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 모음 https://arca.live/b/lastorigin/49288052 




섬에서 생활한지 1개월째


더치걸들 작업하는 곳에 구경 갔다가 발파작업 때문에 발작을 일으켜 제지 당하고 벙커 건설현장 접근을 금지당하는 등 사고가 좀 있었지만...


'아니 사고라고 보기엔 좀 큰 사건 이였지'


이렇게 실없는 생각을 하고 있자 옆에 니아가 와서 내게 말을 건낸다.


"주인님, 곧있으면 배가 올겁니다."


"하... 돈이 조금만 더 있었어도 비행기 타고 다니는건데"


"......아니, 이런 섬 하나 빌린다고 그 많은 돈을 쓰는것도 모자라 지하 벙커까지 만들면서 돈이 남는 걸 바라시는게 이상한거 아닌가요?"


"어... 그렇지..?"


"그렇지는 또 뭐가 그렇지 입니까?"


"으익"


"하아... 제가 말을 말죠"


이미 짐을 전부 챙겨뒀기에 그냥 겉옷만 차려 입고 곧바로 집을 나섰다, 그리곤 우리는 이전에 배에 실어온 전기 SUV에 앉아 항구까지 2~3분만에 도착했다.


니아는 트렁크에서 여행가방을 꺼내고는 부두에 서 있었고


나는 그옆에 구조물에 앉아 잠시 수평선 위로 보이는 하얀색 배를 바라보았다.


"저기 오네요"


항구 크기가 작아서 그런지 배가 직접 이곳에 오는 것은 아니고 고무보트를 타고 오는 것이 눈에 보인다.


니아가 손을 흔들고 있자 속력을 줄이던 보트가 항구에 배를 붙이고 바이오로이드로 보이는 여성이 내게 인사했다.


"라붕이 선생님 맞으십니까?"


"예, 저쪽 배에서 오신 거죠?"


"네, 이쪽에 구명조끼 입으시고요, 짐은 여기 트렁크에"


"흣챠"


니아가 들고 있던 여행 가방을 고무보트 뒤에 있는 트렁크에 넣고선 구명조끼를 입었다.


"준비 끝나셨으면 출발하겠습니다."


그녀가 시동을 걸자 요란한 소리를 내며 보트는 바다를 통통 튀기듯이 미끄러져 금세 저 멀리 작게 보이던 배가 코앞에 그 거대한 동체를 드러냈다.


배 밑의 크레인에 능숙하게 보트를 가져다 대고 보트와 크레인을 묶어 배 위로 보트를 끌어 올리자 그녀는 인사하고는 보트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니아는 보트 안의 트렁크에서 가방을 꺼내 들고 내렸고 나 또한 그녀를 따라 보트에서 내렸다.


"간만에 한국을 돌아가네"


"전쟁 끝나고 집도 다 불타서 무너졌고, 은퇴하고 요양하시겠다고 이곳저곳 떠돌아다니셨으니 말이죠"


"그래도 괜찮지 않아?"


"이동 하는게 힘들다는 것만 빼면 좋을텐데요"


"하기야, 이렇게 왔다갔다 하는것도 불편하네"


잠시 난간에 기대어 이야기를 나누다 뱃고동 소리가 크게 울렸다.


"출발하려나 봅니다."


"그래 우리도 들어가자"


객실로 들어가 위성TV를 켜서 뉴스채널을 확인했다.


늘 있는 테러 관련 뉴스, 기업들의 프로파간다, 북한 정부의 붕괴 등


다른 채널을 돌리다 몇 가지 자극적인 채널들을 보다 보니 되려 피곤해지는 것 같아 그대로 TV를 껐다.


"볼만한게 없네"


"조금 이르지만 식사를 좀 가져올까요?"


"부탁할게"



-사흘 뒤-


배에서 내려 간만에 다시 한국땅을 밟았다.


우리는 주변에 있는 택시를 잡아 타고 예약해둔 숙소로 이동했다.


자동운행으로 목적지까지 이동하는 무인택시 뒷자리에 앉아 주변을 보니 이전에 내가 있을때보다 분위기가 더욱 을씨년스러워졌다.


"예전보다 분위기가 많이 흉흉해졌네"


기업의 승리로 전쟁이 막을 내리고 그나마 있던 인간의 영역의 일마저 바이오로이드들과 AGS에 의해 도태되어 거의 대부분의 사람이 정부가 운영하는 무료 급식소에서 식사를 해결하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확실히 치안이 많이 안좋아졌네요"


"관광이라도 해볼 생각이었는데 그냥 일 끝나면 돌아가야겠어"


그렇게 잠시 앉아있자 숙소로 잡아둔 호텔 앞에 차량이 멈추고 결제 한 뒤 내려 건물안으로 들어섰다.


"어서오십쇼"


"예약해뒀는데요"


"성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라붕입니다."


나는 예약증과 신분증을 건내며 이야기했다.


"예, 확인 되셨고요 열쇠 여기 있습니다."


접수원이 준 열쇠를 집어 들고 니아와 함께 엘리베이터에 몸을 실었다.


"병원 예약이 몇시까지였지?"


혼잣말을 하며 휴대폰을 꺼내 일정을 확인하려는 찰나


"내일 오후 1시 예약입니다."


그녀가 대답했다.


"가만히 있기만 했는데 왜 이리 피곤하냐..."


"너무 긴장하신게 아니신지"


"그럴지도 모르겠네"


잠깐의 대화를 마치고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복도를 따라 들어가 접수원이 준 열쇠에 적힌 방문을 열어 제꼈다.


니아가 방 구석에 물건을 푸는 동안 잠시 멍하니 앉아 창밖을 바라본다.


회색빛 정글의 각진 하늘과 땅의 경계 사이로 해가 뉘엿뉘엿 저물고 있었다.


품에서 약을 꺼내 삼키고 잠시 조용한 시간이 흘렀다.


"이번엔 약을 좀 더 많이 타와야겠어"


"아무래도 왔다갔다 하는것도 일이지요?"


"응, 막상 돌아와 보니 할것도 없는게 크다."


"그러게요, 분위기도 그렇고 뭔가 즐길만한 상황은 아니죠"


그녀의 말을 듣고 잠시 한숨을 쉬었다.


어느덧 태양이 건물 뒤로 넘어가고 주홍빛 하늘도 점점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도시에서의 첫날밤은 그렇게 저물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