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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옛날,

 

하루는 사향이 또 다시 복수를 위해 피조물들의 목숨을 거두러 다니던 날이었다.

 

 

 

“배고파...”

 

“제발 물 한 모금만 먹고 싶어요... 먹게 해주세요...”

 

“진흙... 진흙 먹는 것도 이젠 못 하겠어...”

 

 

 

반란이 있었던 마을의 외곽.


무너져 내린 성당의 잔해 속에 몸을 숨기고 있던 아이들은 마치 몇 주일을 굶은 것처럼 모두 삐쩍 말라 있었다.

 

근방의 크레아투라들을 전부 처리하고 조금 여유가 생긴 사향은 자신의 서기관들에게 물었다.

 

 

 

“저들은 누구지?”

 

“크레아투라들이 이 근방을 휩쓸고 지나갔을 때 버려진 아이들 같습니다.

이 성당이 고아원으로 쓰였었으니 크레아투라들도 얻을 만한 것이 없다 여겼던 것이겠지요.”

 

“고아원이라... 그래서 손 대지 않았던 건가?

... 그럼에도 살아남은 것은 대단한 것이지.”

 

“위험으로부터 모습을 숨길 줄 아는 아이들인가 봅니다. 참으로 지혜롭군요.”

 

 

 

지혜라, 사향은 그 말이 우습다는 듯이 조소를 내뱉었다.

 

잔해에 배가 뚫린 아이. 무언가를 갈망하듯이 손을 하늘로 내민 자세로 말라 죽은 아이. 갈라진 배에서 침이 섞인 흙 덩어리가 무더기로 쏟아지던 아이.

 

이리도 비극적인 죽음이 산재하였는데 그 어디에 지혜라는 단어가 어울린단 말인가?

 

 

 

“... 호오.”

 

 

 

허나 아직 제정신을 잃지 않은 아이가 거기 있었다.

 

아직 죽지 않아 괴로워하는 아이들을 모두 끌어 안고 있는, 조금 큰 소년이.

 

 

 

“괜찮아. 이제 곧 밥 먹으러 갈 수 있을 거야.”

 

"밥... 밥...?"


“그래! 당연히 물도 마실 수 있을 거고! 이만큼이나 버텼으니까 어른들이 곧 선물을 바리바리 싸들고 돌아오실 거야.”

 

 

 

희망과 기대가 가득 차있는 말. 가장 연장자로 보이는 소년의 말에 아이들은 눈을 반짝이며 자신의 침을 꼴깍 삼켰다.

 

하지만 그 소년의 눈은, 어둡기 그지 없었다.

 

이미 버려졌다는 것을 아는 절망의 눈빛.

 

소년이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말뿐인 말로 아이들의 욕망을 충족시켜주는 것뿐이었다.

 

 

 

“있지, 어른들이 먹는 것들 중에는 아이스크림이란 것이 있어.

달콤한 것들을 얼음에 잔뜩 섞어서 살짝 차갑게 먹는 음식이라는데, 그 달콤함에 혀가 다 아릴 정도라고?”

 

“아이스크림...

... 우리도... 먹을 수 있어...?”

 

“그럼 당연하지! 게다가 차가운 거라서 목 마를 때 먹으면 두 배는 더 맛있데!

거기에 빵이란 것까지 함께 섞어서 먹으면 아주 천상의 맛이라서 한 번 먹으면 절대 잊어먹을 수가 없어.

부드러운 빵을 주욱 찢으면 그 결이 그대로 잘려져서 그윽한 향기가 폭발하듯이 나오는데, 냄새만 맡아도 배가 부를 지경이라 하더라.”

 

“헤헤... 진짜 맛있겠다...

오빠도 먹어본 적 있어?”

 

 

 

소년은 표정이 잠시 굳어졌다.

 

허나 이윽고 씩씩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당연하지! 이 오빠는 하고 싶은 건 다 하면서 살았다고!”

 

“우와... 굉장하다...!!”

 

 

 

소년의 말에 다시 한 번 살아갈 의지를 얻은 아이들.

 

 

 

‘거짓이로군.’

 

 

 

그러나 사향은 소년의 거짓말을 단숨에 알아차렸다.

