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그쪽 세계로 가겠다, 사령관txt] 모음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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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식사가 끝난 후, 레오나의 수업이 시작됐다.


"자, 달링. 전술 교본을 펼치도록 해."


그 교본이란, 레오나가 출력해서 건네준 인쇄물이었다.

방금 전에 막 전달 받은 참이었다.


그는 그것을 펼치며 묻는다.


"그런데 신기하다. 너희는 시간 되면 되돌아가는데, 물건은 안 그래?"

"그건 간단한 물건이니까."

"무슨 뜻이야?"

".....달링, 컴퓨터에서 휴대폰으로 파일을 옮겨본 적 있지?"

"응."

"용량이 크면 클수록 옮겨지는 시간이 오래 걸릴 거야. 그렇지?"


그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런데 파일이 다 옮겨지기 전에 컴퓨터와 휴대폰 연결이 끊기면 어떻게 돼?"

"전송된 대까지만 저장되고 나머지는 중단되지....?"

"하나의 파일인 경우는?"

"아...! 취소돼. 이해했어."


갑자기 연결이 끊기면 전송 자체가 취소된다.


'그런 개념이었구나.'


"우리는 그 세계보다 더 뛰어난 기술로 만들어진 몸이야.

그쪽 세계에게는 없는 전혀 새로운 데이터로 이루어져 있지.

그래서 그만큼 완전히 그쪽 세계에 물들기까지 시간이 걸리는 거야.

하지만 완전히 물들기 전에 차원문이 닫혀 튕겨져 나간 거지."


"아하..... 이해했어."

"좋아, 그럼 교본을 펼쳐. 첫 장을 봐."

"응."

"간단하게 전술의 기초부터 설명하겠어. 잘 새겨듣도록 해. 천재 레오나님의 강의를."

"응. 열심히 할게."


레오나가 강의를 시작한다.


"가장 먼저 알아야 할 건, 인간과 바이오로이드의 차이야.

달링이 우리를 도구로 인식하지 않는 건 알지만,

인간과 우리는 분명한 차이가 있지. 그걸 먼저 교육해주겠어."


그러면서 레오나가 바이오로이드의 표준 규격에 대해 쏟아낸다.

그는 미간을 오므리고 집중한다.


그러나 솔직히, 무슨 소린지 하나도 이해하지 못했다.










"달링. 저번에 청소했을 때 상을 주겠다고 했지?"

"응."

"그래서 내가 친히 왔어. 내 요리 정도면 포상으로써 충분하겠지."

"물론이지. 아니, 분에 넘쳐."


점심시간.

레오나가 건너와서 스테이크를 차려주었다.

밀키트 세트로.

하지만 밀키트든 말든 사령관은 누군가 해준 것 자체가 좋았고,

또 스테이크가 처음이라서 마냥 신났다.


스테이크를 먹어본 건 학교 급식에 나온 함박 스테이크가 끝이었다.

용가리나 만두 같은 것도 어릴 때 먹은 기억이 없다.

급식 이외의 것은 성인이 되어 돈을 번 다음에 직접 사먹은 게 처음이었다.


"느긋하게 먹도록 해."


레오나는 상을 차려준 후 맞은편 자리로 가 앉았다.

식탁에 올린 팔에 턱을 괴고 그가 먹는 모습을 유심히 바라본다.


'살짝.. 부담스럽네.'


감시...는 아니지만 뚫어져라 보는 눈빛이 부담스러웠다.

살짝 화가 난 것 같기도 하고....


"저, 레오나는 안 먹..."

"그런데 달링."


혹시 같이 먹자는 소리를 안 해서 그런가 하고 입을 여는데,

레오나도 동시에 입을 열었다.


"응. 말해."

"솔직히 말해봐. 아까 내 설명, 반도 이해 못했지?"

"....응."


그는 솔직하게 말했다.

사실 그는 공략에 의지하는 능지떡락의 사령관이었다.

이제와서 펜을 들어봤자 제대로 할 수 있을 리가 만무했다.

시간을 준다면 모를까...


"달링은 왜 공부하려는 거야?"

"응?"

"사실, 달링이 지휘를 할 필요도, 그럴 이유도 없어."


레오나가 다소 딱딱한 투로 말한다.

필요 없는 곁가지를 쳐내는 지휘관처럼.


"게임에서 달링은 이미 철충에 대한 대응법을 알고 있었지."

"그렇지..."


"게임을 플레이할 때는 공략을 보면 됐겠지.

하지만 여긴 게임이 아니라 현실이야. 당연히 게임과는 달라.

훨씬 자연스럽게 행동할 거고, 그건 우리도, 펙스도 마찬가지야.

즉, 달링이 아는 정보는 대부분 큰 의미가 없다는 거지.

기술 이름 외치면서 빵빵 쏴 대는 게 아니고, 턴제도 아니니까."


"음...."


구구절절 맞는 말이었다.


레오나가 날카로운 눈으로 그를 훑는다.


"우리와 인간은 기본 스펙부터가 달라.

뇌의 용량이 다르고, 사고의 속도가 달라.

전술적인 면에서는 차이가 더 심하게 벌어지지.

우리는 단순한 지휘관이 아니라 각자가 각 부대를 통달한 천재들이니까.

달링이 아무리 노력한들, 우리의 발끝에라도 닿을 수 있을까?"


말이 상당히 독했다.

하지만 사령관은 이해한다.

어설프게 아는 체하는 사람이 가장 위험하다.

아예 입을 다물고 있는다면 모를까.


'하지만 그런 걸 말하는 것 같지는 않아.'


레오나의 말 속에서는 애정과 걱정이 느껴졌다.

그냥 무턱대고 쏘아붙이는 건 아닐 거다.


"확실히, 내가 천재가 아닌 한 따라잡기 힘들 거야.

