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 모음집 : https://arca.live/b/lastorigin/1507448 





 병실에서 마츠시타 쥰이 눈을 뜨자 양복을 입은 사람들 한무리가 다가왔다. 아직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파악도 못한 마츠시타에게 그들이 내민 것은 병원비 청구서가 아닌 경찰수첩이었다.

 “경시청 공안과의 츠다 코유키입니다. 오가사와라 근해에 있었던 해상 사고에 관해 조사할 것이 있어서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자신에게 경찰수첩을 보여준 남자는 마츠시타에게 조금 낯익은 사람이었다. 기억을 되짚으려 한 마츠시타는 두통에 눈을 찌푸렸다. 마츠시타의 생각이 무엇인지 알아챈 츠다는 마츠시타의 기억을 되살려주었다.

 “작년 야마다조 사건으로 후루카와 형사와 함께 찾아온 적이 있었죠. 그 때는 조범과였지만 얼마전 공안으로 옮겼습니다. 실례가 아니라면 사고와 관련해 몇가지 여쭈어봐도 될까요?”

 사고. 마츠시타가 탈출한 그 시설의 일이었다. 사고라고? 사건이었다. 블랙리버의 용병이 덴세츠 사이언스의 시설을 급습한 사건이었다. 그리고 토모. 마츠시타는 그날 토모를 잃었다. 토모를 다시 볼 수 없다는 사실에 마츠시타의 눈에서는 눈물이 저절로 흘러나왔다.

 “아, 이거 실례했네요. 하지만 국가안보와 직결된 중요 사항입니다. 만일 진술을 거부하신다면 목격자 신분이 아닌 용의자 신분으로 구속할 수도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마츠시타 쥰씨도 아시겠지만 마츠시타씨는 그곳에 있어도 될 사람이 아니었죠.”

 몰래 잠입했으니까. 가명을 쓰면서까지. 범죄일수도 있었다. 하지만 시설이 바다에 잠기게 된 것은 그녀의 잘못이 아니었다. 아니, 그 후로 무슨 일이 있었단 말인가. 마츠시타가 기억나는 것은 토모 뿐이었다.

 토모를 데리고 가고 싶었다. 토모와 함께하고 싶었다. 토모와 이 모든 이야기를 마무리 지을 수 있는 기사를 완성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럴 수 없었다. 마츠시타가 원하는 일은 이뤄지지 않았다. 토모를 잃었다.

 “의사 소견에 따르면 단순한 뇌진탕이었다고 합니다. 그것도 가벼운 경증이었죠. 이렇게 오래 누워계실줄은 몰랐어요. 병원에 도착하고 한시간 남짓이면 깨어날 것이라고 했지만 한나절이나 걸렸네요.”

 그의 말에 마츠시타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낯익은 도시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노을에 도시는 붉은색으로 변하고 있었고 밤을 준비하는 도시는 일상적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마츠시타와는 다른 곳이었다. 그녀는 이전과 같은 일상을 보낼 수 없었다.

 “어떻게 된 거죠? 무슨 일이 있었던 거죠?”

 “저희가 온 건 그걸 알기 위해서긴 합니다만.”

 츠다는 마츠시타의 말에 어깨를 으쓱이고는 의자를 가져와 앉았다.

 “아마도 마츠시타씨가 묻고 싶은 것은 이것이겠죠. 구명정에서 안전벨트를 하지 않은 탓에 기절한 다음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리고 얼마나 이곳에 있었는지요.”

 츠다의 말에 마츠시타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사고가 일어났다는 것을 들은 주위 함정들은 구명정을 구하기 위해 다가왔고 부상자는 헬기로 빠르게 이곳, 시바우라의 병원으로 이송된 거죠. 그게 오늘 아침의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저녁이 되었고요. 또한 정확한 사고내용은 현재 조사중에 있습니다. 문제는 몇몇 부상자들이 총상을 입었다는 거죠.”

