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 모음집 



“벌써 어린이날이네.”

 

“그게 뭐에요?”

 

달력을 보던 리마토르의 말에 하르페이아는 이해를 못하고 되물었다. 그녀의 질문에 리마토르는 장난치는 건가 싶어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았으나 이내 그녀가 장난칠 성격도 아니었다고 판단하고 설명해주었다.

 

“1922년에 소파 방정환이라는 분께서 어린 아이들의 권리를 신장시키기 위해 만든 날입니다. 그 이전까지는 어린 아이들을 부르는 호칭이 ‘애’ 또는 이름 내지 욕설이었고 목욕이나 이발 같은 것도 잘 시켜주지 않았다고 합니다. LRL 정도의 어린 아이들이 공장에 나가 성인과 똑같은 노동을 하는 것이 일반 상식으로 여겨질 정도로 아이들의 권리는 지켜지지 않았다는 것이죠.

 

소파 방정환 선생께서는 티 없이 맑고 순수하며 마음껏 뛰어노는 아이들의 모습을 이상향으로 여겼다고 합니다. 그래서 어리지만 어른처럼 존중받을 사람이라는 뜻에서 ‘어린이’라는 말을 만들었고, 어린이들의 권리를 하루만이라도 지키자는 생각에서 5월 1일을 어린이날로 제정했습니다.

 

방정환 선생은 천도교를 이끌던 손병희 교주의 사위였기에 천도교의 조직적인 도움을 받아 어린이날을 전국으로 퍼뜨렸습니다. 그 결과 더 많은 사람들이 어린이날에 참여할 수 있도록 5월 첫째 일요일로 날짜를 변경하고 어린이날 행사를 이끌었었죠. 광복 이후 어린이날은 5월 5일로 고정되었고, 아동복지법에 명문화됨에 따라 대한민국의 법정공휴일이 되었습니다. 아이들의 권리를 생각하는 날을 국가가 공식적으로 인정했던 겁니다.”

 

리마토르의 설명을 듣던 하르페이아는 놀랍다는 투로 말했다.

 

“그거 놀랍네요. 그런 날이 있는 줄도 몰랐어요.”

 

“기업전쟁을 거치며 사회는 국가 주도 복지를 폐지한 완전 자본주의로 바뀌었을 겁니다. 그러니 아이들의 권리를 지켜줄 필요도 없어졌던 것이죠. 효율성을 주장하는 자본주의 논리에 따르면, 아이들을 지원해줄 돈으로 바이오로이드를 하나라도 더 연구하는 것이 효율적이었을 테니까요.”

 

“씁쓸한 일이네요... 자본주의가 사람을 부품화했다니...”

 

“독일에서는 이를 가리켜 야수 자본주의로 일컫기도 했다고 들었습니다. 자본주의가 야수처럼 사람을 공격한다는 것이죠. 야수의 공격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방호 체계를 갖출 수 있을 정도의 부자가 되어야 하고요. 이런 논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여졌던 곳이 멸망 이전 사회입니다. 그러니 야수에게서 가장 취약한 어린이의 권리가 무너진 것은 불가피했죠.

 

한 가지 생각해볼 점은 자본주의의 창시자인 애덤 스미스는 이런 야수 자본주의에 반대했다는 것입니다. 그의 저서 <국부론>에는 이런 말이 나와요.

 

‘국민 대부분이 가난하고 비참하게 사는데 그 나라가 부유하다고 말할 수 없다.’

 

애덤 스미스가 살았던 시기는 귀족이라는 이유로 수많은 재산을 차지하고 빈부격차가 심하게 벌어졌던 시대였습니다. 그렇기에 귀족이냐 아니냐의 기준으로 출발선에 서는 걸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자본을 얻기 위한 경쟁에 뛰어들 수 있도록 하면 가난한 사람들도 부를 가질 수 있다고 주장한 것이죠.

 

이 논리가 극대화되었다는 사실은 애덤 스미스의 예상 밖이었을 것입니다. 아마 그 사실을 알았으면 자신의 주장을 심각하게 재고했겠죠.”

 

그의 말을 묵묵히 듣던 하르페이아는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눈을 빛냈다.

 

“의도와는 달리 얼마든지 굴절되고 바뀔 수 있다는 뜻이군요. 이래서 인문학은 생각하는 재미가 있어요.”

 

“글쎄요, 그건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몫이죠.”

 

리마토르는 그렇게 말하더니 연구 공책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르페이아는 급히 강의 계획서를 찾아보며 자신이 혹시 시간표 공지를 잘못한 것이 우려했으나 계획서에는 이상이 없었다. 그녀의 반응을 본 리마토르는 걱정말라며 설명해주었다.

