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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차고 머찐 하루가 다시 시작됬다. 현재 시각 7시 40분, 아침을 먹으러 식당으로 향하고 있었다. 원래라면 지금 쯤 한참 잠을 자고 있을 시각이었지만(아침을 안먹으니까), 어제 안드바리와의 인수인계를 마치고 퇴근하자마자 잠자리에 들었으므로 평소보다 더 일찍 일어날 수 있었다. 


물론, 피곤하지는 않지만 배는 엄청 고팠다. 아마 이 시간에 일어난 이유는 배가 너무 고프니까 깬 것이 아닌가 싶다. 


식당으로 향하는 길목에는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삼삼오오 짝을 지어 식당으로 가고 있었다. 군기가 있어보이는 부대 소속인 사람들은 나에게 칼같은 경례를 박았고, 그렇지 않은 부대 소속인 사람들은 나에게 '좋은 아침입니다.'라던가 하는 간단한 인사를 보냈다.


그녀들의 인사를 하나하나 받고 대답하면서 식당에 줄을 서고 차례가 오길 기다리고 있는데, 내 눈 앞에 뭔가 익숙한 차림새가 보였다. 전통적인 모습과는 차이가 있으나, 넓고 뒤로 넘어가는 사각형 카라, 정말 오랜만에 보는 세일러복이었다. 

확실히 패션의 완성은 얼굴과 몸매라고 했던가, 그녀들이 세일러복을 입으니 참 예쁘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입었을 적에는 그냥 '정복 입은 수병1'이었는데 말이다.


아무튼 내가 그녀들을 쳐다보면서 이것저것 생각하다보니 내 앞에 세일러복을 입은 아가씨 한명이 불안한 표정을 지으면서 나에게 다가왔다.


" 호...혹시 저희 대원들이 실수한게 있나요...? "


" 아, 아닙니다. 그 복장을 보니 예전 생각이 나서요 "


" 복장 말인가요? "


" 예전에 저도 수병으로 복무했거든요. "


내 앞의 아가씨와 계속 이야기를 하다보니, 그녀와 함께 있던 다른 이들도 이쪽으로 다가왔다. 나와 그녀의 대화를 듣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아, 내 앞에 있는 아가씨는 AG-2C 세이렌, 호라이즌의 부함장, 즉 부관이라고 소개했다. 그리고 자연스레 다가온 다른 대원들을 하나하나 소개해줬다.


주황색 머리카락을 가진 이는 AG-1 네레이드, 본인은 네리네리라고 부르라고 하던데, 그건... 음... 좀 오글거린다. 다음으로 황금색의 머리카락을 가진 것이 특징인 P-3M 운디네, 나름 자부심? 같은게 있어보이는 이였다. 마지막으로 장난기 많아보이는 얼굴을 가진 MH-4 테티스, 음. 그래 장난은 나한테 치지 말아줬으면 한다.


" 이렇게 인사할줄은 몰랐는데, 행정관 이무열입니다. 호라이즌 여러분, 반갑습니다. "


" 그래서! 행정관도 세일러복 입은거야? 변태~ "


음, 나한테는 장난 안걸었으면 했는데 바로 이렇게 훅 들어올줄은 예상치 못했다. 이걸 순수하다고 해야 하는건지 악의적이라고 해야 하는건지, '같은' 세일러복을 입겠냐고... 


여기서 말려들어가면 끝도 없을것 같아서 안주머니에 있는 휴대폰을 꺼내 사진폴더를 뒤져 내가 정복을 입고 찍은 사진을 찾아 그녀들에게 보여줬다. 세일러복 형태이지만 동정복이라 검은색으로 되어 있는 정복을 입은 나, 12년 전 내 모습이었다.


" 와~ 이게 150년 전 해군 복장이야? 네리가 입은거랑 비슷해! "


" 뭔가 활동하기 불편해보여 "


그녀들 입장에서는 150년 전 한국 해군 정복은 신기할만도 했다. 자신들이 입고 있는 복장과는 다르게 뭔가 딱딱한 느낌인 저 정복이 자신들이 입고 있는 복장의 원형이란 소리니까

아, 그리고 운디네의 평가대로 불편한건 맞다. 윗옷은 티셔츠 입는것 처럼 입어야 하는데, 이 정복은 신축성이라는게 전혀 없는 정도라서 입기 정말 불편하기도 하고, 바지에 주머니도 없고...


