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례하겠습니다. 사령관님.”


케시크는 부드럽게 열리는 사령관실의 문이 열린 순간, 의아함을 느꼈다. 분명 누군가 있어야 할 자리에 아무도 없던 것과 희미하게 들려오는 편안한 숨소리. 그리고 쌓여 있는 서류들. 케시크는 품 안에 껴안고 있던 서류 뭉치들을 가까운 서랍 위에 올려놓고는 천천히 한 발자국씩 움직이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시야가 번갈아가면서 사방을 흝었다. 그러다가 업무를 보는 책상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신발이 가지런히 놓여 있는 것이 보였다. 분명 사령관의 것이었다.


두리번 거리던 고개가 천천히 흔적을 따라 이동했다. 책상 뒤에 공간있어요. 라는 말처럼 두 사람은 넉넉히 누울 수 있는 간이 침대 위에서 사령관은 두 팔을 벌린 채 자고 있었다. 분명 콘스탄챠나 다른 부관들이 있었다면 당장에라도 깨우거나 그에 준하 행동을 했겠지만, 케시크는 아직 그럴 만한 능력을 갖추지도 못했고 그럴 만한 배짱도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처음 보는 이 장면에 호기심이 생겼다. 혹은 자그마한 독점욕일수도 있었다. 적어도 자고 있는 사령관의 옆은 자신 밖에 없지 않은가. 케시크는 마른 침을 한 번 삼키더니 신발을 벗어 사령관의 신발 옆에 가지런히 놓아 두었다. 그러고는 천천히 무릎을 꿇고는 그를 유심히 쳐다보았다. 잘생겼다고 말할 정도로 이목구비가 뚜렷한 얼굴은 중성적과 남자다움의 사이에 있었다. 그리고 반 쯤 풀어 헤친 와이셔츠와 무방비하게 흐트러진 머리. 그녀는 무릎을 움직여 그에게 다가가더니 부드러울 것 같은 볼을 손가락으로 콕콕 찔렀다.


부드럽다기보다는 딱딱함과 말랑함 그 사이의 어딘가. 말하자면 단단한 젤리 같은 촉감이었다. 케시크는 몇 번을 더 찔러보다가 조금 더 욕심을 내보기로 했다. 그녀는 뻗어 있는 사령관의 팔을 배게삼아 천장을 바라보며 누웠다. 물론 푹신하지는 않았다. 운동을 한 덕분에 탄탄한 근육이 자리 잡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케시크는 그것만으로도 좋았다. 붉게 상기된 얼굴이 달궈져 화끈거렸다.


“사... 령관님?”


케시크는 이성적으로는 그를 깨우는 것이 맞았다. 일을 처리해야한다는 임무가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것을 집어 삼킨 감성은 손을 뻗으라고 하고 있었다. 이미 옆에 누운 순간부터 감성의 영역이었다. 그녀는 본능에 모든 것을 맡기기로 했다. 몸이 사령관의 쪽으로 비틀어졌다. 꿈틀거리며 나아가는 몸이 그에게 닿았다. 그녀의 심장이 더욱 세차게 두근거렸다. 그럼에도 멈추지 않는 팔과 다리가 그를 껴안는 배게를 안 듯이 감쌌다. 서로의 따뜻함이 온 몸에 퍼졌다. 어느새 헤실거리며 사령관의 가슴 위에서 손가락을 꼼질거리는 케시크는 순간 섬찟함을 느꼈다. 위화감이라고 해도 좋았다. 그녀는 그 근원지를 확인하기 위해 고개를 조금 올렸다. 그러자 그 순간, 자신을 덮친 몸을 볼 수 있었다.


“케시크. 봐주다 보면 끝도 없겠다. 그치?”


상황의 역전이었다. 순간적으로 안는 입장에서 안아진 입장이 된 케시크는 버둥거리며 변명의 말을 내 뱉어야 했지만 그마저도 쉽지 않았다. 안는 베게의 입장이 된 그녀의 몸은 이미 사령관에게 속박 당해 있었고 가슴에 파 묻히다시피 달라 붙은 얼굴은 더 뜨거워져 정상적인 사고가 불가능했다.