 

“정규 강의는 아닙니다. 어린이날이기도 하니 오르카호의 어린이들에게 가벼운 강의를 해줄까 싶어서요.”

 

“아아, 알겠어요. 그런데 아이들에게 무슨 강의를 해주시려고 하시나요? 아이들을 위한 강의 주제가 뭐가 있더라...”

 

교양을 표방하며 쉬운 인문학 강의를 지향한다고는 해도 리마토르의 강의는 성인이 주 대상이었기에 아이들에게 어려운 감이 없잖아 있었다. 그 점을 하르페이아는 물론이요, 리마토르 본인도 알고 있었기에 그는 이번 강의에서는 인문학을 다루지 않을 생각이었다.

 

“인문학 강의는 아닙니다. 단지 꼰대로서 해주고 싶은 말이죠.”

 

“네?”

 

“궁금하면 와서 들어보시죠. 사탕과 초콜릿 잔뜩 챙겨서 들고 오세요.”

 

리마토르는 그리 말하고 방 밖으로 나갔다. 그가 나가는 모습을 본 하르페이아는 황급히 사탕과 초콜릿을 종이가방에 담더니 급히 그의 뒤를 쫓았다.

 

둘은 연구실에서 잠시 걸어 아이들의 놀이방으로 왔다. 리마토르가 가는 길에 보속의 마리아에게 연락을 걸어 특강이 있을 거라 예고를 했기에 아이들은 놀라지 않고 각자 자리에 앉아있었다. 그러나 거기까지가 리마토르의 예상 범위였다. 그는 아이들이 자신이 속한 부대에 그 이야기를 할 거라는 생각은 미처 하지 못했고, 그가 놀이방으로 가는 그 잠깐의 사이에 퍼져나간 정보는 예상 밖의 바이오로이드들을 놀이방으로 불렀다. 그 광경을 목도한 그는 당황한 기색을 감출 수 없었다.

 

“반갑습니다 여러분...?”

 

“어서 오세요, 교수님!”

 

변성기가 오지 않은 아이들의 맑은 목소리에 섞이는 성숙한 성인의 목소리에 뒤따라오던 하르페이아도 당황했다. 그리 넓지 않은 놀이방에는 LRL, 코코, 알비스, 안드바리, 에밀리, 더치걸을 비롯해 시스터즈 오브 발할라 소속의 발키리, 님프, 그렘린이 같이 자리에 앉아있었다. 캐노니언의 로열 아스널과 비스트 헌터, 레이븐도 옆자리에 앉아있었으며, 왠지 모르겠으나 안드바리와 똑같은 노란 유치원생 복장을 입은 오베로니아 레아와 불안한 표정의 시저스 리제도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오늘이 참관학습인 줄은 미처 몰랐군요. 이럴 줄 알았으면 강의실로 여러분을 부를 걸 그랬나 봅니다.”

 

“아니랍니다, 어린이가 있어야 할 공간에 있는 것이 맞죠!”

 

레아가 부담스러울 정도로 당당하게 말하자 리마토르는 순간적으로 할 말을 잃어버렸다. 그러나 자신이 그랬다는 상태를 간파하기라도 했는지, 시저스 리제가 그러지 말아달라고 손으로 x를 그리고 고개를 좌우로 도리도리하자 그는 가까스로 어색한 분위기를 피해 말을 꺼냈다.

 

“예, 그렇기는 하죠.

 

오늘 제가 여러분께 특별 강의를 하겠다고 말씀드린 것은 오늘이 어린이날이기 때문입니다. 기업전쟁 이전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에서 어린 아이들의 인권을 신장시키기 위해 제정된 날이었죠.

 

그 점에서 착안하여, 과연 전쟁 이후 우리 오르카호의 어린이들이 어떤 사회에서 어떤 어른으로 성장해야하는가를 꼰대의 입장에서 말씀드리고자 했습니다. 제가 평소에 다루는 인문학적인 주제는 나오지 않으니 편안하게 들으셔도 됩니다.”

 

“네!”

 

알비스가 앞에서 큰소리로 대답하자 발키리는 리마토르의 눈치를 살피며 알비스에게 목소리를 낮추라고 주의를 주었다. 그 모습을 본 리마토르는 일부러 적극적인 참여를 부탁한다고 말한 뒤 강의를 시작했다.

 

“멸망 이전 노암 촘스키라는 철학자가 제안한 두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플라톤의 문제로, 어떻게 인간은 제한된 경험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성과를 내는가를 묻는 것이었죠. 어린 아이들이 언어를 단기간에 습득하는 것에 대한 문제였습니다.

