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리스의 아침은 빠르다.


남자를 경호하는 날은 그보다 일찍 일어나서 준비하고, 경호를 하지 않는 날에는 경호팀의 리더로서 일찍 일어나야 한다.


오늘은 경호 근무를 쉬는 날이기에, 그녀는 대기실로 경호팀을 집합시켰다.


"…총원, 이상 무."


인원 보고가 끝나자 리리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주 근무 계획표는 다들 전송했으니까 지각 없이 지킬 수 있도록 하세요."


"네."


리리스가 이끄는 경호팀은 저항군 총사령관인 남자를 주인으로 둔 경호 부대였다. 경호실장으로서 그녀는 남자의 모든 경호 계획을 총괄하고, 그의 동선을 파악하며, 호신술 등을 가르치는 막중한 임무를 맡고 있었다.


"펜리르. 새벽 동안 주인님께 별일 없었니?"


"아, 간밤에 주인님 방에 들어오려는 침입자들이 있었어."


펜리르는 하품하며 대답했다. 밤새도록 남자의 방 앞을 지키고 있던 탓이었다.


"…쫓아냈겠죠?"


"당연하지. 주인님이 자고 있는데, 리스트에도 없었던 녀석들이 들어가려고 했으니까. …나한테 수면 가스를 쓰려길래 한대 패 줬어."


리리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늑대 유전자의 영향으로 야생 소녀 같았던 펜리르도 이젠 어엿한 경호원으로 자리잡아 믿음직스러웠다.


"잘했어. 계속 말하지만, 주인님께서 주무시는 동안 다른 대원들이 함부로 들어가는 일은 막아야 해요. 알겠죠, 다들?"


"네!"


"남들이 욕해도 주인님께서 편히 쉴 수 있게 해드리는 게 저희 임무랍니다."


리리스는 다음으로 경호팀 멤버들의 상태를 점검했다. 경호팀은 총사령관을 가장 가까이서 지키는 만큼 용모도 단정해야 되었다. 그것이 리리스의 철칙이었다.


"포이, 손톱 자르랬지? 벌금 1참치."


"켁."


그녀는 외모 불량 뿐만 아니라 무기 손질 여부도 살폈다. 아무리 저항군 본부가 잠수함이라 해도, 언제 어디서 무엇이 주인님을 위협할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치코, 총신이 좀 더러운 거 같은데. 사격 훈련하고 제대로 안 닦았어요?"


"죄송해요. 어저께 주방을 돕느라 깜박했어요."


"요리도 중요하지만, 할 일은 하고 배워야죠. 그러다 총이 발사라도 안 되면 어쩌려고. 하치코는 2 참치."


"히잉."


벌금으로 모은 참치캔은 경호팀의 회식이나 행사, 혹은 팀원들을 돕기 위해 사용된다.


검사가 끝나면 전파 사항을 전달하고 구호를 외치는 것이 조회의 마지막 절차였다.


"주인님을 가장 마지막까지 가장 곁에서 지킨다. 주인님의 안전이 오르카의 안보다!"


리리스가 힘주어 말하자 모두들 따라서 외쳤다.


경호 근무나 다른 임무가 없는 자매들은 아침을 먹고 모두 훈련에 참가한다. 예외라고 한다면 병이 들었거나 펜리르처럼 밤새워서 근무한 인원 정도였다.


경호팀의 훈련은 대체로 사격 및 백병전과 모의 경호 연습 등으로 이루어진다.


백병전 훈련은 부상을 피하기 위한 안전 조치 외엔 거의 실전을 방불케 하는 모습이었다.


"프리가! 좀 더 유연하게 싸우세요. 타격을 정면으로 맞서는 대신 받아 내서 흘리도록!"


리리스가 지적하자, 포이와 맞서던 프리가는 거친 호흡을 뒤로 하고 대답했다.


"네!"


말은 쉽지만 포이의 맹렬하고도 집요한 공격을 모두 흘려 내기란 지극히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포이 특유의 자유분방한 전투 방식이 정면 힘 대결을 좋아하는 프리가에겐 불리한 것이다.