“죄... 죄송합니다! 언제부터...?”


“볼을 찌를 때 부터?”


케시크는 자신의 불완전함과 부주의함을 한탄했다. 그냥 깨울 것을. 혹은 바로 누울 것을. 조금이라도 사심을 더 채우기 위한 행동이 이렇게 되어버릴 줄이야. 그녀는 이제 어떤 처벌을 받을 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당분간 사령관실을 못 들어온다거나 아니면 식당 사역을 지원한다던가. 그런 미묘하게 하찮아 보이는 처벌들이 머릿속을 휘저었다. 그런 생각들 도중, 사령관은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한 손으로 케시크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난 말이야. 안고 자는 배게가 없으면 잠을 못자.”


“예? 하지만 방금까지...”


사령관은 그녀를 더 강하게 끌어 안으며 다시 말했다.


“두 번 말하고 싶지 않은데.”


“네...? 네!”


그렇게 사령관은 다시 눈을 감았다. 쓰다듬는 손의 속도가 조금씩 줄어들었다. 껴안은 팔이 빠져나갈 정도로 충분히 느슨해졌다. 하지만 케시크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번에는 그녀의 쪽에서 팔을 감으며 중얼거렸다.


“안녕히 주무세요. 사령관님.”


그녀도 천천히 눈을 감았다.


ㅡㅡㅡ



빙수. 얼음 빙. 물 수. 말 그대로 얼음을 갈아 그 위에 무언가를 얹어 먹는 디저트. 티타니아는 빙수를 좋아했다. 물론 요즘은 우유를 얼려 갈아 넣지만, 그녀는 전자를 더 좋아 했다. 간 얼음 위에 설탕에 졸인 통팥을 가득 올려 놓고 쫀득한 찹쌀떡과 견과류로 토핑하고 마지막은 딸기 시럽과 큼직한 생 딸기 하나. 그녀는 팥빙수를 먹을 때 마다 나를 부르고는 했다. 오늘도 그 날이었다. 호라이즌의 카페가 아닌 외각의 한적한 테이블과 우리 둘 사이에 놓여 있는 팥빙수 하나. 그리고 움직이는 손 두개.


티타니아는 섞어 먹는 것을 좋아했기에 열심히 손을 움직이고 있었다. 얼음의 색이 붉게 물들어갔다. 그럼에도 꿋꿋히 제 자리를 지키고 있는 생 딸기를 보며 어떻게 저렇게 자연스럽게 섞을 수 있나? 라는 의구심이 들었지만 말 하지 않기로 했다. 그녀는 여전히 까탈스러웠고 날이 서 있었으며 아무도 믿지 않는 듯 했다.


사실 이 모든 일의 시작은 채 한 달이 되지 않았다. 예전에 디저트로 나온 빙수를 다 먹지 못한 나와 먹고 싶다는 것을 표현하는 애절한 눈의 티타니아. 그때 부터 시작된 이야기였다.


“맛있어?”


한 숟가락을 떠서 입에 넣기 직전의 티타니아를 보며 한 말이었다. 그녀는 불만족스럽다는 듯 나를 째려보다가 손을 움직였다. 입에 단 것이 닿자마자 조금 유순해진 눈빛과 손이 다시 빙수를 향해 다가갔다.


“먹을 만 해”


“그건 다행이네.”


이번에는 내 차례였다. 얼음과 팥. 그리고 딸기시럽이 잘 섞인 빙수를 한 입 입에 넣었다. 적당히 단 맛과 팥의 통통함이 사각거리는 얼음과 만나 다채로운 식감을 만들어냈다. 한 입. 두 입. 우리 둘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빙수의 절반을 해치워나갔다. 그러다가 문득 두통이 와 머리가 찡해짐을 느꼈다. 본능적으로 관자놀이에 손을 올려 꾹꾹 눌렀다. 그 순간 흠칫거리며 나를 바라보는 티타니아가 보여서 멋쩍은 웃음을 지어 보였다.


