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 모음집 



예배실이라는 말에 걸맞게 코헤이 교단이 사용하는 공간은 멸망 전 기독교와 개신교의 성당과 교회를 섞어놓은 모양새였다. 예배임에도 불구하고 미사처럼 일어서서 보는지 기본적으로는 의자가 없었지만, 기도를 하는 몇몇 바이오로이드들이 개인 의자를 가져와서 앉아있는 모양새를 보면 어느 한쪽을 따왔다고만 보기는 어려워보였다.

 

‘코헤이 교단 자체가 사이비 종교였음을 감안하면 이런 근본 없는 혼합도 무리는 아니겠지. 통상적으로 사이비 종교들은 주변에서 많이 접하면서 친근감이 있는 교회, 성당, 교당 등을 모방해서 유입을 쉽게 만든 뒤, 교주를 신격화하는 방법으로 착취를 시작하니까. 어느 쪽이든 유입만 쉬우면 상관없었던 것이겠지.

 

그런 시작과는 별개로 현재의 모습은 꽤나 정상적으로 돌아가는 것 같네. 아자젤이 예배를 주관하고, 엔젤과 베로니카가 보조를 하는 방식인가.’

 

리마토르가 오르카호 소개 책자에서 읽었던 내용을 떠올리며 예배실 분위기를 읽던 중, 검은 옷의 천사가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누구인가? 코헤이 교단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는 자는 이 안에 들어올 수 없다.”

 

“보내주세요, 사라카엘 이단심문관. 리마토르 씨도 종교에 관심을 갖고 찾아온 거라고요.”

 

“처음 뵙겠습니다. 오르카호에 연구원 자격으로 승선한 리마토르입니다.”

 

185cm인 리마토르보다 더 큰 키로 그를 내려다보던 사라카엘은 이단 심문관답다고 할 수 있는 날카로운 검증의 칼을 들이댔다.

 

“연구원이라면 이전에 철학을 연구한다는 그 자 아닌가?”


“그렇습니다.”

 

“종교와 철학은 연구하는 바가 서로 다르다. 빛의 뜻을 받들어 구원자를 추종하는 것이 우리 교단. 교단의 율법과 빛의 대리인에 의문을 던지는 철학자는 이단의 단초가 아닌가?”

 

사라카엘이 날카로운 눈매를 더욱 매섭게 뜨며 리마토르에게 질의했으나 리마토르는 크게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나이트 앤젤을 농락하던 것처럼 여유로운 미소를 안면에 띠고 답했다.

 

“그렇지 않습니다. 종교와 철학이 다르다고 해도 그 뿌리는 같기 때문이죠.”

 

“허튼 소리를 하는군. 구원자와 대립하는 네가 어떻게 그렇게 말하는 건가?”

 

“저는 사령관님과 대립하지 않습니다. 상하관계가 명확한 걸요.”

 

“누가 위고 누가 아래지?”

 

“당연히 사령관님이시죠. 저는 그저 그 분의 뜻 아래에서 연구하는 한 명의 학자에 지나지 않습니다.”

 

말이 좋아 교단에 대한 이단심문이었지, 실제로는 사령관을 향한 충성도 검증에 지나지 않는 질문에 답하던 리마토르는 이런 답변에 무료함을 느끼고 역으로 질문을 던졌다.

 

“사라카엘 이단심문관, 교단은 대체 무엇을 믿기에 이렇게까지 하는 것이죠? 빛을 믿는 겁니까 사령관님을 믿는 겁니까?”

 

가벼운 말투였으나 교단의 규율과 그 규율에 따라 이단을 심판하는 사라카엘의 임무까지 모두 꿰뚫는 질문이었기에 사라카엘은 쉬이 넘기지 못했다. 

 

“그 입 다물어라. 더 이상 발언할 경우 너를 이단으로 간주하고 심판하겠다.”

 

그녀는 자신이 날리는 경고가 결코 빈 말이 아님을 양 손에서 파지직거리는 소리를 내며 빛나기 시작하는 번개로 증명했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여기서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꼬리를 내렸겠으나 리마토르는 배를 깔고 드러눕는다는 선택지를 고르지 않았다. 그는 눈을 감고 조용히 중얼거렸다.

