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 https://arca.live/b/lastorigin/50112439




간단히 옷을 차려입은 뒤, 나는 집 밖으로 나가는 문을 열었다. 그때, 몇몇의 바이오로이드들이 짐을 나르며 우리집 옆집으로 많은 짐들을 옮기고 있었다. 마침 빈집에 누군가 이사를 온 듯 하였다. 그리고 이삿짐 짐을 나르는 것마저도 바이오로이드들에게 뺏긴 이 사회가 너무나도 미웠다.


나는 천천히 그녀들을 째려보며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뭔가 욕이라도 한마디 내뱉어주고 싶었지만, 항우울제를 먹지 못한 내게 지금의 정신상태는 많이 위험했기에 잘못하면 위법적인 행위를 할 수도 있을거 같아 그냥 지나가 버렸다. 이번에 새로 들어오는 사람도 바이오로이드를 집에 들여보내지 않는 그런 신사적인 사람이였으면 좋겠다. 그 희미하게 날아오는 오리진 더스트 냄새와 바이오로이드 년들의 머릿기름 냄새가 섞인 악취를 난 참을수 없으니까 말이다.


충유시는 부자인 사람들도 있고, 가난한 사람들도 있다. 그중에 가난한 사람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긴 한다. 항상 AGS들과 바이오로이드들이 치우는 길거리에는 그와 달리 많은 노숙자들이 박스를 덮고 자고 있었고, 사람들이 안다니는 검은 길구석에서는 대낮부터 창녀들이 피우는 담배연기로 가득 차있었다.


그리고, 길거리마다 돈많은 주인놈들의 노예들이 펫말과 광고판을 들고 자신들의 사업장에 들어와 보라며 사람들을 현혹하고 있었다. 거리에 수많은 바이오로이드들이 소리를 꺅 지르고 있으니 머리가 더 어지러워졌다. 도심으로 들어선 나는 고개를 쭈욱 들어올렸고, 마침 정신과가 하나 있어 곧장 그 병원이 있는 건물로 올라들어갔다.


병원 카운터에는 인간 한명과 바이오로이드 2명이 맡고 있었고, 나는 의심의 여지없이 인간 쪽의 창구로 이동했다.


“무슨 업무로 오셨나요?”


“그, 약을 받고 싶어서요. 초진입니다.”


“여기 서류 작성하시고,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곧 불러드리겠습니다.”


서류에 내 생년월일과 인적사항을 찬찬히 기재하였고, 간호사분께 이걸 드린 다음 자리에 앉아 잠시동안 대기하였다. 곧 간호사 말대로 진료실에서 박소한이라는 사람을 들여보내라는 것이 들렸고, 나는 자리에 일어나 진료실로 천천히 걸어들어갔다.


“...어디보자… 약이 필요하시다구요?”


“계속 먹던 약이 떨어져서, 이름은 씨트랄린과 오토록신입니다.”


“음… 혹시 전에 이 약을 처방받았던 적이 있었나요?”


나는 집에 꼬깃꼬깃 숨어있던 어릴적 처방전을 그 의사에게 내밀었다. 어릴적 트라우마로 인해 몰려들어왔던 우울증을 치료하기 위해 회장님이 지어주셨던 약인데, 우연히 찾아보니 이런것이 있어 약 처방받을 때 유리할 것 같아 준비한 보람이 조금 생겼다.


“여깄습니다.”


“...? 이건… 거진 15년 전 처방전인데요? 이름이랑 생년월일은 똑같은데…”


“어릴 적 트라우마 때문에 우울증에 걸려서 처방받은 겁니다. 정신 치료를 받을려 약을 끊었었는데, 도저히 안될것같아서요.”


(그 상황에서는 거짓말이 술술 나왔다. 그렇다고 그냥 내놓으라고 하면 좀 그러니까 말이다.)


“여기에도 추후 재발 가능성이 있다고 하긴 하네요. 하지만 저희 법적으로도 6개월 안에 발행된 처방전만 약을 지어드릴수가 있거든요.”


“...”


역시나 일이 끝까지 잘 풀리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를 대비하기 위해 나 또한 두번째 계획을 준비했고, 주머니 속에서 준비한 푸른 종잇뭉치를 꺼내들었다. 의사는 그걸 보고는 눈이 휘둥그레졌고, 나는 탁자에 그 돈뭉치를 천천히 내려놓았다.