그리고 내가 천재가 아니라는 건 스스로가 더 잘 알고."


사실. 지금 레오나가 하는 말은 그도 이미 한 번 생각해봤었다.

아무리 날고 기어도 지휘 개체를 따라갈 수는 없다.


조금 더 냉정하게 따져보면,

이 교육 자체가 전력을 낭비하는 무의미한 짓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래도 하고 싶어."

"어째서?"

"하나하나 알아갈수록 너희와 더 가까워지고, 더 이해할 수 있으니까."


레오나가 고개를 갸웃했다.


"이해할 수 있다니?"

"음, 그러니까... "


그는 적절한 예시를 고민한다.


"호드를 예로 들면, 칸의 전술은 무모하기 짝이 없어.

모르는 사람이 보면 자살 특공대 수준의 전술이잖아?"


"그렇지."


레오나는 단번에 동의했다.

그럴 거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칸에 대해, 그리고 호드에 대해 잘 알고 있다면,

그런 무모한 작전도 반드시 해낼 거라는 믿음이 생겨."


"흠....."


"네가 이끄는 발할라 부대도 마찬가지야.

너와 칸의 전술은 완전히 판이해. 방향성부터가 전혀 달라.

호드가 칸을 주축으로 온몸을 불사 지르는 열혈의 전술이라면,

발할라는 전체 균형을 중시하며 감정을 완전히 배제된 전술을 짜잖아?"


한 명의 영웅이 이끄는 저돌적인 부대와,

치밀한 계획과 훈련으로 완성된, 정적인 정예부대의 차이였다.


"호오."


레오나가 흥미를 보였다.


"생각보다는 잘 파악하고 있는데?"

"응. 처음부터 내가 공부하려던 건 그런 흐름이었거든."

"흐름이라."


"레오나의 말대로 인간과 바이오로이드는 달라.

너희에게는 당연한 명령이 나한테는 무모한 도전으로 보일 수도 있어.

하지만 너에 대해 알고 있다면 괜한 의심 없이 바로 널 믿을 수 있으니까.

나로써도, 너희들에게도 더 좋을 것 같았어."


레오나가 훗, 하고 웃었다.


"....처음 당신을 봤을 때, 내 눈에는 당신이 새끼 짐승으로 보였어.

발로 차면 죽을 것처럼 약한, 갓 태어난 새끼로.

그런 당신을 성장 시키려면 모든 방법을 동원해야 한다고 생각했지.

철저한 계획과 엄격한 관리로 엘리트로 거듭나게 해야겠다고 생각했어."


"하하...."


레오나가 그를 빤히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하지만 달링의 대답은 내 예상을 뛰어넘었어. 기대가 되네. 달링의 성장이."

"마음에 들었다니 다행이야."

"달링의 뜻이 그렇다면, 달링이 원하는 대로 해줄게. 내 모든 걸 가르쳐주겠어. 날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도록."

"믿어줘서 고마워."


레오나가 싱긋 웃었다.


"하지만 달링. 말은 거창한데 기본이 안 되어 있어."

"응?"

"스테이크를 썰 때는 그렇게 하는 게 아니야."


그녀가 일어나 다가온다.


"자, 내게 손을 맡겨봐."


레오나가 그를 뒤에서 감싸 안으며 양쪽 손을 잡았다.

가슴이 뒷목 누르는 무게감이 선명한 가운데 그녀가 그의 손을 움직인다.


"조금 더 우아하게. 힘을 줄 필요 없어. 나이프의 무게면 충분해.

부드럽게 앞뒤로 움직이며 서서히 내려가는 거야.

고기의 결을 따라서 약하게 썰어야 고기 조직이 상하지 않아."


"으, 응.... 고마워."

"자, 아."


레오나가 손을 포개어 썰었던 고기 한 조각을, 직접 먹여줬다.

부끄러웠지만...

레오나의 부드러운 분위기에 압도당한 탓에 큰 동요는 없었다.


"어때? 고기의 결이 그대로 살아 있지?"

"응.... 굉장해. 식감이 달라."

"훗. 자, 이제 스스로 해봐."


레오나가 뒤로 물러난다.

사령관은 그녀가 손을 움직여줬던 감각을 떠올리며 그대로 한다.


"맞아. 그거야. 여유를 가지고 천천히.

우아한 식사란, 곧 여유로운 식사를 뜻하지.

단순히 씹고 삼키는 것만이 아니라,

고기를 써는 과정도 하나의 맛이니까."


"명심할게."

"훗."


그녀가 옆에 서서 그를 내려다본다.

어쩐지 그윽한 눈빛으로.


"처음 만났을 때, 난 당신을 차갑게 대했었지."

".....조금 그랬지."

"처음 봤을 때부터 달링이 내 남자가 될 거라고 직감했거든. 그래서 더 거리를 벌렸어. 일부로."


레오나의 웨딩 서약 대사였다.


-처음 봤을 때부터 사령관이 내 남자가 될 거라 직감했다면 믿을 수 있어?

-그래서 더 차갑게 대했다고 하면... 이해할 수 있겠어?


"하지만 지금은 다르게 생각해."


그녀가 몸을 앞으로 숙이며 키스할 것처럼 얼굴을 가까이한다.


"어쩌면 난. 무의식 중에 눈치 챘던 걸지도 몰라."

"뭐를?"

"그 사령관이 가짜고, 너만이 진짜 나의 사랑이라는 걸."


그녀가 가볍게 입술을 맞춘다.


"달링과의 첫 키스는, 연한 스테이크 맛이네."

"하하...."

"나쁘지 않아. 이런 것도."


그녀가 전에 없이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주었다.


"달링은 정말 멋진 남자야. 당신을 만나게 돼서 정말 기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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