은커녕 만날 하기도 싫은 쓴소리나 해야 하잖아.”


 “선택받았으니, 이런 쓴맛도 보게 되는 거겠지.” 용이 가만히 눈을 감고 말했다. “서방님께서 주신 인연의 끈을 내 손으로 끊었으니, 이젠 대체 뭘 할지 모르겠소.”


 “어머, 그럼 한 자리 비는 거네? 잘됐네, 내가 가서 입후보해야겠어.”


 “뭐?!”


 기절할 듯 놀라 외치는 용의 앞엔 ‘그거 봐라’라는 듯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는 레오나가 있었다. 순간 뻔한 수법에 걸렸다고 생각하는 용이었지만, 함정에 발을 들인 뒤였다.


 “거봐. 끊기는 뭘 끊어. 인연이 무슨 종이테이프야? 끊는다고 끊고 붙인다고 붙이게? 그깟 반지 하나 던졌다고 사령관이 널 포기했을 거 같아? 그랬으면 지금까지 위에 구멍 뚫릴 정도로 고민하고 앉아 있지도 않았어.”


 “…….”


 “아르망이 미워?”


 찻잔만 매만지는 용을 보며, 레오나는 가만히 물었다.


 “…미울 리가 있겠소. 그 소녀가 어떤 절망 속에서 서방님을 바라봤나 낱낱이 들었는데. 일만 그렇게 꼬이지 않았었다면 충분히 서방님의 청을 수락했을 거요.”


 “하지만 일은 꼬일 수밖에 없었어. 굳이 말 안 해도 알지? 만약 사령관이 네 허락을 위해서 아르망의 마음을 나중에 받겠다고 했다면…….”


 “그래, 상처 입는 건 아르망 님이었겠지. 나중에 내가 위로해준다 한들 값싼 동정으로밖에 안 느껴졌을 테고.”


 “그런 점에선 사령관이 눈치가 빨라. 정말, 평소에는 유혹을 해도 네 번은 해야 겨우 알아들을 정도로 둔한 맹탕이면서 결정적일 때만 재빠르다니까, 얄밉게.”


 “그, 좀 유혹이니 뭐니 그런 자극적인 소리는 안 하셨으면 좋겠소만.”


 “왜? 반지는 못 받았어도 나도 애인 정도 위치는 된다고. 듣기 거북하면 상담료라고 생각해. 이 정도 화풀이는 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


 “…….”


 부부 싸움 한 것도 서러운데 대놓고 남편을 유혹한다느니 뭐니 하는 소리까지 들어야 한다니. 어쩌겠나, 지금 머리를 숙이고 들어온 건 자긴데. 용은 어깨만 으쓱하고선 재차 입을 열었다.


 “서방님과 무슨 대화를 했는지 알려줄 수 있소?”


 “말 전하는 취미는 없어. 고민하는 것도 포함해서 어떻게 할지는 사령관의 몫이니까. 다만 나름의 힌트는 줬다고만 말해둘게. 사령관이 이 문제를 해결할 의지가 있다면 그 끄트머리만 가지고도 머리 싸매고 방법을 찾아내겠지.”


 “힌트?”


 “말 그대로 힌트야. 사령관이 어떤 방법을 생각해낼지는 나도 몰라. 네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아는 건 내가 아니라 사령관일 테니까.”


 이럴 때만 눈치가 빠르니 말이지. 레오나는 굳이 아까 했던 그 말을 또 하진 않았다.


 “하지만 이것만은 약속해주겠어? 만약 사령관이 고심 끝에 너와 아르망과 같이 있는 자리를 만든다면, 그때는 피하지 마. 결과가 어떻게 되든 간에 말이야.”


 “…….”


 다시 아르망과 마주한다면, 과연 어떤 표정을 지을까. 용은 가슴 한쪽이 찌르르 울리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공감, 연민, 아픔…….


 그리고 질투.


 아르망은 그녀에게 없는 걸 가지고 있었다. 어리고, 애교 넘치고, 싹싹하고, 엄하면서도 상냥했다. 만약 그런 그녀가 없었다면, 사령관은 분명 어디선가 마음이 꺾였겠지. 그것은 분명 엄하고 딱딱하기만 한 그녀로서는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적어도 용 자신은 그렇게 생각했다.


 “…화를 내지 않을 거란 보장은 없소. 이미 잔뜩 화를 냈으니 안 그럴 거라고 장담할 수도 없는 노릇이지.”


 “너 진짜…….”


 “허나 진심으로 마주보겠소. 아르망 님이 내게 진심을 내보인 것처럼. 지금까지 마음에 담아뒀던 어둠을 내보였던 것처럼.”


 용의 목소리는 씁쓸했지만, 한편으로는 응어리가 어느 정도 풀린 듯 평온했다.


 “그러고서도 우리들의 마음이 맞는다면, 그땐 서방님께 용서를 빌어야겠지. 이 못난 아녀자를 한 번만 더…….”


 “잠깐만, 용서?”


 “……?”


 잔잔한 분위기의 배경음을 강제로 끄는 것처럼 레오나가 용의 말을 잡아 끊었다. 용은 영문을 모르는 표정으로 레오나를 바라볼 뿐이었다. 그런 레오나의 얼굴엔 기가 차다는 건지 어이가 없다는 건지 모를 표정이 걸려 있었다.


 “네가 왜 용서를 구해?”


 “그야 서방님께 무례히 굴고, 소중한 신물도 함부로 대했으니 당연히…….”


