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르망이 정리해준 일정표를 확인하며 물었다


"네 좌우좌양이 벌써부터 기대하고 있다고 하네요."


잠시 패널을 만지작거리던 아르망이 싱긋 웃으며 답했다.


"낮부터 에이미양을 데리고 준비한다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다 조금 전에 돌아갔다고 하네요. 지금쯤 한창 짐을 싸고 있지 않을까요?"


"너무 기대해서 잠을 설치면 안될텐데 말이야."


나도 피식 작게 웃음을 흘리며 대답하고 패널을 조작해 좌우좌가 제출한 데이트 계획표를 다시 확인했다


얼마 전부터 시행된 오르카 데이트 공모전


반쯤 공공재 취급을 받으며 여러 바이오로이드들과 데이트를 하던 나의 눈에 좌우좌가 제출한 계획표가 들어왔었다.


어린아이조의 신청은 처음인데다가 계획표도 나쁘지 않아서 어린아이조도 겁먹지말고 신청하라는 독려의 의미도 조금 담아서 체택했었다.


물론 다른 어른 바이오로이들과는 다르게 데이트라기보단 같이 놀아준다는 느낌이긴하지만.


아무튼 그런 좌우좌가 제출한 계획은 일종의 소풍이었다


좌우좌가 붙인 정식명칭은 '혼돈의 녹색미궁 탐사'라고 적혀있지만 해석하자면 숲속으로 피크닉을 가자는 소리였다.


마침 기억의 방주 생태계 보존 구역에 작지만 잘 가꿔진 숲이 하나 있는데 그걸 보고 떠올린 모양이다.


"에이미도 준비하느라 바쁘겠어."


짧게 다녀오는 피크닉이지만 불쾌한 경험없이 즐기고 오려면 의외로 많은 준비가 필요하다


직사광선을 막아줄 모자라던가 벌레퇴치약이나 점심에 먹을 도시락과 돗자리같은 것도 준비해야하니까


"후훗 그래도 에이미양은 워낙 좌우좌양을 귀여워하니까요. 오히려 기뻐하고 있을지도 모른답니다? 이번에 보호자 겸 함께 가기도 하고요."


아 그랬지 참.


그러보니 좌우좌의 데이트를 보좌할 겸 에이미도 함께 피크닉에 가게 되었다.


딱히 부정을 저지른건 아니고 좌우좌가 직접 에이미도 같이 가고싶다고 요청해서 수락한거다.


본인이 괜찮으면 됐지 뭐. 사실 나 혼자보단 에이미가 있는게 더 든든하기도 하고.


"그럼 나도 이만 끝내고 자러 가볼게. 늦잠이라도 잤다간 좌우좌가 삐질테니까."


"네 폐하. 남은 건 제가 마무리할 테니 어서 들어가보세요."


아르망의 배웅을 받으며 방에 돌아온 나는 간단하게 씻은 뒤 침대에 누웠고 내일 피크닉에 대한 작은 설렘과 함께 잠에 빠져 들었다.


***


다음날 아침


다행히 날씨는 더할나위 없이 쾌청했고 나는 적당한 복장으로 갈아입은 채 만나기로 약속한 장소에 나와있었다.


대충 5분쯤 기다렸을까? 뒤쪽에서 활기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권속이여! 기다렸느냐? 짐이 도착했노라!"


곧바로 뒤돌아보니 예상했던대로 좌우좌가 달려오고 있었고 그 뒤에는 피크닉용 짐을 든 에이미가 곤란한듯이 웃고 있었다.


"좌우좌 왔어? 늦지않게 왔네?"


"지, 짐을 뭘로 보는 것이냐! 진조의 프린세스인 이 몸이 약속시간에 늦을 리가 없... 하암~ 흡!"


내가 장난으로 던진 인삿말에 발끈해서 반박하려던 좌우좌가 크게 하품을 하더니 당황하며 입을 막았다.


그리고는 눈을 이리저리 굴리더니 머쓱하게 나에게서 시선을 피한다


어라 이거 설마?


그리고 그 사이 다가온 에이미가 살포시 웃으며 입을 열었다


"자기 기다렸어요? 사실 공주님이 어젯밤에 잠을 좀 설쳤거든요. 기대감에 너무 흥분해서 잠에 통 못들더라구요. 그래서..."


"아~ 역시."


어쩐지 눈가도 살짝 부은기가 남아있는거 같더니 잠을 설치는 바람에 예정보다 늦게 일어나서 급하게 준비하고 온 모양이다.


"히잉~ 에이미 사령관한테는 비밀이라고 했는데...!"


"어머 미안해요 공주님. 제가 그만 깜빡했네요."


진실이 들통난 좌우좌는 울상을 지으며 에이미에게 토닥토닥을 시전했지만 에이미는 그저 귀엽다는듯 흐뭇하게 받아넘겼다.