여튼 그녀들에게 내 사진을 보여준 뒤에 식사를 마치고 내 사무실로 출근했다. 밥 먹을때, 예전 함정생활은 어땠냐고 네레이드가 물었는데, 아쉽게도 나는 함정생활을 하지 않고 도서기지에서 근무해서 잘 모른다고 말했더니, 해군이 왜 섬에 있냐고 묻더라. 그러게? 왜 섬에 있었쓰까? 레이더 다루면 배탈줄 알았는데 섬에 짱박힐줄은 몰랐지...


어찌됬던간에 '해군'이라는 카테고리에 속하는 이들을 만나서 그런지, 묘하게 동질감도 느껴지면서 마음이 편해지긴 했다. 물론, '대단히' 여고같은 분위기였지만 보기는 좋았다. 떠들썩한 그런 상황은 정말 오랜만이었으니까


밥먹으면서 테티스가 운디네를 놀리는 모습이라던가, 네레이드의 3인칭 화법이라던가, 그런 모습들을 보고 그녀들을 자중시키는 세이렌이 생각나 업무준비 하는 내내 피식 웃음이 새어나왔다.


그때, 내 사무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 예 들어오세요 "


누구지? 지금 올 사람이 없는데... 라비아타씨?

나는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를 맞이했다.


" 부사령관님, 아침부터 어쩐 일이십니까? 차라리 절 부르시지... "


" 아니에요. 물어볼 것도 있기도 하고... "


" 그러시군요. 이쪽으로 오십쇼. "


라비아타씨를 자리로 안내해드린 다음 나도 자리에 앉았다. 그래도 내가 하급자인데 상급자가 찾아오는건 좀 불편한데... 무슨일로 오셨을까...


" 행정관으로 일하시는데 별다른 문제는 없으신가요? "


" 아직까진 없습니다. 각 부대에서 담당하던 행정업무목록도 잘 왔고요. 어제 기안 올린 보고서 내용대로 안드바리와의 인수인계도 잘 마쳤습니다. "


" 아... 그 보고서 말인데요... "


보고서? 어제 늦은 저녁에 올린 그 인수인계보고서가 이상했나? 빼먹은 내용은 없었는데... 제발 반려만 안했으면...


" 주인님... 사령관님께 바로 제출하지 않고 저에게 제출하신 이유가 무엇인가요? "


저 말을 듣고 내 머릿속에 무수히 많은 물음표들이 나한테 다가왔다. 왜냐니, 내 직속상관이 부사령관인 라비아타씨니까 그렇지...?


" '부사령관'이시니까요? "


" 네...네? "


" 당연히 제 직속상관인 부사령관님께서 제 보고서를 검토하시고 사령관님께 상신하는게 맞다고 생각했는데... 아닌가요? "


솔찍히 아니라고 해도 나는 계속 부사령관인 라비아타씨를 통해 결재를 올릴 생각이었다. 중간관리자가 떡하니 있는데, 최고관리자에게 직보하는건 있을 수 없는 일이지 암 암


" 바이오로이드들은 인간을 위한 존재들이에요. 인간 위에 있는건 말이 안되요 "


" 예, 제가 있던 시절에서는 바이오로이드라는게 말이 안됬죠 "


내가 대뜸 내가 있던 시절에는 바이오로이드가 말이 안됬다고 이야기하자 무슨 말을 하는건지 잘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지금 그녀는 인간을 위한다는 바이오로이드가 인간을 하급자로 두고 있으니까 모순이라고 생각하는 듯 했다. 하긴 멸망전 역사를 보면 바이오로이드는 도구에 불과한 존재들이었으니까 말이다.

다행스럽게도 지금 사령관님께서 그녀들을 인간적으로 대하고 계시긴 한데, 그렇다고 해서 그녀들이 인간이 되는것은 아니었다.


