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사항


친해진 세이렌과 우르를 보고 싶어서 폭주한 결과

소설 속 캐릭터의 묘사가 기존 캐릭터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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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령관 님. 어떻게 하면 대원들과 더 친해질 수 있을까요?

- 세이렌 대사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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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르 씨. 바다 보러 갈래요?”


깜짝 놀랐지. 아직 여름도 익숙하지 않은데 바다를 보러 가자니. 더군다나 세이렌이랑 제대로 얘기해본 적도 없고.

처음에는 거절하려고 했지. 당연히 거절하려고 했는데...


(왜? 같이 바다 보러 가면 좋잖아.)


왜 거절 하냐고? 너무 갑자기잖아!

둘이서 걸으면 얘기도 많이 할 거고. 혹시라도 이야깃거리가 없으면 어색할 거고. 그러니까 장난거리가 필요한데...

난 노력형 천재라 애드립 못 한단 말야!

   

(아! 갑자기 팔은 왜 꼬집어...? 내가 뭐 잘못했어?)

   

씨... 미루고 싶었는데... 그 말만 아니었으면...

   

“저기... 이제 해가 지는데 사령관이 싫어하지 않을까?”

“허락 맡고 왔으니까 괜찮아요.”

“음... 그래도 아직 정찰이 덜 끝났으니까, 위험하지 않을까?”

“바로 옆에 있는 해변으로 갈 거니까 걱정 안 하셔도 돼요.”

“아! 총기 정비하는 걸 까먹었네! 내일 작전이 있어서 말이야...”

“내일 작전 없으시던데...”

“우으... 그냥 안 가면 안 될까...?”

“명령이라서 안 돼요. 우르 씨랑 친해지라고 해서. 꼭... 꼭 가셔야 돼요.”

“친해지라고? 누가?”

“사... 사령관 님이요!”

“...준비할게.”

   

(그럼 싫었어?)

   

아니! 싫은 건 아니야! 싫은 건 아닌데... 그런 느낌이지.

심혈을 들여서 준비한 개그가 다른 사람들한텐 재미없으면 어쩌나~ 하는 생각.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고? 에이, 뭐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딱딱 알아 들어야지! 솔직해지는 것도 용기가 필요하단 말이야.

이런 사람이 내 개그에 웃는 걸 기대했으니. 역시 센스는 세이렌 쪽이 더 세구만. 다른 건 다 좋은데 말이지.

   

오... 방금 라임 괜찮네. 센스... 세이렌... 세... 엌ㅋㅋ

   

아무튼, 여름 바다라. 말만 들어도 얼마나 예뻐? 나도 당연히 가고 싶었지. 더군다나 같이 가주겠다는 사람도 있는데.

   

그런데, 왠지 무섭더라고. 한 번도 안 가본 곳을 가보는 게.

   

“우르 씨. 궁금해서 물어보는 건데요.”

“궁금? 성은이 망극하옵... 크흡...”

“...”

“미안해. 그래서 궁금한 게 뭐야?”

“흠흠... 우르 씨는 늘 두꺼운 옷만 입으시는 이유가 있나요?”

“아... 그게...”

“...?”

“항상 추운 곳에만 있어서... 이젠 옷이 가벼우면 영 적응이 안 돼서 두꺼운 옷만 입게 되네. 습관이 됐나 봐.”

“죄송해요. 제가 괜한 질문을... 부디 잊어주세요.”

“조금 그렇지? 극동도 아닌데 동복이라니. 동복... 동아시아가 거울에 비치면 아동... 복스럽게 생겼으면 아동복... 풉...”

“네...”

   

갑판 위에서 대뜸 물어보더라고.


솔직히 난 아무 생각 없었거든? 전투 말고는 아무것도 안 했으니까 옷은 전투복을 입는 게 당연하고.

작전 지역이 극지였으니 두꺼운 것도 당연하고 눈밭에서 뒹굴었으니 흰색인건 상식이니까.

