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창작물은 글과 삽화 모두 본 작성자가 아닌 커미션으로 제작되었으며.

커미션 작가님의 허락 아래 창작물 탭에 올림을 알립니다.


본 글은 철남충이 아닌 오리지널 사령관이 등장합니다.

거부감이 있으신 분은 뒤로가기를 눌러주세요.


















흐린 날이었다.



바다는 언제까지고 푸르게 있을 수만은 없었다. 먹구름이 잔뜩 몰려와 공기를 무겁게 누르자 바다 또한 그 위세에 눌린 듯 푸르죽죽한 빛깔을 내비치고 있었다.



이런 날에 오르카는 항상 바이오로이드로 북적였다. 기상문제로 출격할 수 있는 수가 제한되어 함내에 머무는 바이오로이드들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자신의 방에서 지휘실로 향하던 사령관이 평소보다 더 많은 바이오로이드들과 마주치는 것은, 그렇기에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좋은 아침입니다. 사령관."

지나가던 사령관과 마주한 나이트 앤젤이 그에게 인사를 건냈다.



"사령관 안녕~"

다른 복도에서 슬레이프니르가 사령관에게 인사를 건냈다.



자신들의 유일한 주인, 마지막 인간을 향해 바이오로이드들은 제각각의 인사를 건냈다. 누구 하나 빠짐없이 남자를 매료시키기에는 더할 나위 없는 매력적인 몸매와 그것을 아낌없이 드러내는 옷차림을 하고 있었다.



"어, 그래."



하지만 뭇 남자의 이상향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이 상황 속에서, 사령관은 건성으로 그들의 인사를 받아줄 뿐이었다. 그들의 아름다운 육체에는 눈길을 주지 않고 똑바로 지휘실로 들어온 의자에 풀썩 앉고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무슨 일이세요 사령관?"



고개를 들자 오늘의 부관인 티아멧이 서류를 한 뭉큼 들고 사령관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 아무것도 아냐."



"젊어진 몸은 좀 적응되셨나요?"



티아맷의 말에 사령관은 인상을 쓰며 자신의 팔을 살펴보았다.



그곳에는 이제까지 익숙하게 봐오던 주름진 팔이 아닌,

젊고 활력넘치는 오른팔이 있었다.


"적응이고 자시고, 닥터. 그 녀석은 왜 쓸데없는 짓을 해서는......"



"후훗, 그래도 다른 분들은 다들 사령관님께서 젊어지셨다고 좋아하시던 걸요?"



사령관은 싱긋 웃고 있는 티아멧을 힐끗 바라보았다.



새삼 티아멧의 미소가 생소하게 느껴졌다.



그럴만도 하다. 그녀가 지금껏 만나온 인간이라곤 자신에게 끔찍한 실험을 자행했던 괴물들 뿐이었으니.



그렇기에 얼마전까지만 해도 티아멧이 자신에게 이렇게 웃으며 편하게 대화하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아무래도 오랜 노력 끝에 그녀와 조금 친해졌다고 생각하는 건 사령관의 착각은 아닌 듯 했다.



하지만 사령관은 티아맷과의 관계 개선을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었다.



"흥, 몸 하나 젊어졌다고 그렇게 몰려드는 게 좋을리가 없잖아."



사령관이 손에 든 지휘 패널을 신경질적으로 톡톡 치며 내뱉었다.



"난 그렇게 번식만 가득한 삶은 거절이야. 짐승새끼도 아니고."



사령관의 불만은 그걸로 끝나지 않았다.



"얘기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 도대체 걔들이 입고 다니는 옷들은 뭐야?
그게 옷이야? 군복이야? 천쪼가리지.
홍등가 창녀들도 그렇겐 안 입을거다."



"하지만 그분들이 만들어질 때 지정받은 옷이 그런 것들인걸요."



티아멧의 말에 사령관이 혀를 쯧 찼다.



"하여간 기업들이 문제야. 벌레보다 못한 새끼들."



여전히 투덜거리며 사령관은 티아멧으로부터 서류를 넘겨받아 휙휙 넘겨보았다. 그리고는 무언가를 발견한 듯 얼굴을 서류에 가져다댔다.



"쇼핑몰......?"