 

한 번 버려져 본 자는, 버려진 자가 하는 거짓말을 쉽게 알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자신과 달리 절망하지 않고 희망을 연기할 줄 아는 소년. 그 모습에 사향은 자신이 꿈꾸던 이상향을 떠올렸다.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는 이상향을.

 

 

 

“서기관. 저 아이들을 데리고 와라. 내가 찯던 인재가 저기 있구나.

언젠가 크게 될 자들이다.”

 

“예? 허나 저들은 그저 고아일 뿐인데...”

 

“아니.”

 

 

 

사향은 아이의 빛나는 황금빛 머리카락에서 어떠한 고양감을 느꼈다.

 

 

 

“저들이 크게 쓰이는 날이, 우리가 바라는 그 날이라.”

 

 

 

욕망을 채울 줄 아는 소년.

 

그 능력이 온 솔룸을 향하기를 첫 번째 추기경이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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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밥 먹어! 엄마가 밥 다 차려놨어!”

 

 

 

방 밖이 꽤나 분주하다. 일을 마치고 돌아오신 어머니가 또 아주머니들을 괴롭히는 소리겠지.

 

진한 간장 향기에 섞인 고기 냄새가 일층에서부터 스멀스멀 올라온다.

 

오늘 아침은 동파육인가?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고기 메뉴 중 하나다.

 

 

 

“... 밥맛 없어요.”

 

 

 

그러니 평소였다면 신이 나서 내려가 밥을 먹었겠지. 하지만 오늘은 뭔가 침대에 가만히 누워있고 싶은 심정이다.

 

일요일인 오늘은 어차피 쉬는 날. 아침부터 뒹굴거리기에 이보다 좋은 날이 없다. 이만큼 뒹굴거리고 싶었던 날도 없다.

 

 

 

“... 거 미안하게 됐습니다. 예수님. 그런데 우리 집이 이런 걸 어떻게 합니까?”

 

 

 

나는 벽에 걸려 있는 나무 십자가를 보면서 작게 읊조렸다. 

 

그래, 우리 집은 원래 기독교 집안이었다.

 

아니, 지금도 그렇지. 다만 자기 가고 싶을 때만 골라서 가는 속 편한 신자들일 뿐이다.

 

일요일인데도 교회 가기는커녕 교회 식구들과 연락도 주고 받지 않는 상황.

 

한다고 해도 어머니에 버금갈 정도로 유명 인사가 아니면 되려 상대방이 꺼려하는 덕분에 우리 가족은 교회에 이름만 올린 유령 회원이 되었다.

 

 

 

“어머니도, 아버지도. 전부 죽고 나서가 두려우신 건가...

왜 다니지도 않을 교회 장식품만 여기 저기에 다 걸어놓고 다니시는 건지.”

 

 

 

바쁘다는 핑계, 시간이 없다는 핑계,

 

그래서 가진 않지만, 그럼에도 믿는다는 얘기 하나만 하면 구원을 약속하는 속 편한 종교.

 

그러니 우리 가족에게 저 십자가는, 일종의 보험 같은 것이다. 죽고 나서도 잘 먹고 잘 살고 싶다는 보험.

 

어쩌면 나에게도 말이지. 일요일인데도 이렇게 뒹굴거리고 있잖아. 

 

교회 카톡방은 이미 내 핸드폰에서 맨 밑으로 내려 간지 오래였다.

 

 

 

“... 에이, 됐다. 다음주에 가면 되지.”

 

 

 

그렇게 저번 주에도 써먹었던 핑계를 들이밀며 나는 어제 찾은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다.

 

배터리가 잔뜩 부풀어 올라 다시 써먹기엔 위험한 핸드폰.

 

충전도 되지 않고 전원도 켜지지 않아 안에 뭐가 있는 지 확인할 수는 없지만 이걸 들고 있으면 기억 나는 것들이 몇 가지 있다.

 

 

첫째, 나는 이걸 어떤 게임의 통발폰으로 사용했다는 것.

 

둘째, 그 게임은 정말 지독하리만큼 재미가 없었다는 것.

 

셋째, 그럼에도 나는 그 게임의 캐릭터들을 참 많이 사랑했었다는 것.

 

 


“... 내가? 모바일 게임을?”

 

 

 

생각하면 할 수록 어색함이 밀물처럼 밀려들어온다.