“사람들 사이에는 피치 못할 사정이라는게 있죠? …의사 선생님께서도 제 그 사정을 이해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어… 크흐흠! 물론, 6개월 이 처방전이 위조한 것도 아니고, 재발 가능성도 있다니까… 제가 지어드리기는 하겠습니다.”


“많이 좀 넣어주십쇼. 대략 5년치정도.”


역시, 돈은 모든 것을 해결해 줄 수 있다. 의사의 타이핑이 빨라지기 시작했고, 그가 경쾌하게 엔터를 누르자, 새하얀 처방전이 새로이 뽑혀져 나왔다. 그는 그 종이를 내게 전달했고, 자주 와달라는 말과 함께 활짝 웃으며 나를 내보냈다. 나가면서 놀라웠던게, 내가 많은 돈을 찔러넣어줬는데, 진료비 만원을 추가로 결제 해야 한다는 것이였다. 어쨋든 만원이야 더 내줄수 있는 것이였고, 그렇게 건물 1층 약국에서 봉투에 두둑히 항우울제를 받은 나는 약국에서 대략 5알 정도를 씹으면서 불안한 정신상태를 겨우 붙잡을 수 있었다.


항우울제를 먹기 전 불안하고 초조한 내 마음이 차갑게 다시 식어내리는 듯 하였다. 박하사탕을 가득 먹은 것처럼 뜨거운 몸의 열이 아래로, 아래로 차갑게 쏴악 빠져나갔다. 그렇게 정신을 차려 생각해보니, 이젠 또 장 보는걸 깜빡했기에, 나는 몸을 돌려, 근처 대형 마트를 향해 걸어갔다.


나는 이 도시에 있는, 아니 전세계 모든 대형마트를 죽도록 싫어했다. 수많은 대형마트들은 사람들 대신, 바이오로이드들을 주문제작하거나 구입하여 그곳에서 일하게 만들었고, 국가 정책에 따라 최소한의 인간들만을 고용해 사용하고 있었다. 인간 사회의 몰락과 부유층에 돈이 고이게 하는 가장 악독한 집단은 대형마트 운영 관계자들이라 나는 곧게 생각하고 있었다.


역시나 대형마트에 들어서기도 전에 바이오로이드들이 나보고 어서오라고 기쁘게 맞이해 주고 있다. 나는 경멸스럽게 그들을 쳐다보며 말을 무시하고 안으로 빠른 거름으로 후다닥 달려들어갔다.


내가 이토록 대형마트를 싫어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이곳을 들리는 이유는, 바로 나같은 특정 소비자들을 위한 코너들이 마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인간 제조 물품! 바이오로이드나 AGS들이 만든 것이 아닌, 바로 인간의 손으로만 길러진 훌륭한 물품들을 모아 특별 코너에서 팔고 있었기 때문이다. 공장조차 사람 대신 바이오로이드를 쓰는 이런 세상에서 그런 상품을 구할 수 있는건 이런 인간제조 물품 코너에서 밖에 팔지 않았다.


물론, 대형마트를 극도로 혐오하는 나였으면서, 이런 모순점을 참고 계속 대형마트에서 물건을 사는 이유는,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힘겹게 인간들이 자신들의 물품에 노력하고 신경쓰며 음식을 만들 그들의 노고에 보답하기 위해서이다.


그렇다고 강원도에 가서 배추랑 한우를 사고, 제주도에서 감귤을 살 수는 없으니, 어쩔 수 없이 이런 곳에서 살 수밖에 없다.


그런데, 내가 간 대형마트는 약간 달랐다. 정신과를 찾아 조금 다른 도심에서 찾은 마트였기에, 익숙하게 찾아간 곳에서는 다른 코너가 있었다. 때마침 옆에 일하던 여자를 찾아 물어보기로 했었다.


“...저기-”


“...! 아, 고객님! 무슨 일이시죠?”


“...”


젠장, 인간 여자인줄 알았지만, 익스프레스 76 모델이였다. 펙스사에서 배달용 바이오로이드를 개조해 만든 마트 종업원인데, 단발머리를 하고 있어 바이오로이드가 아닐거라 생각했지만… 내 예상이 완전히 빗나가 버렸다. 나는 얼굴을 굳혔다.


“...인간 제조 물품 코너는 어딨지?”


“아! 고객님, 그 인간 제조 물품보다 이게 더 맛이 좋고 달아요!”


“...”


