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 https://arca.live/b/lastorigin/52063652



“아침부터 표정이 영 썩어들어가네, 오빠. 무슨 일이 있었길래 기분이 그렇게 안좋아?”


영지는 역시 영지였다. 화가 났어도, 나는 그래도 표정관리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녀의 독심술은 명중했고, 나는 대충 아닌 척 주머니 속에서 담배를 꺼내 입에 베어물고는 라이터로 불을 붙여올렸다.


“여기서 담배피는건 불법일텐데?”


“그럼, 우리가 하는 일은 합법이고?”


“...그건 아니지. 나도 한대만 줘.”


막 주머니에 넣으려던 갑에서 막대기 하나를 더 꺼낸 다음, 그녀에게 건냈다. 빨간 불꽃은 그녀가 문 담배를 불태웠다.


“그나저나, 무슨 일이 있었길래 그러는거야?”


“바이오로이드년 하나랑 대판 싸웠어. 새벽에 있던 일이라 좀 더 짜증나기도 했지.”


“역시, 그런게 있었네. 봐봐, 내가 한번이라도 잘못 짚은적이 없지?”


“그래 너 잘났다, 잘났어.”


그렇게 담배를 뻑뻑 피워대던 그때, 조직원중 하나가 회장님 사무실에서 나와 휴게실을 천천히 훑어보았고, 그곳의 사람들 중 나와 눈이 마주치자 들어오라는듯 고개를 까딱였다. 회장님이 부른듯 하였으니, 나는 영지에게 갔다오겠다 하고선 곧장 입에 남은 담배연기를 전부 빼낸후, 짧게 남은 막대기를 짖이긴뒤 성큼성큼 사무실 안으로 들어갔다.


이미 그 안에는 김창식이 함께 있었고, 회장님께선 나를 보자마자 꽤 반가워하셨다.


“...소한아, 어제, 아니 오늘 일은 잘 해결된건가?”


“예, 마찰도 별로 없었고, 테리씨도 저희 집단에 대해 꽤나 호의적인듯 합니다.”


“흐음, 김창식이 처음으로 우리 조직에 들어와서 한 일인라 뭔가 한번 크게 터져서 쎄게 인식하길 바랬건만.”


“저희는 저희랑 거래를 하거나 같은 처지에 놓인 사람들과는 절대 적대적으로 행동하지 않는거 아시잖습니까, 그리고 창식이에게 관해서는 한번 제가 크게 보여준 적도 있었는데.”


“하하, 농담이야, 농담. 그래서, 약은 잘 챙겨온거 맞나?”


“옙! 형님은 집에다 내려드렸고, 회장님께서 지정하신 곳에 안전하게 주차해놨슴다!”


회장님은 손깍지를 끼고 턱을 바쳤고, 만족했다는듯 아무말 없이 흐뭇이 웃었다.


“그정도 약이면 우리 부잣집 도련님들을 홀리기 쉬울 것이야. 심지어 새로운 유형의 약들 또한 가져왔으니, 그들의 파멸 또한 이미 예정되어 있을 정도지. 다들 수고 많았다.”


“감사합니다. 그럼 회장님, 이젠-”


“네 가족의 비밀을 파헤치고 싶다는 말을 하고 싶은거지?”


회장은 웃으며 나를 바라보았고, 나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회장님은 이미 내가 원하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아니, 알고 있어야만 했다. 내가 계속해서 이 일이 끝나면 내가 하고싶은 일을 해야겠다 말했으니까, 그리고 그 하고싶은 일은 나와 함께 일을 한 사람이라면 꼬옥 알고 있어야 했으니까 말이다.


“...필요한 물건은?”


“대충 다 구한듯합니다. 전에 사채업자 금고를 털어 출입증은 충분히 얻었고, 미스 세이프티를 찾아 감금할 공간은 집에 있습니다. 고문기구는 뭐, 군에서 배운 다양한 방법이 있는데,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물건으로도 사람을 쉽게 고문하는 법은 잘 알고 있죠.”


