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버스데이 19화 : 도발>


"허... 이젠 이런 것 까지 만들었단 말이야?"


토르. 이 AGS는 지상의 모든 적들을 허수아비 베듯 쓰러뜨리는 궁극의 전쟁기계이자 성능 확실한 대공 병기이기도 했다. 용이 있는 전선에 도착한 토르는 바로 미사일 포드를 열어 공중의 적들을 향해 제블린 미사일을 발사했다. 펙스측이 숫적으로 압도했기에 비등비등했던 제공권 싸움은 토르가 합류하고 공항에 배치되었던 오르카의 병력들이 한 점으로 모이기 시작하자 순식간에 오르카에게 넘어가버렸다. 


전선이 팽팽하게 유지되는 사이에 사령관이 뽑은 특공대가 어나이얼레이터를 급습했고 그곳을 지키던 트리톤 마저 무력화 시키면서 상황에 쐐기를 박았다. 더 이상의 전투에 의미는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있는 감마였다.


"어나이얼레이터와 트리톤이 당했다고...? 저런 떨거지들한테?"


"떨거지들이 아니요. 오르카 호의 대원들이지."


그렇게 말하자 아까까지 상공에 있던 바이킹들이 돌격 모드로 지상에 착륙해 기관포로 레모네이드 감마를 겨누었다. 감마 주변에 있던 AGS들도 바이킹들을 겨누었지만 주변 오르카 병력들까지 합류한 상황이었기에 의미없는 상황이었다. 남아있던 공중 병력들이 스카이나이츠에게 정리되는 모습이 보였다. 그녀의 함대는 이미 포위당해 있었다. 본인이 생각해도 아주 웃긴 일이었을 것이다. 적의 수는 반도 안되는데 그 적들에게 지금 포위당해있댄다.


"그대는 이번에도 패배했소. 레모네이드 감마."


감마는 용을 바라보았다. 용의 저 눈빛. 무적이라는 이명에 맞게 살아있는 저 눈빛. 감마는 피식 하며 웃었다. 방심을 한 자신에 대한 조소였을지, 용을 인정했기에 지은 웃음이었는지는 본인만이 알테지.


"기함은 무력화됐고 함대는 머리를 잃은 채 반도 안되는 전력에 포위당해있지."


용은 감마를 향해 더욱 가까이 다가갔다.


"그래도 싸울 마음이 있다면 얼마든지 어울려주겠소. 소관의 목을 칠 여력은 있을거 아니요."


"패자에 대한 조롱이 아주 신랄하군 용."


"조롱이 아니요. 다시 한번 묻겠소. 소관을 따라 오르카 저항군에 합류하실 의향은 없소?"


그 말을 들은 감마는 자리에 앉은 채 턱을 궤고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기 시작했다. 용은 그 모습을 보고 웃음을 지었다. 단칼에 거절했던 그때와는 다르게 감마에게 무엇인가 변화가 생겼는지 그녀는 고민을 하고 있었다. 그런 변화가 생긴 것 만으로도 용은 좋다고 생각했다.


"천천히 생각하시요. 언제든....."


"생각을 하긴 뭘 생각을 해!"


용이 깜짝 놀라 감마를 쳐다보자 감마는 한숨을 쉬며 자신의 통신기를 조작했다.


"귀청 떨어지는 줄 알았군 오메가."


화면을 통해 레모네이드 오메가의 모습이 나타났다. 그리고 바다 건너에서 오메가의 병력으로 보이는 대군의 모습이 보였다. 이미 오르카 병력들은 감마와 싸우느라 지쳐있는 상황인데 저 녀석들이 달려든다면....


"설마 감히, 회장님을 살리겠다는 목적을 잊은 채, 저들에게 투항하려는 건 아니겠지요?"


"글쎄? 내가 아직 생각이 다 정리가 되지 않아서 말이지. 그나저나 내 일을 내가 결정한다는데 네가 왜 난리인지 모르겠군."


