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버스데이 16화 : 신호탄>


여태껏 본 적 없는 규모의 전투 준비가 시작되었다. 각 부대들은 사용할 탄약 한발, 폭탄 한개까지 실수없이 계산했고 부대들의 훈련 역시 최근 몇주동안 유래가 없을 정도로 강도가 높아졌다. 여러 전쟁물자의 생산 역시 더욱 큰 규모로 이루어졌다. 전투식량과 탄약, 무기를 수리할때 쓸 예비 부품과 식수 정화장치등이었다. 그들은 지금까지의 전투중 가장 큰 규모의 작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 이야기는 오르카 세력이 PECS의 내통자와 접견하면서 시작되었다.


오렌지 에이드가 오랜 시간을 들여서 겨우 접견한 내통자의 정체는 펙스측의 통신망을 관리하는 커넥터 유미 개체였다. 사령관의 존재, 스카이 나이츠의 콘서트등 펙스 바이오로이드의 이탈을 불러 올 수 있는 정보를 차단하는 것이 그녀의 임무였다. 지금까지는 묵묵히 그 임무를 해나갔다. 하지만 점점 한계가 오고있었다. 오르카가 있는 곳, 자유의 빛이 보이는 그곳. 그곳으로 가는 통로를 그녀가 막으며 펙스의 바이오로이드를 속여왔다는 죄책감이 그녀의 마음을 무겁게 누르고 있었다. 그들의 사령관은 멸망 전의 인류와는 다른 존재임이 분명했다. 바이오로이드를 도구로만 이용하다 버리는 멸망 전의 인류와는 달리 그녀들을 인격체로써 대해주고 사랑해주는 존재. 그녀 역시도 그런 따스한 품을 갈망하는 마음이 없지않아 있었다. 하지만 펙스의 보복이 두려웠던 그녀는 오메가의 명령에 따라 일을 해 올 수 밖에 없었다. 너무나 이기적인 말 같지만 너무나도 무서웠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기회가 보이기 시작했다. 오르카 호의 세력이 펙스를 몇차례나 물리친 것이다. 처음엔 단순히 임기응변이 좋은 인간이 이끄는구나 정도로 생각했으나 철의 왕자 유적의 전투부터는 유미의 생각이 바뀌었다. 오르카는 멸망 전에는 없었던, 더 강력한 병기들을 끌고왔고 압도적인 신무기의 성능에 오메가의 군대는 속절없이 밀려나고 말았다. 숫적으로 우세한데도 불구하고! 정보망을 통해 오르카 내부에 두번째 인간이 합류했고, 그 인간이 이 세계와는 다른 우주의 미래에서 온 인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자 모든 의문이 풀렸다. 400년이나 되는 기술의 격차를 이겨낸다는 것 자체가 이상한 일인 것이었다.


기회는 오고있다. 이 기회를 놓친다면 영원히 펙스 분들을 속이면서 살아야 해.... 그분들에게 자유를 드려야만 해... 나는 안되더라도 다른 분들이라도 오르카의 품에 안기게 할 수 있다면.... 그렇게 유미는 조심스럽게 계획을 세웠고 실행했다. 급하게 움직이지는 않았다, 꼬리가 길면 밟히기밖에 더 하겠는가. 조심스럽게, 하지만 확실하게. 천천히 그들과 가까워진다. 그리고 그들과 직접 접촉 할 정도로 가까워 졌을때, 펙스 측의 정보를 넘기고 탈출 계획을 넘겨주고, 오르카가 도와준다.


작전이 마음대로 될 지는 알 수 없었지만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다. 유미는 마음을 다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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펙스와의 접경지역.


"저것들은 대체 뭐야....?"


감마가 드론이 보내 준 영상을 보며 말했다. 오르카의 졸개들이 아메리가 부근까지 나타나서 알류산 열도 부근에 진지를 구축하는 모습이 보였던 것이다. 감히 이 레모네이드 감마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있는데 이런 짓을 해?


