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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코와 특별한 관계가 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봄
보랏빛 분홍빛 노란빛 꽃은 흐드러지고 얼음은 다시 강이 된다

2개월 남짓밖에 안 되는 짧은 봄.
즐겨주지 않을 수 없으니 아이들과 같이 소풍을 갔다.

꽤 오랫동안 햇빛을 잘 쐬지 않았던 나 또한 설렘의 감정이 미약하게는 있었다.



벛꽃이 흐드러진다

그 가운데 단 하나, 가진 꽃잎 없이 앙상하니 제 가지만 가진 메마른 나무.

나는 어쩐지 그 나무의 곁으로 향했다. 꽃잎이 도시락에 안 떨어지면 좋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권속! 여기로 안 오고 뭐 하는 것이냐!"

바이오로이드가 인간에게 반말을 쓰는 것은 굉장히 독특하고 드문 일이다. 주변의 시선을 끌 수도 있었지만, 우좌는 아랑곳 않았다.

그러한 순수함은, 내가 보고 싶어 마지않았던 것.

어차피 사람도 많지 않았던데다 각자 자기 가족, 자기 연인 신경쓰느라 별로 이쪽은 신경쓰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나는 어쩐지 우두커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바람에 흘러내리는 흐드러지는
벛꽃 속으로는 손이 닿지가 않는다

그래도 억지로 걸음을 떼어 놓는다


앞서나간 아이들
화사한 파스텔톤.

얼어붙은 심장,
모노톤의 두터운 나이테.

우지끈

어깨에 맨 돗자리를 고쳐맸다.



"어엉, 간다!"






돗자리는 구식의 은박.

"엑! 이게 뭐냐 권속!"

"완전 아저씨같은걸, 파파. 아저씨 맞긴 하지만."

더치가 작게 웃었다.

"에잇. 다음에는 새 거 사면 되잖아."

약간 떨어져 멀뚱히 지켜만 보던 코코를 끌어당겨서 품에 안았다.

"으으, 운전 조금 했다고 피곤하네."

"파파 요즘에는 완전 놀기만 했잖아!"

"그냥 권속이 늙어서 그런 거다!"

"윽..."

코코도 대화에 자연스럽게 끼고 함께 놀았으면 좋겠지만, 쉬운 일은 아니었다. 애초에 코코는 무기력한 모습만 계속 보였다. 그나마 한 활동이라면 더치와 우좌가 집 주변을 돌아다닐 때도 집 안에서 책만 읽은 것 정도일까.

일단 아이들과 못 어울리는 건 아니다. 코코는 저번에 우좌가 이를 잘 안 닦자 뜬금없이 내가 준 책장에서 '나는 전설이다'를 읽으라고 주었다. 과연 그 뒤로 우좌는 식사 후마다 이를 꼬박꼬박 잘 닦게 된 것이었다.

매일 매우 근소하게 활기가 생기는 것도 같지만, 평범하게 밝고 활기찬 모습까지는 아마 100년이라도 걸릴 것만 같다.

"우리 초코, 뭐 하고 싶은 거 있어?"

코코는 내게 고개를 저은 뒤 옆에 누워 눈을 감았다. 역시 그냥 가만히 있는 게 더 좋은가 보다.

이전에도 외출은커녕 거의 모든 시간을 집 안에 머무르는 코코는 책을 굉장히 많이 읽는 편이었다. 게임에 빠져 사는 우좌와는 또 달랐다.

그러다 보니 코코가 요구하는 책의 양은 갈수록 늘어서, 나는 그냥 책장을 하나 통째로 코코에게 줘버렸다. 일전의 책도 이 책장에서 나온 것이다.

코코는 조금 부담스러워했지만, 내가 의기양양해하니 그저

"그렇게 좋으세요..?"

하고 마는 것이었다.





"받아봐라!"

"꽤 하는구나, 파파."

"우좌야 왼쪽 왼쪽!!"

"아니 권속아 걸로가면 뒤를 못 막잖아!!"

"그렇구나!!"

"10대 4네."

"아이 아깝다."

"뭐가 아까워 택도 없었거든?!"

