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카의 사령관의 지시에 따라 파견되어 군수 사령관을 만나기 위해 수송선을 타고 북쪽으로 향하는 레오나는 썩 기분이 좋지 않았다. 사랑의 서약을 한 상대를 멀리 파견 보내는 무심함도 그렇고, 전선의 상황이 기껏 포위해놓고 지지부진하게 포격만 주고받는 상황이라는 점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들 보다 더욱 더 그녀의 기분을 나쁘게 하는 이유는 가장 큰 원인은 그녀 옆에 서 있는 불굴의 마리였다. 

 


사실 앞의 두 건은 레오나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다. 하지만 불굴의 마리가 동행하는 건 최고의 지휘관이라 자부하는 그녀의 자존심을 긁는 행위다. 손가락에서 반짝이는 반지를 잠깐 바라본 레오나는 옆에 있는 마리를 향해 못마땅한 시선을 보냈다.

 


“난 스틸라인 수비군의 상태를 점검하기 위해 동행하는 것뿐이다.”


“내 작전에 대해 한 마디만 해봐. 그 즉시 월권행위로 간주할 테니까.” 


 

무심해 보이지만 짜증이 보이는 은회색 눈동자와 마주친 마리는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는 듯 한숨을 쉬고선 멀리 보이는 홋카이도를 바라보았다. 겉으로 보면 평온해 보이는 섬 위에는 평화로운 분위기가 무색하게도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전선이 지지부진하다고 했는데 연기의 양만 보면 거의 전면전을 한 수준이다. 


 

그러고 보니 두 사람은 같은 인간 남성임에도 불구하고 성격이 달랐지. 각하도 160cm가 되면 군수사령관 같은 성격이 될 수 있을까? 마리가 자신의 각하에 대한 불순한 생각을 하는 동안, 배 선수에 서서 망원경으로 섬을 관측하던 칼리아흐 베라가 부둣가가 보인다고 소리쳤다. 베라에게 소식을 전해 들은 발키리는 경례와 함께 레오나에게 곧 상륙한다고 알렸다. 


 

“곧 상륙입니다.”


“좋아. 일단 안드바리는 후방에서 군수 물자가 얼마나 남았는지, 전투를 얼마나 지속할 수 있을지 살펴주렴. 나머지 자매들은 나를 따라 전선으로 향할거야. 내 지시에 따라 행동하면 아무 문제 없을 거야.”


“잠깐. 그 전에 일단 후방의 상황을 먼저 살피는 쪽이 더 좋지 않겠나?”


“간섭하지 말라고 했지.” 


 

마리를 매섭게 째려본 레오나는 배가 부둣가에 닿자마자 누구보다 먼저 내려 주변을 살펴보았다. 손쉽게 손에 넣었다는 것과는 달리 복구 중인 도시 곳곳에는 격렬한 전투의 흔적이 남아있었다. 꺾인 전신주를 수리하는 토미워커들과 군데군데 움푹 들어간 도로, 그리고 무너진 건물들은 당시의 전투가 얼마나 격렬했는지 간접적으로 알려주었다. 

 


마지막으로 내린 안드바리가 레오나의 지시에 따라 군수 물자가 있는 곳을 알아보기 위해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주변을 살펴보고 있을 때 저 멀리서 스틸라인 수비군인 피닉스 대령이 날아와 마리에게 경례를 하였다.

 


“승리! 대령 피닉스!”


“그래. 편히 있게. 난 단순히 시찰하러 왔을 뿐이니.” 


 

맹렬한 바람에 흐트러진 모자를 바로 쓴 마리는 피닉스에게 현재 상황을 물었다. 마리의 질문을 받은 피닉스는 수비군 거점으로 안내하겠다는 말과 함께 단말기를 조작해 홋카이도의 지도를 띄워 현재 상황을 알려주었다. 


 

“그저께 시내로 전방 부대가 진입한 이후로 산발적인 시가전이 이어지다가 어제 전방 부대가 시를 점령했습니다. 지금은 강을 끼고 방어 전선을 만들고 있다고 하는군요.”


“이런. 한 발 늦었군.” 