 

두 번째는 오웰의 문제였습니다. 왜 인간은 경험을 많이 겪으면서도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는가를 묻는 것이었죠. 정치사회적인 문제가 왜 되풀이되는가를 탐구하는 문제였습니다.

 

이 두 개의 질문이 모두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는 것은 인간에게 있어 교육이 어떤 역할을 하는가입니다. 어린 아이가 올바른 어른이 자라나고, 어른이 되어서도 잘못된 일을 계속 겪지 않도록 바로잡는 것이 교육의 역할이죠.

 

그런데 멸망 이전의 사회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멸망 이전의 사회는 인간을 자본주의의 부품으로 여겼죠. 신자유주의에 기반한 경쟁을 당연하게 받아들였기에 경쟁에서 살아남지 못하거나, 성과를 내지 못하는 인간이 도태되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습니다. 이런 교육은 뛰어난 성과를 낼 수 있었지만 인간의 본질을 파괴했습니다. 뛰어난 능력을 갖추고 있다는 증명서로 볼 수 있는 학벌을 취득하는데 실패했다고 자살까지 벌어지는 일이 비일비재했기에 이런 교육은 대단히 논란이 되었습니다.

 

이에 맞서 대안으로 제시된 것이 연대 교육이었습니다. 경쟁이 아닌 협동에 초점을 맞추어 결과보다 과정을 중시한 것이죠. 뛰어난 결과를 내지 못하더라도 과정에서 얻은 것이 있으면 두 번째 시도에서는 나아질 것이라는 믿음 하에 시작된 것입니다. 이런 교육은 신자유주의 교육의 문제점을 해결하는데 탁월한 효과를 보였으나, 사람들이 교육을 통해 스스로를 계발하는 걸 소홀히 여겨 사회 발전이 지체되었다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저는 이 두 가지 교육 방안 중에 후자를 선호합니다. 전자의 방식을 채택하면 개별적 인간이 사회 발전을 위해 자원으로 쓰인다는 것을 긍정하게 되거든요. 그렇게 되면 행복과는 멀어지게 되겠죠? 교육의 본질이 각자의 소양에 기초하여 인격을 형성해가는 정신적 훈련인 도야(陶冶)의 과정임을 생각해보면, 좋은 인간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교육 과정을 더 중시해야겠죠.

 

그래서 저는 오르카호의 어린이 여러분이 좋은 어른이 되기를 바랍니다. 아는 것이 부족하거나, 다른 사람보다 성능이 떨어진다고 해서 여러분은 실패한 게 아니에요. 오늘도 살아있고, 내일은 더 나아질 거고, 지금보다 더 성숙한 내면을 가진 어른이 될 것이기에 여러분은 오늘을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거랍니다.

 

독일의 Grundschule라는 초등학교는 교육에서 중요한 철학을 내세우고 있었습니다. 어린이의 삶은 아이를 이루는 주변 환경과 아이가 겪는 경험세계에서 출발하는 것이기에, 어린이의 능력이 압박과 강요 없이 발달할 수 있는 순수한 공간을 학교의 이상이라고 가리킨 것이지요.

 

오르카 종합대학 인문사회대학 학장으로서, 한 명의 철학자로서 여러분이 올바른 어른이 되어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도록 교육에 대한 연구도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다들 어려운 내용 들어주어서 고맙습니다.”

 

짧지만 묵직한 질문을 던지는 강의가 끝나자 그의 말을 듣던 모두가 박수를 쳤다. 하르페이아는 자신이 전에 읽었던 헤르만 헤세의 <수레바퀴 아래서>라는 책에서 보였던 교육의 모습과 그가 말한 교육의 방향을 비교해보며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그 와중에 그의 강의를 듣고 인지부조화가 온 이도 있었다.

 

“그러니까 레아는 아가지만 성숙한 어른이... 아니, 그게 아니라 계속 아가인채로... 아니, 그게 아니라 이미 아가이기 때문에 어른이 될 이유는...”

 

리제는 직감적으로 불길함을 느끼고 슬금슬금 자리를 피했지만 레아가 무의식적으로 일으킨 번개를 피하지는 못했다. 행복을 고민하던 시간에서, 홀로 번개에 그슬린 리제는 눈물 흘리며 외쳤다.


"햇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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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날이 끝나기 전에 급히 한 편 투척. 최근에 들었던 교육학 강의에서 교수님이 인상깊은 말씀을 하길래 거기에 착안해서 한 번 써봤어. 신청받은 내용도 오늘 내로 올라올 거야. 이번 에피소드는 주관적으로 해석될 여지가 많은 것이라 일부러 노암 촘스키의 문제 외에는 색깔을 칠하지 않았어. 직접 읽으면서 나름대로 판단을 내리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아.


모두 행복한 하루 보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