"으음, 둘이 싸우지 마~"

일단 더치와 우좌, 나 모두가 바이오로이드로써의 운동신경 또는 나름의 인생 경험으로 무장한 상태라서 아예 서브도 못 받아치고 그런 일은 없었는데, 대신 랠리만 계속되고 결정적인 한 방이 없었다.

2:1임에도 불구하고 더치의 막강한 지구전에 완전히 휘말린 우좌와 나는 결국 지쳐 쓰러지고야 말았다.

우좌는 바이오로이드인데다가 애니까 곧 회복했고 더치는 당연하다는 듯 여전히 건재했지만, 나는 영 의지를 따라주지 못하는 내 몸을 코코의 옆에 뉘여놓았다. 시합이라기도 민망한 것을 다 봤는지 드러눕는 나를 보고 코코가 피식 하고 작게 웃었다. 나도 웃어 보이며 숨을 골랐다.

그러는 동안 지치지도 않는지 애들은 다시 배드민턴을 하거나 축구공을 가지고 놀았다. 그러고도 모자라 여기저기를 쏘다녔다.

진짜 애들은 조금만 시선에서 떼어둬도 바로 사고를 치건데 과연 바이오로이드, 제품이랄까. 생긴 건 아이같아도 그런 사고는 전혀 없었다.

"권속! 본좌는 배가 고픈 것이다!"

우좌가 나뭇가지에다 풀잎으로 열매 같은 걸 엮어 낚싯대 같은 것을 만들어가지고 들고 오면서 말했다. 난 뭔가 만드는 건 꼭 잘 하다가 이상하게 꼬이는 편인데, 약간 신기했다.

배고플 만도 하지. 앉아 쉬라고 제안하며 우좌의 땀냄새를 슥 맡으니 우좌가 긴 머리카락을 샴푸 광고처럼 휘둘러서 내 얼굴과 목덜미께를 사락 후린다. 머리카락이 하늘을 잘게 채썰고, 아홉 꼬리 고양이가 들러붙듯 한올한올 따갑게 내 얼굴을 긁고 지나간다.

"윽."

"그럴 때도 됐지. 파파, 내가 저기다 넣어둔 거 꺼내봐."

"어, 아직 따뜻해."

우리 더치가 아침부터 준비한 김밥. 소풍을 가자고 하자마자 신나서는 준비했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금속 통을 열고 또 열고 또 열면 어떻게든 우겨넣다보니 네모 모양이 되어버린 김밥들이 한가득.

개인적으로 김밥은 굉장히 안 좋아하는 편이지만 어쩔 수 없지.

"아."

코코도 수저를 꺼내며 느릿느릿 도왔다.

"얘들아 손소독제!"

햇살이 무더운 1시, 나무 그늘에서 아이들은 자그마한 입술들로 김밥을 오물거린다.



바람 잘 날 없는 나뭇잎이 바람에 사그락거리고, 작은 돌맹이들이 굴러다니는 자연의 소리. 사실 애들을 데리고 나온 것도 자연의 소리가 스트레스에 큰 도움이 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저기로 갔는데 무슨 파란 열매같은 게 있더라고."

"작은 포도같이 생겼었다! 진짜다!"

"오호. 오디려나, 그거."

"어? 어떻게 알았어?"

"그냥, 살다보면."

"흐응."

"그러면 먹어도 되는 것이냐 권속?!"

코코의 종이컵이 축축해져 무너지게 생겼기에 하나 새로 꺼내 받쳐주면서, 코코가 우좌에게 고개를 끄덕여주는 것과 동시에 대답했다.

"아니, 일단 식용이긴 한데 이 공원 식물이니까 아마 농약 들입다 뿌려댔을걸?"

"그럼 막 먹으면 안 되는 거려나."

"본좌는 바이오로이드라 괜찮다!"

"요즘 벌레들이 세져가지고 농약도 얼마나 세졌는데! 조심해야지."

"힝..."

"김밥부터 먹고 말해, 내가 열심히 만든 거라구."

"알았다는 것이다! 근데 이빨에 뭐가.."

"우좌야 잠깐!"

"으에에아아악!!! 써!!"

"아이고."

"우좌야 아까 손 소독제 발랐는데 그걸 입에 넣으면..."