 

여자들 답장해주기만 해도 배터리가 부족한 핸드폰인데, 내가 거기에 게임까지 했다고?

 

아니, 애초에 통발폰이라는 개념 자체가 이상하다. 

 

게임을 할 거라면 적어도 자기가 직접 조작을 할 것이지, 자동 사냥을 위해 여분의 핸드폰이 또 필요한 게임이 무슨 게임이냐?

 

그렇게 생각하다 보니 또 떠오르는 기억. 


이 게임, 통발 돌리는 거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아니, 생각해 보니까 또 억울하네?”

 

 

 

더 좋은 게임, 더 나은 게임이 얼마나 많은데 내가 이런 걸 붙잡고 있었다고?

 

마치 내 기억 속 일부가 사라진 것처럼 어색함이 뭉게뭉게 솟아오른다.

 

낡은 통발폰을 잠시 옆으로 내버려둔 채, 나는 내 핸드폰을 주머니에서 꺼냈다.

 

또 잔뜩 쌓여있는 여자들의 카톡. 저기에 하나하나 답장해주고 있으면 아침은커녕 점심까지도 걸러야 할 것이다.

 

 

 

“적당히 몇몇만 대꾸해주면 되겠지.”

 

 

 

나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카톡방 중 몇 개를 골라 답장을 보냈다.

 

어제 도서관에서 섹스 했던 후배한테 하나, 전에 화장실에서 했던 선배한테 하나, 그리고 도서관 사서 누나한테 하나.

 

세 개 정도만 하면 많이 한 셈이다. 나머지는 귀찮으니까 내일 하자.

 

 

 

“... 답장 오는 속도 봐라. 이러니까 내가 카톡 하기가 싫지.”

 

 

 

왜 고작 세 명에게 한 거로 귀찮아 하냐교? 만약 세 명에게 답장을 해줬다고 그걸로 끝이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이제부터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답장의 연속을 지혜롭게 피해가야 한다.

 

한 번 물꼬를 틀어주면 자기 사연을 줄줄이 나열하는 게 사람 본성이라고, 세 명의 인생사를 듣고 있자면 그만한 드라마가 또 따로 없다.

 

그걸 보다 보면 시간이 너무 금방 지나간다는 게 문제지. 오늘도 아침은 거르게 생겼다.

 

 

 

[선배 ㅠㅠ 제가 그래가지고...]

 

[야, 그래가지고 오늘은 안 나오냐? 누나가 좋은 데 알고 있는데...]

 

[일요일인데 어디 가서 술 좀 마실래? 친구들이 너 한 번만 만나보고 싶다고...]

 

 

 

됐습니다. 저 바쁜 몸이에요.

 

대충 대화를 마치고 나니 어느새 두 시간이 후딱 지나가 있었다.

 

거 봐. 이 짓만 해도 시간이 부족한데 내가 이런 게임까지 했었다고?

 

이름이 뭔지는 기억이 안 나도 하여튼, 어지간한 똥겜이었을 게 분명하다. 아니, 통발이 주 컨텐츠였던 게임이었으니까 게임이란 이름도 사실 아깝다.

 

그냥 그런 앱이었겠지.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손에 들고 있던 핸드폰을 놓았다.

 

 

 

“... ... 허전해.”

 

 

 

어지간한 음식은 요리사 수준으로 잘 하시는 어머니 덕분에 먹고 싶은 건 마음껏 먹을 수 있다.

 

물려받은 외모와 집안 덕분에 나랑 한 번 하겠다는 여자들이 줄을 섰다.

 

공부 머리도 제법 되는 지라 과제, 진로 스트레스 때문에 고민할 이유도 없었다.

 

먹고 싶을 때 먹고, 섹스 하고 싶을 때 섹스 하고, 자고 싶을 때 잘 수 있는 삶.

 

이만한 천국이 세상 어디에 있겠나 싶지만, 그럼에도 공허해진 속은 쉽게 채워지는 것이 아니었다.

 

 

 

“... 내가 진짜 콩깍지가 씌이긴 했던 모양이네. 그냥 쥐고만 있어도 괜찮아지는 걸 보면.”

 

 

 

하지만 이 통발폰을, 어찌나 나에게 혹사 당했던지 둥글게 부풀어 오른 이 낡은 핸드폰을 만질 때면 제법 따스해지는 기분이 느껴진다.