 


단순히 아쉬워하는 마리와는 달리 레오나는 이를 꽉 악물었다. 자신을 입증할 기회가 사라졌다는 생각과 동시에 기다리라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무리하게 작전을 진행 시킨 군수사령관의 성급함에 혀를 찼다. 


 

일단 작전을 하기 전 사상자가 어느 정도 인지 알아봐야 한다는 생각에 레오나는 마리의 대화를 끊고선 다짜고짜 앞으로 나서 피닉스에게 현재 상황을 물어봤다. 


 

“사상자는? 우리 측의 손실은 어느 정도지?”


“사망자는 없고 부상자는 여기를 점령할 때 구조한 극지형 브라우니 하나뿐입니다. 그리고 사상자라고 표현하기에는 이상하지만 선봉을 맡은 스파르탄들의 손실이 극심합니다.”


“어느 정돈데?”


“150기 정도는 중파 되어 지금 수리 중이고 50기는 포츈에게서 수리 불가 판정을 받았습니다. 나머지는 대대단위로 주요 거점을 지키고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숫자만 보면 거의 중대가 날아간 셈이다. 피해 규모를 듣자마자 피해 상황과 앞으로의 일을 전부 계산한 레오나는 이를 악물었고, 마리는 이마를 부여잡았다. 바이오로이드의 인원이 부족한 탓에 스파르탄을 많이 생산해 쓴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대대 단위 정도로 많이 뽑아 쓸 줄은 몰랐고 이 정도로 많이 날려 먹을 줄은 더 몰랐다. 


 

현재 병력의 배치도를 보며 나름 방어에 신경을 썼다고 마리가 감탄하는 동안, 시스터즈 오브 발할라와 마리는 어느새 스틸라인의 방어기지에 도착했다. 근세 성형 요새를 연상시키는 별 모양의 방어기지 한가운데에는 임시로 세운 군사기지와 함께 포츈의 정비소를 포함한 야전병동이 있었다. 


 

“레, 레오나 대장? 대장님 맞죠?”


“그래. 나 맞아. 오래 기다렸지, 그렘린?” 


 

정비소에 가자마자 포츈과 함께 스파르탄을 수리하던 그렘린이 뛰쳐나와 레오나를 꼭 끌어안았다. 몇 번 토닥인 끝에 그녀를 부드럽게 밀친 레오나는 그렘린이 오랜만에 만난 자매들과 회포를 푸는 사이, 수리 드론들을 조작하며 스파르탄들을 정비하는 포츈에게로 다가갔다. 


 

“지원군으로 온 오르카 소속 시스터즈 오브 발할라의 지휘관, 철혈의 레오나야. 그쪽이 수석 기술자라는 포츈이지?”


“혹시 지원군이니? 제발 그랬으면 좋겠거든.”


“그래, 앞으로 걱정할 필요 없어. 북방의 암사자라고 불리는 내가 온 이상, 승리는 당연할 테니까.” 


 

자매들과 인사를 마친 그렘린과 공중을 둥둥 날아다니는 드론들을 조작해 부서진 스파르탄들을 고치는 포츈에게 자신만만하게 자신을 소개한 레오나는 후방 지원과 자원관리에 특화된 안드바리를 수비 본부에 맡기고선 마리와 함께 전선 시찰을 하러 자매들과 함께 전선으로 향했다. 

 


피닉스가 모는 장갑차를 타고 덜 녹은 눈이 덮여 있는 평원을 지나자 검은 그을음으로 가득 찬 평원과 골격만 남은 채 그을린 건물들이 보였다. 오르카에서 둠 브링어를 데려와 도시 전체를 쑥대밭으로 만들었나 의심스러울 정도로 철저하게 파괴된 도시 근방에는 그들이 판 것으로 보이는 참호가 미로처럼 얼기설기 얽혀 있었다. 


 

복잡하게 얽힌 참호지대와 도시 사이에는 채 회수되지 못한 스파르탄의 잔해와 함께 구세대의 것으로 보이는 전차의 잔해가 있었다. 레오나를 뒤따라 수송용 장갑차에서 내린 발키리는 전차의 잔해로 가까이 다가가 전차를 살펴보았다. AGS에 밀려 탑승자가 필요 없어진 요새의 전차와는 달리 눈앞의 전차는 내부는 전선과 기계부품으로 가득 차 있었지만 탑승하는 데 쓰이는 해치가 달려있었다. 

