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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대원이 오르카호에 합류했다.

듣기로는 긴 세월을 생존하다가

오르카호에 대한 소문을 듣고 직접 찾아온 모양이었다.


"흠, 여기가 내 방인가?"


브륀힐드가 방 앞에서 웃음 지으며 물었다.

사령관이 안내해준 방이었다.


"응. 브륀힐드라고 했지? 앞으로 잘 부탁해."


사령관이 악수를 내민다.


"가까이 오지 마!!"


브륀힐드가 불길을 일으켰다.

화끈한 열기가 뿜어져 나오는 찰나,

므네모시네가 사령관의 앞으로 뛰어들며 불길을 상쇄 시켰다.


"관리자님을 향한 적대적 반응 감지. 즉시 반격...."

"난 괜찮아."


사령관이 므네모시네의 어깨를 잡아 진정시켰다.


"막 다가가서 미안. 다음부터는 주의할게."

"......."


브륀힐드는 독기 어린 눈으로 둘을 노려보았다.

하지만 처음 보였던 오만한 미소를 지으며 표정을 바꿨다.


"흥..... 뭐, 방은 괜찮네. 앞으로는 서로 조심해줬으면 좋겠어."

"그럴게."


쿵.


문이 닫혔다.

사령관은 굳게 닫힌 문을 바라보며 말한다.


"......므네모시네. 방주로의 접속을 허가해줘."

".....관리자님의 뜻대로."


몇 분 후, 사령관은 자리에 앉아 모니터를 들여다본다.

새로운 선원과 마찰이 생겼을 때, 그는 종조 방주 속을 뒤지며 해결책을 찾았다.

이번에도 그는 정보의 바다 속을 헤엄치며 브륀힐드와 관련된 비밀문서를 찾아냈다.


[......그녀를 인격적으로 대한 인간은 한 명밖에 없었습니다.

착하기보다는 특이한 사람이었는데요.

브륀힐드가 자아를 갖게 된 계기는,

삼안 특작부대에 의해 한 여성 연구원의 결혼식이

영영 이뤄지지 못하게 된 순간이었습니다.]


"특이한 사람이었다라...."


사령관은 잠시 고민한다.


'우리 오르카호에는 비정상적일 정도로 특이한 인물이 많지.'


그는 수화기를 들고 말한다.


"어, 콘스탄챠, 지금 호명하는 애들을 좀 불러다줘.

아니, 난교 동침은 아니고... 부탁할 게 좀 있어서.

응, 응. 고마워."








"아, 안녕하다.. 팬텀.. 인사한다...."


보라색 머리가 다가와 덜덜 떨며 인사를 건넸다.

브륀힐드는 그녀를 한눈에 알아봤다.


"몸에 흐르는 그 생체전기.. 너도 버뮤다 팀이구나?"

"으.. 으어... 늑대.. 무섭다.. 흐어어어..."


팬텀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사라졌다.


"......?"


브륀힐드는 은신을 쓰며 점점 사라져가는 그녀를 보고 고개를 갸웃했다.


'뭐지...? 일부로 바보인 척하는 건가?'


동공이 흔들리는 건 진짜 같았는데,

저렇게까지 어버버하는 건 과장이 섞여 있었다.


'흠...'


브륀힐드는 그 기이한 행동에 살짝 호기심을 느꼈다.


'al팬텀이라.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데, 그 다른 점이 묘하게....'


그렇게 생각하면서 걸어갈 때.

맞은편에서 누군가가 걸어오고 있었다.


"아......................................................................."


누군지는 모를 인물이었는데, 그녀가 눈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 뭐, 할 말이 있으면 해."


브륀힐드는 고개를 갸웃하며 그녀를 바라본다.

그 누군가는 숨을 끊지 않고 아주 느리게 말을 이어갔다.


"ㅏ..................................ㄴ......................................."


털썩.

결국, 그 여자는 말을 하던 도중 산소부족으로 쓰러졌다.


"아니, 다이카! 또 말하다가 숨이 멎었나요!!"


붉은 머리의 남자가 달려왔다.


'남자? 목소리는 여잔데...'


브륀힐드는 그 인물을 유심히 살펴본다.


"뭘 쳐다보시죠? 설마 제 가슴을 보신 건가요? 너무 놀라워서?"

"아, 아니.. 그런 건 아니었어. 미안."

"가만히 구경하지만 말고.. 아니, 됐습니다. 제가 데려가죠."


붉은 머리의 판떼기가 여자를 데리고는 어디론가로 날아갔다.


".....여자였나."


브륀힐드는 살짝 코웃음을 치고는 다시 복도를 걷는다.


그녀의 방황에는 목적이 없었다.

오랜 세월을 가름과 함께 방랑해온 탓에 생긴 방랑병이었다.

움직이지 않으면 허전했고,

마침 오르카호 내부를 구경도 할 겸 둘러보는 것이었다.