 

“Dejs est nobis refugium et virtus adiutorium in tribulationibus inventus est nimis proptersa non timebimus dum turbabitur terrae et transferentur montes in cor maris. Fremant et intumescant aquae eius, conturbentur montes in elatione eius.”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에 사라카엘은 위화감을 느꼈지만 교단의 권위에 도전하는 행위라고 판단하여 번개의 출력을 올렸다. 스파크가 튀자 예배를 드리던 바이오로이드들은 당황하여 주춤거렸다.

 

“사라카엘님! 지금 무얼 하시는 겁니까!”

 

“이단심문관으로서 교단의 권위에 도전하는 이를 처단하는 것이다.”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느낀 엔젤과 베로니카가 사라카엘을 말리러왔으나 사라카엘은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았다. 엔젤과 베로니카가 어찌할 줄 몰라하는 와중에도 리마토르는 눈을 감고 중얼거림을 이어갔다.

 

“Omnia possibilia credenti.”

 

그의 말이 지나가는 한순간, 베로니카는 이전에 읽었던 교단의 초기 규율이 뇌리를 스쳐지나가는 것을 느꼈다.

 

“...잠깐만요, 방금 뭐라고 하신...?”

 

베로니카의 감정을 읽은 엔젤도 의아한 눈으로 리마토르와 베로니카를 번갈아보았다. 그를 보는 눈길이 바뀐 것을 감지한 사라카엘도 베로니카가 무슨 말을 하려는가 지켜봐야겠다며 번개의 출력을 낮추었다.

 

“리마토르 씨라고 하셨죠? 방금 전에 하셨던 말씀을 다시 한 번만 들려주실 수 있으신가요?”

 

베로니카가 공손한 어투로 부탁하자 리마토르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그 구절을 다시 읊어주었다.

 

“Omnia possibilia credenti.”

 

그 말을 들은 베로니카는 자신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교단이 건설된 초창기에나 쓰이고 금세 잊혀져 지금은 구 세대의 유물인 문장을, 리마토르가 기억하고 있다는 눈앞의 광경을 믿을 수 없었다.

 

“뜻...도 알고 계신가요?”

 

리마토르는 다시금 고개를 위 아래로 끄덕이더니 자신이 말한 처음부터 읊어주었다.

 

“주님께서 우리의 피신처와 힘이 되시어 어려울 때마다 늘 도우셨기에 우리는 두려워하지 않네. 땅이 뒤흔들린다 해도, 산들이 바다 깊은 곳으로 빠져든다 해도, 바닷물이 우짖으며 소용돌이 치고 그 위력에 산들이 떤다 해도.

 

믿는 이에게 불가능은 없다.”

 

그의 말이 끝나자 베로니카는 할 말을 잃어버렸다. 리마토르가 말한 내용은 자신이 이전에 읽었던 초기 교단의 경전에 쓰여 있던 내용과 동일했기 때문이었다. 베로니카가 넋을 잃고 그를 쳐다보자 사라카엘은 베로니카를 툭툭 건드렸다.

 

“정신차리게나, 저 자는 이단이다.”

 

“...아니요. 이단이 아닙니다.”

 

“뭐?”

 

“새로운... 빛의 대리인을 이끄는 빛의 사자입니다.”

 

베로니카는 그의 몸에서 마치 오라라도 이는 것처럼 차마 다가가지 못했다. 사라카엘은 어이없어 하며 베로니카에게 생각을 다시해보라고 말했지만 그 사이 리마토르의 감정을 읽은 엔젤도 그 자리에서 눈물을 터뜨렸다.

 

“아아... 빛께서 사자를 보내셨어요! 구원자님을 도와 새로운 세상을 여실 분을요!”

 

교단에서 교리에 대한 지식으로는 자신과 더불어 쌍벽을 이루는 베로니카와 상대방의 감정을 읽을 수 있는 엔젤이 리마토르에 탄복하자 사라카엘은 혼란에 빠졌다. 자신이 지금 무엇을 보고 있으며, 리마토르라는 남자가 대체 무슨 짓을 했길래 교단의 중역 2명이 그에게 무릎 꿇었는지 납득이 가지 않았다.

 

“다들 뭐하는 건가! 이 자는 이단이다!”

 

“당치도 않습니다. 이 분은 빛의 사자세요!”

 

“다들 미혹함에 현혹되지 말아라! 이 자를 처단하고 너희들의 책임도 묻겠다!”