"으에에..."

워낙 귀여워서 무심결에 쓰다듬어버렸다. 우좌도 피식 웃는다. 사랑한다고 자주 말해주는 편이 훨씬 좋겠지만, 나는 다양한 스킨쉽으로 대체하는 편이었다. 왠지 낮부끄러웠다고 할까.

아이들이 대화하는 모습은, 재잘거리는 복슬복슬한 아기새들의 지저귐처럼 푸슬푸슬해서 절로 미소를 짓게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맛은 기억도 안 났다.




코코는 살짝 주변만 둘러보고 오겠다고 하고선 일어섰다.

"코코."

코코가 신발을 다 신었을 때쯤 부르자 코코는 바로 그 자리에 멈춰섰다.  풀려있던 신발끈을 다시 묶어 주었다.

코코는 침묵했다. 나는 팔을 벌려 보였고, 코코가 머뭇거리며 안겨들었다.

머리를 두어 번 쓸어준다.

코코도 놀러가고, 이제 돗자리에는 나 뿐이다.













잠에 들었다.












어쩐지 악몽을 안 꿨다 싶어 잠에서 깨어보니 아이들이 내 곁에 옹기종기 잠들어 있었다.

여자애의 머리카락 냄새, 침 냄새, 늘어지는 꽃구름, 사랑스러운 온기, 얼어붙은 심장을 녹이고 있다
어쩌면 이미 다 녹았는지도 모른다

지금이라도 아이들과 거리를 두어야 할까?
언젠가는 다시 발화해버릴 텐데

어차피 죽었던 목숨
적당히 처분하면 되겠지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가벼워졌다.

아이들을 그러모으듯 살짝 끌어안았다.
사회적 생물인 이상 온기를 피하는 건 생리적으로 불가능하다.








해는 퇴근하고 땅거미가 늑장을 부리는 시간
아이들을 깨웠다.

"얘들아. 얘들아 가자. 이제 슬슬 추워지겠다."

"후우..."

"에익, 방금 잠들었단 말이다!"

"그건 아닐걸. 약간 어두워지긴 했네, 파파."

"춥진 않고?"

"난 괜찮아."

"본좌도 강인하기 때문에 괜찮다!"

다만 코코는 약간 오슬오슬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흰 티셔츠, 코트에 청바지. 벗어줄 만한 게 없

지 않다!

"자, 코코. 이거 잠깐 입자."

티셔츠를 벗어서 코코에게 주었다.

"...변태같아요."

코코가 말을 하는 건 굉장히 드문 일이고, 분명 기쁘긴 했지만 하필 말을 꺼내도...

"아니, 걱정돼서..."

내가 생각해도 실제 그런 꼴이긴 했다.

"큽... 아하하하하하!!!"

"흐하하하하학! 권속, 진짜로 바바리맨같다!!"

"에라이 진짜! 야 이것들아 나도 나름 짱구 좀 굴려본 거다!"

"그거 너무 연식 있는 표현 아닐까, 파파?"

"응? 그런가?"

"너밖에 없다 우좌야..."

"뭐야 그거! 좋은 뜻 아니잖아!"

그렇게 나는 웃통을 까고 청바지에 코트만 입은 채 주차장에 아이들을 데려갔다.

"저기..."

"뭡니까."

오른손으로 옷자락을 여몄고 왼손으로 애들을 밀어 차로 보냈다. 다행히도 애들은 한 번에 말을 들어주었다.







"예 다름이 아니라, 예전에 아동심리학 쪽에서 교수로 활동하셨던 그..."

"예 맞습니다. 누구시죠?"

"아 예! 맞군요! 아 역시 제가 사람 보는 눈은 제가 좀 있어서리, 아하하! 저는 ㅡㅡ뉴스 소속의 기자"

"용건이 뭡니까."

계속해서 말을 끊는데도 얼굴색이 바뀔 기미가 전혀, 하나도 없다. 프로라는 거겠지.

"그게, 조금 민감한 질문일 수 있지만 혹시 ㅡㅡㅡ씨 실종 사건에 대해서 아시는 게 있다면"

"없습니다."

"아내분이셨잖아요! 정말로 아는 게 하나도"

"없어."