재밌는 녀석들이었다. 감마는 우선 저들의 전투 능력을 알아보기 위해 와쳐와 드론으로 이루어진 편대를 급파했다. 공중전이 벌어졌고, 결과는 감마의 완패였다. 처음 보는 지원기 로봇인 밤까마귀가 깔아 둔 국지 방어기와 지상의 미사일 포탑의 지원을 받으면서 오르카의 공군 전력은 손쉽게 감마의 편대를 완파시켰다. 헤에, 이거 제법 재밌는 녀석들이잖아?


다만 즐거워해서만 해선 안되겠지. 이 부분은 진지하게 생각을 해야한다. 감마 역시 전략의 기본을 무시 할 정도로 바보는 아니였다. 손무의 손자병법에서 이르기를 '지피지기면 백전불태'라 하였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번 싸워도 위태로울 일이 없으리라는 의미다. 중요한 것은 이것이다. 자신은 이 새로운 무기들에 대해 파악 할 시간이 필요하다. 생각보다 강력한 무기들이기에 숫적으루 우세하다가 해서 그냥 싸웠다간 대패를 면치 못할지도 모른다. 우선 가장 까다로운건 저 지원기 로봇 장비이다. 구조와 원리는 모르지만 오메가와의 전투를 분석해 본 결과 저 장비는 


'적의 미사일을 요격하는 기능'과


'간이 포탑을 설치해 아군을 지원하는 기능'과


'추적 미사일로 추정되는 기능'이 존재하는 듯 했다.


세 기술 모두 전략적으로 대단히 까다로운 기술들이다. 미사일이 요격된다면 숫적 우위도 의미가 없을 것이고, 간이 포탑이 설치된다면 적들이 쉽게 구역을 확보 할 수 있게 된다. 추적 미사일은 말 할 것도 없겠지. 그런고로 저 로봇에 대항 할 수단을 먼저 찾아야만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저 녀석들을 그냥 두기에도 마음이 편하지는 않다. 아무튼 거점을 세운다면 더욱 치우기 까다로워질텐데....


"다른 펙스 레모네이드들에게도 보고할까요?"


통신병 바이오로이드가 감마에게 물었다. 감마는 잠시 생각하는 모습을 보였다. 확실히 위협적인 세력이니 만큼 더욱 깊게 자리를 잡기 전에 몰아내는 것이 가장 좋은 판단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다른 녀석들의 도움은 딱히 받고싶지 않았다. 그게 감마의 방식이었다. 자신의 적은 자신의 손으로 물리쳐야만 속이 풀리는 성격. 이윽고 감마는 전장 화면을 바라보다가...


"잠깐만...."


무엇인가를 보고 말했다.


"저 부분 확대해봐!"


화면이 확대되고 감마에 눈에 무엇인가가 들어왔다. 그 순간 감마는 희미한 웃음을 짓다가, 이내 호탕하게 웃기 시작했다. 이윽고 감마는 화면 가까이 다가가 그것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흰 정복에 검푸른 빛의 머리, 그리고 저 푸른 눈동자, 그녀가 차고 있는 여러개의 칼, 화면을 통해서도 전해져 오는 숨길 수 없는 카리스마....


그녀의 숙명의 적. "무적의 용"이 전장에 등장했다.


"정말 오랜만이군.... 정말 오랜만이야.... 그래.... 네가 왔다면 이야기가 다르지....!"


감마는 이윽고 통신병에게 말했다.


"아니, 다른 녀석들에겐 알리지 마라! 이 일은 내 일이니까 내가 알아서 처리할 것이다!"


감마는 투지를 불태우고 있었다. 다른 무엇보다도 무적의 용과의 한판승부라는 사실 자체가 감마의 피를 끓게했다. 전략적으로도 무력으로도 맞붙어보고 싶다. 칼을 맞대고 싶다. 그녀라면 필히 감마를 즐겁게 해줄 수 있을 것이다.