 총상. 블랙리버의 용병의 짓이었다. 그녀가 토모를 부르는 목소리와 욕설은 잊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생존자중 다수가 현재 덴세츠 사이언스의 직원임을 알아냈고 현재 덴세츠 사이언스에 문의중이지만 그쪽은 묵묵부답이더군요. 자기들 원할 때만 정보를 주고 그게 아니라면 입을 닫는 놈들이죠. 그래서 묻고 싶은 겁니다. 대체 바다 위에서 무슨 일이 있었길래 100명에 가까운 구난자가 생기고 총에 맞은 부상자가 있는 건지요. 감은 잡힙니다만 현장에 있었던 유일한 외부인에게 묻고싶군요. 월간 치바 사회부의 마츠시타 쥰씨.”

 오가사와라 근해에 덴세츠 사이언스의 비밀 공장이 있었고 그곳을 블랙리버의 용병들이 급습해 시설을 가라앉혔다. 한 문장으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할 수 있었다. 그러나 마츠시타는 말하지 않았다.

 이 경찰은 덴세츠 사이언스와 연줄이 닿아있었고 그것을 숨기지 않았다. 정확히는 덴세츠 사이언스에게 이용당하는 경찰이라 말해야겠지. 그에게 말해서 마츠시타가 얻을 이득이란 무엇인가. 그런 건 없었다. 오히려 이를 통해 덴세츠 사이언스에게 추적당하게 될 뿐이었다. 그렇게 된다면 마츠시타가 애써 찾아낸 정보를 기사로 만들수도 없게 되겠지.

 “어라.”

 마츠시타는 자신이 입고 있는 옷이 자신의 옷이 아닌 환자복임을 그제야 눈치챘다. 그리고 자신의 짐이 보이지 않는 것도.

 “제 옷이랑 짐은 어디로 간 거죠?”

 마츠시타의 자료. 목숨을 걸고 찾아낸 자료. 토모의 목숨과 맞바꾼 자료. 그것이 보이지 않았다. 만일 그것이 없어진다면 마츠시타는 무엇을 위해 싸워온 것이 되는가. 무엇을 위해 이 고생을 했단 말인가.

 그런 결말은 사양이었다. 1년에 걸친 조사가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며 끝나는 엔딩 따위 마츠시타는 바라지 않았다.

 “짐들은 따로 챙겨두었습니다. 퇴원하면서 가져가시면 됩니다.”

 츠다의 말에 마츠시타는 안심을 했다. 그러나 뒤이어 이어진 츠다의 말은 그 안심을 앗아갔다.

 “그러나 이건 저희의 조사에 협조를 했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앞서 말했듯, 만일 비협조적으로 나오신다면 용의자로 구속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사유품은 구속기간이 끝난 뒤에나 돌려받을 수 있겠죠.”

 혹은 중요 단서라는 명목으로 압수를 하거나. 마츠시타 입장에서는 경찰에 협조할 수 밖에 없었다. 만일 그들이 마츠시타를 블랙리버의 스파이로 몰게 된다면 마츠시타는 뭐라 자신을 변호할 것이란 말인가. 마츠시타가 옳은 것이라 생각하고 한 모든 일을 그들은 블랙리버를 위해 한 것이라 포장할 것이었다.

 그녀의 반론따윈 듣지도 않겠지. 덴세츠 사이언스도 마츠시타 쥰이라는 기자를 엎애기 위해 적극적으로 협력할 것이었다. 권력은 사람 하나정도는 쉽게 사라지게 만들 수 있었다.

 “형사분들, 실례하겠습니다!”

 문을 열고 양복을 입은 또다른 남자가 들어왔다. 그는 서류가방을 들고 있었고 그 탓에 경찰처럼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마츠시타의 맞은편에 있는 경찰들이 그를 보고 얼굴을 찌푸린 것을 보면 더더욱 경찰이라 생각되지 않았다.

 “월간 치바 법무팀의 요우기라고 합니다. 지금 진행중인 취조는 본인의 동의하에 이뤄지고 있는 겁니까? 더욱이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를 받고 있다면 마츠시타 쥰씨에게 본인이 가지고 있는 권리에 대한 안내는 되어있는 상황인가요?”