"아, 네."



티아멧이 함께 서류를 보며 설명했다.



"이번에 탈환하기로 계획한 구역이 멸망 전에는 커다란 번화가였더라구요. 이 쇼핑물은 그중에서도 제일 큰 건물인데, 신기하게도 전쟁 중에도 별로 파괴되지 않았어요."



"흠......"



사령관은 턱을 짚으며 무언가 생각하는 듯한 눈빛이었다.



"이정도 쇼핑몰이라면 당연히 옷가게들도 있겠지?"



그렇게 중얼거린 사령관은 결정한 듯 서류를 손가락으로 탁 튕기며 활기차게 말했다.



"좋아! 괜찮은 생각이 떠올랐다."



사령관이 티아멧을 바라보며 말했다.



"부관 업무, 잘해줄 수 있지? 탈환작전 시작이다. 지휘관들을 불러."



사령관의 말에 티아맷이 척, 하고 자세를 취했다.



"네! 사령관."





*



탈환작전은 이전보다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사령관에게 새로이 장착되어 있는 신형 지휘모듈과 지휘관들의 시의적절한 조언이 합쳐진 지휘 덕분에 오르카의 바이오로이드들은 이전과는 다르게 최소한의 인명피해로 목표한 지역을 되찾았다.



"좋아. 사망자는 없네."



보고를 받은 사령관이 서류철을 탁 덮으며 말했다.



"그럼 안전이 확보된 것도 확인했으니까, 다음 작전으로 넘어가라고 해."



"네, 사령관." 사령관의 명령에 대답한 티아멧이 통신기에 대고 무어라 말했다.



지역탈환이 완료된 다음의 작전. 그건 그 지역에 위치한 거대한 쇼핑몰에서 오르카의 바이오로이드들이 입을 의류를 확보하는 것이었다.



지휘관들에겐 물자보충이란 그럴싸한 구실을 댔지만, 사령관의 진짜 의도는 따로 있었다.



"인간들의 옷이면 그래도 그 옷인지 가리개인지 모를 천조가리들보단 낫겠지."



지나치게 노출도가 높은 바이오로이드들의 옷이 늘 불만이었던 사령관은, 이번 기회에 그들이 제대로 된 옷을 입게 할 생각이었던 것이다.



"대원들이 쇼핑몰 안쪽으로 진입한 것을 확인했습니다."



티아멧이 보고했다.



"혹시 안에 철충의 잔병력이 남아있는지 확인하면서 천천히 위쪽으로 이동할 계획입니다."



사령관이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문득 생각난 듯이 의자를 돌려 티아맷을 향했다.



"그러고보니 티아멧, 너는 옷 안골라도 되겠어?"



"앗, ㅈ, 저 말씀이십니까?"



예상치 못한 질문에 티아멧은 조금 당황한 눈치였다.



"전 괜찮습니다. 옷에 대해 잘 모르기도 하고, 지금 이 옷이 활동하기에도 좋고......노, 노출도 그닥 심한 편은 아니지 않나요?"



"전혀 아니거든......"



사령관이 티아멧을 지긋이 바라보다가 결정한듯 입을 열었다.



"그래, 넌 나랑 같이 가자."



"어딜 말인가요?"



"어디긴,"



사령관이 패널쪽을 척 가리켰다.



"쇼핑몰이지. 내가 네 옷 골라줄게."



티아멧의 반응은 사령관의 예상대로였다.



"아, 안됩니다! 아직 건물 안쪽의 안전이 완전히 확보되었다고도 할 수 없고, 설사 그렇다고 한들 사령관 님께서 직접 가시는 건 위험......"



"티아멧이 경호해주면 되지. 안 그래?"

그렇게 말하며 사령관은 책상속 서랍을 연 다음.

고전적인 대구경 권총을 꺼내 티아멧에게 보여주었다.

"그리고. 나도 내 몸 정도는 간수할수 있다고."



물러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사령관의 말에 티아멧은 끄응 앓는 소리를 내다 이내 한숨을 내쉬었다.



"알겠어요......대신 절대로 제 곁에서 떨어지시면 안돼요?"



"물론이지."



사령관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그럼 가보자고."





*





"대장님. 여기 이 옷은 어떻습니까?"