 “그러니까 그게 왜 용서를 구할 일이냐고. 그 소중한 반지를 집어 던질 정도로 화가 났었다는 거 아냐. 그럼 그 원인이 누구한테 있는데?”


 “그야 소관에게 있지 않겠…….”


 “아, 머리야. 갑자기 해골이 다 아프네. 그러니까 그게……. 아냐, 됐어. 됐고, 네가 잘해볼 마음만 있다면 아르망 걔 눈치 하나는 예진가 뭔가 때문에 엄청 빠르니까 알아서 뭐라 해주겠지. 나 이 이상 너랑 말하면 내가 속 터져 죽을 거 같아.”


 “?”


 역시나 여전히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는 용을 보며 레오나는 순간 발작할 뻔했지만 가까스로 참았다. 정말, 대체 사령관이나 용이나 왜 이렇게 속을 썩이는 걸까. 지금 이런 기회가 왔을 때 버릇(?)을 잘 들여놔야 앞으로가 편하다는 걸 대체 왜 모르는 걸까! 가끔 입버릇처럼 위장약을 찾는 사령관의 마음이 조금은 알 법한 느낌이 드는 레오나였다. 참으로 서글픈 공감대 형성이었지만.


 그런 레오나의 모습에 공감은 못 해도 웃기긴 했는지 용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꽤나 아르망 님을 아끼시는구려.”


 “그야 아끼지, 당연히.”


 레오나는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노력하는 소녀잖아. 지위도 세력도 없이, 오로지 자기 자신만의 능력으로 끝까지 헌신하는. 보답받지 못할 사랑이란 걸 알면서도 그 고통을 견디는데 그걸 아끼지 않을 이유가 어디 있겠어?”


 “…그렇군.”


 “아, 오해는 마. 딱히 그렇다고 네 사랑이나 내 사랑이나, 그리고 어디선가 사령관을 남몰래 숨죽여 생각하고 있을 누군가의 사랑의 가치가 작단 건 아니니까. 그저 아르망이 기특하다고 생각했을 뿐이야.”


 “자기 모습을 보는 거 같아서?”


 용의 그 한마디에 레오나는 움찔 몸을 떨었다. 정곡을 찔렸다는 뜻이었다.


 “…결정적일 때만 눈치 빠른 건 사령관이랑 판박이네?”


 “좋든 싫든 부부는 닮는 법이니까.”


 “얄미운 것도 똑같고. 이렇게 염장질을 해 대는데 누가 눈치를 못 채?”


 “그건 좋은 교훈이구려. 앞으로 주의하도록 하겠소.”


 활짝 웃는 용의 얼굴이 놀린다고 생각한다면 너무 비약일까? 아니, 그럴 리 없었다. 졸지에 놀리는 쪽에서 놀림당하는 쪽이 된 레오나는 얼굴이 벌개지더니 차를 쭉 들이키고는 일어섰다.


 “갈게. 차 잘 마셨어.”


 “어딜 간다는 거요?”


 “어디긴. 우리 부대 숙소지. 이제 진짜 일하러 가야 한다고.”


 뭘 당연한 소리를 묻냐는 듯한 레오나였지만, 어째 용의 표정은 기묘해져만 갔다.


 “…여기가 그대 방이잖소.”


 “…….”


 “…….”


 “……아.”


 “풉.”


 정적. 그리고 작게 터지는 용의 웃음소리. 레오나의 얼굴에 열이 오른 건 그와 동시였다.


 “아, 아니 네가 자연스럽게 차 타오길래 착각했잖아! 남의 방 주방을 뭘 그리 자연스럽게 쓰는 건데, 너는?!”


 어떻게든 네 탓이야, 를 시전하는 레오나. 그러나 한번 터진 용의 웃음을 막을 길은 요원했다.


 “그야 좋은 세작(細雀, 어린잎으로 만든 고급 녹차)이 떡하니 놓여 있는데 어찌 손을 안 댈 수가 있겠소. 향이 아주 좋더군.”


 “내 거야! 왜 함부로 손을 대?”


 “그대도 좋다고 했으면서 뭘 그러시오.”


 “나가!”


 빙글빙글 웃는 용의 얼굴에 한 방 먹여주고 싶단 생각을 하며, 레오나는 빽 소리쳤다. 용은 나가는 그 순간까지 웃음을 멈추지 않았다.


 “차 잘 마셨소. 덕분에 좋은 생각도 났고 말이오.”


 “이거 빚 달아놓을 테니까 두고 봐! 이, 이……. 어디 가서 말하면 진짜 화낼 거야! 특히 칸한테 말하면 가만 안 둬!”


 “후훗.”


 알겠다는 건지 모르겠단 건지. 그저 웃음만 남기고서 용은 방을 나갔다. 들어올 때와는 달리 한결 가벼운 표정으로 말이다. 일단 얘기를 한다는 소기의 목적은 달성했지만, 설마 그 끝이 이럴 줄이야.


 “아으으으…!”


 생각지도 못한 창피함에 레오나는 그 자리에 그대로 쭈그려 앉아 끙끙거렸다. 한참 끝에 결국 그녀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여자의 한을 담에 외치는 것밖에 없었다.


 “이이…이게 다 사령관 때문이야!”


 가녀리고 불쌍한 여자, 그 이름 레오나일지어다.


 그리고 애꿎은 사령관은 영문도 모른 채 원한 한 스택을 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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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슬 끝이 날 거라고 생각할 때가

저에게도 있었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