“...대충 몇개만 알려줄 수 있는가?”


“뭐… 간단하게 눈에 젓가락을 꽂아넣는다던가, 온 몸에 소금물을 뿌린다음 배터리로 감전을 시킨다던가, 방금 말한 두가지를 동시에 해서 눈에 젓가락을 꽂고, 그 젓가락에 배터리를 연결시킨다던가, 아니면-”


“그만, 역시 군에서 배운게 많은가보군.”


“제가 미스 세이프티를 고문하는 이유는, 정보를 얻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그냥… 그 년을 죽기 직전까지 몰고간 다음, 최대한 오랫동안 고통받는 걸 원하는거죠. 바이오로이드들의 질긴 생명줄을 이용해 제가 받은 고통을 그대로 돌려줄때까지 고문을 안멈출 겁니다.”


“듣기만 해도 무섭군, 그래도 자네같은 사람이 우리편이라 다행이야.”


“저도 회장님 같은 은인을 만나 영광이라 생각합니다.”


“...당분간은 중요한 일도 없을테니, 너의 일에 집중해도 된다. 너 뿐만 아니라 수하랑 영지, 창식이도 당분간은 널 도와줄수 있도록 이번달은 할 일이 없도록 일정을 조정해주지.”


“항상 도움 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도 항상 우리를 위해 일해주니 고맙지, 이제 들어가봐.”


“...그럼-”


“아, 요새 내가 근처 테마파크를 하나 인수했거든? 그래서… 필요하면 이걸 좀 주고 싶은데.”


회장은 내게 은빛으로 빛나는 카드 한장을 내게 내밀었다. 그 차가운 카드는 철로 되어있는지 꽤나 무거웠고, 플라스틱 카드와는 다른 질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 카드에는 그 어떠한 숫자도, 무늬도 없었다. 그저 은색으로 빛나는 직사각형 모양의 철제카드였다.


“이건…”


“테마파크 VIP 무제한 이용권이다. 이걸로 입장시 네 지인을 포함해서 모두가 모든 놀이기구를 줄서지 않고 탈수 있고, 전용비서가 테마파크를 제대로 즐길 수 있게 도와주지. 잃어버려도 네 이름으로 제작한 것이니, 테마파크 입구에서 재발급하면 된다. 도용당할 일도 없으니 안심해.”


“...제가 놀이동산 같은 곳을 가는 취향은 없지만, 한번도 가본 적이 없으니, 시간이 비면 한번 갔다오도록 하죠.”


“...! ㅎ, 회장님… 혹시… 제껀…”


“우리 조직에 사람이 몇인데, 자네도 곧 선물해주지. 대신 지금은 안돼.”


“...알겠습니다…”


“그럼, 이제 나가보도록하게.”


나는 회장님께 가볍게 고개인사를 하고, 김창식과 함께 회장실에서 나왔다. 간단한 마약운반 사건을 끝내고, 드디어 나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그 뿐만 아니었다. 출입증을 위조해줄 수하, 옷을 만들어주고 위장을 도와줄 영지, 그리고… 나를 도와줄 창식까지(솔직히 칼을 잘 휘두른 창식은 여기서 뭘 어떻게 도와줄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이제 나의 동료니까…). 충분한 인력이 나를 도와줄 수 있게 되었다.


밖에는 수하와 영지가 대화를 이어나가고 있었고, 나는 그들을 불렀다.


“수하, 영지!”


“...?”


“...이제 때가 된 거 같다. 나좀 도와줘.”


“...그 일, 이제 회장이 해도 된데? 그렇다면야 바로 위조 시작할 수 있는데.”


“응, 한달 안으로만 해결해달래. 너희들 스케쥴도 한달동안은 비워주신다고 하셨어.”