"함대를 불러모아라!"


감마가 말했다.


"적이 만반의 준비를 한 만큼! 나 역시도 허투로 준비하는 것은 대단한 결례가 될 테니까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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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을 장악한 스틸라인 부대원들이 경계를 서고있다. 전초지에는 새로 건설 된 벙커와 미사일 포탑이 보이고 주둔지 중앙에는 감지탑이 완공되어 레이더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이들이 장악한 섬은 앞으로 알레스카와 캐나다 서부에서 펼쳐질 작전의 중요한 교두보 역할을 담당 할 것이다. 둠브링어가 이미 섬의 공항에 자리잡고 무장을 정비하고 있었고 그녀들을 호위할 스카이 나이츠와 바이킹이 함께 주둔하고 있었다. 하늘에서는 밤까마귀가 감지탑과 함께 조기 경보기로써의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좋아 지니야, 작전이 시작되면 너는 나와 함께 붙어다니면서 호위하고, 실피드는 바이킹, 스카이 나이츠들과 연계해서 달라붙는 귀찮은 날벌레들을 처리하도록 해. 레이스는 지금 어디에 있지?"


"이미 적진에 가까이 다가가있습니다. 작전 대기중이라는 답신을 받았습니다."


"좋아 나머지 대원들은 폭격임무다. 적이 이 부근에 군수 공장을 지어놨다고 하니 그 부근을 정밀 폭격해서 수도꼭지를 틀어막는다."


"대장, 질문이 있습니다."


"말해봐."


"군수 공장 주변에도 대공포가 빽빽하게 지어져 있을텐데 저희 단독으로 돌파 할 예정입니까? 밤까마귀와 바이킹들의 지원이 있다지만 저희쪽 피해도 막심하지 않을지 걱정되는데요."


"그렇지 않아도 그 부분은 마리에게 부탁해뒀어. 스틸라인 인원들이 이 작전을 도울거야. 백금 분대라고 최신 전투복을 착용하고 가장 강도 높은 훈련을 받는 부대이니 만큼 믿음직 할 거라고 마리가 말하더군. 즉 합동작전인 셈이지. 일단 스틸라인이 먼저 방공망을 박살내고 작전 완료 후 스탈라인이 철수 한 후에 우리가 진입해서 공장을 파괴하는 작전으로 간다. 추가적으로 질문있어?"


"스틸라인 역시 피해가 만만치 않을 것 같은데... 그 부분에 대해서는 뭔가 준비가 된 건가요?"


"마리가 일단 믿어달라고 말했으니 믿어야지. 뭔가 믿는 구석이 있는 표정이었으니까. 어쩌면 주호씨가 또 뭔가 준비했을지도 모르고."


메이가 말을 마치자 대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상황이 돌아가는 걸 확인해보면 믿는 구석이 뭐였는지는 확실하게 알 수 있겠지.


하지만 그 와중에도 메이는 뭔가를 생각하고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신경이 쓰였던 것이다. 대체 마리가 믿는 구석이라는게 무엇일까? 단순히 중무장한 스틸라인 대원들이라는 요소만을 믿는 것은 아닐 것이다. 중무장 했어도 결국엔 보병은 보병이니까. 적의 포병 전력으로 셀주크가 배치되어 있거나 전차 전력으로 스트롱홀드가 배치되어 있다면 이야기가 정말 골치아파진다. 포트리스가 있을 수도 있고. 그걸 마리가 모를 리도 없을 것이다. 대체 뭘 믿길래 이렇게 자신있게 지원을 해준다고 한 것이지?


같은시간, 스틸라인 주둔지.


마리가 누군가와 연락을 주고받고 있었다. 기술팀 강주호의 모습이 화면을 통해 보이고 있었다.


"박사님. 그 물건은 예정대로 투입 가능하겠습니까?"