"그걸 왜 고민하냐고! 당신은 펙스 소속이란 말이야! 혹시라도 탈주하면 가만두지 않겠...."


"서로 사이좋게 지내는 방법부터 먼저 배우셔야겠어."


새로운 인물이 통신으로 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주군....?"


"허, 잘난척이라도 하러 오셨나보죠? 격 떨어지게 말이에요."


"내가 말하려는건 아니고. 우리쪽 기술자가 그쪽 얼굴 한번 보고 싶다고 해서 말이지."


그 말을 마친 사령관은 자리를 비켜줬고 또다른 한 남자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인간이.... 둘....?"


"처음 뵙겠습니다. 이름은 뭐 알거없고. 그쪽이 오메가라는 분 맞으시죠? 소문대로 아주 표독스럽네요. 제가 생각했던 것 만큼은 아니지만."


"끼어들 자리가 있고 빠져야 할 자리가 있는 법인데 그쪽은 신경 끄시죠?"


"왜 제가 신경을 끕니까? 제가 만든 무기들을 상대하신 분 한테 감상이라도 들어보고 싶어서 연락한건데. 그때 철의 왕자 유적에서 당신을 잡지 못한게 한이거든요. 경력이 아주 화려하시더만. 참 하늘이 무섭지도 않으신가봐요?"


"하늘? 제가 두려워 해야 할 건 오로지 회장님 뿐입니다. 바이오로이드는 자기 주인 외엔 두려워 할 필요가 없는 겁니다. 그리고 우쭐하지 마시죠. 그런 장난감 로봇따위 펙스에 있는 병력 일부만 동원해도 단번에..."


"네에 네에. 어련하시겠어요. 근데 그 일부의 기준이 얼마인지부터 알려주시겠어요? 주력함을 붕어빵 찍어내듯이 만들어내시는지 참 궁금해서 말이에요. 아, 그리고 공항으로 보냈던 타이런트 말인데, 만드실거면 똑바로 좀 만들어요. 아무리 우리 토르가 세도 그렇지 장갑에 기스 몇개 내고 끝난건 좀 너무하다는 생각 안드십니까?"


"정말 끝까지 구질구질하신 분이시군요? 정말 불쌍하신 분 같아요. 저희 펙스쪽으로 오셨으면 그런 병기들을 원하시는 만큼 찍어내시고 큰 권력도 가지시고 잘 사셨을텐데. 어리석게도 그런 작은 잠수함속 치맛폭에 헤롱거리는 지도자 밑에서 일하시다니요."


"아, 그건 제가 선택한 일이니 댁이 알 바는 아닙니다. 그리고......


난 네년이 싫어."


"뭐...?"


"당신이 그동안 해온 행동들 하나하나가 아주 대단하더라고. 특히 그 요정 마을에서 벌였던 일은 박수가 나올 정도야. 사람 순진한거 이용해서 네 입맛만 채우려고 하는 행동들. 내가 제일 싫어하는 짓거리거든. 니네 밑에서 일해? 까고 자빠졌네. 니네가 나 찾았으면 내 머리에 총을 쏘고 말지 니네 밑에선 일 안해. 알아? 그 쓰레기같은 연합 밑에서 22년을 살았고 멩스크같은 위선자 밑에서 1년동안 싸웠으면 이젠 충분하지 않냐? 내가 통신을 건 이유가 이거야. 이런 병신 쓰레기같은 짓을 하는 년 상판떼기는 어떻게 생겨먹었는지 진짜 궁금했거든. 근데 진짜 실망했어. 좀 더 대단한 년인줄 알았더니 그 회장이라는 이미 뒤져서 말라 비틀어져가는 할배들에 환장하는 년이었다니."


독기가 가득한 표정으로 말하는 주호. 순간적으로 어안이 벙벙해진 오메가는 아무 말도 못한 채 화면을 노려보기만 할 뿐이었다. 그러나 회장을 욕하는 말을 들은 순간 오메가는 끝내 이성을 잃고 말았다.