 요우기라는 사람이 병실에 들어오며 꼬치꼬치 캐묻자 경찰들은 말없이 자리를 떠났다. 자신들이 하는 행위가 위법과 합법의 아슬아슬한 선에 있었던 것을 알고 있었던 탓이었을까. 한참을 마츠시타를 심문하던 경찰들이 꼬리를 내리고 나가는 것을 보니 웃기기까지 했다.

 입가에 미소가 지어지려는 찰나. 마츠시타는 무언가를 하나 깨달았다. 법무팀이 있다고? 제대로 된 인사과도, 경리과도 없이 돌아가는 열악한 월간 치바에 법무팀이 존재한다고? 변호사를 단독 고용할 여유가 있다고?

 차라리 월간 치바에게 법무업무 대리를 맡은 법률 사무소라 말하는 것이 설득력 있을 것이었다. 사칭이었다. 변호사라는 것은 사실일지도 모른다. 그의 양복에 붙은 변호사 뱃지는 진품일 것이었다. 그러나 이 남자는 확실하게 자신을 변호하기 위해 온 사람이 아니었다.

 “마츠시타 쥰씨, 경찰들에게 특별한 이야기나 기사에 관한 것, 특히 덴세츠 사이언스에 관한 것을 말하진 않았겠죠?”

 마츠시타는 요오기라는 변호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그는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조금전까지 츠다 형사가 앉아있던 의자에 앉고는 서류가방을 열었다.

 “거짓말은 아닙니다. 저는 월간 치바의 법무관련 일을 맡고 있습니다. 법무팀이라고 이름을 붙일만큼의 부서는 아니지만 저는 변호사가 맞고 월간 치바의 직원도 맞죠. 다만 일을 시작한 게... 어디보자. 3시간 전이다보니 아직 일에 적응이 안된 것도 있고 이래저래 정신이 없긴 하네요. 확실한 건 전 여기에 마츠시타 쥰 씨를 도와주러 온 것이 맞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요오기가 서류가방에서 꺼낸 것은 커다란 태블릿 PC였다. 그것을 무릎에 올린 그는 화면을 조작하더니 마츠시타에게 보여주었다.

 “3시간 전 작성된 문서입니다 오늘 16시 부로 월간 치바는 덴세츠 사이언스에 인수가 되었습니다. 축하드립니다. 이걸로 영세 잡지사 기자에서 대기업 직원이 된 겁니다. 복지는 확실하게 챙겨드릴 겁니다. 이런 법률 자문을 포함해서 말이죠.”

 “...”

 마츠시타는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그녀가 기사를 쓸 월간 치바, 그녀의 직장이 덴세츠 사이언스의 것이 된 것이었다. 단순히 무시할 수 없는 광고주를 넘어서 회사의 사주가 되어버린 것이었다.

 “너무 걱정하실 건 없습니다. 오히려 오를 월급과 좀 더 간편해진 공금처리와 복지카드같은 걸 생각하면 나아졌다고 볼 수도 있겠죠.”

 “당신들 뭘 한 거죠. 저 하나때문에?”

 “글쎄요? 기업이란 저같은 일개 변호사로는 알 수 없는 일들을 하기 마련이죠. 하지만 지금부터 제가 말해드릴 것은 저같은 일개 변호사도 알고 마츠시타 쥰 씨도 알아야 하는 일이죠.”

 요오기가 그렇게 말하며 꺼내든 것은 마츠시타도 잘 아는 것이었다.

 “저희쪽에서 법적으로 검토한 결과 이 자료들은 폐기하는 것으로 결정이 났습니다.”

 마츠시타의 카메라와 메모리카드였다. 그 고생을 하며 얻어낸 자료가 지금 덴세츠 사이언스가 보낸 변호사의 손에 들려있었다.

 “아니면 이것을 기사화하려는 생각을 가지고 계십니까? 이번 사건으로 저희 회사는, 아니죠. 저희의 모회사에서 하나는 인정했습니다. 지나친 아웃소싱은 이런 화를 부른다는 거죠. 아무리 회사차원에서 일을 확실하게 하고 보안을 강화한들 아웃소싱에서 일을 그르치면 그걸로 끝난다는 것 말이죠. 우리가 확실하게 일했다면 이렇게 고생할 일은 없었을 텐데 말이죠.”