"사령관! 내게서 도망칠 수 있을 것 같은가!!"

"히야아아아아악! 썸바디 헲미!!!"

"내가 도와주겠다!! 나의 보지 안으로 숨겨주마!"

"으아아아 결국 따먹겠단 거잖아요! 제발 살려주세요!!"


비명을 지르는 두 남녀의 추격전이 한창이었다.


사령관은 여기저기 옷이 찢어진 채였고,

그를 쫓아가는 여성은 달릴 때마다 옷을 하나씩 벗어던지며 변신했다.


"뭔...... 하, 참... 어이가 없어서...."


브륀힐드는 어처구니가 없어서 웃음을 터트렸다.


"여기도 제정신이 아닌 것들이 많네. 재밌겠어."

"그렇게 느낀다니, 다행이네."


브륀힐드가 말을 걸어온 인물을 보았다.


"...에키드나."

"어서 와. 브륀힐드. 그 오만한 미소는 여전하구나."

"너야말로."


둘은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고 서로를 마주 보았다.


"와 본 감상은 어때?"

"흥미롭네."

"흐음, 어떤 식으로?"

"정신 나간 분위기라서 좋아."

"확실히 시끌벅적하지."


에키드나는 자신이 만든 금속 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버뮤다 팀이 다 여기 모여 있다는 소식은 들었어.

당신은 얼마나 여기 있었지?"


"음, 이제 1년이 넘었나? 아니, 2년? 잘 모르겠네."

"1년.....? 년 단위로 여기 있었어?"

"그래. 무슨 문제라도 있나?"

"아니, 놀라워서. 당신이 한 곳에 오래 머물 성격은 아닐 텐데."


에키드나는 쾌락만을 쫓는 성향을 가졌다.

그러나 쾌락이란 금방 익숙해지고 지루해지는 욕망.


브륀힐드가 아는 에키드나는 쉽게 실증을 내어 장난감을 망가뜨리고,

또 새로운 장난감을 찾아 유유히 떠나는 악취미적인 여자였다.


"뭐든 금방 질려했잖아? 변한 건가?"

"아니, 난 똑같아. 여전히 쾌락을 추구하고 있지."

".....먹고 있는 건빵도 쾌락 중 하나인가?"

"후후."


에키드나는 별사탕을 입안에 털어 넣었다.

우아한 자태로 별사탕이나 먹고 있는 모습은 어쩐지 가소로웠다.

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자유로워 보였다.


"이곳에서는 별의별 일들이 다 일어나."

"그래?"

"그래. 여기 오는 동안에도 몇 번 보지 않았나?"

".....다분히 날 겨냥한 것 같은 느낌이 있었어."

"그런 것도 있기야 하지."


에키드나는 아스널과 사령관을 보았다.

결국 사령관은 잡혔고, 복도에서 섹스하고 있었다.


"앙! 아앙! 그대여.. 그거다..!

아래서 더 올려쳐라!

아아앗..!! 아흣..! 아앙!!"


"......짐승 같아. 보여주기 식이 저러면 너무 과한 거 아닌가?"


브륀힐드가 미간을 좁혔다.


"아니, 평소대로야."

"평소대로...?"


"그래. 오늘의 오르카호는 어제와 같아.

그리고 내일도 비슷하겠지.

하지만 비슷함 속에도 매번 새로운 맛이 있어."


"......"

"참, 오자마자 미안한데, 내게 줄 게 있어."

"뭐지?"


에키드나가 강철로 된 판을 쏘아 던졌다.


브륀힐드는 어렵지 않게 그것을 받아냈다.

뱀으로 된 테두리.

중앙에는 금속으로 조각된 남녀가 손을 맞잡고 서 있으며,

그 아래 짧은 글귀가 있었다.


"저희... 내일 결혼해요...?"


브륀힐드가 고개를 들어 에키드나를 보았다.


"대뜸 그런 옷을 입어서 악취미라고 생각했더니...."


에키드나는 웨딩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후후후... 이곳의 생활은 즐거워.

처음으로 평생 내 품에 사로잡아두고 싶은 것이 생겼을 정도로."


".....안 변했다고 하지만 많이 변했어, 너."


"그런가? 결혼하면 특권이 생기기 때문이야.

일 년에 한 번, 나만 독점할 수 있는 특권이 생기거든."


"일 년이나 기다릴 수 있어졌다니.. 너 에키드나 맞아?"

"후후후후."


에키드나는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고 잔잔하게 웃었다.


"너도 잘 적응했으면 좋겠네.

그 전에 내가 먼저 행복을 거머쥐고 있겠지만.

그럼 난 결혼 준비를 해야 해서 이만."


"하....!"


브륀힐드는 웃었다.

손에 쥔 청첩장을 보자, 옛날의 기억이 떠올랐다.