뒤에서 뭔가 떠든 것 같지만 인지하고 싶지 않다.

녹음을 하는 기미가 보였었다.
안 하고 있었더래도 답하지 않았겠지만.

솔직히 화난 건 맞지만, 애들 앞에서는 전혀 그런 표정을 보이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노력했고, 실제로도 애들만 보면 절로 웃음이 나왔기 때문이다.
차를 타고 올 때는 자연스럽게 대화도 했다.






애들은 짐을 현관에 놓고 각자 방으로 훌렁 들어가 버렸다. 에그 인석들.

도시락통과 수저를 싱크대에 가져다놓고, 종이컵 남은 건 선반에, 쓰레기들은 다시 분류해서...








정리를 마치고 한숨 돌리자니 문득 거실에서 TV 소리가 들렸다.
다들 자기 방으로 간 게 아니었나?

"...는 그저 기호에 불과하다는 겁니다. 숨겨진 뜻을 알아야 해요.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친다는 건, 자신도 죽겠다는 의미입니다. 자기 자식을 죽이고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부모가 세상천지 어디 있습니까? 그러니까..."

"코코. 나는 네가 저 병신들이 하는 방송 같은 건 안 봤으면 좋겠다."

내가 스스로 말을 하고도 불현듯 놀랐다.

웬만하면 유들유들하게 타이르는 내가 애한테 뭘 윽박질러 시킨 건 이게 처음이다. 그리고 그보다도, 친구를 만날 때리던가 상황이라면 나도 물론 욕지거리를 많이 한다. 하지만 애들 앞에서는 다르다.

코코 뿐만 아니라, 애들 앞에서는 이만큼 거친 어투를 단 한 번도 써본 적이 없는데.

코코에게만은 유독 내 폭력적인 모습을 많이 보이는 것 같다. 폐에 죄책감이 차서 금방이라도 익사할 것만 같다.

그래도 충동은 멈추지 않는다.
마치 물이 빈 곳에 흘러들어가는 것이 자연스럽듯이
사과가 바닥에 떨어지는 것이 자연스럽듯이

코코는 채널을 몇 번 돌리다가 그냥 꺼버렸다.



'...'

"어? 코코야 뭐라고?"

윽. 코코의 작은 목소리를 들어려 다가가다가 의자에 걸렸다.
그리고, 코코의 옆에 앉았다.

"다시 말해줄 수 있을까?"

'...아빠는 가끔 무서워요.'

"응?"

'소풍 갔을 때 말이예요...'

"어어."

'주변에 여자들만 보면...'

"아이 아니 아니, 나 다른 여자들한테 관심 없어! 난 너희뿐"

'그게 아니라 아까 기자 언니도 그렇고, 아빠가 길 가는 여자들만 봐도 엄청 무서워져서... 그러니까, 무슨 보이기만 해도 죽여버리고 싶어하는 것 같아서...'

"......"



...



'저희에게 보여주시는 모습이 진짜일까요? 아니면 그런 무서운 모습이...'

"둘 다 나야. 둘 다. 코코."

'...'

"그냥 나한테도 사정이 있다고만 해 둘게. 내 얘기를 하는 건 좋아하지 않아서."


증오와 분노가 들이찬 마음
내가 태워 잃어버린 온기의 문장들
나는 그것을 아이들에게서 다시 회복받고 있다


'그러면... 저희를 사랑하는 건 저희가 어린애 같아서, 마음대로 할 수 있어서인가요? 진짜 여자들과는 다르게?'

"아니. 난 너희를 구속하고 싶지 않아. 얕잡아보지도 않아. 내 마음으로, 내 이유로 너희를 사랑하고 있어. 너희가 자유롭게 생각하기를 바래. 지금도 코코는 나에게 이렇게 의견을 표출하고 있잖아? 난 지금 코코가 이렇게 생각을 표현해줘서 고마워."

"...그래봐야 인간이 아니라 바이오로이드잖아요!"

"뭐?"

"저희는 다르다는 거예요."

"음..."

"바이오로이드는 애초에 인간에게 호감을 가지게 만들어졌잖아요. 명령권도 있으시고요."

