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늦었군. 그대를 기다리고 있었다."


복도에서 그대를 마주쳤을 때,

나는 항상 예측하고 있었다는 듯 말한다.

하지만 사실 거짓이었다.


예측이 아니었지.


나는 줄곧 그곳에 서 있었다.

다리가 저려올 때까지 가만히 서서.


물론, 허탕을 치는 날이 더욱 많다.

열흘을 기다리면 겨우 하루 얻을까.

아니, 그조차도 너무 긍정적으로 계산한 것이겠군.

백 날을 기다리면 하루를 얻는다.


그 긴 기다림의 결실이 맺었을 때,

나는 마음 깊은 곳에서 피어오르는 기쁨을 느낀다.

그러면 저절로 미소가 지어지고는 하지.


"히, 히익...!"


이런, 그대가 겁을 먹었다.

소스라치게 놀라고 식겁하는 그대의 얼굴을 보면,

내 팽팽한 가슴 안쪽이 칼로 쑤시는 듯 아려온다.


"사, 살려주세요!! 강간 당하기 싫어요!!!"


그대는 도망치고, 나는 망연자실해서 서 있지.

대체 어디서부터 어긋난 것일까?

분명 시작은 장난... 아니, 당황이었다.


아니, 나의 욕심 때문이었다.


그대에게만은 항상 미소를 보이고 싶었다.

그대에게만은 매번 당당해 보이고 싶었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그대에게 웃음을 주고 싶었다.

그대의 미소가 보고 싶었기에.


그래서 무리수를 두었지.

나는 강제로 그대를 취했고,

그런 대원이 처음이었기에 그대도 처음에는 즐거워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구나.'


빛보다 빠른 속도로 도망치는 그대를 보며,

나는 지난 날의 자신을 후회한다.


조금만 더 솔직해질 걸.

조금만 더 친절해질 걸.

진즉에.... 마음을 터 놓을 걸.


나는 실패했다.

그러나 그만둘 수가 없다.

왜냐하면...


"허억.. 허억..."


한참을 도망치던 그대가 뒤를 돌아보고 나를 확인하는구나.

하지만 나는 그곳에 없다.

그리고 그대의 주위에도 없지.

그럴 때면 그대는 중얼거린다.


"어라...? 아스널...?"


사실 나는 모퉁이 뒤에 숨어 있다.

마음이 진정되기를 기다리면서.

지금 당장 그대 앞에 나섰다가는

슬픔에 일그러진 얼굴이 보여질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너무 심했나....?"


그 중얼거림을 들었을 때, 나는 생각한다.


나는 실패했다.

내 과한 사랑은 뒤틀리고 어긋났다.

나는 이런 형태의 사랑을 원했던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멈출 수 없다.


그대가 이런 내게 맞춰서 놀아주는 걸 알고 있기에,

그리고 나는 그대에게 웃음을 주고 싶기에.

나의 아픔을 억누르고 모퉁이에서 나간다.


"히히, 못 가."

"꺄아아아악!!"


그대는 은근슬쩍 기뻐하며 도망치고 나는 쫓아간다.

쫓는 동안 분위기 연출을 위해 혀로 입술을 핥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오늘은 짠 맛이 났다.


"누가! 누가 좀 도와주세요!!"


그대가 주위 대원에게 도움을 요청하는구나.


"어....?"

"아니.....?"


대원들은 언제나처럼 경악했다.

그러나 그것을 아는가?

맨 처음 나의 기행을 보았을 때

그들은 웃었다. 폭소를 터트렸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는 미소가 사라지고

경악과 공포, 놀라움으로 나를 대했다.


이제는 분위기가 변했다는 뜻이겠지.

나는......


"꺄악 잡혀버렸어!! 앙대요! 그러지 마세요!!"


결국, 나는 그대를 잡았다.

아니, 그대가 잡혀준 걸까?


"요놈!"

"히이이이익!!"


나는 항상 그대를 잡으면 키스부터 한다.

그대의 부드럽고 탱탱한 입술의 감촉이,

촉촉한 혀와 뜨거운 입김이.

나에게는 어느 정도 진정제 역할을 해주기 때문이다.


오늘도 나는 강간마를 자처한다.

어쩌다보니 이게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표현법이 되었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이것을 즐겼지.

그대는 여전히 나와 어울려주고.

나는 그런 그대의 마음 씀씀이가 좋았다.


그러나 나는 변했다.

이제는.....


"아스널....?"

"흠.. 이 상황에서 그렇게 부드럽게 이름을 부르는 건, 부드럽게 따먹어 달라는 건가?"


나는 이번에도 슬픔을 숨기고 말한다.

문득, 궁금해졌다.


나는 웃고 있을까?


음, 웃고 있다.

한쪽 입고리가 씩 올라간 것이 느껴진다.


허면, 그대는 왜 그런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가?