자신에게 처음으로 웃음을 줬던 그 허무맹랑한 여자.


그녀의 얼굴이 피로 범벅이 되던 그날의 결혼식이.


가름과 함께 방랑하던 시절,

브륀힐드는 핏빛 드레스가 나타나는 꿈을 꿀 때면

온몸이 흠뻑 땀으로 젖어 깨어나고는 했었다.


지금도 청첩장을 잡은 손이 미약하게 떨렸다.

그녀는 왼손으로 그 손을 꼭 쥐며 떨림을 억눌렀다.


손에 새로운 청첩장이 쥐어졌기 때문일까,

평소와는 달리 쉽게 떨림이 멈췄다.


'그래, 난 극복할 계기가 필요했을지도 몰라.'


이 모든 게 설계된 걸까?

아니면 단지 운 좋게 순서가 맞아 떨어진 걸까.


하지만 어느 쪽이든, 에키드나는 진심으로 행복해 보였다.


"어쩌면... 내 일을 계기로 서로의 마음을 밝혔을 지도."


에키드나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버리기에만 익숙해졌던 그녀는, 얻는 것에 서투니까.


진실이 어떤지도 알고 싶었다.


"만약 꾸며진 사랑이면... 죄다 불태워버려야지."


그렇게 중얼거리지만 그녀는 기쁨을 느끼고 있었다.


드디어 찾은 것이다.


오랜 방랑을 끝내고

상처로 범벅이 된 마음을 치료할 곳을.







"신랑신부, 키스~!!!"


정장을 입은 사령관과 웨딩 드레스 차림의 에키드나가 입을 맞춘다.

길고 긴 입맞춤. 주변 하객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둘을 부추겼다.


"사령관 뭐하나! 어서 쓰러트리고 섹스해라!!"


어제 사령관을 덮친 그 섹스마였다.

그러자 사령관이 그에 호응했다.

그가 에키드나의 가슴을 움켜쥐며 딥키스를 한 것이다.


'무슨... 하...!'


브륀힐드는 그 천박함을 보며 경악했고, 웃었다.


"오우야!!!!!!!"


하객들은 난리가 났다. 다들 익숙한 모양.

아니, 즐기는 눈치였다.


"이런....."


긴 입맞춤의 끝, 에키드나가 입을 열었다.


"이러다간 당신의 욕망에 내가 잡아먹힐지도 모르겠네...?

뭐, 좋아. 계속해줘, 당신...."


그날의 결혼식은 눈 뜨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화끈하고 야했다.

법도가 무너진 세상의 결혼식이란 이런 거구나...

라는 것을 느낄 수 있는 날이었다.


하지만 에키드나는 누구보다 행복해보였다.

그 행복한 미소에,

브륀힐드의 마음도 씻겨져 내려갔다.







"앗!"


어느날, 모퉁이에서 사령관과 브륀힐드가 부딪혔다.


"미, 미안.. 괜찮아?"

"하....!"


사령관은 브륀힐드의 위에 엎어졌다.

서로의 입술이 닿을까, 말까 할 정도의 거리.


"미, 미안. 당장 떨어질..."


텁.


그때 그녀가 사령관의 목을 잡았다.

언뜻 보기에는 목을 조르는 듯했으나,

딱 적당할 만큼만 힘을 주고 있었다.


"에키드나에 이어서 나한테까지 손을 대는 거야?"

"아, 아니 그게...."


"이번에는 실수니까 봐주겠어. 하지만 조심해.

너무 가까이 다가오면, 내 불길에 휩싸일 테니까."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녀는 사령관을 놓아주지 않았다.

오히려 팔로 사령관의 목을 감싸며 더 가까이 끌어당겼다.


"그런데 조금 궁금하네. 내 안의 뜨거운 열기를...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그녀는 사령관의 귓가에 조용히 속삭인다.


"그리고 그걸 네가 끝까지 버텼을 때.. 내가 어떻게 됐을 지가.

나도 호기심이 없지는 않았거든. 긴 세월... 혼자였으니까."


"브, 브륀힐드...."

"분명 일상이랬지? 복도에서의.... 섹스."


그녀는 사령관과 눈을 마주쳤다.

그녀의 눈동자는 성욕으로 불타오르고 있었다.


"언제까지 기다리게 할 생각이야?"

"......!!"


사령관은 그녀를 거칠게 탐했다.


둘이 복도 바닥에서 사랑을 나누는 동안,

둘의 주위에는 불의 벽이 생겨났다.


에키드나가 하룻동안 그를 독점하듯.

이 순간만큼은 아무도 접근하지 못하도록.

불길이 두 사람을 에워쌌다.






오래 지나지 않아, 그녀는 에키드나에게 웨딩 드레스를 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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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륀힐드 목소리 너무 요염함 듣고 미쳐버릴 뻔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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