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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은 걸까."

어떤 남자의 불평이나 갑자기 찾아오는 어린 바이오로이드들 등으로 소란스러웠던 사령실에 드물게 찾아온 정적이 한 가지의 의문으로 깨졌다.

어제 골타리온과 합심한 철남은 그날 바로 휴가 결재를 올리고 '내 직접 그놈을 회쳐올테니 그전까진 업무를 부탁한다. 사령관!' 이란 내용이 담긴 편지를 남기고 3일간 무단결근을 하고 있었다.

무단결근의 사유는 간단하다.
레모네이드는 휴가를 반려했고, 철남은 그런 상황을 전혀 예상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자 철남은 오히려 배 째라는 듯이 팬텀과 레이스의 예비용 망토를 1벌씩 훔쳐서 골타리온과 같이 모습을 감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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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 망토가 작전 중에 더러워져서 빨았는데 갈아입을 게 사라졌다. 혹시 선배 은폐장을 빌릴 수 있겠나?"

"나도 도둑맞아 버렸어. 못난 선배라 미안해. 후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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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령관이야 철남이 사라진 것은 30분 정도의 일감이 늘어나는 정도였기에 별 타격이 없었지만 -아니, 오히려 좋았지만- 비서실에선 괘씸죄가 적용되었는지 철남의 긴급구속과 처벌을 요구하는 서면을 직접 올려보내기도 했다.

"돌아오면 내가 따끔하게 주의시킬게. 너희가 어떻게 혼냈는지 모르겠지만 그날 이후로 철남이 여자공포증 비슷한 게 생겼단 말이야. 그러니까 따로 찾거나 혼내려 하지 말아줘."

...라는 말로 진정은 시켰다고는 하나, 불안한 것은 사령관도 마찬가지였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정말 회치진 않겠지. 아냐, 레오나를 노려볼 정도로 홱 돌은 상태였는데 범인한테는 안 그럴까? 역시 지금이라도 잡아 오는 게 나을지도.'

"이철남씨가 걱정되시는군요. 폐하."

"어? 응. 아르망. 3일 전에 네 예지로는 피해자가 아무도 없을 거라곤 했지만 그래도 불안하긴 마찬가지야. 정말 내가 아무것도 안 해도 돼?"

조금 작고 낮은 테이블에 앉아 조용히 눈을 감고 있던 소녀는 자신의 붉은 숄을 당겨 매무새를 가다듬고는 들고 있던 책을 펼쳐보았다.

책 속에서 나타난 구체 속에서 수많은 광원들이 정신없이 돌아다니다 어느 순간 천천히 제자리를 찾았다는 듯이 하나둘씩 움직임을 멈추었다.

"...예. 여전히 제 예측으로는 앞으로 4일 이내로 모든 상황이 종료될 것입니다. 그리고 폐하께선 특별히 하실 일이 없으니 평소 하시던 일만 해주시면 충분합니다."

"으응. 알았어. 철남 그 녀석도 휴식이 필요하긴 하지. 잘됐지. 뭐."

겸연쩍은 표정을 짓던 사령관은 마지막 결재서류에 사인을 하고 의자 등받이에 몸을 맡겼다.

"폐하. 참고로 오늘 알비스 양이 기분이 좋아 보였습니다. 무슨 일인지 말이라도 한번 걸어보러 가심이 어떠신가요?"

그 말에 벌떡 일어난 사령관은 한없이 가벼운 발걸음으로 방을 나섰다.

"그래? 그럼 한번 발할라 쪽에 놀러 가봐야겠네. 아르망도 오늘 수고 많았어. 먼저 갈게!"

공손히 고개를 숙여 사령관을 배웅한 아르망은 문이 닫히자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데이터를 많이 축적하긴 했지만 이철남이란 사람은 여전히 변수 덩어리죠. 자기 파괴적이기도 하다가 극도로 나태한 모습을 보이는 등 종잡을 수가 없었어요. 지금까지 한 행동은 대부분 예측했지만, 솔직히 골타리온의 영입만큼은 예상외였습니다. 공권력이 먹히지 않는다면 불법적인 무력이 효과적이라. 인상 깊은 말이네요. 저의 폐하는 내부의 문제를 그렇게 폭력적으로 해결하는 걸 꺼리시죠. 그러나 집단을 이끌기 위해선 밝은 면뿐만 아니라 그런 더러운 처리 방법 또한 필요한 법. 그렇지 않나요, 이철남 수색대장?"