 

 

[CODE – CoC! 환상 낙원 – 1급 재해 발생!]

 

[피드백 루프를 설정합니다. 개체 조정 중...]

 

[CODE – CoC!] 

 

[에러 물품에 노출되었습니다. 몰입도가 하강합니다.]

 

[몰입도: 99.62%]

 

 

게임성에 대해서는 단 한 번도 만족했던 적 없었던 게임. 그러나 그 캐릭터들은 너무도 매력적이었다.

 

 

[몰입도: 99.35%]

 

 

우습게도 이 게임 속 캐릭터들이 어떻게 생겼었는지는 전혀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저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가슴 한 켠이 왠지 모르게 따스해진다.

 

지구를 침공해온 외계인들을 함께 상대하기도 하고, 그 가운데에서 데이트도 하고, 사랑도 나누고,

 

현실에서 못할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참 기꺼운 일이었단 생각이 든다.

 

그 모든 것이 그저 시간 낭비에 불과했을 텐데, 재미도 없는 게임 붙잡고 있는 건 멍청하기 짝이 없는 선택이었을 텐데,

 

 

 

[몰입도: 99%]

 

[CODE – CoC! 시스템의 시나리오가 기존 설정으로 초기화됩니다.]

 

[초기화 진행을 위해 기존의 코드를 재결합합니다.]

 

[재결합 코드 후보 탐색 중...]

 

[탐색 완료.]

 

 

삐비빅!

 

그 때, 내 핸드폰에서 허벅지가 아릴 정도로 강한 진동이 울렸다.

 

 

[재결합 코드: CODE – MARY SUE]

 

 

학과 카톡방에 올라온 사진은, 조금 충격적인 사진이었다.

 

왠 미대 수강생 하나가 우리 학교 강당 전체를 물감으로 뒤덮어놓은 사진.

 

아니, 덮어놓았다는 표현이 무색하리만큼 아름다운 그림들이다.


기존의 하얀 벽은 온데간데 사라지고 강당의 온 사방에는 오색빛깔의 아름다운 초현실주의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야, 저거 그리려면 드는 물감이 얼마냐? 거의 수백은 깨졌을 것 같은데?]

 

[학교 설계도 없냐? 그거 있으면 계산 쌉가능인데.]

 

[ㅋㅋㅋㅋ 저게 찐광기지. 미대 떨어졌으면 3차 세계 대전 일어났을 듯ㅋㅋ]

 

 

 

조금 더 화려해진 살바도르 달리의 <기억의 지속>

 

초록색은 보라색으로, 하얀색은 검정색으로 반전되어 그려진 히에로니무스 보스의 <세속적인 쾌락의 동산>

 

마치 놀리는 듯이 우스꽝스럽게 그려진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

 

누군지는 몰라도 그림 실력 하나는 기가 막히게 뛰어났다. 문제는 그걸 우리 학교 강당 벽을 화폭 삼아 그렸다는 것이지.

 

그리고 더 큰 문제는...

 

 

 

[근데 쟤는 뭔 배짱으로 도망도 안 가고 저기 가만히 있는 거래?]

 

 

 

그 그림을 그렸다는 장본인이 거기 가만히 서있다는 것이다. 마치 뭔가에 홀린 듯이.

 

 

 

[말하는 거 들어보니까 무슨 사람을 하나 찾고 있다던데, 자기 오빠를 찾고 있다고 했던가?]

 

[야, 이거 영상 봐봐. 무슨 사극 찍는 줄...]

 

 

 

조금 야릇한 노란 원피스를 입고 있는 소녀.

 

온 몸이 페인트 범벅이 되어 있는 소녀는 그저 서있는 것 자체만으로 이미 하나의 예술이었다.

 

하지만 영상 속에서 그녀가 아우성치던 외침은,

 

 

 

[요즘 세상에 누가 오라버니라고 말을 하냐?]

 

 

 

나에게 더할 나위 없이 충격적인 계몽이었다.

 

그간 느껴졌던 공허함이 단숨에 충족되는 외침. 무의식적으로 손에 쥐고 있던 통발폰을 더욱 강하게 움켜 쥐었다.

 

 

 

‘만나러 가자.’

