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령관이 아니다.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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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카 아이돌 프로젝트.

 

내가 가볍게 말한 거에서 점점 눈덩이가 불어나듯 어느새 오르카 모두를 설레게 만드는 하나의 대형 이벤트로 발전했다.

 

“얘들아, 준비 됐지? 이제 몇 시간밖에 안 남았어!”

 

긴장했을 법도 한데 그런 느낌이 전혀 없는 슬레이프니르를 중심으로 모인 이번 주인공들.

저마다 긴장으로 부들거린다거나 본격적인 무대를 보고 눈을 빛낸다거나 아니면...

 

“...모모 님, 기대해주세요...!”

 

모모에게 기대해달라고 하거나.

응. 응. 모모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은 어쩔 수 없지.

 

피식 웃으면서 하늘색 머리를 바라보니 그녀 역시 내 시선을 의식했는지 “크흠!”하고 헛기침을 하더니 내 쪽으로 한 발짝 다가섰다.

 

“그... 오늘 무대가 성공적으로 끝난다면 이번에도 같이 애니메이션이라도...”

 

“물론이지. 밤에 어때?”

 

저번 밤에 같이 모모 애니메이션을 본 뒤로 ‘같이 보고 싶다면 언제나 오케이’라는 느낌으로 이미 몇 차례 번번이 만났었다.

 

내 대답에 흐레스벨그는 두 주먹을 꽈악 쥐고는 “오늘밤이야 말로 승부수를 띄워야 할 때...!”라고 중얼거렸는데 그게 퍽 웃겼다.

흐레스벨그는 언제 무대에 오르더라도 긴장은 안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저 모습을 보니까 그건 또 아닌 모양이다.

 

“긴장했어?”

 

나는 넌지시 그녀에게 다가가 머릴 쓰다듬었다.

 

쓰담- 쓰담-

 

“흐... 이러니까 긴장을 안 할 수가 없네요.”

 

예전이라면 화들짝 놀라 수치심에 얼굴을 붉혔겠지만 앞서 말했듯 영혼의 교류로 친해진 상태라 그런지 흐레스벨그는 손가락만 쪼물거릴 뿐.

오히려 내 손길을 따라 고갤 움직이고서는 약간 쀼루퉁하게 볼을 부풀리는 게 아닌가!

 

뭐야, 귀엽잖아!

 

그렇게 내 쓰다듬을 몇 번 더 받다가 부대원들과 함께 무대 이곳저곳을 점검하러 떠난 사이.

며칠 전까지만 해도 광기에 사로 잡혀 전설의 포켓몬을 본 사람처럼 나를 포획하려 들었던 사령관이 다가왔다.

 

“크으, 달다 달아.”

 

“뭐야.”

 

한동안 안 보인다 싶었더니 이렇게 얼굴보고 한다는 말이 ‘달다’라니.

얘도 가끔 보면 이상하다니까?

 

“내가 괜히 걱정했네. 그나저나 말은 또 언제 놓기로 한 거야?”

 

“자주 만나다보니까 흐레스벨그가 나보고 말 놓으라고 하더라고.”

 

둘이서 같이 모모 극장판을 볼 때 놨었다.

다른 차원에서 넘어온 마법소녀가 예전 세계를 없애고 하나 된 세계를 만드는 내용이었지.

 

“맞다! 무대 도와주는 애들 주려고 준비한 간식!”

 

조잘조잘 꼬치꼬치 캐묻는 사령관에게 순순히 이것저것 다 불고 있을 때 마침 곁에 있던 슬레이프니르가 발작하면서 외쳤다.

 

“오. 간식?”

 

딱히 배고프진 않았지만 고생했다고 주는 간식이라면 먹고 싶은 게 당연!

역시 리더에 맞는 품격을 가지고 있구나 하면서 멀뚱히 바라보자 “크흐흐!”하고 웃은 슬레이프니르가 두 손을 번쩍 들었다.

 

“응! 근데, 숙소에 두고 왔어!!”

 

여기선 내가 과감하게 팍 실망한 티를 내어야할까 고민하고 있을 때.

 

“저랑 그리폰이 갖고 왔어요.”

 

분명 무대를 점검하러 갔던 흐레스벨그와 그리폰이 두 손 가득 상자를 가지고 성큼성큼 다가와 상자를 내려놓는 게 아닌가!