 

“지금 다들 뭐하는 건가요?”

 

점점 사라카엘도 베로니카도 언성이 높아지기 시작하자 예배를 주관하던 아자젤이 내려와 직접 상황을 중재하러 내려왔다. 명실상부한 교단의 상징인 아자젤이 앞에 있자 사라카엘을 비롯한 모두가 함부로 고성을 지르지 못했다. 리마토르는 그 틈을 파고들었다.

 

“안녕하십니까? 연구원 리마토르라고 합니다.”

 

“전 빛의 옥좌 옆에 앉은 자, 치품에 위치한 천사 아자젤입니다.”

 

가볍게 통성명을 마치자마자 리마토르는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소란을 일으켜서 죄송합니다. 다름이 아니라 코헤이 교단과 제가 알고 있는 종교 철학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가 제 신앙 문제로 번져서 불필요한 언쟁이 되었습니다. 예배를 드리는 중에 방해를 해서 죄송합니다.”

 

그의 말에 아자젤은 손깍지를 끼더니 기도하는 모습으로 대답했다.

 

“교단의 가르침을 설파하는 것이 지품천사인 저의 임무. 교단의 교리를 부정하는 말씀이라면 하지 말아주시길 바랍니다.”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종교 역시 철학에서 갈라져 나왔으며, 종교철학이라는 하나의 분과로 존재한다는 점을 말했을 뿐입니다.”

 

사라카엘이 부정했던 종교가 철학과 연관되어있다는 말. 아자젤은 그의 말을 부정하지는 않았으나 그렇다고 긍정하는 것도 아닌 애매한 답변을 돌려주었다.

 

“종교는 생각할 수 있지만, 신은 생각하는 것이 아닙니다. 저희는 그저 빛의 뜻을 따라 믿을 뿐입니다.”

 

코헤이 교단의 인원들과 겨우 몇 분밖에 시간을 보내지 않았지만 하나 같이 믿음을 중시하는 모습을 보며 리마토르는 두 명의 철학자를 떠올렸다.

 

“믿음의 대상이라... 그렇군요. 저 역시도 신의 대상을 논하는 것은 아닙니다. 종교합리성 너머의 경지에서 초월적인 깨달음을 추구하는 것이니까요. 그렇기에 이 자리에서 믿음의 본질에 대해 논할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믿음을 향해 가는 과정은 철학으로 볼 수 있습니다. ‘어떻게 믿을 건가?’라는 질문에 답하는 것이죠. 이 질문에 답을 하고자 연구하는 철학을 교부(敎父)철학이라고 합니다. 종교의 아버지라는 뜻이죠.”

 

“종교에는 아버지가 없습니다. 그저 빛의 뜻을 따를 뿐입니다.”

 

“그런 의미가 아니라 믿는 과정을 제시한 철학자입니다. 대표적인 인물로 아우렐리우스 아우구스티누스토마스 아퀴나스가 있습니다. 믿음을 어떻게 가져야하는가 질문을 꺼내면 반드시 등장하는 분들이죠.”

 

그의 말을 옆에서 쭉 듣던 나이트 앤젤은 속으로 감탄을 아끼지 않았다. 자신을 가슴 크기로 짓궂게 놀릴 때도 자연스럽게 논리학 설명으로 넘어가더니, 이단으로 몰려 교단의 제1천사와 마주하고 있음에도 교부철학에 대한 설명을 자연스럽게 이어가는 그의 노련함은 단연 일류였다.

 

그 광경을 보며 리마토르의 생각을 읽은 엔젤은 성스러운 광경이라도 본 것 마냥 입을 벌리고 움직이지 못했다. 엔젤의 반응을 곁눈질로 훔쳐본 아자젤은 그가 어떤 말을 꺼낼지 흥미를 느끼며 말을 잇게 재촉했다.

 

“믿음의 방법이라 흥미롭군요. 더 설명해주시겠나요?”

 

“물론입니다. 먼저 아우렐리우스 아우구스티누스부터 보도록 하죠. 4세기의 교부철학자아우렐리우스 아우구스티누스는 성인으로 지정될 정도로 가톨릭 역사에서 중요한 철학자입니다.

