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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릭 발렌타인은 런던의 세인트 판크라스 역에 도착했다. 빅토리아 스타일의 붉은 벽돌건물과 유리궁전이 반반 섞인 건물은 고전적이면서 동시에 현대적인 모순점이 포스트모더니즘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좋아. 그래서 대체 여기 어디에 이터니티와 아기 도련님이 있단 거지?”

 역사내를 둘러보며 에릭 발렌타인이 말했다. 역은 좁지 않았다. 두개의 선로를 사이에 두고 양쪽에 승강장이 있는 역이 아니었다. 수많은 선로가 늘어서 있었고 덕분에 가로로 기차 한 편성이 서있어도 될 정도였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역이 커지면 커질수록 부가시설은 더욱 더 커지는 법이었다. 수많은 가게들이 늘어서 있었고 수많은 노선이 정차하는 덕분에 수많은 열차회사들이 저마다의 창구를 만들었고 그에 따라 만들어지는 수많은 플랫폼과 출입구들이 방문자를 헤메게 만들었다.

 괜히 거대한 역에는 의례 미로라는 수식어구가 따라오는 법이 아니었다. 목적지에 가는 것이라면 비교적 간단할지도 모른다. 자신이 탈 열차의 플랫폼을 찾는 것은 쉬웠다. 화살표를 따라, 팻말을 따라 가면 되는 것이니.

 그러나 역 전체를 뒤져 누군가를 찾아내야 한다는 것은 별개였다. 흔히 모래사장에서 바늘찾기라고 말한다. 그러나 바늘은 움직이지 않았고 시간은 무제한으로 주어졌다. 그러나 에릭이 찾는 이터니티는 움직이고 있었고 언제 다른 곳으로 이동할 지 모르는 일이었다.

 “그래서 에릭님, 이 단말기의 정보는 신용할 수 있는 것입니까? 이 단말에 의지해 주인님을 찾는 것은 위험성이 너무 큽니다.”

 바닐라 A1은 에릭이 들고 있는 단말을 보며 걱정스럽다는 듯 말했다. 단말의 화면에는 이곳의 지도와 현재위치, 그리고 한 점이 찍혀 있었다.

 “죽은 바이오로이드가 남긴 거야. 바닐라, 네 자매라고. 그 비참하게 죽은 바이오로이드가 만일을 위해 놔둔 거야. 그럼에도 쓸모없다고 할 수 있겠어?”

 에릭 발렌타인과 아자젤, 바닐라 A1이 토마스 고아원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모든 것이 끝난 다음이었다. 한탄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고아들은 죽은 바이오로이드를 붙잡고 울고 있었고 고아원 어디에서도 이터니티와 론 브래드버리를 찾을 수 없었던 것이었다.

 너무 늦게 소문을 들은 탓이었다. 맥칼리스터 갱단이 이터니티의 위치를 알았고 그곳을 습격했지만 토마스 고아원 소속의 바닐라 A1들에게 전멸당했다는 이야기. 그리고 그 장소에서 이터니티를 데려간 자는 아무도 없단 이야기. 추리를 할 것도 없었다. 이터니티는 분명 토마스 고아원으로 향했을 것이다.

 그 결론을 내린 시간, 이미 비니 맥칼리스터는 이터니티와 론 브래드버리를 납치한 다음이었다. 셋이 고아원에 도착했을때 없는 것도 당연했다.

 그러나 희망은 남아있었다. 마리아의 개인 물품실에 한 단말기와 메모가 남겨져 있었던 것이었다. 만일 갱단의 급습을 받아 자신이 죽고 론 브래드버리가 납치될 때를 대비한 것이었다. 그 단말을 따라 온 것이 바로 이곳, 세인트 팬크라스 역이었다.

 “함정일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상대하는 것은 괴도 뤼팽이 아닌 갱인 비니 맥칼리스터입니다. 우리와 같이 주인님을 찾는 사람들을 다른 곳으로 보내기 위한 술수일 가능성은 존재합니다.”

 “그래. 함정일 수도 있어. 그런데 방법이 있어? 함정이든 불이든 뛰어들어야 하는 상황이야. 이게 지금 우리가 가진 유일한 단서야. 그리고 그 단서는 우리를 이곳으로 안내했어. 그렇담 우린 이 단말이 진실이라 가정하고 움직일 수밖에 없는 거야. 이 단서를 무시한다면 우린 아무 정보도 없는 시절로 돌아가야 한다고.”

 에릭의 발에 바닐라 A1은 불안하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에릭의 말대로 다른 방법은 없었다.

 “그보단 정확한 론 브래드버리 님의 위치를 아는 것이 중요하겠죠. 발렌타인님, 그분은 어느쪽으로 가야 찾을 수 있는 거죠?”