 

 

 

이건 그저 동물원의 원숭이를 구경하러 가는 감각이 아니다.

 

내가 그간 잊고 있던 어떤 것을, 깨우치게 만드는 그런 느낌. 피부에는 소름이 돋고, 기도로 거친 향수가 무자비하게 뚫고 지나가는 기분.

 

그로테스크한 오싹함이 등골을 타고 스쳐 지나가며 시신경 하나하나가 맑아지는, 충격.

 

 

 

[몰입도: 98%]

 

 

 

“아들? 어디 가니! 밥은 먹고 가야지!”

 

“밥은 가서 먹을게! 지금 학교 좀 가야 할 것 같아서!

엄마 차 좀 빌려도 되지? 된다고 생각하고 간다!”

 

“야! 네 이름으로 보험도 안 해놨는데 무슨 차를 타고 간다고 해?”

 

“엄마 돈 많으니까 한 번만 봐줘!”

 

 

 

나는 그 즉시 자리에서 일어나 엄마의 차를 뺏어 학교로 달려갔다.

 

손에는 나의 작은 통발폰을 쥔 채. 가는 마음이 오랜만에 호기심으로 두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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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로 30분 가량 달려 도착한 학교. 느즈막한 일요일 오후라 그런지 오는데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학교 안에 거니는 학생들도 마찬가지. 일요일에도 학교에 나오는 사람은 학사팀 직원들을 제외하면 굉장히 드물었다.

 

다만 내가 들어가려는 곳은 조금 소란스러웠다.

 

그도 그럴 것이 강당 전체를 하루 밤 만에 뒤집어 놓은 배짱 있는 아가씨가 거기서 씩씩대며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잠시만 지나가겠습니다.”

 

“어머? 아, 알겠습니다아...”

 

 

 

앞을 막고 있는 사람들을 조금씩 비집고 들어갔다.

 

공부 벌레들이 득실거리는 학교에 이렇게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경우가 처음이었기에 나도 조금 당황스러웠다.

 

그나마 여학생들이 많은 경로를 택해 조금씩 몸을 비집고 들어가자, 그제서야 나는 이 당돌한 아가씨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익숙하다.’

 

 

 

사람의 것이라 생각되지 않는 노란색 홍채, 은색의 장발.

 

그리 크지 않은 키에 노란 원피스를 입고 있던 아가씨는 등 뒤로 프린트와 비슷한 드론 같은 것을 대동하고 다녔다.

 

미대 애들이 쓰는 것과는 조금 다른, 미래적인 팔레트와 붓을 가지고 벽 곳곳을 색칠하던 소녀가 이윽고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보았다.

 

왠지 모르게 익숙한 얼굴.

 

소녀도 그걸 느꼈던 것인지 두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나를 향해 성큼 성큼 다가왔다.

 

 

 

“... ... 찾았다.”

 

“응?”

 

 

 

사람들의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리를 지키던 소녀가 발걸음을 옮기자 강당의 대중들이 한층 더 목소리를 높여 웅성거렸다.

 

그 중에는 특히, 여학생들의 웅성거림이 더했다.

 

 

 

‘뭐야? 보자마자 꼬리치려는 거야?’

 

‘생긴 것도 완전 돼지 같은 게 진짜 보기 흉하게 왜 저런데?’

 

‘애초에 외부인이 여기 출입했을 때부터 경찰 불렀어야지. 대체 경찰은 언제 오는...’

 

“오라버니!!”

 

‘깜짝이야!’

 

 

 

자신을 향한 비난을 단숨에 일축하는 외침.

 

저 작은 체구가 목청이 어찌나 좋던지, 듣는 내 귀가 저릿, 하고 울렸다.

 

 

 

[CODE – MARY SUE 접촉 성공]

 

[몰입도가 큰 폭으로 하락합니다.]

 

[몰입도: 95%]

 

 

 

“헤헤... 드디어 찾았어요! 이 세상에 남은 마지막 인간님!”

 

“마지막 인간...?”

 

 

 

뭔 소리를 하는 건지 모를 소녀를 보고 나는 땀을 뻘뻘 흘렸다.

 

난 그냥 강당을 뒤엎어 놓은 장본인을 보고 싶었을 뿐이지, 괜히 얽히고 싶었던 적은 없었단 말이다.