쇼핑몰 안 어느 한적한 옷가게.



'작전'에 진입하기 전에 보고받은 대로, 쇼핑몰은 멸망전쟁과 100년이란 시간에도 기적적으로 그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옷가게의 옷들도 마찬가지였다. 진열되어 있는 옷들은 아무래도 세월을 견디지 못하고 바스러졌지만, 창고에 저장된 옷들은 제법 괜찮은 상태로 남아있었다.



'의류확보'라는 작전을 수행하기 위해 투입된 여러 바이오로이드들 중, 시스터즈 오브 발할라의 레오나와 발키리는 여러 옷 창고 중 하나를 뒤져보고 있었다.



레오나는 발키리의 부름에 고개를 살짝 돌렸다. 발키리가 내밀어 보인 옷을 잠시 지켜보던 레오나는 이내 무심하게 다시 고개를 앞으로 향하며 말했다.



"나랑은 안어울려."



그렇게 단언한 레오나가 쌓여있는 옷들 중 하나를 꺼내보며 말했다.



"그리고 내 옷만 고르지 말고 네 옷도 좀 고르지? 설마 내가 골라주길 기다리고 있는 건 아니지?"



"그럴리가 있겠습니까."



발키리가 손에 들었던 옷을 다시 내려놓으며 곤란한 목소리로 말했다.



"단지 전......이런 쪽에 대해선 전혀 몰라서 말입니다."



"이젠 알아야 할거야."



레오나가 퉁명스럽게 말하며 옷을 휙휙 넘기다 가벼운 동작으로 하나를 발키리에게 던졌다.



"앞으로의 세상은 '우리 이전의 우리'가 살던 세상과는 다를 거니까."



레오나가 던진 옷을 받아든 발키리는 그걸 눈높이에 들어보였다. 척 보기에도 자신에게 꼭 맞는 터틀넥 스웨터였다.



"......" 보일듯말듯한 얕은 미소를 지으며, 발키리가 말했다.



"사령관님께서도 전쟁이 끝나고 우리가 자유롭게 살아갈 날을 대비해서 이런 명령을 내리신 거겠죠?"



"그런 이유뿐만은 아니겠지만 말이야."



레오나는 마침내 맘에 드는 옷을 골랐는지 옷을 펼쳐 진중하게 살펴보았다. 노출도가 괴랄한 바이오로이드들의 옷만큼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제법 대담함이 드러나는 원피스였다.



"이유가 뭐가 되었건, 이건 사령관을 사로잡을 좋은 기회야."



레오나가 원피스를 자신의 몸에 대고 전신거울 앞에 서서 자신을 관찰하며 말을 이었다.



"제복을 입은 내 모습이 아름답지 않다는 건 절대 아니지만, 이런 변화는 남자를 사로잡기 좋은 방법 중 하나니까 말이지."



발키리는 거울을 바라보며 몸을 이리저리 돌리는 레오나를 따뜻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그 순간, 저격수로서 단련된 그녀의 감각에 누군가의 인기척이 느껴졌다.



"대장님."



바로 곁에 있는 레오나만 겨우 들을 수 있게 발키리가 속삭였다. 레오나는 발키리가 자신을 부른 이유를 그녀의 목소리에서 이미 알고 있었다.



미세한 소리조차 내지 않으며, 발키리와 레오나는 천천히 창고 밖으로 움직였다. 어느새 옷 대신 손에 들린 각자의 무기를 언제든지 사용할 준비를 한 채.



인기척이 느껴진 곳은 옷들이 진열된 진열대 중 하나였다. 그곳으로 다가갈 수록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때?"



들려오는 목소리는 남성의 것이었다. 익숙한 말투와 목소리가 그 주인이 누구인지 말해주고 있었지만, 레오나는 혹시 몰라 경계를 풀지 않은 채 진열대 끝에서 고개를 살짝 내밀어 목소리의 주인을 확인했다.



"아니면 이런 원피스는? 괜찮아 보이지 않아?"



"......하아."



그리고 그녀는 진 빠진다는 듯이 한숨을 푹 쉬고는 손에 든 권총을 내렸다.



발키리 또한 레오나를 따라 고개를 내밀고는 소총을 다시 등 뒤에 매었다.