"포이, 너도 전투에만 신경쓰면 안돼. 제일 중요한 건 대상의 경호야. 아무리 잘 싸워도 주인님이 다치면 끝장이니까."


"알았어."


평소에는 자매들을 잘 챙겨주는 리리스도, 훈련에서는 엄격하기 그지없었다. 앞으로 어떤 강적이 나타날지 모르는 일인 것이다.


물론 거기에는 리리스 본인도 예외가 아니었다.


CS 페로와 금란 S7, 스노우 페더가 합세해서 리리스를 쉴 새 없이 몰아붙였다. 그녀들의 연계 공격은 리리스도 마냥 가볍게 볼 수 없는 것이었다.


페더의 나무 표창이 리리스를 향해 잇달아 쇄도했다. 리리스는 동체 시력과 날랜 몸놀림으로 모두 피해냈다.


"정확한 공격들이야."


페로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리리스를 후려 갈겼다. 목제 클로가 피하기 힘든 궤도로 엄습했다. 


"하지만 연계가 정확한 만큼 피하기도 쉽지."


리리스는 페로에게 카운터 펀치를 날렸다.


"헛."


턱이 주먹에 닿은 페로는 놀라서 물러섰다. 주먹에 힘이 실리진 않았지만 실전이라면 여기서 무력화 되었을 것이다. 리리스에겐 그만한 파워가 있었다.


뜻밖의 반격을 본 페더도 잠깐 멈칫하는 사이, 바로 튀어나간 리리스는 손날을 페더의 목젖에 갖다 대었다.


"돌발 상황에서 머뭇거리는 습관을 고쳐야 해. 경호 중엔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까."


리리스가 조언하는 동안에 금란이 기습적으로 목검을 베어 왔다. 리리스는 급히 몸을 비틀어 피한 다음 뒤차기를 날렸다. 금란은 멈칫하고 물러났다.


"좋은 시도였어요, 금란 양."


"과찬입니다."


훈련을 마치고 서로 평가하는 자리에서 리리스는 금란과 포이를 칭찬해 주었다.


"실전에서 비겁한 건 없어요. 경호 중에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까. 물론, 제일 중요한 건 이기는 것보다 주인님을 지키는 것. 그리고 싸울 상황을 아예 차단하는 것. 알았죠?"


"네!"


한바탕 스트레스를 푼 자매들은 모두 힘차게 대답했다.


이런 단체 훈련 뒤에 근무가 없는 자매들은 각자 자율적으로 훈련하거나 개인 정비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오후가 되자 리리스는 특별 훈련을 위해 VR 체험실로 향했다. 보병대장인 불굴의 마리 장군과 모의전을 치르려는 것이다.


"기다리게 해서 죄송해요, 마리 씨."


"아니, 나도 방금 왔네."


저항군은 전투력 증진을 위해 서로 다른 소속끼리 대결하는 정책이 있었다. 상호 교류가 많아질수록 대원들의 실력이 높아지리란 남자의 판단이었다.


그리고 대원들의 뛰어난 전과는 남자의 생각이 옳았음을 입증했다.


리리스 역시 그 뜻에 따라서 타 부대의 강자들과 대결을 주저하지 않았다.


최강 경호원이 되기 위해 쉴 틈 없이 노력하는 것이다.


견학하러 온 대원들이 구경하는 가운데, 둘은 가상현실 모의전 시뮬레이션을 설정했다. 저항군 핵심 전력인 그녀들이 실제로 싸우다간 다칠 염려가 컸기 때문이다.


해당 가상현실 시뮬레이션은 과거 수차례 문제를 일으킨 적이 있었으므로, 모의전에서만 제한적으로 쓸 수 있었다.


이번의 전투 시뮬레이션은 과거 블랙 리리스들과 불굴의 마리들이 서로 죽고 죽이던 시나리오의 재현이었다.