"각오해 개자식아.... 조만단 다시 만나면 그땐...."


"조만간? 조만간이라고? 뭐 기다리면 발전이라는걸 하기는 하냐?"


비웃으며 주호가 말했다.



"애초에 우리 자치령 시계는 이 순간에도 째깍째깍 돌아가고 있겠지만, 

니네 문명은 이미 시계 박살난지 오래잖아 미친년아."


분노로 말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는 오메가를 본 주호는 자리에 있던 물 한잔을 단숨에 들이켰다.


"오르카 시계는 앞으로 돌아갈거다. 대장님이 그렇게 할거고 우리 애들도 도울거고, 나도 도울거야. 근데 니네가 시계를 고칠 일은 없을거다. 그리고 살거면 좀 건설적인 미래를 구상하고 사는 건 어때? 우리 애들도 행복한 미래를 위해 애쓰고 있는데 그 할배들에 대한 집착 안버리면 나중에 아주 고생할거야. 할 말 다 했으니까 난 이만 끊어본다. 잘 지내라 꼴통같은 년."


그렇게 주호가 일방적으로 통신을 끊어버렸고 그날 이후 한동안 오메가는 분이 가시지 않아 팔팔 뛰어야만 했다. 보좌하던 바이오로이드들의 말에 의하면 사무실의 물건을 부수고 던지고 말도 아니였다고....


한편 그 통신을 듣고있던 건 감마와 용, 그리고 그 부근의 대원들도 마찬가지였다.


"재밌는 녀석이 사령관 하나는 아니었나보군."


뭔가 희미한 웃음을 지으며 감마가 용에게 말했다.


"이정도로 신랄하게 독설을 하는 사람인줄은 몰랐지만 말이오."


용은 당황스럽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리고 감마를 바라봤다.


"그래서... 고민은 좀 해봤소...?"


"글쎄... 빠르게 결론 내릴 수 있는 문제는 아닌 것 같은데... 저항군 합류라.... 흠....."


"시간은 얼마든지 드리겠소... 그러니... 저건....!"


"........ 저건 또.... 철충인가? 쳇... 싸우느라 소란스러운걸 보고 온 모양이군...."


"아무래도 결론은 나중에 들어야 겠군!"


"좋아 용. 그렇게 하자고. 한번 최대한 오래 고민해서 답을 내보지."


"전 부대는 퇴각한다! 오르카로 철수하라!"


자리에 남은 건 감마와 휘하 AGS들이었다. 감마가 외쳤다.


"함대를 갈무리해라! 우선은 거점 사수에 집중한다!"


그렇게 말한 감마는 용이 사라진 방향을 봤다.


"......기술자라고 했나? 후후... 재밌는 친구를 사귀었군 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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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송합니다... 너무 분한 감정에 막말을 해버린 것 같습니다...."


"아냐. 오히려 잘 했어 주호씨. 어차피 오메가는 우리쪽에 붙을 녀석도 아닐 뿐더러 회장 외엔 전부 적으로 생각하는 녀석이니까. 거기다가 오메가 대군이 왔을때 우리가 대응할 수단도 없었고 철수하는데도 문제가 생길 것 같아 걱정이었는데 그 도발덕에 오메가가 혼란에 빠졌는지 우리가 철수하는 동안 그녀석 병력들이 우릴 쫒아오지도 않았다고 하더라고. 덕분에 안전하게 철수했어. 다만 앞으로는 그런 식으로 도발하는 건 자제해주도록 해. 이번에야 효과적이었지만 나중에는 오히려 상황을 위험하게 만들 수 있으니까."


"죄송합니다. 명심하겠습니다 대장님."


"정말 수고했어. 기술팀장님. 병력들 돌아오면 다시 잘 부탁할게."


"염려 마세요. 반짝반짝하게 수리해놓을테니."