완벽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던 좌우좌에게는 미안하지만 나는 오히려 이런 모습이 더 귀엽고 좋았다.


한참을 봐도 질릴거 같지 않았지만 언제까지고 이러고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라 나는 어쩔 수 없이 좌우좌를 말렸다.


"자자 좌우좌 그만하고 출발하자. 설마 진조의 프린세스가 '혼돈의 녹색미궁 탐사'를 잊어버린 건 아니지?"


"아 맞다...가 아니라 무, 물론이지! 짐은 계획한 목표를 잊지 않았노라. 자 사령관 어서 저 녹색미궁의 안으로 탐험을 떠나도록 하자!"


내가 오늘의 계획을 상기시키자 퍼뜩 정신을 차린 좌우좌는 다시금 기운이 돌아와 힘차게 숲속으로 발걸음을 옮기...지 못했고.


"잠깐만요 공주님 들어가기 전에 벌레 쫓는 약부터 뿌리고요."


"후에엥 그거 냄새 싫은데 안뿌리면 안돼?"


"안된답니다~"


에이미에게 잠시 제지당해 벌레방지 스프레이까지 뿌리고 나서야 우리는 숲속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참 에이미 짐은 내가 들게."


"어머 괜찮은데요. 별로 무겁지도 않고요."


"그래도 명색이 데이트인데 레이디한테 짐을 들게할 수는 없지. 이리 줘."


"후후 그래요 자기는 그런 사람이었죠. 그럼 맡겨볼까요?"


준비하느라 고생한 에이미의 짐도 뺏어들고 우리 셋은 천천히 숲속을 거닐었다.


"오옷 저것은 혼돈의 갈색 마수! 전승대로 굉장히 재빠르구나!"


"오 저게 다람쥐구나 생각보다 귀엽네."


"후후 우리 공주님에 비하면 한참 모자라지만요."


"사령관 혼돈의 갈색 마수도 진조의 하얀 짐승처럼 초코바를 주면 좋아할까?"


"아니 안돼! 주면 큰일나!"


숲속에서 살아가는 작고 귀여운 동물들을 발견하고 교감을 시도하거나


"끄으응 권속이여 조금만 더 높이 올려보거라!"


"이게 한계인데... 어쩔 수 없지 에이미도 내 위에 타볼래?"


"그냥 제가 쏴서 떨어뜨리면 안될까요?"


"안된다! 그러면 재미가 없...이 아니라 이 매혹의 빨간 열매가 상할 수 있으니 직접 손으로 따야한다!"


"어쩔 수 없네요. 자기 잠깐만 실례할게요?"


높은 나무에 달린 열매를 모두가 힘을 합쳐 따내거나


"우와 사령관 이거 봐봐 엄청 예뻐!" 


"어머 이건 무척 희귀한 꽃인데 운이 좋네요."


"이 꽃 말이야?"


"네 50년에서 100년 사이에 딱 한번만 꽃이 피는 걸로 알고 있거든요. 그것도 단 며칠뿐. 이렇게 볼 수 있는 기회는 별로 없죠."


"음 역시 짐에게는 천운이 따르는구나."


숲속에 피어난 각종 아름다운 꽃들 또한 눈에 담았다.


그렇게 몇시간이고 숲속을 거닐며 체험을 하다보니


꼬르르륵-


"헛! 이,이건 아니다! 결코 짐에게서 난 소리가 아니야!"


어느새 점심시간이 살짝 오버될 정도의 시간이 되었고.

활발하게 숲을 돌아다니던 좌우좌의 배속에서 알람소리가 들려왔다.


얼굴이 빨개진 채로 부정하는 좌우좌의 모습을 나와 에이미는 모른척 해주며 적당한 자리에 돗자리를 깔았다.


"도시락 맛은 어때요 자기?"


"물론 최고야."


"권속이여 이 딸기의 꼭지는 내가 딴것이다! 그리고 여기 김으로 이름도 짐이 직접 오려 붙였다. 대단하지 않느냐?"


"오~ 대단해 대단해 어쩐지 글씨에서 위엄이 느껴지더라. 아 딸기도 맛있어."


"흐흥! 별거 아니노라!"


자신이 어느 부분을 도왔는지 자랑스럽게 얘기하는 좌우좌와 아침부터 도시락 만드느라 고생한 에이미에게 감사를 전하며 점심시간은 화기애애하게 지나갔다.


"후우, 잘먹었습니다."


"잘먹었습니다."


"잘먹었노라!"


세명 모두 배부르게 먹고 나자 선선하게 부는 바람과 숲의 내음에 누가 말할거 없이 자연스럽게 돗자리에 몸을 누였다.


"좌우좌 어때 오늘 재미있었어?"