"사령관."



레오나가 한겨울의 서리바람보다도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 뭐하는 거야?"



누군가 이 층에 있다는건 눈치챘지만.

예상보다 더 차가운 목소리에 사령관은 뒤돌아보며 말했다.



"뭐야.레오나로군."



사령관은 사뭇 가벼운 말투로 그렇게 말했지만, 레오나는 여전히 살기에 가까운 기운을 내뿜으며 팔짱을 낀 채 또각또각 사령관에게 다가갔다.



"지금 사령관이 '뭐야'라고 할 상황이야? 여긴 아직 안전이 완전히 확보되지도 않은 탈취 구역이야. 어디에 언제 매복해있던 철충들이 튀어나와도 이상하지 않은 지역인데, 지금 농담이 나와?"



"또또또또 그렇게 빡빡하게 생각한다."



사령관이 반쯤 타이르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미 건물의 스캔도 끝났잖아. 보고 받았다고."



"스캔 한 것 가지고 100% 안전을 확신할 수 있다고 진심으로 생각한다면 그런데도 우릴 굳이 이 건물 안으로 파견시킨 사령관의 지휘능력을 다시 한 번 평가해봐야겠는데."



"그런 말 할까봐 너희들이 올라간 층 위로는 아직 올라가지도 않았어. 무엇보다."



사령관이 자신의 옆을 손짓했다.



"든든한 호위도 있으니까 걱정 좀 하지마."



레오나는 그제서야 사령관의 옆에 있는 티아멧의 존재를 알아챘다.



"......안녕하세요, 레오나 님."



티아멧은 약간 긴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레오나는 아무런 대답 없이 티아멧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오늘 부관인 티아멧 님이군요."



발키리가 레오나 뒤에 서서 인사했다.



"바늘 가는데 실 가는 법이지요. 발키리양.반가워요."



사령관의 말에 발키리가 사령관에게도 고개 숙이며 인사했다.



레오나는 은근슬쩍 넘어가는 듯하는 이 분위기가 영 탐탁치 않은 표정이었지만, 작은 한숨만 내쉴 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사령관의 말이 맞다면, 그리고 오르카 최강의 개인전력 중 하나인 티아멧이 있는 한, 레오나는 사령관이 불의의 공격을 당해 위험에 처할 가능성을 떠올릴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주 조금 차가움이 수그러든 목소리로 레오나가 입을 열었다.



"여긴 뭐하러 온 거야?"



"아, 티아멧의 옷을 골라주고 있었지."



사령관이 손에 있는 새하얀 원피스를 들어보이며 말했다.



"얘는 내 오늘 내 부관일 해준다고 옷 고를 시간이 없잖아."



"우리가 대신 골라줘도 됐었는데 말이지."



레오나의 의미심장한 말에 티아멧이 그녀의 시선을 살짝 피했다.



"ㅈ, 저는 굳이 필요없다고 했지만, 사령관님께서 꼭 가자고 하셔서......"



변명하듯 중얼거리는 티아멧을 사령관이 두둔하고 나섰다.



"그래. 너네들만 옷 고르면 얘가 불쌍하지. 여자애들은 쇼핑하는 거 좋아하잖아?"



"여자애......"



마치 자기들을 어린아이 취급하는 듯한 말투에 레오나의 눈썹이 잠깐 꿈틀했지만, 그녀는 말을 아꼈다.



멸망 전, 그 훨씬 이전부터 살아온 사령관은 항상 자신을 포함한 바이오로이드들을 이렇게 대해왔다. 마치 동네의 꼬마 아이나 손녀들을 다루듯이 말이다.



물론 바이오로이드를 생명체로도 보지 않았단 멸망 전 인간들에 비하면 굉장히 친절한 것이었다. 그는 모든 바이오로이드들을 자신의 가족처럼 정말 아껴주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의 태도가 딱 거기서 멈춰버린다는 것이었다.



사령관이 아무리 그녀들을 아이처럼 대한다고 한들, 대부분의 바이오로이드들은 건강한 성인여성의 몸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그녀들에게 들끓는 성욕이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게다가 사령관은 이 세계에 남은 유일한 인간이자, 자신들의 그 애타는 정욕을 만족시켜줄 수 있는 유일한 남성.