이 씨발년이 도대체 뭐라고 대답한거지? 내가 인간 제조 물품에 대해 물어봤으면, 그게 어딨는지 이야기를 해야지, 이런거 찾는 사람이면 대부분 나랑 같은 마인드일 텐데, 저 년은 갑자기 인간제조 물품대신 다른 걸 추천하고 있다. 과일 코너 앞에서 그녀는 내게 사과를 들이밀며 향을 맡아보라느니, 뭐하라느니 명령질을 하고 있었다.


“고객님! 이게 당도를 높인 사과인데, 한국에서 파는 사과 중에서는 제일 달아요!”


“아니, 인간 제조 물품 어딨-”


“진짜 이거 한번만 드셔 보세요! 차원이 다른 맛일 겁니다!”


화가 치밀어 올랐다. 더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나는 재빠르게 그녀의 뺨을 후려쳤다.


‘챠악-!’


““...!””


그 우렁찬 소리와 함께 내 주변에 있는 모든 소리가 멈춘듯한 정적이 울려퍼졌다. 익스프레스는 얼얼한듯 얼굴을 부여잡고 움직이지 않았고, 나는 흐트러진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다시 입을 열었다.


“...귀가 없나?”


“...ㅈ, 죄송합니다…”


“내가 말했을텐데? 인간 제조 제품이 어딨냐고.”


“정말 죄송합니다, 고객님! 정말-”


“같잖은 사과는 필요없어, 어디로 가야되는지 알려주고 내 눈앞에서 사라져.”


“에스컬레이터를 타시고 2층에서 곧장 오른쪽으로 꺾으시면 됩니다…”


“쯧! 더러운년.”


더이상 그 곳에 있기 싫은 난 그저 발걸음 속도를 높여 빠져나올 뿐이였다.


.

.

.


그 년이 알려준 대로 인간 제조 물품을 파는 코너 근처에서 사야할 물건인 과일과 술을 보고 있던 중이였다. 여러 종류의 보드카를 비교해가며 뭐가 더 맛이 좋고 도수가 높은지 확인하던 그때, 저 멀리서 누군가가 소리를 꽥 지르는 것을 듣게 되었다.


“어떤 씹새끼야?!”


“...?”


“너, 너 당장 거기 서! 뭐하는 짓이야?!”


“이거 놓으십쇼! 누군지 몰라도, 그새끼 얼굴은 보렵니다!”


한명은 빼쩍 마른 체형에 정장을, 다른 한명은 꽤나 덩치가 컸지만, 노란 유니폼을 입고 있었던 것을 보니, 매니저, 혹은 점장솨 종업원 관계로 보였다. 시끄러운 소동에 나는 고개를 들어 종업원과 눈을 마주쳤는데, 그는 나를 보자마자 성큼성큼 다가오기 시작했다.


“저 새낀가보네.”


“당장 멈춰! 여기서 짤리고 싶어?!”


그 매니저는 남자를 막아보려 했지만, 질질 끌려갈 뿐이였다. 나 또한 구부린 등을 피면서 지지 않을려고 노력하였다. 다가오는 그의 이름표를 보자, 창고 관리직의 한상현이라는 것을 나는 알수 있었다.


“...당신이야?”


“뭘 말하는거지?”


“방금 듣고왔어. 니가 익스프레스 뺨 때린 새끼냐?”


“맞는데, 무슨 문제라도?”


“이 개새끼가!”


“이봐요, 화내지 말고. 나는 그저 그 고장난 병신을 고쳐줬을 뿐입니다?”


“...무, 뭐?”


“아니… 나는 인간 제조 물품을 파는 코너를 물어봤는데, 그 썅년이 저한테 장사를 하려 하는거 아닙니까? 귀에 문제가 있는건지, 아니면 머리가 문제가 있는건지… 그래서 욕한번 하고 후려쳤습니다.”


“...당신이 뭔데, 당신이 뭔데 익스프레스를 고치겠다고 나섭니까? 그것도 뺨을 때려?”


“뭐이리 화를 심하게 내? 당신이 무슨, 걔 주인이라도 되나봐?”


“그래, 내가 걔 주인이다. 걔는 이 마트에 존속된 바이오로이드가 아니야. 내 집으로 출퇴근하는, 개인용 바이오로이드란 말이야. 그러니 사과해, 당장.”


“...하아! 나참, 이봐요, 한.상.현.씨. 손님은 왕이고, 이를 응대하는 종업원은 을입니다. 을은 왕한테 장사를 해야합니까, 물어보는 거에 따박따박 대답을 해야 합니까?”