"그 부분에 대해서는 내가 할 말이 없네. 내가 만든 게 아니니."

"그건 그렇겠네요, 애초에 그렇게 만들어졌는걸요."

"하지만, 난 너희에게 인격이 있다고 생각해."

"인격, 인간과 짐승을 구분하는 격. 하지만 그렇다면 저희와 인간이 구분되는 건 어째야 하나요."

"뭐라고?"

"저희는 법적으로 재산이예요. 그러니까 애완동물들과 비슷하게, 저희가 다른 분께 피해를 끼치면 관리책임을 가진 분이 손해를 배상해야 하죠."

"더치하고 우좌 보니까 게임 사이트에는 잘만 가입하던데?"

"그거 다 아빠한테 보호자 인증 받아서 만든 거 아니었나요?"

"아..."

애라서 받았다고 생각했지, 그렇게는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래도 말이야, 생긴 건 어느 정도 사람이랑 비슷하잖아."

"저희는 같은 모델끼리 서로 비슷한 모습을 가지게 제작되었죠. 그리고 평범한 인간보다 당연히 예쁘게 '디자인'되었고요.

"하지만..."

"심지어 저희는 골수도 없고, 대신 혈액 생성을 위한 인공 장기가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암만 사랑해도 아빠에게 문제가 생겼을 때 골수 이식 같은 건 해드릴 수가 없죠."

'저희'는 이제, 애들이 아니라 바이오로이드 자체가 되어버렸다.

"그래도 병에는 어느 정도 걸리지 않아?"

"저희는 같은 이유로 골수암에 절대 걸리지 않아요. 그리고 말라리아, 광견병 등 대부분의 치명적인 질병에 면역이고요. 아주 드물게 바이오로이드와 인간 간 감염이 가능한 질병도 나타나곤 하지만... 그런 건, 인수공통전염병으로 분류가 돼요."

"..."

"아빠는 인수공통감염병이라는 단어가 어떤 무게를 가지는지 아시리라 믿어요."

코코가 평소에 이 질문에 대해 고민해왔는지가 보인다. 무게가, 깊이가. 적어도 지금 처음 생각한 건 아닐 것이었다.

"아빠. 바이오로이드라는 건 뭘까요."

"...혹시 코코가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려줄 수 있을까?"

언뜻 사춘기같다는 느낌도 든다.
하지만 이렇게나 작은 아이에게는 철학적으로 너무 무거운 짐이 아닌가.

"저도 잘 모르겠어요."

당연하다. 이런 문제를 연구한 사람이 없다. 자본주의가 잠식한 세상에 철학자들은 다 굶어 죽었거나 어딘가에 아첨하고 있을 뿐이다. 코코가 아무리 영리하대도 결론을 바로 내려줄 수 있다면 그게 더 이상하다.

"하지만, 하나 확실한 건... 저희는 인간이 아니라는 거예요."

나에게도 괴로운 결론이다. 코코는 두려워하고 있다. 세상을 찌르고 있다. 나를 찌르고 있다.

하지만 보였다. 왜 본인이 인간으로 나를 사랑할 수 없었는가, 라는 원망의 편린이 보였다. 그것이 가장 중요한 부분인지, 아니면 줄기의 하나일 뿐인지는 더 지켜봐야 알 것이었다.


"인간이 아니면 어때?"

"네?"

"코코가 뭐, 외계인이면 어때?"

"..."

"아니면 바이오로이드일 수도 있고."

"...무슨 얘기를 하시려고요?"


원래 관계라는 건 밀어내기도 하지만 결국 타인이 다가와주길 바라곤 한다. 인격체는 고슴도치와 같아, 서로 가까워지길 바라면서도 가까워지면 찔린다. 잔인하다고도 할 수 있겠다.


"아빠가 원래 우리 초코를 어떻게 만나게 된 건지 알아?"

"그야 모르죠."

"처음에는 담당사라고, 바이오로이드 인권 단체에서 코코를 구하고 오랬어. 난 이유도 생긴 모습도 모르고 구하려고 달려갔지. 코코를 구해온 뒤에는 내가 코코를 가져도 됐을 거고, 아니면 그 인간들한테 떠넘겨도 됐을 거야."