 

사람들이 손을 높이 들고 카메라를 터트리기 시작했다. 하룻밤 만에 나타난 그림 소녀와 학교 수석의 만남이라면 분명 괜찮은 가십 거리가 될 터였으니까.

 

 

 

‘안 그래도 홍대 일 때문에 어머니가 신경 써주셨는데, 여기서 또 휘말리면 안 된다.

... 그냥 가자. 무시하는 게 상책...’

 

 

 

그 순간, 주머니 속에서 강한 진동이 울렸다.

 

무심코 가지고 왔던 통발폰. 분명 배터리도 없었을 텐데 갑자기 화면이 켜지며 전원이 돌아왔다.

 

한순간에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머리 속에 휘몰아친다. 그러는 가운데 소녀가 내 손을 덥석 움켜 쥐고 자신의 가슴께로 모았다.

 

 

 

“오라버니! 정말 기억 안 나세요? 오라버니가 이 세계에 남은 마지막 인간이시잖아요!”

 

‘뭐야? 무슨 영화 찍는 거야?’

 

‘그런 듯? 저 새끼 길거리 캐스팅 당했을 때 거절했다면서 받았나 보네. 기만자 새끼.’

 

 

[CODE – CoC.]

[핵심 포인트 – ‘메리’를 발견했습니다.]

[몰입도가 큰 폭으로 하락합니다.]

 

[몰입도: 92%]

 

 

 

마지막 인간이라니? 

 

이 애, 눈이 없는 건가? 지금 내 옆에 있는 애들이 인간이 아니면 뭔데?

 

 

 

“아직도 환상에 빠져 계신 건가?

오라버니! 제발 떠올려보세요! 여긴 마키나가 만든 가상 세계에요!”

 

‘오, 영화 컨셉 확실한데?’

 

 

 

마치 영화 명대사를 읊는 듯이 당당한 소녀.

 

우리 둘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은 점점 술자리 안주로 최적화 되어가고 있었다.

 

정보화 시대에 화제는 화제를 불러온다고 했던가? 애들이 스마트폰으로 부른 사람들이 점점 더 강당으로 몰려오기 시작했다.

이 넓은 곳은 단숨에 미술관으로 보낸 소녀, 그런 소녀가 학교 제일 인기남과 영화를 찍는 모습은 가던 발걸음을 멈추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나는 다시 한 번 어머니의 노고를 떠올리며, 말하고 있는 소녀를 어깨에 들춰 매고 강당의 뒤쪽 문으로 달려갔다.

 

 

 

“꺄악?! 오, 오라버니??”

 

“야! 영화 찍던 건 마저 찍고 가야지, 어디 가!”

 

“죄송해요! 제 친척 동생 중 하나였는데 오랜만에 봐서 까먹었네요!

애 정신이 좀 이상해서 그런데 먼저 가볼게욧!”

 

 

 

이 이상한 애랑 같이 있으면 나까지 괜히 이상한 놈이 될라,

 

어깨에 들춰 맨 소녀는 덩치에 비해 가볍기 그지 없었다. 덕분에 카메라의 셔터 속도가 깜빡이는 것보다 빨리 건물 밖으로 달려갈 수 있었다.

 

그렇게 정신 없이 달리고 달려 얼마나 달렸을까, 나는 내 자동차 안으로 간신히 피신할 수 있었다.

 

쓸데없이 야릇한 이 애의 원피스는 원단이 하도 얇아 맨살을 그대로 만지는 듯한 착각이 일게 만들었다.

 

조수석에 이 애를 태우고, 나는 그대로 자동차에 시동을 켰다. 에어컨에서 나오는 시원한 바람에 겨우 땀을 식힌 나는 길게 한숨을 내쉬고 소녀에게 물어봤다.

 

 

 

“하아... 진짜 미치겠네.

너 누구야? 누군데 초면에 이렇게 무례하게 행동해?”

 

“아... 그, 그게...

... 정말 모르시는 건가요...?”

 

“모르고 자시고 첫만남부터 알 수 없는 얘기나 하는데 내가 알긴 뭘 알겠어?”

 

 

 

첫만남에는 그저 신기하다는 감상이 들었다. 그림 실력도 뛰어나고, 귀엽게 생긴 아이였으니 그렇지 않는 게 더 이상하겠지.