 아자젤은 에릭의 옆으로 와 그가 든 단말기를 보며 말했다. 단말기의 지도는 너무 축적이 커서 현재위치와 론 브래드버리의 위치가 역과 함께 반쯤 겹쳐있을 정도였다.

 “그게 문제야. 이 단말로는 이 역에 있는 건 확실하다 나오지만 역 어디에 있는지는 알 수가 없어. 도련님을 찾기 위해서는 이 역 전체를 뒤져야해.”

 “콘스탄챠님께 연락하겠습니다. 저희 셋이 찾는 것보다 다른 자매들이 와서 찾는 것이 나을 겁니다.”

 “그게 문제가 아니야.”

 에릭은 그렇게 말하며 역사 중앙에 있는 시계를 바라보았다. 시계의 양 옆에는 열차들의 목적지와 출발시간, 도착시간이 홀로그램으로 떠있었다.

 “맥칼리스터가 이 역에 도련님을 데리고 온 이유가 뭐겠어. 생각할 것도 없어. 열차를 타기 위해서야. 놈은 쫓기고 있어. 우리만이 아니야. 맥칼리스터 갱단은 무너지고 있어. 네 자매들 덕분이지. 그렇게 되면서 경찰도, 경쟁 갱단도, 심지어는 맥칼리스터의 아래에 있던 놈들까지 죄다 맥칼리스터를 물어뜯기 위해 혈안이 되어있다고. 놈의 목적은 단 하나야. 자신에게 이 일을 시킨 벨아이아를 만나 아기를 넘기고 그 댓가를 받아 화려하게 복귀하는 것. 맥칼리스터, 그 자식은 벨아이아를 만날 절호의 장소로 가겠지. 그리고 최대한 빠르게. 놈은 가장 빨리 출발할 수 있는 열차에 탈 거야.”

 “그럼 빨리 기차를 타도록 하죠. 기차표를 세장 사오면 될까요?”

 에릭은 바닐라 A1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여기서부터 문제야. 어느 기차를 탔는가 하는 거지. 놈이 기차를 탔으면 이 단말에 움직임이 나타날 거야. 물론 이 자리에서 그 움직임을 감지하는 순간 우리는 이미 늦은 거야. 이 단말에 움직임이 나타나기 전에 우리는 맥칼리스터와 도련님이 탄 열차에 탑승해야해. 문젠 이 역은 한곳으로 향하는 열차만이 있는 곳이 아니야. 빌어먹을, 차라리 워털루 역이었으면 단순했을 거야. 그곳이라면 가는 곳은 한방향이니.”

 에릭은 초조한 듯 발을 구르며 열차 도착 안내 홀로그램을 바라보았다. 수많은 열차들의 목록이었고 수많은 도착지가 빛나고 있었다.

 “그래, 크게 두 노선이야. 미들랜드 본선과 유로스타. 핏덩어리 지옥 같으니라고. 맥칼리스터는 맨체스터 출신이야. 맨체스터로 돌아가서 자신의 근거지를 다질 셈일 수도 있어. 아니면 셰필드? 아무것도 아닌곳이지. 사람들이 적은 시골로 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

 에릭의 뒷모습을 보며 바닐라 A1는 이상하다는 표정을 짓고는 아자젤에게 물었다.

 “에릭님은 자신은 소설에서 나오는 탐정이 아니라고 매번 말하면서 결국은 추리를 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 아닌가요?”

 “정확히 말하자면 발렌타인님의 평소 일에는 이런 추리를 할 요소가 주어지지 않을 뿐이죠. 저래보여도 문학에 많이 심취했던 분이에요. 만일 세인트 판크라스 역이 아니라 바로 옆의 킹스 크로스 역에 도착했다면 일단 승강장부터 갔을 거에요.”

 “어째서요?”

 “킹스 크로스 역에는 9와 3/4 승강장이 있거든요. 발렌타인님이 어릴 적 좋아하던 소설에 나온 장소죠. 그곳을 안 가고는 못 참으실 거에요.”

 “조용, 조용!”

 에릭은 두 바이오로이드를 돌아보며 소리를 높여 말했다.

 “여기서 시끄럽게 떠드는 건 저희뿐만이 아닌 것 같습니다만.”

 바닐라 A1은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그것의 말대로 역사내에는 수많은 사람과 바이오로이드들이 있었고 그들 말고도 여러 스피커에서는 더 많은 시끄러운 소리가 울리고 있었다.

 “최소한 저 소리들은 나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잖아. 문제는 이거야. 왜 세인트 판크라스 역이지? 왜 이곳에 와야 했지?”

 “어디로 향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기차를 타기 위해서죠.”