" 부사령관님, 바이오로이드에게 법인격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


" 법인격...? "


" 제가 살고 있던 시절에는 인공지능 혹은 로봇에게 사람과 같이 법인격을 긍정할 것인가가 법학에서의 큰 화두였습니다. 과학기술이 발달하고 사회가 발전하다보면 인공지능도 발전하게 되고, 그럼 인간과 같은 인공지능 또는 로봇이 나온다면 그들을 어떻게 대우해야 할까 라는 물음에서 출발한 거죠 "


" 찬성하는 입장에서는 인간과 같은 자유의지, 자율성을 가진다면 안줄 이유가 없다 라던가, 생명체는 유전자의 보존ㆍ전달을 위한 도구이고 인간의 정신은 사전에 결정된 유전자 프로그램의 발현일 뿐이라는 이유로 인공지능 역시 이와 다를바 없다는 논리, 법 정책적으로 마치 회사나 조합같은 법인처럼 편의성 혹은 유용성이 있다면 법인격을 부여할 수 있다는 이유를 대고 있습니다.  "


" 그럼... 반대하는 입장은 그저 도구일 뿐이라고 일축하나요? "


" 그렇습니다. 설혹 인공지능이 자유의지를 보인다 하더라도, 그것은 그냥 외형적 차원에 불과하고 의도나 동기를 기대할 수 없다. 그리고, 자연법적 질서는 인간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에 인공적으로 탄생된 인공지능 내지는 로봇에게 법인격을 부여할 수 없다. 마지막으로 법정책적으로 실익이 없고, 법체계에 혼란이 온다는 이유를 듭니다. "


내 말을 듣고 있는 라비아타씨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그녀들은 인간인가? 도구인가?에 대한 질문은 150년이 더 지난 지금까지도 그녀들에게 집요하게 답을 요구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자기자신이 바이오로이드라서 '인간'인 나를 하급자로 두는 것을 모순이라고 생각하는 듯 했다.


" 이무열씨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


" 저는 조건부 찬성이랄까요 "


" ...? "


" 제가 봐온 바이오로이드들은 자율성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감정도 가지고 있고요. 외부의 간섭과는 독립해서 생각하고 행동하더군요. 마치 사람과 같이 자율성과 감정과 자유의지가 있는 것 처럼 말입니다.

그리고 반대 이유들 중에서 법정책적 실익이라던가, 법체계 혼란은 그냥 무시해도 되겠지요. 세상이 망해버렸는데, 그걸 뭐하러 따집니까 "


" 그런데 왜 조건부 찬성이라고 하시는거죠? "


" 어찌되었던 간에 사람의 명령이 있으면 그 자율성감정자유의지에 대한 중대한 침해가 일어나지 않습니까. 아무런 저항도 할 수 없이 말입니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지 않는다면 인간과 '같이' 동일한 법인격을 부여할 수는 없을겁니다. 예컨데 어린아이 혹은 태아, 법인처럼 제한된 법인격을 인정하는것이 최선이 되겠지요 "


" 여기까지가 법학적인 제 소견이고, 법학과는 무관한 제 의견은... 여러분들도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


" 사람...이라고요? 제가...? "


" 예. 사람. 물론, 저보다 힘도 더 쎄고, 머리도 훨씬 좋고, 신묘한 능력을 가지고 있지만, 생각하고 이해하고 학습하고 표현하고 고민하고... 등등, 뭐 그런 것들은 사람과 다를 바 없잖아요. 그러니까 제가 부사령관님 아래에 있다고 해서 불편해하지 마시라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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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학자가 나오는 다른 라오첸 소설 비스무리하게 끝나버렸...


인공지능에게 법인격을 부여할 것이냐 마냐는 실제로도 법학에서 많은 논쟁이 있는 사안입니다. 재산권, 저작권, 토지, 상거래, 계약, 형사법 모든 분야에서 논의되어지는 사항이죠.


찬성측 입장이나 반대측 입장 둘다 틀린 말은 없습니다. 입장이 다를 뿐이지요. 

개인적으로 바이오로이드들은 제한적인 법인격이 인정되겠다 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어찌되었던 간에 인간의 '명령'이라는 거부할 수 없고 저항할 수 없는 중대한 침해가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뭐 난중에 사령관이 그 명령권을 풀어버린다면, 완전한 법인격을 인정받을 수 있겠지요. 근데 세상이 멸망해버렸는데 그걸 따질 법익이 이쓰까...



아, 주인공이 호라이즌 칭구들에게 보여준 정복 사진은 대략 이런 모습입니다.


이게 해군 수병 동정복이고요. 하정복은 흰색입니다.


저는 이 옷(하정복, 동정복)을 입었습니다. 예... 2년동안 휴가 나갈때마다... 불편하다라는 서술은 예... 경험담입니다.


오늘도 제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