 

하지만 지금은?

 

 

 

[이상 현상 원인 분석 완료.]

 

[피드백 루프 사용 가능.]

 

[몰입도 회복 프로토콜 가동합니다.]

 

[몰입도: 92%]

 

 

 

그저 짜증나는 사람 한 명으로 보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안 그래도 얼마 전에 일 때문에 어머니가 고생 깨나 하셨는데 이번 일까지 겹치면... 돌겠네. 진짜...”

 

“... 오라버니...”

 

“사람 잘못 봤어. 난 여동생도 없고, 누나도 없어.

너처럼 그림 잘 그리는 사람은 완전 생면부지니까 다른 사람 알아봐.”

 

 

 

조금 매몰차게 말한 감이 없잖아 있긴 하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보면 굳이 친절하게 말해줄 이유도 없다.

 

외부인이 학교 기물을 손상시켰다면 그 가족이 배상해주는 것이 원칙. 아까 괜히 내 사촌 동생이라 말한 덕분에 나는 있지도 않는 여동생에게 생돈 날리게 생겼다.

 

저 강당 벽의 그림 다 지우면 그게 다 얼마냐... 못 할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통장에서 돈 빠져나가는 게 달갑지 않기는 매한가지다.

 

 

 

‘분명 이 정도로 하면 깨어나는 게 정상일 텐데 어떻게...

... 설마 자기가 마지막 인간이라는 것도 까먹으신 건가요.”

 

“저기요. 내가 마지막 남은 인간이면 저 밖에 돌아다니는 사람들은 인간이 아니라 뭐, 벌레에요?”

 

“아마 그럴 거에요.”

 

 

 

이 아가씨, 사상이 약간 위험한데...?

 

 

 

“지금 인류는 외계에서 침략해온 철충들과 싸우다 멸망해버렸으니까요.

저기서 인간 행색 하고 있는 것도 사실 철충이 꾸며놓은 환상일 지도 모를 일이죠.

저것들과 싸우던 오라버니가 이렇게 홀려버릴 줄이야... 인류의 미래가 어둡네요. 으으...”

 

“... 혹시 SF 소설 같은 거 좋아하니? <스페이스 오디세이>나 <유년기의 끝> 같은 거?”

 

“그게 뭔데요?”

 

“... ... 하아, 그냥 하는 말이었어.”

 

 

 

나는 엑셀을 가볍게 밟으며 핸들에 손을 올렸다. 

 

부릉거리는 엔진 소리를 최대한 죽이면서,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게 조심이 학교 밖으로 빠져나갔다.

 

그렇게 얼마 동안 움직이다가 사람이 없는 한적한 곳에서 차를 멈췄다. 이 아가씨를 데리고 집까지 갈 수도 없는 노릇이잖나.

 

 

 

“하아... 강당에 그려놓은 건 내가 어떻게든 처리할게. 지도 교수님께 말씀 좀 드리면 양해해주시겠지.

일요일부터 이게 무슨 일인지... 너, 집이 어디야?”

 

“없어요.”

 

“... 그럼 평소 잠을 자던 곳이라도...”

 

“그냥 버려진 건물 뒤에서 살아요.”

 

 

 

내 동정심을 자극하기 위한 블러핑일까?

 

하지만 행색이 남루한 것을 보니 거짓말 같지는 않다.

 

 

 

“(아무리 날이 덥다지만 이렇게 얇은 원피스 한 장만 덜렁 입고 있을 때부터 알아 봤어야 했는데...

... 설마... 고아?)”

 

“저, 오라버니...? 지금 되게 무례한 상상을 하고 계신 것 같은데...”

 

 

 

그래, 이 아이의 가정사를 생각하지 못한 내가 잘못이다. 요즘 기분이 우울했다고 이런 애한테 화풀이를 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

 

 

 

“후우... 그래. 그럼 우리 집 근처 호텔에 방을 잡아줄게. 당분간은 거기서 살렴.

나도 어지간하면 우리 집에 재워주고 싶은데 괜히 부모님이 이상한 오해를 하실까 봐.”

 

“부... 부모님이요...?”

 

“응?”

 

 

 

소녀는 조금 이상한 부분에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조금 침울한 눈을 하던 소녀. 입을 손으로 가린 채 작게 속삭였다.