 

<고백록>이라는 저서로 유명한 아우구스티누스는 원죄라는 개념을 정립하고, 구원론을 제기함으로써 그리스도교의 중추를 체계화하였습니다. 그의 사상에서 눈여겨 볼 부분은 플라톤 철학을 수용한 점입니다. 완벽한 세계인 이데아계(界)가 존재한다는 플라톤의 주장을 따라 아우구스티누스는 천상의 나라와 지상의 나라를 구분했습니다. 하지만, 영원한 천상의 나라에 존재하는 신에게 다가가기 위해서는 이성적인 논증을 초월한 실존적인 깨달음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죠. 코헤이 교단에서 제시하는 부분과 같습니다.

 

그렇다면 아우구스티누스는 왜 신을 믿어야 한다고 말했을까요? 그는 원죄론을 답으로 제시했습니다. 모든 인간은 자유 의지를 남용한 대가로 태어날 때부터 죄인인 상태입니다. 죄업을 청산하지 못한 상태에서는 신을 온전히 사랑할 수 없죠. 그렇기에 신을 믿고 따르면서 하나가 되기 위해 노력해야하는 것입니다. 코헤이 교단의 라미엘이 모두의 죄를 짊어지는 역할을 한다고 본 기억이 나는데, 그 죄의 범주에 원죄가 들어갑니다.

 

여기서 또 의문이 들 것입니다. 신을 사랑하는 것만으로 죄업을 청산받을 수 있는가? 아우구스티누스는 신은 최고의 선이며, 신을 사랑하고자 노력하는 과정을 통해 참된 행복에 이를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신에게 귀의하여 신과 하나가 될 때, 신의 은총을 받아 원죄에서 구원받을 수 있다고 말한 것이죠.

 

이렇게 사랑을 중시하는 특성상 아우구스티누스 철학은 사랑을 최고의 덕으로 내세웁니다. 믿음, 소망, 사랑 중에서 제일은 사랑이라고 말하며, 플라톤이 사주덕으로 제시한 지혜, 용기, 절제, 정의도 전부 사랑을 다르게 표현했을 뿐이라고 설명하죠. 오로지 신에 대한 사랑, 은총을 받아 신을 온전히 사랑하여 원죄를 청산받기 위해 모든 인간은 신을 사랑하려는 노력을 해야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아우구스티누스의 교부 철학이죠.”

 

그의 말을 듣던 베로니카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질문을 던졌다.

 

“질문 있습니다. 신을 향한 사랑을 중시했다면, 신이 아닌 다른 존재에 대한 사랑은 중요하게 보지 않았던 건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리스도교의 핵심 표어 중 하나가 ‘네 이웃을 너의 몸처럼 사랑하라’입니다. 타인에 대한 보편적인 의무로서 사랑을 강조하는데, 오직 신을 위하여 이웃도 가족도 내팽겨치는 모양새는 결코 환영받지 못했죠.

 

아우구스티누스 신을 사랑하면 스스로를 사랑하게 되고, 그 사랑을 가족과 이웃으로 넓힘으로써 지상의 나라가 아름다워질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천상의 나라에서 행복하게 살기 위해 지상의 나라가 지옥이 되든 말든 신경 쓰지 않았다는 것이 아니라, 살아서는 사랑이 넘치는 지상의 나라에서 살고 죽어서는 신의 은총으로 원죄에서 구원받아 천상의 나라에서 살아가라는 뜻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웃을 향한 사랑이 필수적이었죠.”

 

그의 답변을 들은 아자젤과 엔젤은 눈을 감고 기도를 올렸다. 베로니카는 고개를 끄덕였으며, 사라카엘은 여전히 날카로운 눈으로 그를 바라봤으나 이단이라는 의심은 거두었는지 한결 눈빛이 부드러워져있었다.

 

“이런 아우구스티누스의 사상을 계승한 철학이 스콜라 철학입니다. 사랑과 믿음이 아우구스티누스 교부철학의 중심이었다면 스콜라 철학은 신학교(Schola)에서 철학적인 논증을 하는 것이 주 목적이었죠. 그 중심에 서 있는 철학자가 마스 아퀴나스입니다.”

 

“잠시만요, 믿음에 대해 철학적인 논증은 안한다고 하지 않으셨나요?”