닥터의 계략으로 젊어지기까지 한 그는 자연스럽게 선망과 존경 그 이상의 눈길을 한몸에 받게 되었다.



하지만 그는 그들의 욕망에 응해주지 않았다.
안아달라고 한다면 안아주었지만.순수한 포옹이였을 뿐.
그 누구도 성적으로 품어주지 않았다.
그저 아이를 대하는 순수한 사랑을 줄 뿐이었다.



이윽고 바이오로이드 사이에선 '사령관 함락시키기'가 일종의 비밀 작전처럼 자리잡았다.



레오나는 자신의 체면과 자존심 때문에 이 작전에 대놓고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그녀 또한 사령관과 맺어지기 위해 은밀히 자신의 뛰어난 머리를 사용하고 있었다.



북방의 암사자에게 점령하지 못할 철옹성은 없어야만 하기에.



그리고, 아무리 억누르려고 해도 설원에서 꽃이 피어나듯 모습을 드러내는 이 감정을 위해.



"......"



그런 레오나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사령관은 다시 티아멧의 옷을 고르는 일에 열중하고 있었다.



"발키리양. 티아멧한테 좀 어울리는 옷이 뭐가 있을거 같습니까?"



"아......"



발키리가 난처한 표정으로 살짝 웃었다.



"죄송합니다. 저는 옷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지라......"



"걔 옷은 내가 고를게."



레오나가 불쑥 끼어들었다.



"호오, 레오나가?"



예상치 못한 행동에 사령관이 의외라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에 비해 레오나는 평소와 같은 냉랭한 목소리로 사령관을 살짝 째려보았다.



"발키리는 잘 모르고, 사령관의 취향은 보나마나 괴팍하기 짝이 없을테니, 내가 고르는 게 가장 합리적이라고 생각한 거야. 불만 있어?"



"그럴리가."



사령관이 호탕하게 웃었다.



티아멧 또한 레오나의 갑작스러운 태도변화에 의아함을 드러내고 있었다. 하지만 오랫동안 레오나를 곁에서 지켜봐온 발키리는 무언가를 눈치챈 듯 했다.



레오나가 고개를 홱 돌리고 옷을 이것저것 꺼내보는 동안, 발키리가 사령관의 곁으로 한발짝 다가섰다.



"이왕 여기까지 오셨는데, 각하께서도 옷을 골라보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예? 저 말입니까?"



"여기엔 남성복도 있지 않습니까."



발키리가 창고를 돌아보며 말했다.



"각하를 더욱 돋보이게 만들 멋진 옷들도 분명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돋보이는것엔 관심 없습니다."



사령관이 웃음을 터뜨리며 손을 휙 내저었다.



"저 같은 늙은이가 돋보여서 어디다 씁니까. 허."



"또 그렇게 말씀하십니다 각하."



발키리가 은근한 눈빛을 보내며 말했다.



"이전에도 물론 뛰어난 외모를 가지고 계셨지만 지금은 굉장히 그, 잘생기셨습니다......"



눈밭처럼 새하얀 뺨에 핑크빛 홍조를 옅게 띄우며 말을 끝맺는 발키리.



사령관은 그녀에게 어딘가 미묘한 미소를 살짝 지어보였다.



"그래요, 뭐......좋게 봐줘서 고맙긴 합니다만은....."



"겨우 그게 다야?"



레오나가 여전히 사령관에게서 등을 돌리고 옷을 고르며 퉁명스럽게 쏘아붙였다.



"레이디가 옷을 권하는데 그런 미적지근한 반응을 보이는 건 용납못해."



레오나의 말에 발키리의 집요한 시선까지 더해지자 사령관은 졌다는 듯이 손을 휙휙 내저으며 외쳤다.



"으아! 알았어 알았어! 대신, 너희들이 알아서 골라."



"후후, 알겠습니다."



발키리가 입을 살짝 가리며 웃는 동안 레오나가 손에 옷을 한 아름 들고 돌아왔다.



"자."



레오나가 옷뭉치를 티아멧의 품에 쑤셔넣었다.