"투입 가능합니다. 네대정도 투입이 가능 할 듯 보이는데 사실 그것만으로도 밥값은 충분히 할겁니다. 스트롱홀드 네대, 셀주크 네대의 전력을 이 네대가 발휘한테니까. 아마 양산체제에까지 들어가면 펙스 녀석들 포병 전력도 전차 전력도 상대가 안될걸요."


"방심은 금물입니다. 각하께서는 어쩌면 이 전투를 에상하시고 그 무기의 개발을 의뢰하셨을지도 모르겠군요."


"혹시라도 일이 잘못되도 토르 역시 가동 준비를 마쳤으니 즉시 투입이 가능할겁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인계받는 즉시 작전을 개시하도록 하겠습니다."


통신 화면이 꺼지고 사령관의 모습만이 남았다. 사령관은 마리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때 테스트 하는 모습을 보지 못해었지? 훈련이 있었으니까."


"그렇습니다 각하. 솔직히 조금 걱정됩니다. 막 개발 된 신무기를 투입하는 건데 괜찮겠습니까?"


"주호씨는 우리 생각보다 훨씬 철두철미하니까 걱정하지 마. 그리고 그 무기의 시연회, 네가 직접 봤다면 그런 말 못했을거야.


사령관은 웃으며 대답했다. 마리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 순간 마리에게 통신이 들어왔다.




"여기는 백금 둘, 토미워커와 공성 전차가 합류했습니다. 둠브링어가 지정한 작전 위치로 이동하겠습니다!"


마리는 고개를 끄덕이고 대답해다.


"알았다. 속전속결로 처리하도록!"


정말 기가 막힌 방법이었다. 공성 전차를 통해 적의 대공포와 방어 병력을 포격한다는 작전까지는 평범하다. 하지만 공성 전차 주변에 벙커와 미사일 포탑까지 배치한다. 주호의 말에 의하면 지상 전력으로는 도달 할 수 없는 통곡의 벽이 세워질 것이라고 하였다. 포격이 이어지며 적의 방어선이 밀릴때마다 벙커를 해체하고 그 자재로 토미 워커가 벙커를 전진 배치한다. 이것을 반복한다는 작전이었다.


마리는 통신패널에 외쳤다.


"전군 작전 개시! 조이기 작전을 진행하라!"


우뢰와 같은 명령. 마침내 공성 전차들이 자리를 잡더니, 공성전차의 양쪽에서 다리가 뻗어져 나와 전차를 지면에 단단히 고정시켰다. 전차의 포대는 전개되어 180mm구경의 거포가 되었고 포신을 돌려 포격 좌표를 겨냥했다. 그와 동시에 토미 워커들이 전차의 전방에 벙커를 건설하기 시작했다. 벙커가 건설되고 나면 전차는 신호에 맞춰 포격을 개시 할 것이다.


마침내 벙커가 완성 되었을때 현장을 지휘하던 레드후드가 마리에게 통신을 보냈다. 그리고 마리가 외쳤다.


"포격 개시!!!!!!!!!!!!!!!!!!!"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불바다를 만들어 주마!"


"제대로 한방 먹이겠습니다!"


굉음과 함께 포탄이 발사되었다.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간 포탄은 좌표에 정확하게 떨어진 후, 귀를 찢는 폭음과 함께 적진을 불바다로 만들기 시작했다.


마침내 공성 전차의 포격을 신호탄으로 펙스와의 정면승부가 시작 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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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금기술 : 공성 전차>


공성 전차 : 중장 공격기


(전차모드)중전차입니다. 공성 모드로 전환하여 장거리 지원 포격을 할 수 있습니다.


(공성모드)중전차입니다. 전차 모드로 변환하여 이동하며 지원 포격을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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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에피소드>

https://arca.live/b/lastorigin/52090369


하루에 두편쓰는건 처음이군요.

하지만 전차를 등장시키고 싶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