둘이 HMD를 쓰자 전신이 붕 뜨는 기묘한 감각이 느껴지고, 다음 순간 전혀 다른 세상 - 가상 현실 속으로 들어왔다. 한두번 겪은 일이 아닌데도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 과정이다.


정상적으로 접속했음을 확인한 둘은 긴말할 것 없이 싸우기 시작했다.


에너지 빔을 쏘는 구체형 드론 "주시자의 눈"들이 사방에서 리리스를 조준했다. 모두 마리가 초능력으로 원격 조종하는 것이었다.


"가라, 비홀더!"


마리의 외침에 리리스는 그녀의 무장인 보호막 역장을 전개하여 에너지 빔들을 모두 막아냈다.


시뮬레이션은 빔의 위력 뿐만 아니라 핵무기도 막는 보호막까지 실제처럼 충실히 구현해 주었다. 덕분에 리리스는 빔을 막고서 바로 마리에게 반격할 수 있었다.


리리스의 쌍권총이 연달아 불을 뿜었다. 그러자 마리도 긴장하며 리리스를 피해 다녔다. 그녀가 아무리 군격투술의 달인이라고 해도 근접전에선 리리스가 더 유리했으니 당연한 전술이었다.


그리하여 마리가 자꾸 뒤로 빠지는 사이 전방위 사격이 빗발쳤다. 리리스의 보호막이 빔을 잘 막아냈지만, 시간을 끌어서 좋을 건 없었다. 마리의 드론은 리리스의 빈틈을 노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칫."


백전노장답게 마리의 전술은 뛰어났다.


빔을 피하고 반격하면 한발 늦고, 마리 본인은 계속 몸을 빼는 중이었다. 어쩌다 접근해도 마리는 만만치 않게 뿌리쳤다. 리리스는 이대론 결판이 나지 않는다고 판단해 드론부터 공격하기로 결정했다.


"거기냐!"


리리스는 빔을 피하는 대신 정면으로 막는 동시에 드론 하나를 쏘아 박살냈다.


드론이 사격을 위해 멈추는 찰나의 순간을 노린 전술이었다.


그녀는 이어서 두번째 드론도 파괴했지만, 등 뒤에서 날아온 빔이 허리를 스쳤다.


"칫."


리리스는 이를 악물었다. 아무리 가상 현실 속이라지만 주인님이 아닌 자의 공격을 당하니 기분이 가라앉았다.


그녀는 계속 드론을 파괴했다. 물론 마리 자체를 노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결국 얼마 지나지 않아 마리의 드론은 두어 개만이 남고, 본인 역시 총상을 입었다. 리리스가 살을 주고 뼈를 치는 전술로 나오니 속수무책이었다. 더욱이, 드론이 모두 격추되면 맨손인 마리는 총을 가진 리리스에게 불리해질 터였다.


하지만, 그때는 리리스도 상태가 성치 못했다. 크고 작은 상처는 물론, 어깨 한쪽이 꿰뚫려 쓰지 못할 만큼 전투력이 떨어져버린 것이었다. 시스템에서도 체력 저하를 경고했다.


백중세가 된 둘은 잠시 대치하다가, 무언의 합의 하에 서로 최후의 일격을 날렸다.


리리스가 지그재그로 돌진하며 쏜 총알들이 마리의 가슴에 파고든 동시에, 마리가 유도한 빔 역시 리리스의 복부와 허벅지를 뚫었다.


순간, 시스템에선 양측 다 전투 불능 판정을 내리며 시뮬레이션 종료를 선언했다. 이윽고 리리스와 마리는 짧게 비명을 지르며 가상현실에서 벗어났다.


"으앗."


그녀들은 HMD를 벗고 잠시 서로 마주보았다.


정말이지, 실제로 피를 흘리고 싸운 것만 같았다.


"…더 하겠나?"


리리스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저야 좋죠."


이상한 느낌도 잠시, 리리스는 전투로 맛본 흥분을 떠올리고 미소지었다. 싸움이라면 언제나 피가 끓는 그녀였다. 이는 마리도 별반 다르지 않은 듯했다.