그나저나 이거 양이...

 

“엄청 많네?”

 

그러니까 내말이.

 

사령관이 놀라 말한 것처럼 엄청난 양이었다.

 

우리 착한 스카이나이츠의 천사들은 별거 아니라며 모아두었던 비상금을 털었을 뿐이라고 덧붙였다.

 

그녀들의 아름다운 마음에 고생하던 다른 바이오로이드들도 하나둘 모여들어 저마다 간식을 받아가는 형태가 되어버렸다.

 

초코과자를 받아가는 행복한 더치.

같이 일한 기억이 없지만 초코를 가져는 알비스.

줄을 한 번 더 서서 두 번 받아가는 LRL.

부식을 받자마자 눈물을 흘리며 그 자리에서 까먹는 브라우니.

 

당장 눈에 띄는 이들만 보아도 정이라는 무형의 가치가 시각화된 것만 같아서 보는 내가 절로 미소가 다 지어질 정도였다.

 

“스태프씨. 항상 고마워요.”

 

아, 물론 나도 받았다.

자연스러운 미소와 함께 내 몫을 따로 챙겨주는 흐레스벨그.

이런 식으로 스태프라고 불리니 뭔가 오묘하면서도 나름 열심히 일한 것 같아서 기분은 좋았다.

 

“고마워. 잘 먹을게.”

 

이런 거에는 응당 미소로 보답하는 거겠지.

 

“저는 이만 다른 분들께도 나눠드리러 가볼게요.”

 

화아악- 얼굴이 붉어진 흐레스벨그가 다급하게 떠나고 사령관 쪽에 합류했더니 무슨 슬레이프니르가 펭귄인가 아닌가로 떠들고 있었다.

 

“펭귄이 아니야...! 애초에 펭귄이 하늘을 날 리가 없잖아!”

 

“아니, 그 디자인은 아무리 봐도...”

 

당연히 펭귄 같은데 저렇게 심오하게 떠들 정도인가 싶었지만 조용히 입을 닫고 있는 마키나와 함께 말을 아꼈다.

 

“즐거워 보이는데 미안해요. 최종점검 끝났어요.”

 

이 엄청난 토론은 끝맺은 것은 영화 ‘킬빌’이 연상되는 슈트를 입은 아자즈.

솔직히 제비건 펭귄이건 둘 다 조류니까 거기서 거기인거 아니냐고.

 

다행히 사령관도 슬레이프니르도 더 이상 이야길 하고 싶지 않은지 대화는 그쳤고, 마침 예전에 저승으로 가신 오르카 폰이 생각나서 그 틈에 나는 아자즈에게 말을 걸려고 했다.

 

“후후, 여기서 이렇게 또 만나네요? 잘 잤어요?”

 

근데 이렇게 저쪽에서 먼저 말을 걸어올 줄이야.

 

“네. 저도 만나서 반가워요.”

 

“반갑다니... 기쁘네요.”

 

나긋나긋한 미성.

그리고 핀트가 이상한 4차원적인 대화.

그게 아자즈답다.

 

“아, 참. 혹시 괜찮으시면 망가진 제 오르카 폰 좀 봐주실 수 있으신가요?”

 

“좋아요. 손보는 건 잘하니까요. 아, 근데 그냥은 안 되겠고...”

 

흔쾌히 좋다고 말한 아자즈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내 주변을 가볍게 한 바퀴 돌면서 나를 꼼꼼히 살피기 시작했다.

 

그러곤 이내 기분이라도 좋아진 듯 “흐흥~”거리면서 탁 멈춰 섰다.

그것도 내 앞에 바로서서 얼굴을 가까붙이기 시작했다.

 

뭐지?

 

게임일적에도 뭔가 대게 4차원적인 캐릭터구나 했었는데 실제로 보니까 4차원은 4차원인데 도통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에도 그녀의 얼굴은 점점 더 가까워져서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급히 눈알을 굴려서 사령관 쪽을 바라보았건만 사령관 이놈은 옆에 마키나랑 같이 무슨 동네 아줌마처럼 “어머! 어머!”거리면서 호들갑만 떨고 도와줄 생각은 전혀 없어 보였다.

 

“여길 봐줬으면 하는데요.”