“...”


“...이런 좆같은 마트에서 장을 보기로 한 내가 병신이지… 볼일 없으면 가세요. 그리고, 당신은 걔랑 사이좋게 짤릴 준비나 해. 어짜피, 돈도 없는 새끼들 여기서 아둥바둥 살려고 노력하는거 산소낭비니깐.”


“너 이 씨발-”


“한상현! 당장 그만해!”


“...!”


“ㅇ, 안녕하십니까, 여기 마트 총매니저 입니다… 다름이 아니라… 이 친구가 약간 성격이 돋보이는 친구이기도 하고… 그래서 화를 잘 못참는 성격입니다… 그리고, 본사에 컴플레인 들어가면,  저희도 피곤해지고, 그… 손님분도 본사에 왔다갔다 하시면서 많이 피곤해지세요… 여기, 10만원 상품권입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이 부족한 사람 한번만 봐주세요! 저희도 정부 지침때문에 이 이상 인간을 해고시키면 마트 문 닫아야 합니다!”


“...”


매니저는 내게 고개를 푹 숙이다 말고는 뒤로 돌아 한상현의 뺨을 후려쳤다.


‘짜악!’


“...!”


“너 이 개새끼야! 정신 똑바로 안차려?! 내가 성격 죽이라고 했지? 지금 노조원들 도심에 숨어 있어서 사람도 못뽑는데, 왜 자꾸 대형 펑크를 일으키려 하는건데에에!!!”


“...”


“어, 얼른 사과드려! 당장!”


그는 나에게 다가와, 한동안 말없이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고개를 똑같이 내리꽂았다.


“제.가.정.말.죄.송.하.게.됬.습.니.다. 고.객.님?? 예? 죄송하구요, 앞으로는 이런 일 안일어나게 하겠습니다, 에?”


“...”


많은 사람들에게 이정도로 굴욕을 줬으면, 이정도로 끝내도 괜찮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나는 코웃음을 한번 치고, 손바닥을 털면서 저리 가라는 신호를 보냈다.


“여긴 사회에요, 정신 똑바로 차리고 일해. 누구는 여기서 일하고 싶어서 난리도 아닌데, 쯧… 가봐요, 쇼핑 방해하지 말고. 그리고 당신, 직원 교육 똑바로 시켜. 앞으로 이런 일 더 생기면, 불편하든말든 내가 끝까지 밀고 나갈거니까.”


"ㄴ, 네... 정말 죄송합니다 고객님!"


매니저는 고개를 한번 더 숙이고는, 그를 데려갔다. 한상현은 그 매니저에게 일부로 끌려가면서도, 나를 향한 눈빛을 고정하였다. 그렇게 에스컬레이터에서 그들이 완전히 사라지자마자, 나는 다시 보드카 물품들을 찬찬히 살펴보았고, 적당한 술을 고른 다음, 마트에서 빠져나왔다.


.

.

.


한 손에는 과일과 술이 가득든 종이봉투를, 나머지 한손에는 약통이 가득 담긴 비닐봉투를 들고 도심을 다시 지나가, 집으로 돌아와 13층으로 가는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이렇게 집에 올라갈때 풍겨나는 엘리베이터의 냄새는 너무나도 좋다. 오늘 좀 언짢은 일이 많이 일어나긴 했지만, 그래도 이 기분은 변하지 않는다.


‘띠링!’


경쾌하게 울리는 알림음과 함께, 문이 열리고, 나는 익숙하게 왼쪽으로 몸을 돌려, 나의 집 1302호로 걸어갔다. 그리고, 문 앞에 도착한 나에게는 문앞에 떡이 담긴 플라스틱 용기와 철제 가방이 하나 놓여져 있었다.


“...”


집에 들어와 사들고 온 물건들을 정리하고, 다시 밖으로 나가 그 철제가방과 떡 용기를 가져와 찬찬히 살펴보았다.

우선, 이 철제가방. 두꺼워 보이는 철제 가방은 지문 인식 잠금장치가 걸려 있었고, 내 손을 올려다 놓자, 자동으로 열리며 잠금이 해제되었다.


‘덜컥!’


가방을 열어보니 수많은 현찰과 3개의 자동차키, 그리고 종이가 한장 있었다. 그리고, 그 종이에는 이런 내용이 적혀있었다.