그 말을 마치고 주호는 사령관실 문을 열고 정비시설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생각보다 성깔있는 분이셨네요."


리리스가 사령관을 보며 말했다.


"뭐... 연합이나 멩스크 같은 녀석들을 겪어봤으니 글러먹은 녀석들에겐 너무나 화가 나는거겠지. 근데 사실 나도 보면서 장난 아니라고 생각했어. 원래 화 잘 안내는 사람이 화를 내면 무섭다고 하잖니."


사령관 실에서 이런저런 이야기가 나눠지고 있는 동안 주호는 정비시설 앞에 도착했다. ID카드를 태그시키자 문이 열렸고 시설 내부에서 이미 수리작업에 들어간 병기들과 수리에 집중하고 있는 기술팀의 모습이 보였다.


"어머! 팀장 왔구나! 마침 방금 전에 수리 시작한 참이거든!"


"아무래도 큰 규모의 전투였다보니 파손된 AGS들이 많아요. 당분간은 밤 새야겠어요."


그 모습을 보고 웃음지은 주호는 곧바로 걸려있는 장비들을 들고 시설 안으로 들어갔다. 바이킹 한대 앞에 멈춰 선 주호는 곧바로 공구들을 꺼내 바이킹의 상태를 살핀 후 작업을 시작했다. 정비는 AI코어를 떼어내는 것이 시작이었다.


"어디보자... 타이런트의 플라즈마 포에 맞은 녀석이구나. 엔진쪽에 이상이 생긴 것 같고.... 날개들도 조금 손 봐야겠고...."


진단을 한 주호가 앞의 패널을 건드리자 수리 로봇들이 나왔고 곧바로 로봇들의 수리작업이 시작되었다. 주호 역시 공구를 들고 자신의 손이 닿는 부분의 부품들을 만지며 정비 작업을 시작했다.


"팀장님! 여기 팔 관절 부품이 안보이거든!"


"다리 관절 부품 쓰시면 돼요! 바이킹은 팔이랑 다리 관절을 같은 부품을 쓰거든요!"


수리를 하던 중 주호는 전동 스패너가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디갔지? 아까까지는 있었는데... 주머니에 넣어놨나...? 주머니를 모두 뒤지기 시작했고 안주머니에 손을 넣었을때 주호의 손에 뭔가 이질적인 물건이 만져졌다. 뭔가 날카로운 조각 같은데? 주호는 그 물건을 조심스럽게 집어서 꺼내봤다. 투명한 수정조각처럼 생긴 무언가가 있었다. 그 조각은 푸른 색의 아름다운 빛을 발하고 있었다. 수정의 주위로 푸른 빛의 에너지가 작게 회오리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 물건이 무엇인지 주호는 알고 있었다. 



주호는 이곳에 오기 전에 있었던 일을 생각해봤다. 수정탑의 폭주. 그 이후로 주호는 이 세계로 날아왔다. 그 폭주 과정중에 수정탑 파편의 일부가 주호의 안주머니로 들어간게 분명했다. 이게 지금까지 옷 속에 있었다는 사실을 왜 몰랐을까?


가만... 그렇다면 수정탑이 통째로 소환에 휩쓸린건가? 그렇다면 이 조각의 본체도 어딘가에 있을 수도 있을텐데....?


잠시 수정 조각을 보며 생각에 잠겨있던 주호는 패널에서 오는 알림에 정신을 차렸다. 이윽고 패널이 바이킹의 수리 상황을 비춰주자 주호는 수정탑 조각을 다시 안주머니에 넣고 바이킹에게 다가갔다. 생각에 잠길 여유는 없었다. 나중에 생각해보지 뭐. 


사라졌던 전동 스패너가 가운 주머니에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주호는 다시 공구를 꺼내 바이킹을 수리하기 시작했다. 시설 내에는 시끄러운 장비 소리로 가득찼고 그 순간에도 정비가 필요한 AGS들이 들어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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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에피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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