“한달? 내 생각엔 오늘 하루만에 끝낼 수 있을거 같은데, 오빠?”


“...?”


“음… 솔직히 가능하긴 해. 출입증 위조야 기존 출입증이 많으니까 오래 걸리지도 않을거고… 남은건 경찰용 복장-”


“그건 내가 아는 사람한테 바로 구할 수 있어. 위장이야 항상 내 전문이였잖아?”


“...옷 구하는데는 얼마나 걸려?”


“전화 한번이면 빌려줘.”


“위조 출입증은?”


“대략 30분정도? 짜피 전기신호만 복사하고, 신분증에는 대충 그럴싸한 이름이랑 직책만 넣으면 되니깐 말야.”


“시티가드 보안이 그렇게 허술하다고?”


“허술해도 들키면 끝장나는 곳이 거기니까. 그치만 우린 들킬일이 없잖아?”


“맞긴 하지.”


“그럼 형님, 저는 뭘 하면 됨까?”


“...이번 일은 잠복 및 정보 탈취인지라, 고맙지만 창식이 너가 해줄 일은 없을 거 같아.”


“예?!”


“그래도, 다음에 있을 일에는 꼭 너 같이 데려갈게. 이번 일에는 그래도 섬세함과 비밀이 필요한 일이라…”


“...그래도 근처에서 형님 일하는 거는 구경해도 될까요?”


“...대신, 너랑 나는 그곳에선 서로 모르는 존재고, 합류는 이 사무실에서 하는거다? 일 틀어지면 수습하기 힘들어.”


“알겠슴다!”


김창식은 나랑 만난 이후 가장 큰 목소리로 대답하였고, 그 이후로는 착착 일이 풀어나가기 시작했다. 수하는 카드키의 정보를 빼내 새로운 출입증을 만들기 시작했고, 영지는 아는 사람에게 부탁해 경찰복을 사무실로 가져왔다. 뿐만 아니라 유출된 중앙 경찰서 도면을 이용해 가장 빠르고 CCTV에 걸리지 않고 들어갔다 빠져나가는 루트를 계산하였다. 창식은 다시 한번 우리의 전문적인 실력에 감탄하였고, 그렇게 1시간만에 경찰복, 출입증이 모두 준비가 되었다.


“...이 출입증은 정말 효과가 있는거 맞지?”


“정보도 새로 갱신했고, 전문가가 아니면 절대 파악 불가능해. 전문가가 온다고해도 3시간 이상은 걸리고. 아, 그리고 정보를 빼올 때는 이 USB를 써.”


“이건 뭔데?”


수하가 내민 검은색 USB는 그저 평범한 검은색 USB로 보였다. 하지만 수하는 막 이상한 용어를 써가며 이 USB에 대해 설명을 해가기 시작했다. 나는 그쪽에선 전문가가 아니였기에, 이해하기 힘들었고, 수하가 요약해준 것에 의하면 USB에서 정보를 빼내면, 그 기록이 서버에 남게 되는데, USB에서 자체적으로 그 정보를 무작위로 돌려버려 빼내었다는 기록마저 없애준다는 것이였다.


“꽤 쓸만한데?”


“수하도 꽤 하네, 어쨋거나 그오빤 옷 차려입고 중앙 경찰서로 와줘, 우린 먼저 가서 대기타고 있을게. 아, 무전용 이어폰 챙기는거 잊지말고!”


“지금부터 시티가드들 점심시간이라 사람이 제일 없는 골든타임이야. 최대한 빨리, 우리랑 동선 겹치지 말고 와!”


“알았으니까 니들이나 빨리 가있어. 금방 따라갈게.”


“그럼 좀 있다 뵙겠슴다!”