‘6개월동안 헌신해주어 고맙다. 그동안 일해준 보상이다. 자동차는 올드카로 준비했지만, 성능은 야수 급이야. 이제 너도 뚜벅이 그만둬야지. 차는 너희 집앞 주차장에 넣어뒀다. 이번에 있을 대량 마약 밀입도 잘 부탁하지. -회장’


역시 회장님이시다. 돈은 대략 3억 정도가 더 있어보였고, 세개의 자동차 키는 살펴보니 벤츠 G바겐, 페라리 F40, 그리고 롤스로이스 쿠페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역시 갖갖이 기능들이 다닥다닥 붙은 요즘 전기차 차키보다, 딱 차문 열림, 잠김, 트렁크 키만 있으면서, 기름을 태워 수백마력씩 내뿜는 이런 올드카들이 더 나는 마음에 든다. 또한, 혼자서 밀수업을 하시면서 이런 고급 차량들을 나같은 부하한테 시원하게 쏘시는 우리 회장님을 보자니, 정말 대단한 사람이 아닐 수가 없다. 이런 보상을 받게 되니, 이런 회장 밑에서 일하는 것이 정말 축복이 분명하다고 나는 확신하며, 상자의 돈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거의 꽉 차있는 창고 밑 비밀 창고에 철제 가방에 담긴 돈봉투들을 들이붓고, 차키는 집문 옆 신발장에 가지런히 세개를 올려다 놓았다. 그렇게 정리를 끝낸 다음, 눈에 들어온건…


아직 식탁에 고이 모셔놓은 시루떡이였다.


“...대체 저건 누가 보낸거야?”


이런 의구심으로 다시 시루떡이 담긴 용기를 확인하니, 노란 포스트잇으로 이런 문구가 쓰여 있었다.


‘이번에 새로 들어온 1301호에요! 앞으로 잘부탁드릴게요!’


“아… 오늘 옆집 들어오는거 같았었는데… 나참, 누가 요새 이런걸 하는거야?”


그래도 떡은 고맙네, 아직까지 식지도 않은듯 용기는 뜨뜻했었고, 나는 그 떡을 한입 물려고 용기를 열려고 했다. 그때, 이런 의구심이 총알을 스치듯 머리를 지나쳤다.


“...잠깐, 여기 바이오로이드 주거 금지 아파트는 아닌데?”


그렇다면, 이 떡은… 옆집에 사는 바이오로이드가 만들어 나한테 주는 것일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 더러운 손으로 내가 지금 들고 있는 떡을 주무르고, 휘젖고, 그랬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으~ 씨이발… 소름이 쫙 끼치네.”


다시 떡을 포장해, 처음 그상태로 복구시켜 놓고는 곧장 그걸 들고선 옆집으로 갔다. 머뭇거림 없이 벨을 눌렀고, 청아한 여자의 목소리로 인터폰에서 소리가 흘러나왔다.


“나가요~!”


“...”


그래도, 이곳에서는 바이오로이드가 마중나와도, 페이스 유지가 필요했다. 이 아파트에는 그래도 바이오로이드를 하인으로 두는 가정이 몇가구 정도 있고, 여기서 발악하게 된다면, 내 이미지는 박살이 날테니깐 말이다. 곧이어 문이 열리고, 나는 곧장 그 사람의 신체를 확인했다.


키는 여자로 치면 중간, 노란 긴 머리, 파란색 눈동자, 커다란 가슴, 그리고… 삐죽 튀어나온 노란색 머리털, 그녀는 군대에서 악명 높다고 소문난 전투용 바이오로이드, 하르페이아였다.


“...누구세요?”


군대에서는 그녀를 최고 위험 바이오로이드라고 배웠다. 스텔스를 키고, 순식간에 NARAAK 미사일을 발사해, 부대를 사라지게 만드는 그런 위협적인 바이오로이드라고 알고 있었는데, 도대체 왜 이곳에서 반팔티를 입고 날 반기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나는 한동안 멍하니 그녀를 바라봤다.


“...저기요?”


“...ㅇ, 아.”


“무슨 일이세요?”


“그, 옆집에서 왔습니다.”


“아~! 1302호! 만나서 반가워요! 이번에 새로 들어왔어요!”


“엉마~! 저 아찌는 누규야?”


“아, 유미아! 들어가 있어! 옆집 아저씨가 오셨데!”


워매, 이 하르페이아의 남편은 미친새끼인가보다. 애까지 있다.


“그나저나 무슨 일로 오셨어요?”


“...이거 때문에요.”