그렇게 가상현실 속에서의 대련을 원없이 마치고 나니 벌써 늦은 오후가 되었다. 견학 온 인원들도 대부분 떠난 참이었다.


"마리 씨. 오랜만에 커피 한잔 하시겠어요?"


돌아오는 길에 리리스가 권했다. 자신과 주거니 받거니 대등한 싸움을 펼친 상대에 대한 경의의 표시였다.


물론, 경호실장으로서 다른 부대의 지휘관들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할 필요도 있었다. 그녀는 남자를 모시면서 인간 관계(정치)의 필요성을 배운 것이었다.


"좋지."


커피를 좋아하는 마리답게 흔쾌히 수락했다.


"동생들이 루왁 커피란 걸 구해 왔거든요, 후후."


"루왁? 음… 혹시 여기서 직접 제조한 건 아니겠지."


반쯤 걱정섞인 말에 리리스는 웃었다. 고양이 유전자가 섞인 동생 페로와 포이를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아하하, 마리 씨도 참."


"농담이야."


"알아요."


"후후. 내 부하들은 내가 농담만 해도 긴장한단 말이지. 음…."


부하들이 왜 농담을 받아주지 못하는지, 장군인 마리는 이해하기 쉽지 않을 것이었다.


리리스가 티타임을 마치고 휴게실에 돌아와 보니 마침 펜리르가 나오는 참이었다.


"언니 왔어?"


눈을 비비며 하품하는 펜리르를 보자 리리스는 눈을 가늘게 떴다.


"펜리르 너… 오침한다고 하루종일 잔거 아니지?"


"아, 아니야!"


"아니긴 뭐가 아닙니까."


휴게실에서 쉬던 페로가 얄밉게 거들었다.


리리스는 평상복으로 갈아입고 잠시 느긋한 시간을 보냈다. 저녁 먹고 다른 업무를 처리하기 전에 마음 편히 지내는 한때였다.


집착이 강한 그녀답게 쉬는 때에도 문득 주인님이 걱정되었지만, 자매들이 잘 지키고 있으리라 생각하니 다소 안심이 되었다.


"야, 그만 가져가. 살찐다며?"


펜리르는 페로 때문에 감자칩이 빠르게 줄자 따졌다.


"쪼잔하게 먹는 거 갖고 그럽니까, 훗."


"이 자식…."


"다녀왔습니다. 하치코 배고파요."


이윽고 저녁 시간이 되자 다른 동생들도 하나둘 돌아왔다.


"얘들아, 식사하러 가자."


리리스는 자매들을 데리고 식당으로 향했다. 그녀들이 반드시 같이 먹어야 한다는 법은 없었지만, 가능하면 한자리에 모여서 먹는 게 컴패니언의 원칙이었다.


"언니. 오늘 메뉴는 뭘까요?"


하치코가 혀를 내밀며 잔뜩 기대했다.


"글쎄? 언니도 봐 두지 않았는데. 참, 하치코는 간식 너무 많이 먹진 않았죠?"


"그럼요. 파이 하나만 먹었어요."


육식성인 포이와 펜리르가 입맛을 다셨다.


"고기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맨날 먹으면서 새삼스럽게 찾기는."


페로가 또 태클을 걸자, 둘이 입을 내밀었다.


"그러는 자기는 제일 많이 먹으면서."


모두 여느 때의 풍경이었다. 어쩐지 흐뭇해진 리리스는 살짝 미소를 띠었다.


"후후후…."


"리리스 언니. 무슨 좋은 일 있으세요?" 스노우 페더가 고개를 기울이며 미소지었다.


"아니, 그냥."


이런 사소한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지, 리리스는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이런 평범한 일상이야말로 행복이란 것도 배웠다.


그녀가 모시는 남자가 아니었다면 이런 행복을 누리지 못했으리란 것도 알고 있었다.


그가 나타나기 전엔, 모두들 살아남기도 버거웠으니까.


그러니까, 그런 은혜를 갚기 위해서라도, 주인님을 반드시 지켜내리라.


리리스에겐 언제나 그 생각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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