"너한테 어울릴만한 옷, 네가 좋아할만한 옷으로 추려봤으니까, 저기 탈의실 가서 직접 입어보고 골라. 마지막엔 직접 골라야지."



"아, 그, 저......"

티아멧이 우물쭈물 대답했다.



"저, 사령관님의 호위를......"



"너보다 강하진 않아도 나랑 발키리 둘이면 충분히 지킬 수 있어."



레오나가 티아멧의 말을 끊고 그녀의 등을 툭툭 밀었다.



"그러니까 갔다와."



티아멧은 여전히 확실치 않은 표정으로 이따금 힐끔힐끔 사령관 쪽을 바라보며 탈의실 쪽으로 걸어갔다. 사령관은 그런 티아멧을 안심시키기 위해 손을 가볍게 흔들어보였다.



이윽고 티아멧이 탈의실 쪽으로 사라지자, 아주 짧은 고요함이 레오나, 발키리, 그리고 사령관 사이에 흘렀다.



"뭔가 가족같았어. 방금 전 우리."



티아멧이 사라진 쪽을 바라보며 레오나가 중얼거렸다.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슬쩍, 사령관의 팔짱을 꼈다.



"가족?"



"당신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레오나가 사령관에게 조금 더 바짝 붙으며 그를 살짝 올려다보았다.



"함께 평범하게 쇼핑을 나와, 아이의 옷을 골라주는 모습이 말이야."



"흐음."



사령관은 그렇게 짧게 말하곤 레오나를 향해 입꼬리를 올려보았다.



"뭐야, 북방의 암사자도 그런 평범한 삶을 꿈꿀 때가 있나?"



"당신이 그런 삶을 꿈꾸게 만들었으니까."



레오나가 자기 손에 아직 들려있는 원피스를 사령관에게 보여주었다.



"내가 제복이 아닌, 이런 옷을 입게 될 날을 말이야."



"걱정마라. 꿈이 아니라 현실로 만들어 줄꺼니까."



레오나의 얼음장 같은 눈빛이 불꽃처럼 흔들렸다.



언제부터였을까. 저 아무런 확증도 없는 그의 말을 그저 믿게되었던 것은.



"......그 현실 속엔 당신이 우리 곁에 있어줬음 좋겠어."



"당연하지, 내가 그럼 어딜 가겠......"



"단순히 우리의 사령관으로서가 아니라, 지금보다 더 가까워진 관계로 말이야."



사령관의 얼굴에서 장난기가 스륵 사그라들었다. 레오나가 하고자 하는 말의 저의를 눈치챈 사령관은 가볍게 레오나의 팔에서 자신의 팔을 빼내려했지만, 레오나는 오히려 팔을 더 자신 쪽으로 끌어들였다.



"......또 그 얘기?"



사령관이 엄중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 표정조차 진심으로 화난 것이 아닌, 그저 떼쓰는 아이를 다그치려는 어른의 얼굴이라는 것이 레오나는 너무나도 싫었다.



"그 얘기는 이미 끝났잖아. 자꾸 말도 안되는 소리 하지마."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하는 건 당신이야."



레오나가 이를 빠득 갈며 말했다.



"그건 무슨 고집이야? 자신이 마지막 인간, 마지막 남자라는 자각이 아직도 없어? 아님 당신 눈엔 우리가 그렇게 못생겼어? 그렇게 사랑하기 싫어 우릴?"



"아니 그게 아니라," 사령관은 답답하다는 듯이 한숨을 푸욱 내쉬고 말을 이었다.



"그래 객관적으로 봤을 땐 이쁘지. 그리고 너흴 사랑하지 당연히. 그런데 왜 그게 꼭 그런 사랑이어야 하는데?"



"안 그럼 인류부흥은 어떻게 시킬 건데?"



"왜 해야 하는데?"



"무슨 그런 무책임한 소릴......"



"이봐. 레오나."



사령관이 목소리를 간신히 차분하게 유지하며 말했다.



"너희들은 다 나한테 소중해. 하나같이 사랑스럽다고. 그래서 내 손으로는 도저히 너희를 더럽히고 싶지 않다는 거야."



"......"



"그러니까, 나한테 그런 건 좀 강요하지 말아줬음 좋겠다. 그냥, 그냥 지금처럼은 안돼? 친한 친구처럼, 가족처럼, 다같이 사이좋게 지내면 안되겠냐고."