 아웃소싱. 그것은 청소업체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었다. 마츠시타 쥰을 죽이려고 했던 야쿠자를 말하는 것이기도 했다. 변호사는 마츠시타에게 이렇게 말했다. 자신들이 본격적으로 움직였다면 마츠시타는 이미 죽었을 것이라고.

 “그럼 변호사로서 법률 자문을 하나 하죠. 덴세츠 사이언스는 최근 있었던 일련의 사건에 대해 마츠시타 씨에게 아무 법적 대응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파격적인 대우죠. 경찰들의 이야기는 들었을 겁니다. 현재 마츠시타 씨에게는 여러 의혹이 붙어있습니다. 어제 저녁 덴세츠 사이언스의 해상 플랫폼이 침몰했고 수많은 사람이 죽었습니다. 그런데 그곳에 있어서는 안될 기자가 한명 구조된 거였죠. 경찰은 당신을 테러범 중 하나로 의심하고 있고 덴세츠 사이언스는 그들이 마츠시타씨를 범인으로 몰 수 있는 증거를 넘겨줄 수도 있습니다.”

 “지금 위협하는 건가요? 기사를 쓰지 못하도록요?”

 마츠시타가 으르렁거리며 말하자 요우기는 아무것도 안했다는 듯, 양손을 들었다.

 “설마요. 말했잖습니까. 저는 지금 법률 자문을 하고 있는 거라고요. 저는 월간 치바의 법무팀이에요. 자사 기자에게 법률자문을 하고 회사가 법적 분쟁에 말리게 하는 걸 미연에 방지하는 역할이라고요. 위협이라뇨. 당치도 않은 말입니다. 제가 말하는 건 덴세츠 사이언스와 경찰이 그런 행동을 할 수 있기 때문에 그런 일로 이어지지 않기 위해 취해야할 법적 행동에 대한 겁니다.”

 “기사를 쓰지 말란 건가요? 목숨을 걸고 얻어낸 자료를 포기하라고요?”

 “목숨을 위해. 라고 말하는 것이 옳겠죠. 이것도 하나 추가해야겠군요. 회사 직원이 섣불리 목숨을 낭비하지 않도록, 이라는 말요.”

 요우기는 그렇게 말하고는 마츠시타에게 보여주었던 태블릿과 카메라, 메모리카드를 자신의 서류가방에 정리해 넣었다.

 “마츠시타 씨의 의향과는 상관없이 이 자료는 파기하겠습니다. 이 자료를 얻기 위해 고생한 마츠시타 씨의 어려움을 모르는 바는 아닙니다만, 이 자료를 기사화함으로 발생할 어려움에 비하면 새발의 피라 할 수도 있겠죠.”

 “안돼요!”

 요우기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마츠시타는 그를 막기 위해 팔을 뻗었고 그바람에 그녀의 팔에 꼽혀있던 링겔이 빠지고 말았다.

 “아얏!”

 주사가 빠진 팔에서는 피가 났고 마츠시타는 반사적으로 피가 나는 자신의 팔을 붙잡았다. 그 바람에 그녀가 차고 있던 각종 환자 감시장치가 떨어지고 말았고 ICU는 긴 경고음을 울렸다.

 “괜찮으세요?”

 경고음을 들은 간호사와 의사들이 들이닥친 것은 순식간의 일이었다. 그들은 마츠시타를 붙잡고 그녀를 검사하고 진정시키려 했고 마츠시타는 그 틈을 타 병실을 빠져나가는 요우기를 붙잡을 수 없었다.

 “안돼...”

 마츠시타는 눈물을 흘리며 억지로 병상에 뉘여졌다. 모든 것을 잃었다. 토모도, 자료도. 무엇을 위해 이 고생을 했단 말인가. 무엇을 위해. 아무것도 아닌 것을 위한 고생이었다. 이렇게 결말을 맺을 거라면 처음부터 없는 것이 나았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며 마츠시타는 진정제가 섞인 수면제 주사를 맞고는 잠에 빠져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