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카호의 재고를 정리하던 안드바리는 경악했다. 어린 아이인 그녀를 놀라게 만든 건 늘상 있는 LRL과 알비스의 좀도둑질 같은 일이 아닌, 더 크고 무거운 사안이었다.



"오르카호 내 육류가 모두 소비되어...?


이게 무슨 말이야?!"



"보시는 그대로에요. 창고에 남은 고기가 사실상 0이라고요."



황급히 달려온 안드바리로부터 사안을 보고받은 사령관은 미간을 찌푸렸다. 최근 들어 요안나 아일랜드의 축산품 생산량이 줄었는데 각종 연회는 늘어나 공급이 소비를 따라오지 못했던 것이 화근이었다.



"그나마 남은 육류는 입원한 언니들의 영양식으로 쓰일 하루치가 전부에요. 생선도 이 근방은 오메가의 함대가 돌아다녀서 느긋하게 잡기 힘들고요."



"잠깐만, 그럼 오르카호의 모두가 굶어야한다는 거니? 이거 큰일이군, 무슨 방법을 강구해야겠어."



심각한 표정의 사령관에게 안드바리는 고개를 내저으며 말을 이었다.



"아니에요, 먹을 수 있는 게 있기는 해요.


요안나 아일랜드에서도 공급이 되고, 페어리 시리즈 언니들도 생산을 해서 수량이 풍부한-"







"그런 연유로 앞으로는 채식만 이루어진다."


사령관의 말이 떨어지자 지휘관들은 모두 아연실색했다. 라비아타부터 시작해서 홍련에 이르기까지 오르카호의 모든 부대에게 미식은 소중한 삶의 즐거움이었다. 그런데 그 중 식감과 후각, 감칠맛을 포함해 온갖 진미를 가져다주는 육류가 빠진다니, 받아들이기 어려운 사실이었다.



"사령관님, 저희야 그래도 아이들은 고기를 먹여야지 않겠나요?"



라비아타가 의견을 내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바이오로이드니 성장과는 무관했지만, 신체연령이 어릴수록 균형잡힌 열량이 공급되어야 일상생활에 무리가 없기에 코코, 아쿠아, LRL, 더치걸 등 최소한 어린아이들에게라도 육식이 이루어져야 했다.



"나도 그 의견에는 동의하지만 애석하게도 별 다른 방법이 없어. 있는데 안 주는 게 아니라, 정말 수량이 0이 되어서 못 주는 거니까."



"그럼 최대한 비슷한 건 없나? 배양육 같은 건?"



"닥터에게 연구를 맡겼지만 아직 대량생산이 가능한 정도는 아니야. 그나마 콩고기가 유사고기 중 대량생산이 가능하대."



사령관의 말에 칸은 수심이 깊어졌다. 하이에나나 워울프, 샐러맨더처럼 스테이크를 하나의 생활양식으로 여기는 자신의 부대원들에게 콩고기를 배급했다가는 필경 반란이 일어날 것이기 때문이었다.



"레아, 페어리 시리즈가 기른 모든 식용작물을 주방으로 운반해줘. 소완과 최대한 맛있는 채식 요리가 가능하게 신경 좀 써주고."



"알겠어요. 리제는 어떻게 할까요?"



"리제는 내 방으로 불러줘. 소완이랑 붙여둬봤자 싸움만 날 거고, 오랜만에 애정 좀 줘야 상태가 좋아지지."



"각하, 사기가 중요한 군에게 채식은 독만 될 뿐입니다."



"나도 마찬가지야 달링. 다이어트가 필요해도, 내 부대원들까지 시킬 수는 없어."



"나도 동의하네. 그대여, 이 방법으로 포병들을 움직일 수는 없네."



마리를 필두로 다들 불만을 표했지만 채식을 거부하면 굶는 일만 남았으니 선택지는 없었다. 결국 오르카호는 그 날부터 고기가 보급될 때까지 기나긴 채식 수련에 들어갔다.





"식사시간이옵니다."



소완이 가져다 준 식단을 받은 사령관은 이마를 손으로 짚었다. 새싹보리 고추장 비빔밥, 콩고기 불고기, 살구소스 샐러드에 해독주스라는 구성은 모든 것이 채소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믿기 어렵게 했다.



"이게 다 채소야?"



"그렇사옵니다. 주인을 위해 고심한 요리이옵니다."



사령관이 감탄하자 소완은 도도하게 웃었다. 그 모습을 부들부들 떨며 지켜보는 리제에게 소완은 도발적인 미소를 흘리며 그릇을 넘겼다.



"이건 그 옆의 분을 위해 준비한 샐러드입니다."



제대로 잘린 것도 아니고, 껍질만 벗긴 오이와 당근, 가지 위에 민트소스를 넉넉하게 담아준 소완의 요리에 리제는 발끈하며 손에 가위를 지었다.



"이 햇츙! 내가 기른 채소들을 무시하지마!"



"그만! 수고했어 소완. 들어가봐."



피바람이 한바탕 불 것 같자 사령관은 리제를 제지하고 소완을 돌려보냈다. 왜 자신을 말리냐며 눈에 눈물이 맺힐 정도로 분해하는 리제에게 그는 밥을 먹여주며 달랬다.