셋은 그렇게 내 시야 밖으로 사라졌고, 나 또한 경찰복을 주섬주섬 차려입은 뒤, 사무실을 박차고 나섰다. 도심을 경찰복을 입은채 돌아다니니 새로운 느낌이 들었다. 모두의 시선이 내 쪽으로 쏠리는 듯 하였고, 다른 경찰들도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나는 그들에게 어색하지 않은 척 손을 들며 인사하였고, 그들도 고개를 끄덕이고 손을 함께 흔들며 오해를 풀었다. 그렇게 진짜 경찰인척하며 도시를 건너, 마침내 충유 중앙 경찰서에 도달하였다.


문에서는 늦은 점심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점심을 먹으로 뛰쳐나온 사람들과, 커피를 홀짝이며 남은 점심시간을 농땡이 피우는 시티가드 형사들과 경찰관들이 있었고, 건물은 거의 비어있는듯 하였다. 좋은 타이밍이였다. 들어가기 직전, 귀에 꽂은 이어폰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아아, 마이크테스트, 마이크테스트…”


“잘 들리니까 걱정하지마. 그냥 들어갔다 나오면 되는걸 무슨 무전까지-”


“이제부터 내가 형의 눈이야, CCTV로 형이 못보는 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궁금하지도 않아?”


“...내가 잘못 생각했네. 잘 부탁할게.”


“나야말로. 이제 들어가.”


카라깃을 정돈한 후, 곧장 경찰서의 문을 박차고 안으로 들어갔다.


세상에는 경찰서가 2곳이 있다. 정부가 운영하는 국영 경찰서, 기업이 운영하는 시티가드 대리 경찰서. 그리고 공권력은 이미 시티가드에게 거의 넘어가고 있는 상황이였다. 전국의 95퍼센트의 경찰서가 시티가드 경찰서였고, 심지어 전국의 모든 CCTV를 시티가드가 접수하고 있으니까.


이는 내가 하는 작전에 장점도, 단점도 될 수 있다. 장점으로썬 시티가드의 정보조회로 대부분의 정보를 얻을 수 있다는것, 단점으론 들키는 순간 존재하는 모든 카메라가 날 분석하고, 수배령을 때릴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작전에서 내가 들킬 확률은 0에 가깝다. 나는 경찰로 위장하였고, CCTV의 사각지대에서 은밀히 활동하다 빠져나갈 것이니까.


곧장 전에 청사진으로 확인했던 엘리베이터로 빠르게 걸어갔고, 자연스레 엘리베이터 버튼 밑에 출입증을 접촉시켰다. 조금의 딜레이 이후, 푸른 빛이 들어오며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렸고, 나는 자연스러움을 부각시키기 위해 옆에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던 켈베로스에게 구역질을 참아내고 은은한 미소와 함께 인사를 건냈고, 그 연막은 성공적으로 통했다. 엘리베이터에 들어설때까지 그 누구의 의심을 받지 않았다. 내 직감에 의하면 말이다.


엘리베이터에 들어선 나는 약간의 충격을 먹었다. 엘리베이터에 누구의 짓인지 모르겠지만, 누가 층수 버튼 옆에 그 층에서 무슨 역할을 하는지, 어느 부서가 있는지 이름표에 적어놓았기 때문이다. ‘이거 보안이 너무 허술한거 아닌가? 오히려 이득이긴 하지만’이라는 생각과 함께 나는 [정보 관리 서버실]이라는 층을 눌렀고, 엘리베이터는 빠르게 올라가기 시작했다.


곧이어 디스플레이에선 4라는 숫자가 떠올랐고, 문은 천천히 열렸다. 서버실은 서버실답게 아주 옅은 푸른빛이 층을 가득 뒤덮었고, 그 푸른빛이 비추는 희미한 길을 따라 수하가 가르쳐준 대로 길을 따라나섰다. CCTV가 가끔씩 눈에 들어왔지만, 렌즈는 보이지 않았고, 나를 찍는 것이 아니거나, 아니면 CCTV자체가 가짜거나라고 믿으며 그렇게 서버실을 빠져나와 정보 관리실로 넘어오게 되었다.


