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무표정한 얼굴이며 사무적인 어조의 블랙 웜을 보며 사령관은 짧게 대답했다. 블랙 웜에게는 감정 제어 모듈이 있으니 무감각 하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그것이 궁금해서 살짝 물어본 것인데, 지금 사령관의 앞에 마주 앉은 블랙 웜의 표정이란 대답과는 상반되는 이질감이 느껴졌다.


'그런 것 치고는 지나치게 사무적인데...'


사령관의 머릿속에 있는 데이터에 블랙 웜의 정보 역시 당연히 있으나, 사실 얼굴을 마주하고 대화를 해본 것은 몇 번 없었기에 지금의 자리가 더욱 가시방석처럼 느껴지는 것은 사령관 역시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서로 충분히 친해졌다고 생각은 하지만 그렇다고 퉁 치기에는 사령관의 앞에 앉아있는 블랙 웜의 표정은 석상과 같고, 이런 분위기가 계속되니 대화가 중간에 끊기길 벌써 몇 번이나 반복하고 있었다.


"감정 제어 모듈은 말 그대로 감정을 제어해주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완벽히 감정을 제거하지는 못하니까요."


결국 둘 사이의 어색한 침묵을 끝낸 것은 블랙 웜이었다. 솔직한 심정으로는 블랙 웜 역시 지금의 이런 어색한 분위기는 견디기 어려운 것이었고, 가능하다면 피하고 싶었다. 물론, 그것이 쉬이 이루어질 일은 아니라는 것 따위는 알고 있었지만.


"....저도 감정이 있습니다."

"아, 응... 그건 알고 있는데..."


그러나 이게 문제다. 블랙 웜이 어떤 식으로 대화를 이어나가려 해봐도 감정 제어 모듈이 계속해서 방해를 해온다. 대부분의 말이 단답형 이거나 딱 끊어지는 어투 뿐이니 그녀도 답답할 따름이지만, 그것은 사령관 역시 마찬가지일 터. 사령관 역시 스스로의 커뮤니케이션 능력에 지대한 회의감을 품을 지경에 이르렀다.


'환장하겠네! 이러면 또 대화가 끊기는데! 차라리 날씨 이야기나 할걸!'


차라리 바깥의 날씨에 관해 논하는 편이 좋았을지도 모른다며 낙담하는 사령관을 보며 블랙 웜 역시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슈트의 재질이 궁금하시면 만져보셔도 괜찮습니다. 저는 신경 쓰지 않습니다."

"...뭐?"


블랙 웜은 나름대로 어색한 분위기를 환기 시키고 싶었고, 그래서 아무 말이나 내뱉었으나 그것을 후회하는 것에는 긴 시간이 필요 없었다. 엉뚱한 블랙 웜의 발언에 넋을 내려놓은 사령관의 표정이 블랙 웜의 몇 안되는 감정의 조각에 기름을 끼얹고 불을 붙여버렸으니.


"아! 그, 그게.."

"하핫! 하하하핫!"


사령관의 박장대소에 블랙 웜의 얼굴이 잘 익은 사과처럼 빨갛게 달아올랐다. 분명, 감정 제어 모듈로 억제되어야 할 수치심이 머릿속을 헤집었고, 마치 스스로 그에게 만져 달라고 애원하는 것 같은 말에 치녀가 된 것 같은 기분마저 들 지경이었다.


"주, 주인님 때문입니다...!"


그래, 주인님 때문이다. 그의 곁에 있으면 감정 제어 모듈이 고장이 난 것 같아진다. 그렇게 생각하며 블랙 웜은 냉수가 담긴 컵을 들고 전부 입 안으로 부어 넣었다.


"주인님의 곁에 있으면 계속 이상한 기분이 듭니다."

"이상한 기분?"

"명령 받지 않아도.. 주인님을 위해서라면 어떤 것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시원한 냉수가 목 안으로 넘어가니 시원한 기분이 든 블랙 웜은 조금은 냉정을 되찾고 사령관에게 말하기 시작했다. 방금 전의 그런 창피하고 낯 뜨거운 말조차 어색해 하는 사령관을 보고 넘길 수 없어 한 것이었으니 딱히 거짓말을 하는 것은 아니라며 블랙 웜은 스스로를 달래나갔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조금 혼란스럽기도 하고요."

"어째서? 아, 감정에 익숙하지 않아서 그러려나?"


언제 웃었냐는 듯 진지하게 블랙 웜의 말을 경청하기 시작하는 사령관. 그의 눈빛은 어느새 진지함을 되찾았고 신중하게 문제점이 무엇일까 블랙 웜과 함께 고민해주고 있었다. 그러나 블랙 웜은 처음부터 그것에 대한 답을 알고 있었다.


'아마, 제가 주인님을 사랑하기 때문이겠지요.'


아무리 감정이 제어 당해도, 아무리 그를 잊으려 해봐도. 블랙 웜에게 사령관이란 모든 것들을 포기하는 한이 있더라도 지켜야만 할 소중한 사람이 되었다. 그렇기에 지금 그녀 스스로가 느끼는 사랑이라는 감정이 두려웠다.


"전 경호원입니다. 그런 감정을 품으면... 주인님을 잃게 될까... 두렵습니다."

"나도 두려워."

"네? 주인님께서도 두렵습니까?"

"응, 사랑하는 너희들을 혹시 잃을까. 그게 두려워서 매일 고민하지."


잠시 블랙 웜의 말에 공감해주던 사령관은 이내 자리에서 일어나 블랙 웜의 옆자리에 앉으며 살며시 블랙 웜을 끌어 안았다.


"그래도 괜찮아. 나는 너희들을 사랑하지만, 너희들은 지키기 위해 사랑할 수 없다니. 난 그런 거 용납 못해."

"주인님..."

"내가 너희들을 사랑하는 만큼, 너희들도 나를 사랑해도 되니까... 언제든 내게 찾아와도 돼."


감정을 제어 당해도, 근본적인 감정은 남겨져 있다. 그러니 그것을 부정하지 말라는 사령관의 말에 블랙 웜의 얼굴에 처음으로 온화하고 자연스러운 미소가 지어졌다. 과연 옛날의 블랙 웜 모델들도 이렇게 행복한 미소를 지어본 적이 있었을까.


"그러니까 솔직하게 감정을 표현하는 것을 무서워 할 필요는 없어."

"...제대로 반응하지 못하는 점, 부디 이해해주시길 바랍니다."


'아직은... 주인님께 솔직하게 사랑한다 말하기에는 창피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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