근데 생각해보니까 이상한 거야. 난 왜 여전히 꽁꽁 싸매고 있을까? 꽁꽁 찬 곳에 있는 것도 아닌데.

   

(허전하니까? 늘 하던 걸 안 하면 뭔가 부족하잖아.)

   

음... 예전이라면 맞는 말이긴 한데, 더 큰 이유는 따로 있을거야.

   

“예쁘다. 꼭 해질녘에 와야 된다고 했는지 이제 알겠어.”

“그렇죠? 저는 바다에 있는 시간이 많은데도 노을 진 바다는 언제 봐도 질리지가 않아요. 그리고...”

“그리고?”

“오늘처럼 예쁜 노을을 보면 사령관 님과 해변을 걸었던 날이 생각나기도 하구요.”

“그럴 만하네. 노을 진짜 예쁘다.”

“죄송해요. 우르 씨. 사실...”

“갑자기 왜 죄송해? 뭐 잘못했어?”

“우르 씨와 친해지라는 명령... 사실 제가 사령관 님께 부탁 드렸어요.”

“으... 응? 세이렌이 사령관한테? 왜...?”

“우르 씨랑... 친해지고 싶어서요...”

“???”

   

(예쁜 노을 보여주려고 며칠 전부터 준비했대. 오늘이 요 근래 가장 가시거리가 좋다고 근무도 조정하고.

언제 출발해야 노을이 지기 전에 해변에 도착하는 지 계산도 했다더라. 엘라가 고생 많이 했지.)

   

정말? 그건 몰랐네. 그렇게 공들였으면 노을이 예쁠 수밖에 없자. 하여간 좋아할 수밖에 없다니까.

아! 엘라가 게임 좋아한다고 그랬지? 세이렌이 나중에 같이 카드게임 같이 하자고 하더니. 어쩐지, 어쩐지.

나중에 사령관도 같이 하자. 같이 게임 하다가 목 쭉 늘여서 카드 텍스트만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으면 날 원시인처럼 볼 거 아냐.

   

원시인이라니... 잠깐... 아주 틀린 건 아닌가?

   

(그래, 좋아. 세이렌이랑 무슨 얘기 했어?)

   

싫어. 얘기 안 할래. 처음 생긴 아끼는 동생이랑 한 비밀 얘기인데. 사령관한테 홀랑 다 얘기 해버리면 꼭 배신하는 것 같잖아.

   

(그럼 나는 안 아낀다 그거지? 덤이라 이거지? 심한 말을 어쩜 그렇게 덤덤하게 얘기할 수 있어? 서운하네?)

   

오? 오오? 사령관? 나름 생각한 거야? 에이, 졌다! 귀여워서 봐준다!

사실 사령관 얘기가 반이라 얘기해도 상관없긴 했어. 그래도 세이렌한테는 비밀이다?

   

음... 얘기한 게 너무 많아서 뭘 먼저 얘기해야할지 모르겠네.

   

“우르 씨도... 무서운 게 있어요?”

“없을 건 또 뭐야. 나도 당연히 있지.”

“그게... 우르 씨는 항상 여유가 넘치시는 것 같아서요. 항상 유쾌하시잖아요.”

“아하... 개그? 여유로워서 그런 건 아닌데. 그렇게 보였어?”

“반응이 적어도 굽히지 않으시는 것도 멋지고...”

“아... 아하하... 그게... 멋져 보였구나...”

   

(아하하핰ㅋㅋㅋㅋ 세이렌은 우르를 그렇게 봤구나? 멋지댘ㅋㅋㅋㅋ)

   

저기, 너무 웃는다? 좀 들어줬으면 좋겠는데?

   

(미안...)

   

흠흠. 아무튼 세이렌이 고민이 좀 많은가봐.


부함장이라면 당연히 부대원들이랑 친해야하는데, 자기는 호라이즌 부대원들이랑 그렇게 가까운 것 같지는 않다는 거야.

그래서 오르카 호에 있는 다른 부대원들한테 물어보자니 용기가 안 나고, 시간이 지날수록 자기가 겉도는 게 아닌가 생각했대.