아르망은 혼자 남은 방에서 늘어놓던 혼잣말은 어느샌가 누군가에게 겨냥된 화살이 되어있었다.

슁-

갑자기 작은 한숨 소리와 함께 사령실의 문이 열렸다.

"역시 이 오르카 호의 책사시군. 이미 네 손바닥 안인 건가."

"후후. 과찬이세요. 이번 일을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따라 처우가 갈릴 거예요. 힘내시길."

"쯧, 조언과 격려. 잘 받았다."

두 번째 인간의 배웅도 마친 아르망은 시선을 사령관의 책상에 고정하고 또다시 누군가에게 말을 건넸다.

"골타리온. 당신은 따라가지 않으시나요? 다른 분들께는 처벌 수위를 제가 최대한 낮추도록 설득할 테니 걱정 말고 사건에 집중하시는걸 추천해 드립니다."

"아니. 그것이 아니다. 넌 이미 범인을 알고 있지 않나? 어째서 말을 아끼고 있는 게냐. 네가 입을 열면 작금의 사태는 허무히 끝날 텐데."

허공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아르망은 조용히 커피잔과 필기구들을 정리하며 자신의 의견을 들려주었다.

"네. 말씀대로 범인은 하찮은 계기로 이런 일을 일으켰고, 그런 만큼 하찮게 끝낼 일이기도 합니다. 폐하가 처리하시는 수많은 문서와 다를 게 없죠. 하지만 이번 일에 대해 전 해결될 때까지 입을 열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 이유라도 듣고 싶다면 사건을 해결하고 찾아오세요. 어차피 당신 정도의 두뇌라면 그때쯤엔 깨닫게 될 테지만요."

"음습한 여자군. 하지만 그건 마왕군에 어울리는 성격이다. 어떤가? 지금이라면 사천왕의 자리가 비어있다만."


"거절하죠. 전 지금 폐하의 추기경이니까요."

차가울 정도로 딱 잘라 거절한 아르망은 테이블의 청결 상태에 만족했는지 미소를 짓다가 사령실에서 걸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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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갔다 이제 와! 오호, 이제 와서 직무태만이냐?"

골타리온에게 작게 호통을 치는 철남의 모습은 퍽 기묘하기 짝이 없었다.

화장실에서 머리만 모습을 드러낸 채 자신의 피고용인과 대화하는 모습은 코코나 아쿠아가 보았다면 철충의 유령을 보았다고 울면서 자신의 보호자들에게 달려갈 만한 광경이었다.

"무례한! 난 정보를 수집하다 늦은 것뿐이다. 그런데 감히 그따위 망발을 해?!"

똑같이 머리만 내민 마왕군의 군단장은 그 지위만큼이나 프라이드도 강했기에 철남의 갑질에 굴하지 않고 맞호통을 쳤다.

물론 100년 전 멸망 직후라던가 오르카에서의 생활 덕분에 정신력이 상당히 다져진 철남이었지만 어쨌든 그의 정신 자체는 20대의 청년이었기에 골타리온의 위압감 넘치는 호통엔 한발짝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씨이... 내가 여기서 너 얼마나 기다렸는지 알아? 좀 전에 팬텀이 밥 먹으러 내가 있던 칸에 들어왔을 땐 숨도 제대로 못 쉬었다고."

"애초에 휴가가 반려되지만 않았으면 이렇게 숨어다닐 필요도 없었다. 마왕군에서도 휴가는 중대 문제였단 말이다! 거부당했다면 화부터 낼 것이 아니라 순서에 맞게 상사에게 연락, 보고, 상담을 해야 했거늘 이제 와서 무슨 큰소리냐?"

천 번 하고도 천 번 더 생각해도 구구절절 맞는 소리였다. 철남은 점점 목소리와 고개가 땅에 닿을 듯 낮아졌다.

"...미안해. 나중에 혼날 땐 나한테 협박받았다고 해..."