“니 바보짓은 익숙해지지 않아.”


“그건 미안하네.”


묘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독설을 들었음에도 나쁘지 않은 기분 탓이었을까? 갑자기 고개를 돌려 버린 티타니아는 방금 보다 조금 더 붉어진 얼굴이었던 것 같았다. 날이 더운가? 그렇다고 하기에는 빙수 때문에 시원한데. 나는 이유를 모른 채 다시 숟가락을 움직였다.


“아. 맞다. 티타니아. 요즘 어때?”


“뭘?”


귀찮다는 듯이 툭하고 내 뱉은 티타니아의 말에 멋쩍게 웃어주며 다시 말했다.


“이것 저것. 뭐 불편한 점은 없는지, 마음은 좀 편해졌는지. 뭐 그런 것들. 예를 들자면... 행복이라던가?”


“멍청해. 네 헛소리를 들으면 여왕도 이상해지는 기분이야.”


그런데 나쁘지 않아. 라고 중얼거린 티타니아는 무언가를 고민하더니 숟가락으로 툭 하고 건드린 딸기가 빙수의 곡선을 타고 내 시선 앞으로 굴러 떨어졌다. 처음에는 이게 무슨 의미인가 싶어 물어보려 했지만 바로 나온 티타니아의 말에 묻히고 말았다.


“여왕. 이제 배불러. 너 먹어.”


“티타니아. 너 딸기 좋아하...”


“먹어.”


나는 하는 수 없이 딸기를 집어 들었다. 과육을 천천히 씹으며 흘러 나오는 풍부한 과즙이 입 안에 가득 퍼졌다. 상큼하고 기분 좋은 끝맛의 씁쓸함. 빙수의 마지막을 장식 하기에는 충분한 맛이었다.


“맛있네.”


그 날, 나는 처음으로 티타니아의 미소를 보았다.


ㅡㅡㅡ



어두운 방 안에 조명 하나만이 흔들거렸다. 은은한 백열 전구였다. 그 아래에는 쇠 파이프로 무언가를 두드리는 사령관과 아무 말 없이 하나 밖에 없는 눈을 질끈 감은 콘스탄챠. 그리고 고깃덩어리가 되어버린 바이오로이드들이 있었다. 질척한 피를 가득 뿜어내며 알 수 없는 말을 내 뱉지도 못하는, 숨이 끊어진 시체들이 사후경직으로 꿈틀거렸다. 바닥은 이미 누군가의 피인지도 모르게 섞여 흐르고 있었다. 


사령관은 바닥에서 꿈틀거리는 고깃덩어리를 발로 차 구석으로 밀어 넣었다. 마치 흥미가 떨어진 장난감이 꼴도 보기도 싫다는 듯이. 이번에는 쇠파이프가 허공에 한 번 휘둘러졌다. 파공음을 내펴 흩뿌려지는 노폐물 덩어리들과 핏물들이 바닥에 닿았다. 이미 티도 나지 않을 정도로 붉으스름으로 질척거리는 바닥은 그의 발이 움직일때 마다 찌걱거렸다.


콘스탄챠. 사령관은 그녀를 불렀다. 얼굴에 묻어 눌러 붙은 피를 닦지도 않고, 질척한 살점이 달라 붙어 있는 와이셔츠를 털어 내지도 않고, 붉은 물을 한 껏 빨아들여 검붉게 변한 바지를 신경도 쓰지 않은 남자의 지극히 무덤덤한 말이었다. 담배. 사령관은 다시 그녀를 불렀다. 이번에는 짜증이 섞인 목소리였다. 콘스탄챠는 그제서야 품 안에서 담배를 하나 꺼내 그의 입에 물려 불을 붙혔다. 언제부터인가 바뀐, 매캐하고 지독하리만큼 씁쓸한 향의 담배였다.