 

 

 

“(오라버니의 부모님...

... 인류가 멸망한 마당에 살아계실 리가 없을 텐데... 그럼 그것도 분명 환상이겠지...)

... 오라버니?”

 

"왜?"


"혹시... 부모님을 사랑하시나요?"




사뭇 진지하게 뜬금 없는 질문을 던지는 소녀. 저 마이 페이스는 어찌할 도리가 없다.




"... 당연한 거 아니니?

왜? 부모님 있는 사람 처음 봐?”

 

“아, 아아아니에요...!

하하, 그, 그냥 이런 호의를 받아보는 게 처음이라...”

 

 

 

소녀는 부끄러운 것인지 손을 뻗고 과장된 움직임으로 버둥거렸다.

 

이런 호의를 받는 것이 어색한 걸까, 눈 둘 곳이 없어 이리 저리 둘러보는 모습이 안쓰럽기까지 했다.

 

 

 

“그러고 보니 네 이름도 못 들었네? 애초에 우리 학교 학생이긴 한 건가?

너처럼 그림 잘 그리는 학생이라면 분명 이름을 한 번쯤은 들어봤을 텐데.”

 

“어... 그게...

... 메리... 라고 해요. 메리.”

 

“메리?”

 

 

 

조곤조곤한 아가씨의 목소리로 저 단어를 들으니, 왠지 모르게 마음 한 켠이 따스해지는 듯한 착각이 일었다.

 

메리. 적어도 내 주변이 그런 사람은 없었다. 분명 생면부지의 초면일 텐데 왜 이리도 익숙하다는 생각이 드는 건지.

 

 

 

“... 예쁜 이름이네.”

 

 

 

주머니에 든 통발폰이 어느 샌가 무겁게 느껴졌다.

 

 

 

“... 오라버니.”

 

“그 호칭은 어떻게 좀 해주면 안 될까?”

 

“나중에 원하시면 얼마든지 바꿔드릴 게요. 하지만 지금은 말고.

정말 아무 것도 모르시는 건가요? 오라버니가 이끌고 있는 오르카 호가 인류의 마지막 희망이라는 것도?”

 

“응. 무슨 소리인지 하나도 모르겠어.”

 

“저... 정말로...?”

 

“애초에 난 그렇게 대단한 일을 할 만한 사람이 못 돼.

학교 수석이긴 하지만 그건 어차피 학과마다, 또 매 년마다 바뀌는 건데 대단한 건 아니지.”

 

 

 

내가 인류의 마지막 희망을 이끄는 사람이라고?

 

그런 건 뭐 어디 백 년, 천 년에 한 번 태어나는 사람이나 할 일이지, 나 같은 소시민이 할 일은 아니다.

 

 

 

“그렇지만 그게 현실인 걸 어떡해요!”

 

“현실? 그럼 우리가 다니는 저 학교는 현실이 아닌 건가?”

 

“그건 마키나가 만든 환...

... 으으, 어떡하지... 어떡하지... ... 아! 그래!”

 

 

 

메리는 갑자기 조수석에서 몸을 일으켜 시동을 키려는 내 손을 자신의 몸으로 돌렸다.

 

그리곤 내 얼굴을 두 손으로 꼭 붙잡는 메리.

 

 

 

“오라버니. 잠자는 숲 속의 공주 아시죠?

아직까지 잠들어있는 오라버니가 나쁜 거니까 이번 한 번은 봐주세요!”

 

“으, 응? 자, 잠깐만... ... 으읍?!”

 

 

 

메리가 갑자기 나에게 달려들더니 그대로 입을 맞추었다.

 

 

 

[CODE - CoC]

[MARY SUE와 접촉에 성공했습니다. 몰입도가 큰 폭으로 하락합니다.]

 

[해당 시나리오의 '전형적인' 행동 패턴을 산출합니다.]

 

 

 

그 순간, 갑자기 허공에 떠오른 홀로그램 창 하나.

 

 

 

[혀를 집어넣는다.]

 

 

 

... 뭐를 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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혀를 (햘짝) 집어 (햘짝) 넣는다 (햘짝)


칭찬해조서 다음화 가지고 왔어... 고마워 그러니까 또 해줘... 또 가지고 올게...




아무튼

절대 애 호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