“10년 전의 일이였지, 형? 그럼… 2320년의 서버를 찾아봐, 거기에 있을거야.”


나는 수하의 말에 따라 2320의 숫자가 적힌 서버를 찾으려 노력했고, 그 결과 한모퉁이에서 그 서버를 발견할 수 있었다. 10년 전에 만들어진 서버라 그런지, 먼지에 뒤덮여져 있었고, 간신히 흐릿하게 보이는 2320 밑에 쓰여진 알 수 없는 문구를 보기 위해 먼지를 털어내니, 그곳에는 9~12라는 문구가 쓰여져 있었다. 아마 9월부터 12월까지의 모든 기록이 담긴 정보가 이 서버에 잠들어 있는 것이라 나는 생각했고, 10월에 그 참변이 일어난 걸 기억한 나는 곧장 그곳에 USB포트를 찾아냈다. 포트에 몇번씩 돌려서 USB를 도킹시키자, 수하가 무전기 사이로 반응하기 시작했다.


“어, 형 찾았어? 반응이 뜬다고 알림이 오는데?”


“찾는 서버 발견해서 막 꽂아넣은 참이야. 이젠 어떻게 해야되?”


“나한테 맡겨, 원격 조종으로 싹 다 빼낼 테니까.”


곧이어 수하가 무슨 짓을 한 것인지 몰라도 USB의 검은색 몸통이 초록색으로 빛나기 시작했고, 뭔가가 이뤄지는듯 수하의 노랫소리가 무전으로 들려오니 나도 안심하며 몸을 숙이고 일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다.


“잘 되고 있는거 맞지? 한 얼마정도 걸려?”


“나도 모르겠어, 대충 훑어보니까 CCTV기록, 바이오로이드 정보, 이력 이런게 전부 들어가 있어서… 그래도 방금 20퍼센트 지나갔다. 요새는 장비가 되게 좋아졌다니깐? 조금만 기다-”


‘또각… 또각…’


“...!”


분명 귓속에서 기분나쁜 구둣소리가 들려왔다. 환청이 아닌, 실제로 들리는 것이 분명했다. 숙인 몸을 조금 더 움츠리고, 주변을 빠르게 훑어보았다. 여기저기를 바라본 나는 이내 노란 머리의 누군가를 발견했다. 설마 그 하르페이아가 여기까지 온건… 분명 아닐테다. 내 의심이 너무 심했겠지, 그 년이 애초에 여기까지 올 리가 없으니까. 나는 고개를 조금 내밀어 그녀의 신상을 제대로 확인했다. 역시나 그녀는 노란머리였으나, 하르페이아와는 정반대로 짧은 머리를 가진, 징벌의 사디어스였다.


뭔가를 찾는듯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면서 목표를 수색중인듯 보였고, 설마 여기 들어온 것을 들킨 것은 아닌지, 아니 분명 모든 추적과 의심을 피해나간 거 같은데… 이해가 되질 않았다. 나는 기가 죽은 채 서버실 소음에 목소리가 묻힐 정도로 목소리를 최대한 낮춰 수하에게 무전을 쳤다.


“뭐야, 쟤가 내가 여깄다는 걸 알고있는거야?”


“...? 쟤 왜 저깄어? 잠시만…”


수하는 뭔가를 찾는 듯이 말꼬리를 쭈욱 늘렸고, 곧이어 사디어스의 목소리로 들리는 녹음본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흐음, 30년 10월 데모 자료가… 하여튼간에 노조새끼들, 이 일을 지금까지 끌고 있는거 좆같네… 싹 다 전기지짐해버리고 싶다…”



다행히 그녀는 나를 찾는 것이 아니였다. 하지만, 내가 머물고 있는 서버를 찾고 있는 건 분명했다.