좌우좌가 제출한 계획도 대체적으로 끝났겠다. 배부름과 피곤함에 꾸벅꾸벅 졸기 시작하는 좌우좌의 모습에 슬슬 피크닉이 끝나감을 느끼고 질문을 건넸다.


"응... 재밌었어어~ 만화에서 본거랑 똑같았어."


"만화?"


"하암~ 응... 드래곤 슬레이어에서 진조의 프린세스가 동료들이랑 같이 숲에 갔는데..."


졸린 탓인지 평소와는 달리 어린애다운 말투로 좌우자가 설명을 시작했다.

그 설명에 따르면 아무래도 이번 계획은 좌우좌가 좋아하는 만화 '드래곤 슬레이어'에서 나온 한 에피소드에서 따온 모양이었다.


숲속에서 동물과 노는 것도

나무에 달린 과일을 함께 따서 나눠 먹는 것도

아름다운 꽃들을 감상하는 것도 모두 말이다.


그 말을 들은 나는 천천히 좌우좌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좌우좌가 드래곤 슬레이어 만화를 얼마나 좋아하는지는 오르카호의 대부분이 알고있다.


아직 라비아타와 만나기 전, 100년에 가까운 시간동안 혼자 쓸쓸히 등대를 지키던 아이에게 유일한 오락거리이자 도피처였던 만화.

그런 만화의 한장면을 따라 해본다는게 얼마나 큰 의미를 가지고 있을지는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러니까 오늘은 너무 좋았어! 꼭 내가 정말로 진조의 프린세스가 된거 같아서!"


그러니까 다행이다. 

혼자가 된 그녀가 아니라, 이렇게 함께 놀러가는 광경을 상상만이 아니라 현실로 이뤄줄 수 있게 되어서.


"그래그래 우리 좌우좌가 기뻐해줘서 나도 기쁘네. 이제 코 자자"


"흐아암... 사령관도 같이 자자. 어디 가지말고..."


"물론이지."


"후후 그럼 저는 자장가라도 불러드릴게요."


나는 한층 더 부드럽게 좌우좌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눈을 감았고 에이미는 작게 파랑새가 나오는 자장가를 불러주었다.


이윽고 우리는 모두 꿀같은 낮잠에 빠져들었다.


***


슥슥-


사령관과의 데이트가 있었던 다음날


좌우좌는 자신의 방에서 열심히 손을 놀리고 있었다.


지잉-


"어머? 우리 공주님 뭘하고 계실까요?"


그때 방의 문이 열리고 함계 살고있는 에이미가 들어왔다.

방에 들어온 에이미는 좌우좌가 자신이 온 줄도 모르고 뭔가에 집중하는 모습에 가까이 다가가 좌우자에게 말을 걸었다.


"앗! 에이미 왔느냐! 마침 잘됐구나 이것 좀 보아라!"


그제서야 에이미를 눈치챈 좌우좌는 활짝 웃으며 조금전까지 만지고 있던 걸 들어 에이미에게 보여주었다.


"이건... 그림이네요?"


"맞다! 어제 사령관과 에이미와 함께 나갔던 모습을 그려보았다!"


좌우좌가 의기양양하게 들어서 보여준 손에는 에이미와 사령관 사이에 좌우좌가 둘의 손을 잡고 숲속을 걸어가는 그림이 그려져있었다.

주변에는 어제 보았던 다람쥐나 나무 열매 꽃같은 것들도 함께 그려져있었고.


"어떠냐? 짐의 솜씨를 최대한 발휘해서 그린 역작이노라! 어제의 모습이 생생하게 그대로 담겨있지 않느냐?"


"우후후 그럼요. 정말 완벽한 그림이네요."


좌우좌의 그림은 어린아이의 솜씨답게 단순하게 데포르메 되어있었고, 연필이나 붓이 아닌 크레페스로 그려져있어 선도 굵고 뭉툭해 빈말로라도 잘그린 그림이라고는 할 수 없었지만.

에이미의 눈에는 정말로 그 무엇보다 완벽한 그림으로 보였다.


"이런 그림을 저만 볼 수는 없죠. 공주님 자기, 사령관님한테도 보여주러 갈까요?"


"응 갈래!"


그리고 이런 완벽한 그림을 자기만 볼 수는 없다는 마음에 사령관실로 공주님을 모셔가기로 결정했다.


과연 자기는 이 그림을 보면 무슨 반응을 보여줄까?

살작 기대되는 마음을 품고 에이미는 좌우좌의 손을 잡고 함께 방문을 나섰다.







약속대로 써왔음


왤케 늦었냐 하면 어제 밤에 쓰다가 졸려서 자고 일어나서 이어씀


쓰고나서 보니까 에이미까지 포함해서 가족느낌이 된거 같지만 뭐 어때


그리고 원래 게임 내에서의 좌우좌 호칭은 LRL이지만 영어변환해서 쓰기 귀찮아서 좌우좌로 통일했으니 양해요로시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