떨어진 왕관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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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과 공화국의 국경, 그 어딘가에 있는 산 중턱.

겨울의 매서운 바람이 불어오며 레드후드의 망토를 펄럭이게 했다.


"산을 넘어 진군인가... 스틸라인다운 공격은 아니군."


여전히 혼란스러운 제국이었으나, 기본적인 체계는 수습한 마리에 의해 내려진 공격 명령.

경비가 삼엄한 국경선을 돌파하는 대신, 비교적 병력 밀집도가 낮은 산쪽 경로로 우회하여 기습. 그런 작전이었다.


"하긴, 전쟁에 스틸라인다움은 필요 없지. 군인이라면, 명령에 복종할 뿐."


그러면서도 레드후드의 머릿속은 복잡하고 빠르게 돌아가고 있었다.


'이 정도의 병력이라면 전면전을 치르라는 건 아니다. 그러기엔 아직 내부 상황이 불안정해.'


'하지만 적은 병력도 아니야. 인원 자체는 상당히 많은 편이다.'


'이런 대규모 병력이 이동한다면 우회기동을 하더라도 공화국에 포착될수밖에 없다.'


'여기서 매복이라도 만나는 순간 군이 전멸할 수도 있다. 위험을 감수할만한 가치가 있는 작전인가?'


'작전의 목표는 공격을 가하는 것이 전부? 그런 작전이 있을리가 없다.'


'병력의 구성은 13사단과 14사단... 후방의 예비 병력.'


'이런 병력으로 지역을 점령하기는 힘들다. 그렇다면 이번 작전은 양동일 가능성이 높아.'


'아무래도 내부에서 정보가 새고 있는 모양이군... 나한테까지 알려주지 않는 걸 보니.'


'대장님께선 내가 이 정도는 생각해낼 수 있을 것이라 믿고 계셨나? 감사하긴 하지만, 생각해내지 못했다면 어떻게 하실 생각이셨던 거지?'


'어쨌든 양동이라고 한다면, 급하게 진군할 이유가 없다. 매복에 대비하면서 천천히 진군해도 충분해.'


레드후드는 빨간 깃발을 높이 들어올리며 소리쳤다.


"전군 정지! 지금부터는 정찰조를 두 배로 늘리고 천천히 진군하겠다. 모두 매복에 대비해라!"


...


"대장님, 적이 진군 속도를 늦췄다고 합니다. 산을 샅샅이 정찰하며 오고 있다는 보고입니다."


"이런, 기습을 하려던 게 아니었나? 하지만 오히려 잘 됐어."


"어차피 산 내부의 매복은 미끼야. 진짜는 산을 내려오고 나서지."


"방심을 유도하기 위해서 산에서 습격을 한 다음 적당히 패주하라고 일러뒀는데... 그럴 필요가 없게 됐네."


"이대로라면 내부의 매복병들은 전멸당할 것입니다. 병력에 퇴각 명령을 내려주십시오."


"아니, 퇴각은 없다. 그대로 전투에 임하라고 해."


"예?"


"말했잖아? 미끼라고. 사냥감이 미끼를 물지 않으면 무슨 수로 사냥할거지?"


"산을 수색해서 매복병들을 완전히 제거한다면, 더 이상 매복이 없다고 생각하고 경계를 풀고 나올거야."


"산보다 매복하기 좋은 위치가 산 아래에는 많지 않고, 무엇보다도 이미 매복이 산에 있다는 것을 봤으니 말이야."


"하지만! 그렇다면 매복한 병력들은 개죽음을 당하는 것 아닙니까!"


"적의 지휘관이 마리는 아니지만, 레드후드 역시 오르카 시절부터 마리를 따라 종군해온 베테랑이라는 걸 잊지마."


"이 정도쯤 하지 않는다면 속지 않아..."


"게다가 개죽음이라니? 매복병들의 희생으로 우리는 제국의 2개 사단을 전멸시키고 적의 고위 지휘관 중 한 명까지 사로잡을 수 있어."


"공화국의 승리를 위한, 고귀한 희생이지."


"......"


오르카 시절 레오나는 이명을 거의 떼어놓고 살았다.

사령관은 그녀를 그저 레오나라고 부를 뿐이었으니.


그리고 지금, 부관은 느끼고 있었다.

'레오나'는 사령관과 함께 죽었다는 것을.

'철혈의 레오나'가 돌아왔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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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화입니다.

사령관은 어쩌면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수많은 바이오로이드들이 인간성을 잃지 않게 해주었던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 무엇보다도 오르카에서 함께하던 바이오로이드들을 아꼈던 그의 심성이 영향을 주었던 걸지도요.

다음화는 내일 연재될 예정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