"흠, 나를 똑바로 마주하다니. 드디어 포기한 것인가?"

"......."


뚝.


그대의 얼굴에 떨어진 투명한 액체를 보았다.

이상하군, 내 얼굴에서 애액이 떨어질 리가 없는데.

내가 아무리 섹스 마스터라고 해도 그런 재주는...


"아스널. 왜 울어...?."

".....?"


그대가 손을 뻗어 내 뺨을 만지고, 엄지로 눈가를 닦아준다.


"운다고, 내가?"


나는 사령관에게서 떨어져 내 얼굴을 만져본다.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전혀 의식하지 못했는데....


"음...."


나는 애써 태연한 척한다.

사실 아직 상황이 파악되지 않아서 정신이 멍했다.


"넘치는 애액이 눈까지 역류했나보군.

이런 추하고 기괴한 꼴로 그대를 대할 수는 없지.

오늘은 이만 돌아가보겠다. 사냥은 또 하면 되니까."


나는 그렇게 둘러대고 떠난다.

대원들이 나를 보고 있다.


"대장님...."


비헌이 휴지를 건넨다.

나는 그 휴지를 빤히 바라본다.


이 휴지를 건넨 이유가 무엇이지?

설마 눈에 흐르는 이것을 닦으라는...?


그때 누군가의 손이 휴지를 받았다.

그리고 그 손이 내 눈가로 와 눈물을 톡톡, 건드려 닦았다.


"......!"


그때부터 확실히 느껴졌다.

눈에서 눈물이 흐른다.

닦으면 닦은 만큼.

또 닦으면 닦은 것보다 더 많이.

고장난 감정으로 눈물샘이 폭발한 듯 쏟아지기 시작했다.


"아....."

"미안해 아스널."


그대가 나를 꼭 안는다.

나는 저항하지 못했다.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고,

가슴 안쪽이 울컥거리며 진동한다.

목구멍은 내 숨통을 조여오듯 꽉 닫혔다.


내가 말을 하려고 하자, 누군가의 흐느낌이 울려 퍼졌다.

그 격렬한 울음소리가 내 목에서 나온 소리라는 걸.

그대의 눈동자에 비친 내 얼굴을 보고서야 깨달았다.


나는 울고 있었다.


추하구나, 아스널.

울 자격이 없는 주제에.


냉정한 내 목소리가 머릿속에 울려 퍼지지만,

내 몸과 마음, 그리고 정신은 전부 따로 놀고 있었다.


"으흑....!"

"미안해."


그대가 나를 꽉 끌어안고, 

나는 그대의 품으로 파고든다.

사실 다리에 힘이 풀려 기대는 것이었는데,

그대도 그걸 아는지 내가 쓰러지지 않도록 아주 꼭 안아주는 것이 느껴졌다.


"내일은 데이트를 하자."

"그대여, 나는...."

"손을 꼭 잡고 길을 걷자. 맛있는 것도 먹고. 소소하고 잔잔한 대화를 나누자."


결국, 나는 그대 품에 안겨 엉엉 운다.

그리고 그대는 이런 나라도 달래주는구나.


"예쁜 옷을 입고, 둘이 함께 시간을 나누자.

남들이 하는 것처럼 오붓한 시간을.

이제야 눈치 채서 정말로 미안해."


"웃어라."


눈물을 줄줄 흘리는 범죄자 주제에, 내가 말한다.


"부탁이다, 너는 그런 표정을 지어서는 안 된다. 웃어다오."

".....물론이지."


그대가 미소를 지어준다.

하지만 그대여.


그대의 뺨에도 눈물이 흐르는구나.

그대도 우는구나.

그대도 날 위해 감정을 숨겨왔구나.


솔직하지 못한 건 우리 모두였구나.


나는 깨달았다.


너나, 나나.

우리 모두 서로를 속여온 기만자였다.


이제는 바꿔나갈 수 있기를.


"사랑해, 아스널."

"사랑한다, 그대여."


새로운 한 주가 시작되는 어느 월요일.

우리는 다시 시작한다.


나는 그대와 함께 벤치에 앉자,  민들레 홀씨를 후 불어 날린다.

그렇게 날아가는 씨앗들을 보자, 미련함도 함께 날아가는 듯했다.


"예쁘다."


그대가 나를 마주보며 그렇게 말했을 때.

나는 비로소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그대도 아름답구나."


우리는 손을 잡고 미소를 교환한다.

키스는....

아직 일렀다.


극단적으로 치달았던 우리 관계는.

학생들의 풋풋함으로 다시 시작한다.


그대여. 사랑을 알려주어 고맙다.


우리 사랑 영원히 변치 않기를.





--







링크 모음 링크 모음집

트라우마 극뽁? 해피엔딩들 모음

감성 모음

병맛 모음 

야함 모음

훈훈, 달달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