연기가 한 번 내 뱉어졌다. 서서히 올라가는 부산물이 섞인 공기가 조명에 맞닿아 희끄무리하게 형체를 드러냈다. 회색 빛의 연기. 이제 조금씩 검게 물 들어가는 색의 시작이었다. 하지만 사령관은 그것을 보지 않았다. 그저 바닥에 조금씩 스며드는 노폐물들과 이제 곧 갈려지거나 버려질 고깃덩어리들을 보고 있었다. 담배가 반 쯤 사그라 들었다. 그는 다시 한 번 숨을 내 뱉고는 콘스탄챠를 보며 말했다.


“불만 있으면 말 해. 눈치보지 말고.”


“주인님... 제가 어떤 말을 해야하나요.”


“글쎄? 내 심기를 건드리지 않는 말이면 좋을텐데.”


적어도 콘스탄챠가 내 뱉는 말 중에는 그런 말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녀는 사랑하는, 사랑했던 그가 어째서 이리 바뀌었는지 생각했다. 그리고 언제나 결론은 그 날이었다. 오르카호를 견제하는 이들의 연합의 침공. 오르카호는 그들에게 패했으며 많은 이들을 잃었다. 그리고 지금, 적대하는 이들의 몰락을 기점으로 터져나온 복수심이 그의 폭력성의 고삐를 쥐고 있었다.


“내가 맞춰볼까? 혹시 이 지방 덩어리들을 동정하는거니?”


콘스탄챠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어 다시 눈을 감고는 고개를 떨구었다. 곧고 착한 심성의 그녀로써는 참을 수 없는 폭력의 연쇄였다. 언젠가 망가져 뒤틀릴 것이 분명한 그의 몰락을 보고 싶지 않기도 했다. 그렇기에 콘스탄챠는 간신히 입을 열어 말했다.


“저는... 그저 주인님이 걱정될 뿐이에요.”


“말은 다 그렇게 하지. 그래. 다 그렇게 해. 나를 위해서라느니 걱정이 된다느니. 근데... 그런 이들은 어떻게 되었게?”


사령관은 들고 있던 파이프로 미동도 없는 시체들을 하나씩 겨누며 말했다.


“저기. 저 가장 왼쪽에 뒤져있는 년이 그 말을 한 년이었어. 배신자였지. 그리고 그 다음. 저기 가운데 모여 있는 년들은 우리의 오르카호를 짖밟은 년들이야. 무슨 이름이었지? 이제는 몰라도 되는 이름들이야. 어짜피 도축된 개새끼마냥 쇠고랑에 쳐 달릴 년들이니까. 그리고 저기 저 년. 저 년은 너도 알잖아?”


가장 구석에 있는, 온 몸의 관절이 기괴하게 꺾인 이였다. 희끄무리한 빛에서도 보이는 시퍼런 멍들과 감지 못한 두 눈이 흐리멍텅하게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 시체를 콘스탄챠는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의 눈을 가져간 바이오로이드라는 사실을.


“뭐가 문제야? 내가 복수 좀 하겠다는데. 내가! 그러겠다는데! 널 위해...!”


격정적으로 변한 사령관의 말이 방 안을 가득 메웠다.


“... 변하셨어요.”


하나 남은 눈에 눈물이 흘렀다. 변한 이에게 바치는 동정과 애도의 흐름이었다. 그 물줄기를 본 사령관은 남아 있는 담배를 뱉고는 그것을 수 차례 짓밟았다. 격정적으로 터져나가는 분노에 맞춰 튀어오르는 피고름들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는 가쁜 숨을 몰아 쉬고는 콘스탄챠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콘스탄챠. 콘스탄챠. 콘스탄챠! 왜 너까지 그러는거야! 적어도... 적어도 너는 만은! 내 편이어야지! 적어도 너 만은! 그런 눈으로 보지 말아야지!”


“주인님. 제가 해야할 말이 생각 났어요.”


콘스탄챠는 여전히 흘리는 눈물을 보이며 말했다.


“사랑했어요.”


ㅡㅡㅡ


매운 맛은 호불호가 갈리니 가장 뒤로 뺌.


오늘도 3개 써 봄. 내일은 몇 개 써야하지.


읽어줘서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