언제나 당당하던 인간의 의기소침한 모습을 보니 아무래도 골타리온의 마음도 조금씩 누그러졌다.

"흥. 구차한 방식으로 내 죄를 덜긴 싫도다. 그래도 오늘은 성과가 있었다. 점심시간 동안 패널에 띄워진 문서에 신경 쓰이는 내용이 있었노라. 나 원 참, 그 여자. 대체 무슨 생각인 건지. 답답하군."

"응? 무슨 생각이냐니. 일단 그년을 잡아 족쳐야 알 수 있겠지. 게다가 무슨 문서?"

"범인 얘기가 아니다. 멍청한 놈."

어리둥절해하는 철남에게 골타리온은 아마 아르망이 의도적으로 열어놓았을 보고서의 사본을 열어보았다.

"최근 샐러맨더와의 도박 피해 액수가 점점 늘어난다는 보고서다. 늘어났다 해봐야 물품이지만."

조금 의기소침해졌던 철남의 눈빛이 다시금 광전사의 그것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설마 내가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바로 그 설마다. 그 증거로 샐러맨더가 담배가 담긴 가방을 옮기는 것이 몇 번 목격되었다고 한다. 지금같이 품귀현상이 일어나는 상황에서 무언가 부자연스럽지 않나? 유통량이 점점 늘어나는 이유가 어디서도 나오지 않아. 마치 누군가 몰래 물량을 천천히 푸는 것처럼. 하지만 문제가 있노라. 사령관이나 우린 그 도박장이 어디서 열리는지 모른다. 그러니 오늘은 샐러맨더의 숙소 근처에서 잠복할 수밖에 없겠군."

골타리온은 내심 기뻐했다.
그러면서도 지난 3일간을 떠올리며 인상을 찌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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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전, 철남은 다짜고짜 훔쳐 온 위장망으로 몸을 숨긴 채 골타리온에게 자신의 도주를 도우라는 지시를 내렸다.

사정을 모르던 골타리온은 쫓아오는 추격자들을 얼떨결에 막아내며 졸지에 공범이 되어버린 것이었다.

이에 불같이 화를 내자 철남은 오히려 당당하게 계약서에 적힌 '근무 시간 외,30분당 1참치.' 를 자신의 수면시간을 뺀 나머지 13시간 동안 이행하는 것으로 보상하겠다며 턱을 치켜들었다.

이 뻔뻔하게 나오는 남자를 어찌할까 고민하던 골타리온은 아예 화낼 가치조차 사라져감을 느꼈다.

문득 계산대로라면 하루에 29참치, 1달 계약을 맺었으니 무려 800참치가 넘는다는 것을 깨닫자 위대한 군단장은 조금만 더 이 촌극에 어울려줄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옛말에 쉬운 돈벌이는 없다고. 철남은 처음부터 골타리온을 허투루 쓸 생각이 없던 것처럼 부려 먹기 시작했다.

이튿날이 되는 날, 철남은 당연하다는 듯이 발할라의 창고에 몰래 침투하려 했다.

그러나 CCTV만을 노려보던 시티가드에게 위장망이 미처 가리지 못한 골타리온의 칼끝은 범인이 드디어 발할라 2종 창고에 접근했다는 결정적인 증거로 보였다.

슬레이프니르를 방불케 하는 속도로 달려간 켈베로스와 사디어스의 모습은 마치 전차를 모는 번개의 신처럼 위엄이 넘치는 모습이었다.

그날 망을 보다 얼마나 오랫동안 방망이로 몰매를 맞았던지, 생각만 해도 장갑판이 쑤시는 기분이 들었다.

바닥나지 않을 듯했던 경찰들의 체력이 조금씩 바닥나던 틈을 타 겨우 도망치고 나서 합류 지점이던 기록물 보관소에 도착하니 철남은 영상 하나를 재생하고 있었다.

골타리온은 멍하니 철남을 지켜보다 아무런 반응이 없는 남자에게 이젠 화도 나지 않는다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맞아주는 역할은 다했는데, 네놈은 여기서 TV나 보는 게냐. 창고에도 잠시 들렀다가 바로 도망치더니."

"창고엔 담배 냄새가 조금도 안 나더라고. 마침 잘 왔다. 내가 눈이 안 좋은 거 같아서 그런데. 이거 좀 봐봐. 이상하지 않아?"

