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이 다른 곳으로 가기도 귀찮다.

어차피 3곳 모두 어디로 이어져있는지 알 수 없으니 그나마 멀쩡해 보이는 이곳을 골라도 별차이는 없을것이다.

결정을 내렸으니 망설일 필요는 없다.

사령관은 뒹굴거리던 쇼파에서 일어나 짐을 챙겼다. 다행히 식량은 아직 충분했다.

"어디로 갈 지 결정하셨나요?"

"2층으로 올라갈꺼야."

그녀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고 위층으로 향하는 사령관의 뒤를 따랐다.

2층의 가장 안쪽 방.

외견상으로는 다른 방문들과 비교해도 큰 차이점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평범한 문이었었지만, 그 동안 느껴왔던 통로 특유의 기이함이 느껴진다.

그는 문고리에 손을 올리고 뒤를 돌아봤다.

"별로 유쾌한 관계는 아니지만 잘 있으라고."

"제가 한 말이나 잊지 마세요."

"뭐.. 그래. 뭐였더라? 붉은 달께 저의 수확물들을 공양합니다. 이거 맞지?"

기도문을 읊음과 동시에 그의 주변에서 진동하던 혈향이 확연하게 줄어들었다.

그 모습을 확인한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이건 붉은 달께서 주는 선물입니다."

그러고는 그의 반대손을 붙잡아 피로 어떤 문장을 세겨넣었다.

"이게 뭐야?"

문장은 빠르게 스며들어 곧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되었다.

"붉은 달께서는 당신의 재능을 높게 봅니다. 앞으로도 그 손에 피를 묻힐 수록, 큰 힘을 얻을 수 있을 겁니다."

"힘은 이미 충분한데?"

오리진 더스트를 때려넣은 그의 몸은 처음부터 인간이라고 보기도 애매했지만 닥터가 수차례 정밀조정을 해주고 애들의 세밀한 관리에 스스로의 단련까지 틈틈히 해온 지금은 인간의 범주를 뛰어넘었다.

"사실 당신께서 살육을 저지를 때마다 붉은 달께 자동을 공양하는게 주목적이긴 합니다. 하지만 없는거보다는 났지 않습니까?"

그녀는 약간 웃음기 띈 목소리로 가볍게 털어놨다.

"뭐 나한테 손해만 안오는거면 상관없긴하지."

사령관은 피식 웃으며 문고리를 돌렸다.

문 안쪽은 마치 블러처리를 한것처럼 뿌옇게 보였다.

그 특이한 모습에도 그는 망설이지 않았다.

마치 비눗방울 안으로 들어가는 것같은 약간의 저항감이 느껴졌다.

그렇게 이번에 도착한 장소는 좌우로 굉장히 넓은 방이었다.

사무실 책상과 의자들이 어지럽게 널려있고 조명 몇개는 나갔다.

그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문 맞은편 벽을 가득 채운 커다란 유리창이었다.

길을 막고 있는 잡동사니들을 치우며 유리창으로 다가갔다.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넓은 정원. 그리고 그것을 완전히 둘러싸고 있는 무채색의 건물들.

위를 올려다보니 그곳도 무채색의 벽으로 막혀있었다.

다시 시선을 내려 이번엔 건물들을 둘러봤다.

무채색의 벽을 장식하는 다양한 크기의 창문들.

불이 켜져있는 것도 많았는데 그 안으로 보이는 모습은 조금씩 달랐다. 당연히 이상한 생명체의 실루엣 역시 있었다.

창문에서 눈을 떼고 탐사를 준비하던 사령관은 이상한 점을 눈치챘다.

"응?"

지금까지와는 달리, 그가 들어온 통로에서 여전히 기이함이 느껴지고 있었다.

혹시나 싶었던 사령관은 다시 문쪽으로 다가가 조심스레 문을 열었다.

마침 내려가려던 그녀가 뒤에서 들려온 문소리에 뒤를 돌아봤다.

그렇게 마주친 두 사람.

베일에 가려진 그녀의 붉은 눈에 황당함이 깃들었다.

"그.. 왜 돌아오셨습니까?"

"어.. 그러게?"

그가 처음으로 발견한 양방향 통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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