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드엔딩

용 외전 아주 조금 스포주의




힘겹게 숨을 내쉬는 노인의 곁에 앉아 자리를 지키는 용의 짧은 말 한마디에 노인은 희미한 미소를 띄운다.

삶의 마지막이란 생명을 갖고 태어난 이들에게 피할 수 없는 길이지만, 뒤에 남겨질 이가 그 길을 배웅하는 것 역시 쉽지 않은 길.


"소관은 평생을 군인으로 살아왔소. 이렇게 누군가 곁을 떠나는 것은 익숙하니... 괘념치 마시오."


가슴이 아린다. 금방 이라도 눈물이 흐를 것 같다. 하지만 애써 평온을 가장하며 용은 노인의 손을 붙잡았다.


"주군께서 소관에게 했던 말을 기억하시오?"


많은 세월을 살아온 바, 수많은 추억들이 남아있지만 그중에서 가장 또렷하게 남은 일. 그에게 그녀 자신의 상징인 검을

맡기며 했던 말들과 그가 그녀에게 돌려주었던 말, 그것들은 여전히 용에게 강하게 뿌리 박혀 남겨져 있다.


"소관에게, 그리고 모두에게... 저 너머의 세상을 보여주겠다 하셨소."


전쟁을 위해 태어나, 전쟁 만을 위해 살아가며 그저 적들을 무찌르고 승리를 쟁취하는 것만이 탄생의 목적이었던

용에게 그는 약속했다. 그리고 그 약속을 지켜냈다.


"아름다웠소. 참으로 아름다웠소. 평화로운 세상이란... 정말이지 아름다운 것 뿐이었소."


과거의 세상이란 언제나 포연이 짙은 구름을 이루고 푸른 바다는 파괴된 잔해에서 쏟아진 기름과 피로 얼룩져 있었다.

파괴와 혼돈, 죽음만이 가득하던 세상은 그의 지도 아래에 평화를 되찾고 번영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그대의 곁에 머무를 수 있어 행복했다오. 본래 전쟁이 끝나면 소관은 필요가 없어질 것이라 여겼지만..."


염치없는 부탁이라는 것은 용도 잘 알고 있었다. 따라서 그저 먼 발치에서 지켜보는 것으로 만족하려 했었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곁을 허락해주어 진심으로 기뻤소."


군인이란 전쟁을 대비하고 전쟁을 위해 존재한다. 전쟁이 없다면 필요가 없어지지만 그럼에도 필수불가결한 존재. 

그러기에 용은 평화가 찾아온 세상을 바라면서도 두려워했다. 그의 곁에 더 이상 자신의 자리가 없을까. 전쟁이 없어지면

그의 곁에 머무를 수 없을까. 그것이 두려웠다.


"군인이 원래 그렇소. 감정 표현이 서툴고, 항상 딱딱하지."


용의 독백을 듣고 있는 노인의 손에도 힘이 들어갔다. 차분하고 담담한 어조에도 숨겨지지 않는 감정이 서로 마주 잡은

손을 통해 전달되는 느낌이 드는 것처럼 그의 손을 통해서 용에게도 그의 감정이 전달되었다.


"마지막까지 걱정을 끼치는구려, 미안하오... 역시 완벽히 숨기지는 못하겠소."


용의 얼굴에 한줄기 물방울이 흐르기 시작했다. 멸망 전의 세상에서 다시금 평화를 되찾고 번영하기 시작한 지금까지,

긴 세월을 함께 보내며 서로를 지탱했던 기둥처럼 마음을 나눈 상대방을 떠나보내는 일은 역시 괴로운 상처로 남는다.


"그래도 걱정 마시오. 그대가 소관에게 했던 약속을 지켰던 것처럼..."


한 손으로 눈물을 훔쳐내며 그의 입술에 살며시 입을 맞추는 용. 


이윽고 살며시 떨어진 입술 너머로 보이는 그녀의 얼굴에는 더는 눈물이 흐르지 않았다. 

그를 진심으로 존경했기에 그의 유지를 지켜야 하며, 다시 없을 사랑처럼 그를 사랑했기에 눈물로 보낼 수 없었다.


"이번엔 소관이 그대에게 약속하겠소."


떠나가는 주군의 길이 평온할 수 있도록, 사랑하는 남자의 의지가 이어지도록.


"피할 수 없는 죽음이 찾아올 때까지, 주군.. 아니, 서방님이 남긴 이 세상을 지켜 내겠습니다..."


용의 약속에 반응하는 것처럼 그의 손이 천천히 올라와 용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입가에 희미하게 지어진 미소와

살며시 뜬 눈 사이로 흘러 나오는 애정. 그것들을 느끼며 용 역시 그녀의 얼굴을 쓰다듬는 그의 손에 손을 얹었다.


"부디, 맡겨주시길...."


이윽고 그의 바이탈 사인이 멈추고, 그가 떠나갔다.

만약 가슴을 갈라 심장을 찢는다면, 이런 아픔일까.


그의 마지막을 끝까지 웃는 얼굴로 배웅한 용이 드디어 모든 감정을 토해내며 그의 가슴에 얼굴을 파 묻었다.


"평생을 함께한 아내를, 어째서 이렇게 두고 가십니까... 서방님... 가지 마세요... 떠나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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