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 태양이 하늘 위에서 밝게 빛나고 푸르게 자라난 식물들과 햇볓에 비춰 아름다운 빛을 내는 호수가 있는 기억의 방주

가 아닌 누가 맞아도 차가울 것 같은 바람과 진짜 햇빛에 반사되어 눈이 아플정도로 보기 힘든 새하얀 눈

푸른색이라고는 듬성듬성하게 나 있지만 호수보다도 푸른 바다가 반겨주는 기억의 방주 바깥, 스발바르 제도.


매일같이 입고 있던 데이트 룩이나 평범한 반 팔과 반 바지차림이 아닌 완전 무장이라도 한 듯이 따듯하게 껴입은 사령관과

조금은 추워보이는 세이렌이 이제는 져가는 해를 보면서 아직도 형체를 유지하고 있는 나무 벤치에 몸을 기대고 있었던 때,

그가 갑작스레 옆에 앉아있던 세이렌에게 말을 꺼냈다.


"..네? 방금 뭐라고 하셨나요?"


하지만 세이렌은 갑작스러운 그의 사과를 제대로 듣지 못 했는지, 아니면 듣고도 모르는 척을 한 것인지는 몰라도 고갤 갸웃거리면서 대답했다.

세이렌의 미온적인 반응에 그는 잡고있던 세이렌의 손을 더욱 강하게 잡으며 말했다.


"내가.. 미안해. 세이렌."


이제는 모르는 척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제대로 들린 미안하다는 말.

무언가가 두려운 것인지 잡은 손을 떨면서 말하자 떨리고 있는 손 위로 세이렌이 반대 쪽의 손을 올리며 말했다.


"무슨 일이라도 있으셨나요? 혹시 오늘 데이트가.."


손을 올리며 말하는 세이렌의 표정은 어딘가가 침울해보였다.

..이번 데이트 공모전은 우연하게도 사령관과 함께 카페에서 많은 시간을 가졌던 세이렌이 뽑혔다.

지금 날이 완전히 풀리지 않아 아직은 추운 이 날씨에도 이곳에 있는 것은 모두 세이렌의 플랜 대로였다.


기억의 방주 내에서 하는 일들이 아닌 함께 시간을 보냈던 오르카와 새로운 활동지역인 스발바르 제도 그 자체를 여행하는 플랜

그리고 지금 밖에 볼 수 없는 태양을 보며 함께 마지막 시간을 장식하는 것까지 전부.


세이렌은 혹시라도 자신의 플랜이 사령관에게는 지루했을까봐 떨리는 손을 잡으며 자신도 떨려하고 있었다.

미리 사과를 하고 말하려고 했던 자신보다도 더욱 두려워하는 세이렌을 보자 긴장이 풀려버린 사령관은

평소처럼 미소를 지어보면서 세이렌에게 말했다.


"그건 아니야. 오히려 더 좋았어."


"...그런가요! 다행이에요.. 저는 사령관님이 사과하시길래 혹시 제 데이트가 재미없으셨나해서.."


"난 세이렌과 함께하는 이 시간 모두가 행복하고 재미있었어. 그리고 발 헛디디는 세이렌이나, 허둥지둥하면서 놀라는 세이렌이나, 같이 도시락 먹자면서 행복하게 웃는 세이렌을 봐서 더 좋고."


"으으... 짖굳으셔요. 사령관님."


"사실 세이렌이 주인님이라고 불러주는 것도 좋긴 하지만말이야."


"그건.. 사령관님께서 주인님이라고 불러주시는걸 더 좋아하시는 줄 알고.."


"사실 주인님이라고 불러주는것도 좋긴 한데.. 다른 사람이 아닌 세이렌이니까."


"...자꾸 그렇게 말하시면 의식하게 되어버리잖아요."


"의식하라고 이렇게 말 하는거야."


"흐으으.."


세이렌이 부끄러워하면서 얼굴을 붉히자 사령관은 그녀의 손 사이에 있는 한 손을 빼내 세이렌의 머리 위에 올렸다.

사이에 있었기 때문일까 평소보다도 더욱 손의 온기가 잘 느껴졌고 세이렌은 올려진 손에 편안함을 느끼고 있었다.


"세이렌."


"네.. 사령관님."


"혹시.. 아니 모르면 괜찮지만 말이야. 그.."


"...말하긴 싫었지만, 저도 알고 있었어요."


세이렌이 조금 분위기를 잡으며 말했다.

아무리 귀여운 모습을 보여주고 겉으로는 어려보인다 해도 세이렌은 무기를 들고 싸우는 군인이자 무적의 용의 부관이다.

이전, 새벽에 갑작스레 함장실로 찾아온 아르망에 의해서 긴급히 지휘관급 회의가 열렸고 그곳에서 '사령관이 숨겼던 사실'을 알게 되었다.


가장 신뢰한다고 말했던 사령관이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고 자신만의 비밀로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에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분해했었지만

한편으로는 이 사실이 알려진다면 오르카를 넘어 원정을 나가있는 라비아타와 스트라이커즈, 호드 이제는 갈 곳을 잃어버려 그의 명령에 의존하고 있는 요안나와 시설의 바이오로이드들까지 위험에 빠질 수 있었기에 마음 속 한 곳에서는 납득하고 있었다.


이 사실은 지휘관급 회의에 참석한 각 중요 부대의 지휘관과 부관들만 알고 있는 기밀 사항이었다.

그런 슬픈 기밀 사항을 알고 있는 세이렌은... 분위기를 잡아가면서 말했던 것이다.