"......내가 더럽혀지고 싶다고 해도?"



평소의 레오나와는 다른, 속삭이는 듯한 애원.



하지만 사령관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



사령관은 자신의 팔을 잡고 있는 레오나의 팔힘이 풀리는 걸 느끼고 자신의 팔을 스르륵 뺐다.



차가운 적막이 내려앉았다.



"......티아멧이 옷 다 입었나 보고 올게."



적막을 깨고 그렇게 말한 사령관은 몸을 레오나에게서 돌렸다. 고개를 살짝 숙이고 있었기에, 레오나의 표정을 볼 수가 없었다.



탈의실 쪽으로 향하던 사령관의 눈이 발키리의 눈과 마주쳤다.



"......"



발키리는 아무런 말 없이 사령관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 크고 깊은 눈동자 안에서, 발키리는 감히 소리로는 다 자아낼 수 없는 말을 그에게 전하고 있었다.



사령관은 뭔가 말을 하려는 듯 입을 살짝 열었다. 그러나 열린 입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그는 이내 다시 입을 닫고, 탈의실 쪽으로 점점 멀어져갔다.



"......돌아가자."



사령관이 사라지고 얼마후 레오나가 중얼거렸다.



"네."



발키리가 짤막하게 대답했다.



쇼핑은 끝이었다.





*





그날 밤 오르카는 평소보다 들떠있었다. 평소에는 상상도 못했던 옷들을 잔뜩 모아온 바이오로이드들은 소속에 관계 없이 복도에서 서로의 옷들을 비교하며 왁자지껄 떠들어댔다.



발키리는 저격수의 익숙한 몸놀림으로 수많은 인파를 익숙하게 피해 움직였다.



그녀가 향한 곳은, 레오나가 머물고 있는 방이었다.



시끌벅적한 복도를 지나와서인지 그녀의 방 앞은 평소보다 더 싸늘해보였다. 발키리가 문에 노크하자 무미건조한 '들어와' 가 그녀를 맞이했다.



"대장님."



레오나는 여전히 제복을 입고 있는 상태였다. 침대에 걸터 앉은 채, 그녀는 자신의 손에 들린 권총을 무심하게 손질하고 있었다.



"......괜찮으십니까?"



"내가 남자한테 한 번 거절당한 걸로 풀죽을 여자로 보이니?"



레오나의 말투는 평소와 다를 것이 없었다. 그럼에도 발키리는 방안으로 들어와 방문을 닫고 그녀의 곁에 다가섰다.



그런 발키리의 눈에 들어온 것은, 침대 옆에 아무렇게나 던져진 옷이었다.



레오나가 쇼핑몰에서 자신을 위해 직접 골랐던, 아름다운 원피스였다.



"아, 온 김에."



발키리의 시선이 옷을 향하고 있는 것을 본 레오나가 말했다.



"저 옷 좀 옷장에 걸어둘래?"



"입지 않아보셔도 괜찮겠습니까?"



발키리가 조심스레 물었다.



"전쟁은 아직 안 끝났어."



단호하게 말하는 레오나의 눈은 여전히 손 안의 권총에 집중되어 있었다. 마치 그것 이외에 다른 것은 보고 싶지 않은 것처럼.



발키리는 침대 위의 옷을 집어들고 방 한쪽에 있는 레오나의 옷장으로 걸어갔다.



"......어차피 지금은 그걸 입을 의미따위도 없을테니까."



그렇게 작게 중얼거린 레오나의 마지막 말을, 발키리는 애써 듣지 못한 척 하려했다. 그래서 발키리는 관물함 옆에 난 창 밖 풍경을 지켜보는 시늉을 했다.



흐린 날이었다.



바다는 언제까지고 이렇게 흐리게 내려앉아 있을까.



발키리는 그렇게 생각하며 관물함에 원피스가 걸린 옷걸이를 걸었다.



찰칵, 하는 금속음이 유난히 공허하게 들렸다.








ㄴ영감님의 원래 모습.






반응이 좋으면 추가 제작을 의뢰할 계획이며.

1편의 프리퀄 제작을 준비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