그렇게 채식이 이루어진지 2달째. 오르카호는 슬슬 미쳐가고 있었다. 소완의 솜씨가 좋다고 해도 채소에서 육류 본연의 맛을 이끌어내는데는 한계가 있었고, 브라우니들이 일손을 돕는 날에는 그냥 샐러드가 나오기도 하면서 민심은 점점 안 좋아져갔다.



자연히 육식에 대한 갈망도 심해졌다. 호라이즌은 오메가가 보낸 함대에 포위당하는 위험을 무릅쓰고 잡은 생선으로 욕구를 해소해보려했으나, 위험성이 너무 높아 한두 번하다가 관두었다. 워울프와 하이에나는 고기맛을 봐야겠다며 보리를 노리다가 라비아타의 주먹맛을 보고 착해졌다.



사령관 본인의 식탁에도 벌써 325번째 샐러드가 올라오자 그는 이 방법을 행할 때가 되었다며 말없이 숟가락을 들었다. 식사를 마친 뒤 사령관은 리제를 부른 이유를 설명했다. 멸망 전에 수급한 과자에 고기 성분이 극미량 첨가되어 있으니 여기서 고기국물이라도 뽑아내보자는 뜻이었다. 닥터가 보면 당장 몽키스패너를 휘둘렀겠지만, 사령관을 향한 순애보였던 리제는 바로 그 의견에 찬동했다.



그렇게 둘은 과자를 뜯고 부숴서 물에 개어 끓였다. 물 위에 허옇게 뜨는 기름기를 건져서 다시 수분을 날리고, 틀에 넣어 굳힌 끝에 얻어낸 한 입 크기의 지방-그게 과자를 튀길 때 쓰인 팜유인지 첨가된 유지인지는 둘째치고-을 보는 둘의 시야는 황홀했다.



"그래... 이거야 리제! 이게 고기맛을 보여줄 거라고!


이것만 있으면 채식을 안해도 돼..!"



사령관은 그 지방큐브를 양산하여 일선에 배급하도록 지시했다. 리제와 자신의 앞 글자를 따서 '사리'라고 이름 붙인 지방큐브는 고기에 환장한 오르카호 내부에서 날개돋힌듯 팔렸다. 물론 맛은 물에 섞인 팜유라는 실로 끔찍한 맛이었지만 혀끝에 감도는 라드의 맛에 고기맛이 그리웠던 부대원들은 하나라도 더 맛보려고 했다.



"저런 유사식품을 팔다니! 소첩은 참을 수 없사옵니다!"



오르카호 내부의 광기를 본 소완은 요리사로서 격분했으나,리제가 대놓고 사령관과 사리로 빼빼로게임을 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안 먹어? 그럼 이런 일도 없어 햇츙아!'라고 도발하자 그날부터 모든 식사에 사리를 넣었다. 그게 사령관과 리제가 만든 지방큐브인지, 인내심이 극에 달한 그녀의 진짜 사리인지는 그녀만이 알지만 말이다.



이런 사리도 한계는 있었다. 과자를 몽땅 부숴 물에 개는 무식한 방식으로 만드는 바람에 수급에 한계가 있었고, 설상가상으로 비축해둔 과자마저 다 떨어지며 생산이 중단되었다. 그마저도 떨어지자 오르카호는 전보다 더한 광기 속으로 떨어졌다.




"으으... 이뱀 고기가 먹고 싶슴다..."



"레후야, 교육 안 시키냐?"



"시, 시정하겠습니다! 브라우니!"



"하여튼 말을 안 들어... 아얏! 


에이 씨, 종이에 손을 베였잖아."



투덜대던 이프리트가 떨어뜨린 핏방울이 바닥에 떨어지자 브라우니는 순간 눈을 빛내더니 혀로 바닥을 핥았다. 식겁한 이프리트가 브라우니의 머리를 발로 차버리며 욕설을 내뱉었지만, 오히려 브라우니는 생기를 띠며 말했다.



"이뱀 피에서 스테이크 육즙맛이 남다!


이뱀, 고기 좀 주십시오!"



"이게 뭔 소리야! 레후야!"



"브라우니!!!!!"



급기야 이런 흡혈 사태까지 발생하자 사령관은 급히 요안나 아일랜드에 연락을 취했다. 이야기를 들은 요안나는 기겁하더니 당장 갖고 있는 여유분만이라도 모두 보내겠다고 약속했다.



그렇게 1인당 분홍소시지 2조각이라는, 멸망 전 기준으로도 유사고기 배급이 이루어졌으나 오르카호의 모두는 환호했다. 배급된 분홍소시지가 빼돌려져 참치를 대신하는 화폐로도 쓰일 정도였으니 말 다했다.



그런 우여곡절을 거쳐 정상적인 고기 배급이 재개된 날 사령관은 눈물을 흘렸다. 육류가 없어지는 것만으로 이성이 사라지는 공포를 보는 경험을 목도했기에 그는 육류의 소중함에 감사인사를 올렸다.



그는 이런 고기의 소중함을 알아야한다며 고기 파티를 개최했다. 요안나 아일랜드에서 보낸 고기가 모두 투입되어 오직 물고 뜯고 맛보는 식사자리가 이어졌고, 다들 행복을 만끽했다.



그렇게 육류를 전부 소비한 오르카호는 다시 채식의 수라도로 걸어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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