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군 여군병사에 의한 조선인 남자사냥도 있었다.

 

이 말을 해준 사람은 현재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사는 장건섭(張健燮)씨. 장씨는 1924년 생으로 8.15 해방을 평양에서 맞았다. 당시 그의 나이 21세였다. 

 

장씨는 이 일화를 '자신의 친구가 겪은 일'이라고 했다.

 

어느날 평양 거리에서 갑자기 소련군 지프차가 섰다. 한 여군 병사가 내리더니 남자에게 권총을 겨누며 "타라"고 했다. 그가 차에 오르자, 안에 있던 다른 여군이 헝겊으로 눈을 가렸다. 지프차는 여기 저기를 빙빙 돌다가 한 건물에 닿았다. 그 곳은 소련군 병영이었다.






 

눈 가리개를 풀고 끌려간 방에서 5명의 여군병사가 차례 차례로 덤벼들어서 욕정을 채웠다. 덩치 큰 풍만한 육체의 젊은 여군들은 쉴새없이 장 씨를 차례로 덮쳤고, 거친 숨소리로 '하라쇼, 하라쇼(Хорошо: 러시아어로 좋다는 뜻.)' 하며 헐떡였다. 그는 그렇게 사흘이나 감금 당했다. 청년의 두 눈은 쑥 들어가고 일어서지도 못하게 되었을때 겨우 석방되었다. 돌아갈 때는 또 눈 가리개를 한 뒤 시내의 한 모퉁이에 내려주었다.




 

나는 장씨에게 물었다.



 

"친구 분이 해준 이야기이라고 하셨는데, 그런 것 치곤 묘사가 굉장히 리얼합니다. 혹시 선생님이 겪으셨던 거 아닌가요?'

 

그러자 장씨는 겸연쩍하게 웃기만 하고 대답하지 않았다.

 

출처: 하기와라 료(萩原遼) 지음/최태순 옮김, 『한국전쟁 : 김일성과 스탈린의 음모』(서울, 한국논단, 1995), 53~54





그 당시 나는 어리고 순진한 11세 소년이었지만 어른들이 수군대는 얘기를 훔쳐 들으면서 조기 性교육을 체험하기도 했다. 심양의 우리 집 바로 옆 높은 담에 둘러싸인 건물은 일본군의 군수품 창고였는데, 해방 후 소련 女軍 막사로 쓰이고 있었다. 이 소련 여군들은 마을 청년들을 이곳으로 납치해 輪姦(윤간)을 벌였다.

거기 끌려갔다 나온 청년들의 경험담인즉, 호화판 음식에 매일 밤 무슨 주사를 놓은 뒤 윤간을 벌이고 풀려 나오면 일주일이나 열흘 정도 있다가 그만 목숨을 잃는 사람도 있다는 것이었다. 이런 일들을 어린 나이에 수없이 들었다. 어린 나이에 받은 性교육치고는 야만적인 성교육이었던 셈이다.

그때 이런 말도 가끔 들렸다. 어떤 바람둥이는 죽을 때 죽더라도 실컷 재미 좀 봤으면 좋겠다고 해 자진해서 그 일을 당했다는 것이다. 풀려 나오면 영락없이 황천길로 직행했다고 한다. 


출저: 정경균 서울대 명예교수/가슴에 새겨둔 80년간의 일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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