 

리마토르의 말에서 앞에서 한 말과 충돌하는 부분이 있다고 느낀 아자젤이 그에게 이의를 제기했다. 그 말을 들은 리마토르는 고개를 좌우로 저으며 그녀에게 설명해주었다.

 

“제가 신의 유무를 두고 철학적인 논증을 안 한다는 뜻입니다. 과거 종교 철학자들이 어떻게 종교를 탐구했는지 알기 위해서는 그 사상가들이 밟았던 철학의 과정을 저희가 되짚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기에 그들의 철학적 논증을 들여다보는 것은 약속을 어긴 것이 아니죠.”

 

“흐음... 알겠어요.”

 

아자젤이 수긍하자 리마토르는 숨을 고르더니 다시 설명을 시작했다. 사라카엘은 그런 그를 보며 이단심문관 자리가 어울리기 그지없다고 생각했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종교 철학에서 아우구스티누스와 함께 빼놓을 수 없는 인물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가 신앙의 중추를 쌓아올렸다면, 아퀴나스 신을 믿어야만 하는 이성적인 사유를 제안함으로써 신앙을 이성의 영역으로 끌고 왔습니다. 그는 자신의 저서인 <신학대전>에서 신이 존재한다는 논증을 이렇게 소개했습니다.

 

세상 모든 것의 움직임에는 원인이 있다. 원인을 거슬러 올라가면 최초의 움직임이 있었을 것이다. 최초의 움직임은 결코 무(無)에서 생겨난 것이 아니라, 필연적인 신의 뜻에 의해 나타난 것이다.

 

다시 말해 이성적으로 신이 존재함을 알 수 있으며, 신앙은 비합리적인 것이 아니라 이성을 통해 검증과 보완을 이어가는 존재임을 제시한 것이죠. 이것이 정말 중요한 이유는 중세 이후 근대와 현대를 거치면서도 그리스도교라는 종교가 살아남을 수 있게 한 것입니다. 믿음을 강조한 중세 이후 도래한 근대에서는 이성을 중시했습니다. 모든 일에 ‘왜 그런가?’라는 물음을 던졌으며, 이성을 통해 무엇이든 인간의 손아귀 안에 둘 수 있다는 생각이 팽배해졌던 시기죠. 이는 뒤집어 말하면 더 이상 논리적인 이유 없이 무조건적인 믿음을 강조했던 중세시대의 패러다임이 먹히지 않음을 의미했습니다. 자칫 소멸될 뻔했던 그리스도교를 믿음의 이유를 제시함으로써 건져낸 것이죠.

 

신앙과 이성의 조화를 강조한 아퀴나스의 철학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을 수용했다는데 그 의의를 둡니다. 아우구스티누스가 플라톤 사상을 수용해 이데아, 다시 말해 완전한 천상계를 그렸다면 아퀴나스는 현세에서 신의 존재를 찾는 것을 중시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아퀴나스가 천상계를 부정한 것은 아닙니다. 그 역시 그리스도교를 믿는 자였기에 아우구스티누스처럼 종교적 덕을 통해 신의 은총을 받아 천상계에 가는 것을 최고의 미덕으로 쳤죠.

 

그렇다면 어떤 부분에서 아리스토텔레스 사상을 수용했다는 것일까요? 바로 자연적 덕의 개념을 제시한 것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가 믿음, 소망, 사랑이라는 종교적 덕만 제시하였다면, 아퀴나스는 종교적 덕의 예비 단계인 자연적 덕을 고안한 것입니다. 지성적 덕품성적 덕으로 이루어진 자연적 덕은 자연법 윤리로 이어집니다. 인간이 따라야하는 법은 영원법-자연법-실정법 3개로 나뉘는데, 영원법신의 뜻으로 창조된 영원불변의 법칙을 뜻합니다. 자연법인간의 이성을 통해 인식된 영원법으로 이성을 가진 인간이라면 누구나 따를 거라는 전제가 있죠. 실정법자연법에 기초하여 인간이 만든 법입니다. 

 

아퀴나스는 지성적 덕인 이성을 통해 신의 뜻인 영원법을 인식해서 자연법을 깨닫고, 자연법을 준수함으로써 품성적 덕을 길러 자연적 덕을 갖추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성을 통해 신이 있음을 알고 받아들여야만 비로소 종교적 덕인 믿음을 갖고 신의 은총을 받을 준비가 된다는 것이죠.”