골타리온은 자신이 바이오로이드가 아니어서 침을 뱉을 수 없는 것이 아깝다고 생각하며 시선을 화면으로 돌렸다.

철남이 보여준 것은 스틸라인의 보급 창고의 CCTV 영상이었다. 누가 언제 출입했는지를 체크한 문서도 같이 있었기에 간단하게 영상 속 사람들을 구분할 수 있었다.

한참을 영상을 시청하던 골타리온은 단 한 명. 기록되지 않은 채 출입한 인원이 존재한 것을 깨달았다.

그것도 들어간 것이 아닌, 나간 모습만이 찍혀있는 인원이.

"이 자는..."

"그래. 사령관 녀석이군. 생각해보면 간단하네. 오컴의 면도날이라고 아나? 진리는 언제나 단순한 곳에서 나온다는 뜻이야. 사령관 정도 되면 출입명부를 쓰지 말라고 하거나 CCTV 영상을 조작하도록 명령할 수도 있겠지. 그리고 이런 식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면 물자를 반출할 수도 있겠고. 흠. 그러고 보니 최근에 새로운 유전자 씨앗을 발견했다지? 그럼 이 제조 중독자가 범인이거나, 최소한 밀접한 관련이 있을 수도 있어. 미행을 해봐야겠어."

골타리온은 그 말속에 숨겨진 재앙을 피할 수 없음에 눈을 지그시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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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역 시절 마왕군 시절보다 다이내믹했던 지난 3일을 떠올리자 자연스럽게 자신의 강고한 갑옷에 시선이 흘러갔다.

그는 불길한 예상은 빗나가는 일이 없다는 교훈을 리리스의 건카타, 장갑판에 남은 수많은 발톱 자국을 기억하며 되새길 수 있었다.

'최소한 젠틀맨이 기습당할 일은 없겠군.'

말 그대로 (자신만) 뼈를 깎는 고생을 하고 나니 철남도 미안했는지 오늘에야 사령실에 몰래 숨어들어 사건에 관련된 문서를 훔쳐보자는 제안을 해 온 것이다.

그런 일이 있은 후에 찾아온, 그저 잠복할 뿐이라는 예상은 골타리온에게 이제 좀 쉬겠거니 라는 등의 희망찬 바람을 불어 넣어주었다.

골타리온이 아르망의 예측 속 4일은 아마도 잠복기간일 거라 생각하던 그때, 철남이 고개를 살짝 저었다.

"아니, 도박장이라면 어디 있는지 알아."

"뭐라? 네놈이 대체 어찌 알고?"

"이 오르카 호에서 작고 큰 범죄들엔 전부 어떻게든 얽혀있는 이 철남님을 얕보지 말라고."

"자랑이다. 범죄자 놈."

"문제는 이거야. 그곳에 들어갈 땐 바이오로이드와 대화를 해야 하거든? 그 사람이 날 신고하지만 않으면 좋겠는데. 일단 출발하자."

철컥

"앗. 미안하다. 누가 있었... 뺘아아아아아악!!!!!"

문을 열자 이번엔 조금 늦은 저녁을 먹으러 화장실에 들어온 레이스가 공중에 떠 있는 2명의 머리를 보고 도시락통을 화려하게 흩뿌리며 뒷걸음치다가 벽에 머리를 부딪혀 기절하고 말았다.

안쓰러운 얼굴로 레이스를 쳐다보다 서로에게 고개를 끄덕인 두 남자는 쏟아져버린 도시락들을 치워주고 레이스의 주머니에 비닐로 포장한 맛다시 주먹밥을 넣어주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3층 화장실에서 나오는, 도시락을 빨간색 주먹밥으로 바꿔버리는 머리철충귀신' 괴담은 팬텀과 레이스 두 명 외엔 영원히 알려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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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하고도 몇 개월 전 복구된 아우로라 기종들은 대부분 주방에서 일하는 것을 선호했지만 아무래도 강한 체취가 요리에 영향을 미친다는 소완의 의견이 있었다.

그렇기에 2, 3명을 제외하면 본인들의 숙소에서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며 다음 디저트에 대해 논의하거나 다른 대원들처럼 오르카 호를 돌아다녔다.