그러다가 내가 농담하는 걸 보고 친해지고 싶었다나?

다른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아도 꿋꿋이 재미없는 농담을 계속 하는 게 멋졌다고 그러더라고.

흠... 그렇게 재미 없었나? 그 정도는 아닌 것 같은데.

   

“나는 있잖아. 좁은 곳에 혼자 있는 게 제일 무서워. 동결 과정에서 조금 잘못돼서 정신이 깨어 있었거든.”

“아... 제가 괜한 얘기를...”

“괜찮아. 아주 나아진 건 아니지만, 서서히 괜찮아지고 있으니까. 말장난하는 것도 그때 생긴 버릇이야. 몸은 죽은 것처럼 차가운데 멀쩡히 깨어 있으니까 할 수 있는 게 농담 생각하는 것밖에 없더라고. 이걸 겉바속촉이라고 그러나?”

“죄송해요... 저는 그것도 모르고...”

“괜찮아. 모를 수도 있지.”

“그래도 우르 씨를 보기 전에 사령관님께, 하다못해 미나 씨에게 물어보기라도 했으면...”

“...”

“저는 왜 뭐든 서툴까요...”

   

평소에 사령관한테 이런저런 얘기를 들어서 다행이야. 사령관 말대로더라고. 너무 순수하고 착하더라.

해야 할 일은 꼭 완벽히 해내려고 하고. 그래서 서툰 부분이나 실수를 용납하지 못하고. 그래서 부함장이라는 직책을 무거워하는.

너무 열심히라서 보고 있으면 안쓰러울 정도로.

   

“제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부함장이라면 더 낫지 않을까. 가끔 그런 생각이 들어요.”

“어...? 어? 왜 그런 생각을 해? 세이렌은 합류한 지 얼마 안 된 내가 봐도 능력있는 지휘관인데.”

“사령관님도, 대장도, 그리고 우르 씨도 좋은 분들이라 제가 실수를 해도 칭찬해 주시지만, 제가 잘하고 있는지 모르겠어요. 부함장이라면 당연히 부대원들과 가까운 건 당연한 건데, 왠지 저는 그런 것 같지 않아서요...”

“다 잘할 순 없잖아.”

“그래도... 다 잘해야 해요... 호라이즌의 부대원과 용 대장에게 부끄럽지 않은 부함장이려면. 사령관 님을 실망시키지 않으려면요.”

   

너무 착한 아이야. 너무 착해서 뭐든 잘하려고 하고, 머릿속에 정해놓은 정답에 자기를 맞추려고 무던히 애를 쓰는데. 

그런 아이를 어떻게 좋아하지 않을 수 있겠어?

   

(어떻게 위로해줬어?)

   

위로 안 했어. 위로할 수도 없고. 세이렌이 듣고싶은 말은 흘리듯 던지는 위로가 아닐 것 같기도 했고.

그간 세이렌이 어떤 일을 겪고 무얼 느꼈는지 나는 전혀 모르잖아. 그럼 안하느니만 못 하지.

   

그래서 그냥 내 이야기 했어.

내가 동결 캡슐에 갇혀있을 때 어떤 기분이었는지. 나중에 누군가를 만나면 무얼 할지.

그러다가 오르카 호에 합류하고나서 무슨 생각이 들었고, 갑자기 바다를 보러 가자던 말이 나한테 무슨 의미였는지.

쓸데없는 말이지만 답이 됐으면 하는 바램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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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심

   

나는 저어어어엉말 오랫동안,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오랫동안 혼자였다?

움직일 수도 없고, 말을 할 상대도 없는 동결 캡슐 안에서.

   

몸이 감옥이 되면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어.

내가 뭘 잘못 했길래. 대체 뭐가 잘못됐길래 내가 이런 일을 겪어야 하는지. 오랫동안 푸념이나 하고 있었지.

그러다가 어느샌가 이것도 질리는 거야. 한탄을 하면 뭐해. 들어줄 사람이 없는데.

   

그래서 시시껄렁한 농담이나 생각했지.