 

리마토르의 설명을 쭉 듣던 엔젤은 그에게 질문했다.

 

“그럼 신의 뜻은 절대로 변치 않는다는 것인가요?”

 

“그렇습니다. 다만, 그렇다고 해서 자연법이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닙니다. 자연법은 영원법을 인간의 이성이라는 렌즈를 거쳐서 한 번 걸러진 영원법의 모습입니다. 당연히 렌즈가 얼마나 굴곡졌는가에 따라 영원법이 굴절되어 보이는 정도는 다르죠. 그래서 영원법에 대한 해석이 맞는지 끊임없이 연구를 해야 하며, 이를 연구하는 학문이 종교 철학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종교 철학 중에서도 분과의 하나지만요. 

 

이런 끊임없는 해석을 통해 썩어빠진 당대의 종교계를 개혁해야한다고 주장한 그리스도교 철학자도 있습니다. 마르틴 루터라는 사상가인데요, 면죄부를 구매하기만 하면 여지껏 지었던 모든 죄를 용서받는다고 당대 교회에서 선전하는 것이 있었습니다. 마르틴 루터는 구원은 돈이 아니라 신실한 믿음과 신의 은총에 의해서만 가능하다고 믿고 당대 교회의 처사를 비판하는 95개조 반박문을 발표했죠. 이 과정을 통해 그리스도교가 크게 천주교와 개신교로 갈라지게 된 것입니다.”

 

리마토르의 대답을 들은 엔젤은 자신의 손을 깍지 끼더니 기도를 올렸다. 이토록 종교에 대해 해박한 분을 보낸 빛의 은총에 감사드리며, 이 기세를 몰아 교단의 뜻을 더욱 널리 퍼뜨리겠다고 말이다.

 

베로니카와 사라카엘도 질문을 할까 잠시 생각했으나, 믿음의 방식에 대해서 물어봤자 여태까지 나온 답을 다시 듣는 것밖에 되지 않기에 질문하려던 생각은 품에 접어 넣었다.

 

“여기까지가 제가 준비한 종교학, 그 중에서도 코헤이 교단과 닮은 그리스도교 철학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재미있게 들어셨나요?”

 

리마토르의 질문에도 답이 없자 그는 다들 자신의 말을 알아들었다고 생각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철학과 종교는 결코 동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종교에 철학의 잣대를 들이댄다고 너무 불쾌히 여기시지 말아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사라카엘은 볼을 붉히며 알겠다고 답했다. 아자젤은 떠나려는 그의 손을 붙잡더니 빛의 은총이라며 말했다.

 

“어디를 가시든 저희 교단의 빛이 은총을 내려주실 겁니다.”

 

“감사합니다, 아자젤 지품천사.”

 

그는 문을 열고 나와 자신의 방을 향해 걸었다. 걷는 내내, 그는 자신의 기억이 점점 되살아나는 감각을 느꼈다.

 

‘닥터의 말이 맞기는 한가 봐. 라틴어도 그렇고, 강연하는 것들도 그렇고 분명 내가 모르는 게 아니야. 나는 이것들을 한 번 공부한 적이 있어.

 

그렇다면 대체 왜? 박사 학위를 이걸로 받은 건 아니야. 각 내용들이 파편화되어있어서 하나의 큰 주제에 묶이지도 않아. 그렇다면 과거의 나는 이거 왜 공부한 거지? 단순한 학부과정이면 내가 이렇게까지 기억하고 있나?

 

복잡해. 생각이 늘어났더니 머리가 아파.’

 

그가 아픈 관자놀이를 문지르며 방에 들어가 침대에 눕고 몇 초가 지났을 때쯤, 사령관이 그의 방으로 편지를 한 장 보냈다. 놀이방으로 가던 LRL의 편에 맡겨서 말이다.

 

“두 번째 권속! 사이클롭스 프린세스께서 너에게 친히 편지를 갖고 왔노라!”

 

“네, 감사드립니다. 그런데 이것은 누가 보낸 것인가요?”

 

“첫 번째 권속이니라. 두 번째 권속에게 전해야하는 말이라며 지금은 상황이 급하니 이 편지를 읽고 자신에게 알려달라고 했다.”

 

“알겠어요. 편지 전해주느라 고생 많았으니 안에서 참치 하나 먹고 가요.”