그러던 중, 몇몇 메이드들이 차나 간단한 다과를 제공하던 카페를 발견하자 마침 심심하던 아우로라들의 창작 욕구가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점차 카페엔 비번인 아우로라들이 지원해왔고 그에 비례해 카페엔 소완이 주방에서 지적했던 달콤한 냄새가 가득해졌다.

이윽고 달콤한 체취가 드디어 홍차의 향기를 방해하는 수준까지 차오르자 분노의 미소로 무장한 메이드들은 주방장과 정확히 똑같은 지적을 하였다.

사정사정을 하고 나서야 3명만을 카페에 정식으로 채용하고 나머지는 쫓겨나듯이 가게 밖으로 내보내졌다.

"냄새나는 게 우리 잘못은 아니잖아. 꼭 마지막에 '여러분의 향기만 아니었으면 몇 명이고 환영인데 말이죠. 아쉽게 되었어요~ 되었사옵니다~' 라고 덧붙이는 건 뭔데. 흐흐윽. 돌려서 마음 쓰는 게 더 상처받는단 말이야."

"울지마. 그냥 평범하게 놀면서 쉬지 않을래? 사령관도 그걸 원할 거야."

"...아냐. 난 매일 내가 만든 걸 먹고 기뻐하는 사람들을 봐야겠어. 내 눈으로 직접."

아우로라치고는 퍽 진취적인 성격이었다.

진취적인 것은 생각만이 아니었는지 그녀는 어느새 오르카호 후미진 곳에 작은 방을 얻어 쉬는 시간 내내 그곳을 몰래 어떠한 장소로 바꾸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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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이곳인가? 여긴 오르카의 설비 같은 것이 있는 방인 듯 한데."

문에 붙어 있는 명패엔 H2AV2NS2이라 적혀있었다.

단순한 일련번호로 보이는 방 이름에 겉으로 보이는 외견은 골타리온의 말대로 도박장이라기엔 심심하기 짝이 없는 방이었다.

똑똑

그러나 말없이 철남이 문을 두드리니 안쪽에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죄송해요. 이 방은 청소 중이니 다음에 와주시겠어요?"

"그럼 청소라도 도울게. 도마뱀의 손이라도 잡고 싶을 거 아냐."

철남이 기묘한 대답을 하자 문이 천천히 열렸다.

그 안에 보이는 광경이 눈에 들어오자 골타리온은 말을 잃었다.

"...놀랍군. 금주령이 내려진 지금의 오르카에서 바라니."

오르카와 어울리지 않는 어둡고 야릇한 조명. 검은 광택이 인상적인 나무 재질의 카운터 너머엔 맑은 액체를 담은 보석들이 벽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의기양양한 웃음을 짓던 바니걸은 오른손을 가게 쪽으로 쭉 뿌리며 극적인 환영 인사를 건넸다.

"이거 참 드문 손님이네? 3일 전에 실종되신 분에다. 앗, 로봇 씨는 여기가 처음이지? 으휴, 여기를 아는 사람이 많아지면 피곤해진다니깐... 뭐, 그래도 편히 쉬다 가. 우리들의 숨겨진 낙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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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인 스토리를 다 모르던 겜안분이라 방주로 출발할 시기엔 이미 라비아타랑 칸이 에바찾으러 간 것을 몰라서 아무도 눈치채지 않았을 설정충돌이 일어났습니다.

어떻게 귀신같이 미국간 애들에게 내가 맘에 들어하는 대사를 치게 했을꼬.

고로 프롤로그 4편에서 사령관의 "저희는 곧 남극의 방주로 향할거예요." 라는 문구는 수정하겠습니다.

타임라인은 철남 발견(9지 이전) -> 역전철충(겨울이벤트 직전)이 되겠습니다.

1달하고도 몇주 간 9지가 일어나는 동안 철남은 뭐했냐면 쫄아서 어린 바이오로이드와 함께 틀어박혔습니다. 어차피 자기가 참가 안해도 게임대로라면 여전히 아무도 안 죽을테니까요.

이프리트도 이해해줬죠. 쪼다시키라고 속으로 생각하긴 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