나중에 동결에서 풀려나 누군가를 만나면, 이상하게 쳐다보면서 쏘아붙이더라도, 시끌벅적하면 좋을 것 같아서.

적어도 조용한 것보다는 훨씬 낫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당연히 웃음 코드는 내 걸로 하고.


어쩔 수 없잖아. 피드백 해 줄 사람이 나밖에 없었는걸.

   

사실 나. 세이렌이 바다 보러 가자고 말했을 때. 조금 무서웠다? 여름도, 바다도 죄다 처음이었거든.

여름도 익숙하지 않은데, 눈덮힌 산에만 있던 저격수가 여름 바다라니.

게다가 방금 말대로 여름에도 두꺼운 동계 전투복만 입는데.

꼭 출입금지 구역에 들어온 사람처럼 영 불편했지.

   

짠내 나고 습한 바람. 손에 찝찝하게 남는 모래알. 정신없이 쏴아쏴아 거리며 몰려드는 물소리.

이 모든 걸 다 덮어버리는 주홍빛 노을도. 전부 다 나한테는 낯설고 무서운 것들이야.

내가 영영 볼 수 없을 것 같던 풍경이고, 상상도 못하던 광경이었거든.

응. 방금까지는 그랬지.

   

그런데 왜 이걸 이제야 봤을까 후회될 정도로. 너무 예쁜 거야. 여름 바다랑 노을.

   

세이렌. 네가 무슨 일을 하고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잘 몰라.

그래도 잘해야 한다는 의무감으로 너를 깎아내리진 않았으면 좋겠어.

굳이 웃고 떠들고 장난치지 않아도 돼. 다들 저마다의 방식으로 신뢰를 쌓고 있으니까.

스틸라인도 발할라도, 몽구스와 페어리도 모습은 다르지만 서로 믿고 있잖아.

주제넘은 말일수도 있지만, 그냥 세이렌 너 대로 해. 네 방식대로.

   

세이렌의 마음이 진심이라면, 그리고 마음을 보여줬다면. 모두 알아 줄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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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우르가 그런 말을? 완전 언니 같았어.)

   

의도한 건 아닌데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네?

아무튼, 사령관도 세이렌한테 신경 좀 써 줘. 유능하고 의젓해서 괜찮아 보여도 여린 아이야.

여리면서 많은 일을 겪었고 해야할 일도 많으니까. 몰랐는데 막상 속마음을 들으니까 신경이 쓰이네.

   

(당연하지. 그럼 우르 만날 시간 쪼개서 세이렌한테 신경 좀 쓸게. 그래도 되지?)

   

그래도 되냐고? 신경 쪼개버린다? 그건 다른 얘기지! 나 만날 시간은 두고... 줄일 게...

   

(세이렌한테 신경 좀 써달라며? 나 엄청 바쁜데...)

   

에이... 치사하게 가불기를... 사령관 바쁜 거 다 아니까 시간 가불해서라도 신경 좀 써달라고! 나... 나도 신경 좀 써주고...

   

(하하. 알겠어. 틈 나는대로 자주 보러갈게.)

   

아, 그리고 하나 더.

   

(???)

   

사진을 좀 찍었는데. 인화하고 싶으면 누구한테 가야 돼? 액자도 필요한데.

   

(탈론페더한테 말해둘게.)

   

히히. 고마워. 잠깐... 사진... 사진이 죽으면 들어가는 곳은 사진관... 엌ㅋㅋㅋ

   

(나 가서 잘래. 혼자 자. 잘 자, 우르.)

   

아! 취소! 취소오오오!!! 안 할게, 안 할게!!!! 미안해애애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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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오는 길


“같이 얘기해줘서 고마워요, 우르 씨. 덕분에 큰 힘이 됐어요.”

“나야말로. 바다 데리고 가 줘서 고마워. 덕분에 좋은 구경했어.”

“구경이요? 제 장비 구경은 203mm인데.“

“엌ㅋㅋㅋ 방금 생각한 거야?”

“히히. 그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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