 

아니 가까이서 들으니까 진짜 목소리에 꿀이라도 발라놨는지 나긋나긋하면서도 달콤한 꿀이 귓가에 방울방울 떨어지는 것처럼 숨소리 하나하나 들려오기에 바로 아자즈를 향해 눈을 돌렸다.

 

그리고 존나 놀랐다.

 

“흐흠... 역시 이렇게 마주보니 좋네요.”

 

아자즈는 태평하게 말했지만 나와 그녀의 거리는 겨우 손가락 한마디 남짓.

그녀가 마음만 먹으면 입술까지 닿을 거리였다.

 

“이러다 닿겠는데요.”

 

“뭐가요?”

 

“입술이요.”

 

“아하.”

 

뭐가 아하야.

내가 친히 말로 주의를 줬건만.

‘그래서요?’ 하고 묻는 것 같은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리는 게 다라니.

 

“한 번쯤 해보고 싶었던 게 있어서요.”

 

“뭐-”

 

뭐냐고 묻기도 전에 훅 들어온 아자즈에 놀랐고.

 

“냠.”

 

“...?”

 

뜬금없이 내 볼을 부드럽게 물은 아자즈의 기행에 두 번 놀랐다.

 

“뭐해요?”

 

우물- 우물-

 

“저기요?”

 

뽀옥-

 

“프하아, 네?”

 

나는 아자즈의 침범벅이 된 내 오른쪽 볼의 감각을 애써 무시한 채 그녀를 보았다.

 

내 볼을 씹고 뜯고 할 순 없어서 쪽쪽 빨았던 건지.

그녀의 입에서부터 투명한 실가닥이 늘어져 톡톡 떨어졌다.

그것이 아깝다는 듯 아자즈는 혀를 놀려 입술을 핥았다.

 

“이게 무슨 의미죠?”

 

“으음... 글쎄요. 딱히 의미는 없었는데요.”

 

내 물음에 아자즈는 멀뚱멀뚱 나를 바라보며 대답했다.

 

“시간 되시면 오르카 폰 들고 찾아오세요. 낮이던 밤이던 관계없이 말이에요.”

 

아자즈는 싱긋 웃으며 혀로 핥아 매끄러워진 입술을 손가락으로 쓸었다.

그러곤 자신의 손가락을 보면서 “제 손으로 천천히 만져줄게요.”라고 덧붙였다.

 

나는 괜히 뭔가 이상한 마음에 눈을 돌렸고 조용히 웃어주는 마키나와 “흐하...! 대담해!”라고 중얼거리는 제비 하나와 실실 쪼개는 프로듀서란 놈을 볼 수 있었다.

 

감히 나를 보고 쪼개?

좋아 쪼개지는 건 네 머리다.

 

“하아, 하아... 큰일났어요!”

 

저 멀리서 다급하게 뛰어오는 블랙하운드와 그리폰 거기에 하르페이아까지.

아마 내가 큰일을 내려는 것을 예지했나보다.

허나 내 예상과 다른 것이 거칠게 숨을 내쉬는 블랙하운드의 입에서 나왔다.

 

“뮤즈가, 뮤즈가 없어졌어요!”

 

뭐? 누가 없어졌다고?

 

“늦길래 조금 전에 방에 찾아가봤는데 텅 비어있고, 저희 숙소에도 없고...“

 

정말 큰일이라도 난 듯 눈망울이 파르르 떨리고 있는 하르페이아의 말에 나도 순간적으로 뭔가 쎄한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설마...?

 

“잠깐 화장실이라도 간 거 아니야?”

 

“이것 봐.”

 

사령관의 태평한 소리에 그리폰이 내민 것은 작은 쪽지였다.

쪽지엔 둥글둥글한 글씨체로 ‘미안해요’라고 적혀있었다.

 

“허어...”

 

나도 모르게 김빠지는 소릴 내버렸다.

 

나는 쪼개려던 사령관의 머릴 보았다.

사령관 역시 당황한 듯 보였다.

 

아이돌물의 전통인 탈주가 결국 일어나고야 말았다.

큰일은 큰일이건만 나는 조용히 사령관만 바라보았다.

 

이런건 원래 프로듀서가 해결하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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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방금 들어봤는데

아자즈는 끈적함이 남지 않는 달콤한 아카시아 벌꿀의 그것과도 같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숨소리가 야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