찰나, 줄곧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코코가 내 쪽을 아주 잠깐동안 순간적으로 쳐다보았다. 계속 살펴보고 있지 않았더라면 몰랐으리라.

"돈이 아까우셨나요?"

이거구나.

"아니. 돈은 담당사에서 줬어. 우리 초코 구해오라고."

"아... 그럼 왜 제 몸값을 깎으셨던 거예요?"


확실하다. 작은 머뭇거림이지만, 포착했다. 자신을 매매하는 것이 어린 마음에 큰 충격이었구나. 이 관점으로도 생각해봤어야 했는데. 미리 알지 못해 미안하다. 정말 미안해. 내가 또 글렀구나. 내가 부족한 탓이다, 진실로 미안하다. 미안해. 너무나 미안해.


"내가 코코를 처음 봤을 때 어땠는지 알아?"

"거울을 못 봤으니 모르겠네요."

"막 주눅들어있고, 멍도 들어있고."

"그랬나요."

"난 코코가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어. 행복하게 해 주고 싶었어. 어쩌면 코코가 예쁘게 생겨서 더 그런 마음이 들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어쨌든 코코를 사랑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어."

내 가시는 날카롭고 촘촘하다. 확고히 세상의 절반 이상을 증오한다. 하지만 아이들에게만큼은 내 맨살을 드러냈다. 사랑한다. 내 모든 것을 바쳐서. 그러쥔다. 두 번 다시는 놓치지 않는다.

"..."

"난 코코를 아프게 한 그 자식에게 크게 엿을 먹여주고 싶었어. 코코도 어느 정도는 알겠지만, 코코는 굉장히 비싼 몸이야. 그 자식 내 앞에서는 멀쩡한 척 했지만, 설명 들어보면 그냥 말단 직원이었거든? 내가 제시한 금액이면 분명 크게 타격을 입었을 거야."

"그러면 남은 금액은요?"

"당연히 다 반납했지. 내가 후려쳐낸 돈 덕분에 인센티브 받은 애가 얼마나 좋아했었는지."

"그랬군요..."

"혹시 그거 때문에 오해한 게 있었다면, 신경쓰지 마. 이렇게 전부 설명하지 않으면 오해할 만 했다고 생각해."


바이오로이드와 인간, 그 존재에 대한 고뇌는 애초에 이 고민에서 분화된 일부.
눈치를 보니 확실한 모양이다.


"......"

"지금 코코 말을 듣고 보니까, 코코가 고민이 생겼을 법도 하네."

"그래요."

"응?"

"그것도 있지만, 저는 제 자신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종교 방송 같은 걸 봤구나."

"네. 저라는 건 뭘까요... 인간인 아빠를 향한 제 사랑조차 인위적인 것일지 모르는데."

"...근데 그건 아직 인간도 마찬가지라."

"아."

코코도 즉시 이해하긴 했지만, 아닌 게 아니라 진짜 그랬다. 아직 인간이란 무엇인지조차 규명해내지 못 했는데 '바이오로이드란 무엇인가' 같은 걸 더 감당할 수 있을 리가.

"하긴 그렇네요."

"그러니까. 유일하게 사고하는 동물도 아니고, 유일하게 도구를 쓰는 동물도 아니고, 유일하게 학습하는 동물도 아니고, 유일하게 자살하는 동물도 아니고."

코코가 피식 웃었다.

"나도 내가 누군지 몰라, 너희도 뭔지 몰라. 너희 과거도 모르고, 내가 너희의 연인인지 가족인지도 몰라."

"너무 무책임한 거 아닌가요?"

"들어봐, 그래도 딱 두 개 변하지 않는 사실이 있다면..."

"뭔가요?"

"코코도 알잖아.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내가 통 속의 뇌라도 이것만은 변치 않지."

코코가 나를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쳐다본다.

"에이. 그런 눈으로 보지 말고. 두 번째는, 내가 너희를 정말 사랑한다는 거야."

코코는 눈을 두어 번 꿈뻑였다.

나는 코코를 천천히 끌어안았다.

코코가 내 심장에 귀를 가져다 대더니, 조금 듣다가 부시럭부시럭 내 품에 파고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