 

“우, 우와 참치...! 으윽!

 

에헴, 너의 성의 사양하지 않겠다!”

 

말은 그리했어도 참치가 그렇게 좋았던지 LRL은 순식간에 그의 방으로 들어갔다. 그녀의 모습을 보며 웃던 리마토르는 사령관이 보낸 친서를 뜯고 글을 한 줄씩 읽어내려갔다.

 

‘친애하는 리마토르 연구원님께.

 

간밤에 무탈하셨는지요, 브라우니의 공격으로부터 보호해드리지 못한 저의 실책에 고개 숙여 사과를 드립니다. 해당 브라우니가 있던 부대는 마리 소장을 파견하여 친히 지도하도록 하였으니 노여움을 조금이나마 누그러뜨리시길 바라겠습니다.’

 

“아이고... 그 브라우니가 누군지는 몰라도 제 명에 죽지는 못하겠구만.”

 

브라우니의 슬픈 앞날에 잠시 애도를 표한 리마토르는 다시 편지로 눈을 돌렸다.

 

‘합류하신 이후로 저희 측에 꾸준히 철학 강의를 제공해주심에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덕분에 오르카호에 교양이 꽃 피고 있습니다.

 

강연의 질과 개인적인 연구, 그리고 저희가 간간히 의뢰드릴 일에 대해서도 더욱 확실한 처리를 위하여 저희 측에서 연구실을 제공해드리고자 합니다.

 

다음 달에 개교할 오르카 종합대학의 인문사회대학 교수로 취임하셔서 강연과 연구를 맡아주시길 오르카호를 대표하는 입장에서 부탁드리겠습니다. 저희 측에서 가능한 최대한의 지원을 해드릴 테니 꼭 수락하여 주시길 부탁드리겠습니다.’

 

“이것 참... 교수직이라니... 멸망 전에는 박사까지 달아도 밥 한끼 못 빌어먹었던 것에 비하면 정말이지 꿈만 같은 지위네.”

 

사령관의 질문에 리마토르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대체 사령관은 자신이 어떤 부분에서 마음에 들어 이런 직책까지 내려주는 것일까. 그 문제를 고민하던 그는 사령관이 브라우니를 시켜 자신을 공격함으로써 공포를 심어주었으니, 이제 회유책을 제시해 자신을 구워삶으려 한다고 판단했다.

 

“당근과 채찍 방법이라니, 괜히 이 거대한 군대를 혼자 지휘하는 게 아니었어.”

 

그는 사령관의 용인술에서는 한 치의 방심도 보여서는 안 되곘다고 생각하며 답장을 준비했다. 그 사이 참치캔 하나를 다 먹은 LRL이 하나만 가져가면 안 되냐고 묻길래 그는 참치캔 5개를 그녀의 손에 쥐어주고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LRL은 순수한 미소를 지으면서 놀이방으로 뛰어갔다. 그 모습에 리마토르는 순간적으로 자신의 과거에 있었던 어떤 여자아이를 겹쳐보았다. 파편화된 기억이 자신의 목을 찌르기 시작함을 깨달은 그는 닥터에게 부탁해서 약물이라도 투여해야겠다고 생각하며 답장 작성을 계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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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일주일만에 다음편 들고 오는데 성공했다. 다음에도 일주일 안에 다음 편을 가져올 수 있도록 노력할게.


리마토르가 기억을 조금씩 되찾기 시작하고, 오르카 대학의 교수로 취임하면서 내가 생각한 이야기의 50%까지는 진행이 되었어. 남은 절반은 리마토르의 정체와 그로 인한 오르카호 내부의 혼란을 주된 이야기로 다룰 생각이야. 물론 그 과정에 철학이 핵심적으로 개입하겠지.


반환점에 도달했다고 하더라도 이야기 진행에는 아직 여유가 있어. 그러니 혹시라도 리마토르와의 철학 대담을 보고 싶은 바이오로이드가 있으면 댓글로 남겨주길 부탁할게. 내가 한 번 생각해보고 가능하면 쓸 수 있도록 노력할 테니, 혹시 소재까지 있으면 같이 적어주길 부탁할게.


1만자가 넘는 길고 불편한 글을 읽어주는 모든 이에게 감사의 인사를 올린다. 다들 좋은 하루 보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