 


“인원이 탑승할 수 있는 해치와 공간이 있는 걸 보니 옛날에 쓰였던 전차 같군요. 어쩌면 저희가 등장하기 이전에 쓰였던 물건 같습니다.”


“바이오로이드가 만들어지기 이전 물건? 군수 사령관은 이런 걸 대체 왜 가지고 온 거야?”


“흠..150년 전의 인간이라 그런지 박물관에 있을 옛날 병기들을 쓰는군.” 


 

아무리 갓 복원된 개체라지만 평범한 인간이 150년을 살 수 없다는 사실은 기본 상식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탈론페더를 보내 그들을 몰래 시찰했을 때부터 군수사령관의 신상을 알고 있던 레오나는 덤덤하게 받아들였지만 말없이 그녀의 옆을 지키던 발키리는 소총을 등에 메고 마리를 바라보았다. 

 


“말씀 중 외람되지만 개조시술을 받았으면 모를까, 평범한 인간이 150년을 사는 건 불가능하다고 알고 있습니다.”


“신체 재건 시술을 받았으니 어떻게 보면 개조를 받았다고 할 수 있지. 하지만 그는 우리에게 발견되어 재건 시술을 받기 전부터 나이가 제법 되었다고 알고 있다.” 


“뭐, 나도 평소라면 못 믿었겠지만...닥터가 그렇다고 하니 믿는 수밖에. 적어도 기술에 관해서는 거짓말은 안하는 아이니까.”


 

적어도 과학기술에 한해서는 닥터의 안목을 따라올 바이오로이드는 거의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니까. 탄입대에서 안드바리 몰래 챙긴 초콜릿을 꺼내 우물거리는 알비스의 뺨을 살짝 꼬집어준 레오나는 자매들을 이끌고선 도시 안으로 향했다. 안으로 들어가자 없는 것보다 못한 꼴이 되어버린 폐허의 몰골이 보였다. 멀쩡하게 서 있는 건물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초토화된 도시 안에는 박물관에서 끌고 온 것으로 보이는 전차의 잔해와 철충의 잔해가 정신없이 섞여 있었다. 

 


말없이 묵묵하게 중파된 동료들을 후방으로 옮기는 스파르탄들을 지나 중앙으로 향하자 바둑판식으로 배치된 계획도시 특유의 모습과 함께 한때는 아름다웠을 광장이 눈에 드러났다. 어디서 뜯어왔는지 모를 사람보다 큰 접시 안테나가 세워진 커다란 천막 안에서 레오나는 군수사령관을 만날 수 있었다. 


 

걸음걸이를 옮길 때마다 휘청거리는 모습은 손가락으로 툭 건드리기만 해도 뒤로 푹 쓰러질 것처럼 위태로워 보였다. 대체 그 동안 무슨 일이 있던 걸까. 속으로 혀를 한번 찬 레오나는 그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안녕, 직접 만나는 건 처음이네. 난 시스터즈 오브 발할라의 대장인 레오나야. 자매들을 이끌고 네 힘이 되어주기 위해 왔어. 우린 곧 승리하게 될 거야. 내가 여기 있으니까 말야.” 

 


자신만만하게 자신과 자매들을 소개한 레오나를 향해 흐리멍텅한 눈을 게슴츠레하게 뜬 사령관은 멍청한 목소리로 그녀들을 둘러보았다.


 

“뭐야, 지원군?”


“그럼 내가 놀러 왔겠어?”


 

날이 선 레오나의 목소리에 마리는 물론이고 부관인 발키리마저 힐끗 그녀를 바라보았다. 중요한 동맹이니 너무 심하게 몰아붙이지 말아 달라는 반려의 부탁은 그를 만난 지 5분도 지나지 않아 쓸모없어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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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화 끝 부분 수정함.


댇지 같은 편으로 등장시키고 싶었는데 묘사도 그렇고 섹돌 늘어나면 내 능력으로 쓰는 거 힘들어질 것 같아서 오르카 소속으로 변경함. 갑자기 수정해서 ㅈㅅㅈ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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