“어? 이건-”


“이 떡, 그쪽이 보낸 건가요?”


“네… 헉! 혹시 떡에 무슨 문제라도…?”


“아뇨, 그나저나 이런 건 왜 하는 거에요?”


“그, 이게 시루떡이라는 건데-”


“그걸 누가 몰라요?”


“에헤이, 사람 말은 끝까지 들어보세요!”


이 년이 지금 자기보고 사람이라고 한다. 어이가 없네.


“...”


“...크흠, 이건 시루떡이고, 과거에는 사람이 이사를 했을때, 이 떡을 돌려 잘부탁한다고 하는 거래요!”


“요새 그런걸 누가 합니까?”


“물론 제가 하죠?”


“하아… 비효율적에 무모하네.”


“...도전적이라고 말하면 입에 가시라도 돋나요?”


“어쨋든, 이 떡 다시 가져가 주세요.”


“네? 갑자기요? 왜요?”


“...전에 떡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어요. 목에 걸려서 호흡곤란으로 죽을 뻔한 적이 있어서.”


물론 속으로는 ’쳐먹기 싫다 씨발년아’를 무한반복 하였다. 영악한 년이 말할 때마다 말대꾸를 한다.


“...좀 진실되게 말해주면 안돼요?”


또 이 지랄이네, 씨발.


“...그냥 떡을 별로 안좋아합니다. 집에 냅두면 아예 손도 안댈거 같아서요.”


“...흐음, 진실이 30정도 느껴지네요? 좋아요!”


드디어 하르페이아는 내 음식을 가져갔다. 역시 독하다 독해. 그런데 하르페이아는 내 떡을,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녀가 줬던 떡을 돌려받고도 가만히 문 앞에 서있었다.


“...안들어가세요?”


“아니, 그쪽이 먼저 나가야 문을 닫든 뭘 하든 하죠?”


“아.”


“그나저나… 저기, 이름이 뭐에요?”


“...”


“에이~ 또 말 안하시네?”


“...박소한 입니다.”


“흠… 소한씨, 이거 진짜 안드실 거에요? 진짜 맛있는데… 우리 딸이 엄청 좋아했어요!”


“그쪽 딸이 박소한 입니까? 저는 안좋아하니까 그냥 들어가세요.”


“...소한씨, 나는 이거 ‘포기’라고 생각 안해요. 이건… ‘양보’에요? 이 맛있는 걸 우리한테 다시 양보한 거에요, 아시겠죠? 응?”


“양보던지 포기던지 알아서 생각하시고, 들어가요.”


“어어, 어? 문 왜 닫아요? 저기요! 나 아직 할말-”


‘덜컹-’


독한년이 계속 말을 해서, 어쩔 수 없이 내가 일부러 문을 닫았다. 오랫만에 말하면서 이렇게 기가 빨린 적은 처음이였다. 그렇게 겨우 떡을 돌려주고, 천천히 내 집으로 터벅터벅 돌아가던 때였다.


엘리베이터 문이 갑자기 열리더니, 2명의 바니걸이 성큼성큼 걸어나오기 시작했다. 그 둘은 나를 보더니 내게 다가와서는 말을 걸었다.


“혹시 그쪽이 서비스 2명 불렀어요?”


“...얘넨 또 뭐라는 거야 창녀 새끼들이, 저리 안가?”


“뭐어? 이 새-”


“야, 그만둬, 여기사람들 돈 존나게 많은 사람들밖에 없으니까, 우리만 힘들어져… 죄송합니다.”


“갈길 가.”


창녀새끼중 하나가 나머지를 끌고, 우리집 반대편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잠만, 저기 하르페이아랑 걔 딸이랑, 그럼… 아빠도 있을텐데…?


“...와, 딸이랑 엄마가 같이 집에 있는데 집에 창녀를 부르네… 미친 새끼들, 제정신이 아닌가보네. 조용히 살았으면 좋겠다 했는데… 하… 글렀다 글렀어 씨이발…”


그렇게 급여를 받은 그 날, 나는 세상에서 제일 더러운 기분을 느끼며, 터벅터벅 집안으로 걸어들어갔다.


‘철커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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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토일은 풀타임 일이기 때문에 되도록 월-목에 한편씩은 연재할려합니다. 이번에는 잠복 없이 제대로 가보자...


혹시라도 몰라 올리는 박소한이 받은 차 세종류, 순서대로 지바겐, F40, 쿠페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