이것이 분명 쉽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누구에게 들었어."


"긴급 지휘관 회의가 열리고 나서.. 그 때 들었어요. 전 이렇게보여도 용 대장님의 부관이니까요."


세이렌이 고갤 숙이면서 말했다.

항상 밝은 모습만을 보여주었던 세이렌, 사령관의 앞에서는 울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었던 세이렌이

지금은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을 지으면서 떨고 있었다.


방금 데이트를 생각하면서 떠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의 떨림이었다.


"...미안해. 지금까지 숨기고 있어서."


"아뇨.. 전 사령관님이 이 사실을 숨겨서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만약 이 사실을 숨기지 않았다면.."


"저도 용 대장님도 대원들도 모두 슬퍼했을거에요.."


"세이렌.."


"미안해요 사령관님. 사령관님 앞에서는 이렇게 약한 모습 보여주기는 싫었는데.."


"왜 세이렌이 사과하는거야. 사과 할거면 내가.."


"알고 있어요.. 사령관님이 무슨 생각으로 가시는지.. 그러니까.. 제가.. 다른 대원들이.. 흐윽.. 우리 모두가.. 사령관님께는 미안해하고 있어요.."


울음이 섞인 목소리로 세이렌이 말하는 것과 동시에 숙였던 세이렌의 눈에서는 뜨거운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그 눈물은 새하얀 뺨을 타고 내려와 매고있던 목도리를 적시고, 땅에 떨어져 지면에 있는 새하얀 눈을 녹이고 있었다.


"저희도.. 흐윽.. 같이 가야하는데..! 사령관님만 고통받게.. 할.. 수.. 없는데에..!"


"세이렌.. 잠시.."


"사령관님 혼자서 짊어지기엔.. 너무.. 무겁잖아요..! 그러니 적어도 제가..! 제가 사령관님을 대신해서.. 가고 싶은데.."


"...내 말 들어줘. 세이렌 이건.."


"사령관님의 잘못도 아니라면서요..! 흑.. 크읍.. 제가.. 우리 모두가.. 미안해요..!"


세이렌의 분위기가 점점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그도 이미 알고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의 곁을 떠나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이미 그는 알고 있었다.

언제 볼 수 있을지도 모를 정도로 긴 시간이 흘러야만 하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도 똑같은 상황이라면 세이렌과 비슷한 반응을 보일것이라는 것도 이미 알고 있었다.


지금 느끼고 있는 세이렌의 감정은 그 누구보다도 더욱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는 행동했다.


"...진정해!! 세이렌!"


세이렌의 옆에 앉아있던 사령관은 허공을 향해 소리지르는 듯이 크게 말했다.

갑작스레 큰 소리가 들리자 세이렌은 우는 것을 멈추고 고갤 들어 그를 바라보았고

그대로 그는 세이렌을 자신의 방향으로 끌어당겨 안았다.


"사령.. 관님.."


"진정해. 그리고 내 말 먼저 들어 세이렌. 알겠지?"


"...네."


"아르망에게도 말했지만, 이건 내가 너희들을 지키러 나가는거야. 희생하러 가는게 아니야."


"하지만.."


"그리고 난 너희들에게 구해진 이후 너희들을 위해 살기로 했어. 혹시 내가 조금 아프더라도 너희들이 안전하다면.. 난 나를 버릴 수 있어."


확고한 의지가 담긴 그의 말이 세이렌의 귀에 들렸다.

세이렌은 그 말을 듣자마자 확신했다. 이미 그의 마음은 돌릴 수 없다는 것을..

이젠 이 모든것을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을.. 세이렌은 확신했다.


그렇기에 세이렌은 더욱 그의 품에 파고 들어가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품에 안긴 채로 이젠 마지막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그의 온기를 느끼면서.


그렇게... 세이렌과 사령관의 데이트는 끝나버렸다.

기쁨이 아닌 슬픔만을 남긴..


- 치직.. 주.. 지금.. 재밍이..! 마리오네트.. 접근..!


채로 끝나지는 않았다.

귓가에서 들리는 이어폰에서는 지지직거리는 기계음과 함께 알파의 다급한 목소리

그리고 재밍과 마리오네트가 접근 중이라는 소식이 들려왔다.


기억의 방주를 포함한 스발바르 제도는 이미 오르카의 관리에 넘어가 모든 섬에서 마리오네트와 철충을 포함해 적대 세력들을 없애고 있었고

북동쪽에 있는 섬을 제외하면 스발바르 제도의 대부분의 섬에서는 적대 병력들이 없어졌다는 보고를 받은 적이 있었다.


거기다 철충이면 몰라도 레모네이드 델타의 명령만을 듣고 실행하는 마리오네트들이 사령관이 무방비한 상태로 있는 것을 노리고 기습을 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하지만 그 불가능이 지금 현실로 일어나고 있었다.


"세이렌! 지금 당장.."


정보를 전해 듣자마자 그는 품에 있는 세이렌을 불렀지만.. 계속 울고 있기만 할 뿐 당장 도망가거나 싸울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거기다 세이렌은 데이트를 위해 그나마 가지고 있던 무장도 전부 해제한 상황. 


이제 그에게 남은 것은 몰려오는 마리오네트에게서 세이렌을 지키며 맞서 싸울 것인지

아니면 지원군이 이곳으로 도착할 때까지 세이렌을 데리고 도망가던지, 둘 중의 하나였다.


그가 가지고 있는 것은 작은 나이프 하나와 총 9발 밖에 없는 호신용 권총.

잠시 생각하던 그는... 행동에 나섰다.




시리?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