“...쳇…”


이대로라면 들킬 것이 뻔했고, 이는 수하도 잘 알고 있었다. 사디어스는 2230이란 숫자를 본 것인지 천천히 이곳으로 걸어왔고, 이대로라면 들킬것이 분명했다. 이때, 김창식이 뭐라 소리지르는 것이 무전으로 들려왔고, 이때 사디어스는 뭔가 생각이 난듯 내가 있는 몇미터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 여기 왜 먼지가 닦여있지?”


“...!”


어쩔 수 없는 행동이 증거를 남기게 되어버렸다. 숫자가 보이지 않아 먼지를 닦았을 뿐인데, 이게 이렇게 걸리게 되다니… 사디어스는 곧장 자세를 숙이고, 천천히 내게 다가왔으며, 나는 최대한 내 모습이 보이지 않게 거의 눕다시피 몸을 낮췄다.


“거기 누구 있어? 그쪽도 자료 찾으러 온건가?”


그렇게 서버 사이 공간에 누워 사디어스와 눈을 마주치기 순간이었다.


“내 가방 어딨어 이 강도새끼야!”


“내가 무슨 아줌마 가방을 훔쳐요오오오???!!!”


“...?”


서버실에서도 선명하게 들리는 영지의 비명소리, 그리고 사디어스는 그 비명소리에 고개를 휙 돌렸고, 나는 곧장 포복자세에서 일어나 소리없이 장소를 옮기게 되었다. 사디어스는 더이상 서버에 흥미를 가지지 않는듯 했고, 다시 엘리베이터를 향해 빠른 걸음으로 옮기게 되었다.


“경찰서 앞에서 대담하게 도둑질을 해? 철저히 처벌해주겠어!”


그렇게 엘리베이터의 누런 빛이 잠시 보였다가 사라졌고, 곧장 수하의 끝났다는 무전과 함께 나는 잽싸게 USB를 빼내고는 그녀가 타고 내려간 다음 엘리베이터에 몸을 실은 뒤, 안전하게 경찰서를 빠져나왔다. 경찰서 밖으로 빠져나가보니, 사디어스와 김창식, 김영지 셋이서 대화를 나누고 있었는데 대화는 이러했다.


“내가 말했잖아요! 아줌마 가방 훔친 적 없다고! 훔칠 생각도 없었다니까?!”


“아니, 그쪽이 나를 툭 치고는 빠르게 달려가는데, 그건 당연히 오해할 수 있는거 아니에요?”


“어이구, 오해로 사람 한명 인생 망칠려고?! 아줌마가 무고죄로 감옥 들어갈래?!”


“이게 어디서 자꾸 아줌마 아줌마야?! 내가 니보다 나이 훨씬 어려!”


“둘다 그만!!”


““...””


“내가 들어보니까, 서로 잘못한거 같은데, 당신은 오해해서 잘못했고, 당신은 멈추란 말에 암멈춘거 잘못했고.”


“아니 노이즈 캔슬링 이어폰을 끼고 있는데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차립니까?!”


“횡단보도를 건널때는 노이즈 캔슬링 이어폰도 불법인거 알고 있지? 그걸로 과태료 부담시켜?!”


“ㅇ, 아닙니다…”


“...자 서로 잘못했으니까, 서로 사과하고, 좋게좋게 끝냅시다, 예?”


누가 지어낸 상황극인지는 몰라도 기가 막히게 상황을 타파할 수 있었다. 나는 그들의 연기를 보며 씨익 웃으며 자리를 떠나 수하가 있는 곳으로 빠른 걸음으로 빠져나갔다. 오랫만에 내 주도가 아닌, 그들의 도움으로 내가 위기에서 벗어났다는 생각에 나는 신선한 충격을 가질 수 있었던 것 같았다.



저번주에 일이 있어 일주일중 3일정도만 글쓴거 같아서, 이번주는 쭈욱 나바혐 연재합니다.


어느날 굴러들어온 그녀들은 다음주로 미뤄졌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