 바닐라 A1은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그래, 당연히 그렇겠지. 이건 그런 질문이 아니야. 왜 기차를 타야 하지? 왜 굳이 기차를 타기 위해 역에 와서 도보로 이동하는 위험을 감수하는 거지? 맥칼리스터는 차를 가지고 있어. 아마도 차를 대신 운전할 기사도 데리고 있었겠지. 그리고 그 차는 방탄 차량일 거야. 열차에 비하면 훨씬 안전한 이동수단이지. 물론 차가 막힐 수도 있겠지만 만일 셰필드나 맨체스터로 이동한다고 가정하면 이곳에 와서 열차를 타는 것보다 훨씬 안전할 거야. 게다가 열차는 온다고 바로 출발할 수 있는 게 아니야. 이렇게 늦에 역에 도착한 우리가 같은 곳에 있을 수 있을 정도로 긴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고. 그 위험성을 가지면서도 굳이 역에 와야 하는 이유가 뭐지?”

 초조해진 에릭은 주먹으로 턱을 빠르게 치며 두 바이오로이드의 대답을 기다렸다.

 “기차로만 갈 수 있는 지역이 있단 겁니다. 차로는 갈 수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기차를 타야 하는 거죠.”

 “그래, 그거야.”

 아자젤의 대답에 에릭은 그것을 가리켰다.

 “맥칼리스터는 이곳에 차로는 갈 수 없는 곳을 가기 위해 도착했어. 정확히는 차로 가는 것보다 열차로 가는 것이 안전한 곳이지.”

 이번에 에릭이 가리킨 것은 도착 안내 홀로그램이었다.

 “파리. 그곳이 맥칼리스터의 행선지야. 놈은 유로스타를 타고 파리로 날아가 그곳에서 벨아이아를 만날 셈이야. 프랑스라면 스코틀랜드 야드 놈들이 건들지도 못하겠고 영국에 근거지를 둔 갱단 놈들도 쉽사리 손을 대지 못하겠지. 오히려 벨아이아를 만날 때까지 놈이 영국이 아닌 프랑스에 있을 거라곤 아무도 생각도 못하겠고.”

 “그럼 유로스타 파리행 티켓 끊어오겠습니다!”

 바닐라 A1은 급하게 개찰구로 달려갔다. 아자젤은 그것을 막지 않았지만 언짢은 듯한 표정으로 에릭에게 말했다.

 “발렌타인님. 만일 그 추리가 틀렸다면요? 전 아직 발렌타인님의 추리에 반박할 근거를 찾지 못했지만요. 다른 이유가 있어서 맥칼리스터, 그자가 셰필드나 맨체스터, 혹은 스코틀랜드로 갔다면요? 그렇게 된다면 우리는 되돌이킬 수 없게 됩니다. 아무리 달리는 고속철에서 뛰어내린다 해도 우리는 이미 떠난 열차를 따라잡을 수 없습니다.”

 “그러면 이렇게 물어보지. 아자젤. 너는 나를 믿어?”

 “아니요. 제가 믿는 것은 오직 이름을 말할 수 없는 그분 뿐입니다.”

 “아자젤이 예상과는 조금 다른 대답을 하자, 에릭은 헛기침을 하고는 다시 물었다.

 “그러면 네가 믿는 그 신이 너를 옳은 길로 인도할 것이다. 그렇게 믿어?”

 “물론입니다. 그분은 제가 원하는 방향이든 아니든 항상 그분께 옳은 방향으로 인도할 것이라 믿습니다.”

 “그러면 내 선택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든 그것은 옳은 방향으로 갈 거라는 말이겠지. 아니야?”

 에릭의 말은 아자젤의 입장에서는 조금 탐탁치 않았지만 아자젤은 그의 말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신의 뜻이라면. 그분의 뜻이라면 아자젤은 따를 뿐이었다.

 “물론입니다. 물론 발렌타인님의 말은 제가 믿는 이름을 부르는 것만으로도 저주를 받을 수 있는 그분의 뜻을 곡해하는 것이 분명합니다만 저는 제 운명에 무엇이 기다리건 그분의 뜻이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아자젤이 성스러운 표정을 짓자, 그것의 머리 위에는 헤일로가 떠오르려 했고 에릭은 남들의 시선이 그곳으로 향하기 전에 손을 휘저어 헤일로가 날아가게 했다.

 “불안함이 많이 느껴지는 말이긴 하지만 그 마음가짐이야. 믿자고. 내 추리가 옳았기를. 유로스타에 이터니티와 론 브래드버리가 안전하게 앉아있기를 바라자고.”

 “발렌타인님, 표 사왔습니다! 얼른 열차에 타러가요!”

 바닐라 A1이 표를 흔들며 달려오자 에릭은 아자젤의 어깨를 토닥이고는 바닐라 A1에게 표를 받았다.

 “그럼 이제 추리는 끝났으니 범인을 마주하러 갈 차례겠지. 부디 순순히 죄를 불길 바라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