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번 아일랜드를 재탈환한 오르카 호 반군 세력은 이제 그 섬의 용도에 대해서 결정을 내려야 했다.


주변에 뭉쳐 있는 여러 작은 섬들, 오염 범위에서 벗어나 있는 수 많은 자원들을 품은 27번 아일랜드는 철충마저도 탐낼 최적의 인프라를 갖추고 있었다.


"이 27번 아일랜드는 62명의 더치걸들과 그들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잃은 이들의 무덤과도 같다, 그러니 이 섬의 용도에 대해서 신중히 생각하고 발언하도록."


아더의 말에 따라 지휘관들은  섬의 용도에 대해 신중히 생각해보기 시작했고, 입을 제일 먼저 연 지휘관은 마리였다.


"27번 아일랜드를 군사 기지로 만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그 곳의 자원을 이용한다면 철충도 펙스도 넘볼 수 없는 고강도의 군사 기지를 건설할 수 있을 겁니다. 공중 병력에 관해서라면 대공포를 추가로 배치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죽은 이들의 피 위에서 저희가 굳건하게 버틴다는 상징적 의미 또한 부여된다고 생각합니다.


"군사 기지라면 나쁘지 않은 생각이다. 나 역시 마리 대장과 같은 의견이다, 사령관."



마리와 아스널은  27번 아일랜드를 그 누구도 넘볼 수 없는 군사 기지로 만드는 것을 적극 주장하였다.



"그런데 그 많은 자원들을 다 군사 기지에 쏟아붇는 건 좀 그렇지 않아? 차라리 AGS 생산기지를 만드는게 어때? 특히 공중 병력 위주로."


"나쁘지는 않네. '피해'가 극심한 우릴 보조해줄 AGS들이 꽤 많이 필요할테니까."


AGS 생산기지를 만드는 것을 적극적으로 주장하는 메이와 슬레이프니르는 여전히 독기가 잔뜩 서려 있었다.


이번 전투로 인해 막대한 피해를 고스란히 입은 그들은 여전히 3년치 AGS 병력 예산안의 대다수를 투입하여 세력을 복구하는 중이었고, 알바트로스의 처벌에 대한 아더의 결정에 여전히 불만을 품고 있었다.


"아직도 내 결정에 불만이 많은가?"


"없다고 한다면 그건 순 새빨간 거짓말이겠지."


"...좋아, 다른 의견 없나?"


여전히 독기가 잔뜩 올라있는 슬레이프니르의 말에 아더는 조심스레 다른 지휘관들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AGS 공장이나 군사 기지는 다른 섬에서 건설해도 되잖아. 안 그래? 그건 너무 비효율적이야."


"좋은 방법이라도?"


"나라면 요안나 아일랜드 건설을 추진하겠어. 정화 구역을 충분히 개척해서 농경 지역으로 활용하는 동시에 주변 소형 섬들까지 개척한다는 전제 하에서라면 유래 없는 엄청난 인프라의 이득을 얻을 수 있을거야."


"...안드바리가 엄청나게 좋아하겠어."


 "이번 만큼은 레오나와 같은 의견이다, 사령관. 죽은 이들을 기리는 동시에 섬을 의미있게 사용하는 것만큼 중요한 건 없으니까."


"...."


"무슨 문제 있나?"


"아니, 아무것도."


레오나와 칸 사이에서 어색한 기류가 흐르자 아더는 가벼운 헛기침과 함께 데이터 패드를 꺼내들었다.


"아, 그리고...오베로니아 레아가 건의할게 하나 있다고 하던데. 레아? 들리나?"


아더의 말이 끝나기도 무섭게, 화면에 안전모를 쓴 레아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아, 잘 들리시나요?"


"그래, 잘 들린다. 현재 상황은 어떻지?"


"현재 오염 지역들을 정화하는 동시에 광산 입구를 정돈하는 중이에요. 세월이 너무 많이 지나서 낙후가 되어 있더군요."


레아의 말대로 광산 초입구는 바위로 매몰된 채로 막혀 있었고, 그 주변이 이끼와 잡초들로 잔뜩 뒤덮여 있었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AGS 생산기지나, 군사 기지, 요안나 아일랜드를 만드는 것도 좋지만,  더치걸들의 무덤을 이렇게 내버려 둔다는 것은 그들에게 있어 너무 무례한 행동이라고 생각해요."



"....그래, 그렇겠지."


레아의 말에 아더와 지휘관들은 그저 그녀의 말에 동의할 수 밖에 없었다. 


"무덤이라면 어느 정도의 규모를 예상하고 있지?"


"규모라면 62명의 번호와 재탈환 작전 당시 전사한 이들의 번호를 새긴 기념비를 세우는 것과 광산 입구를 재단장하는 걸로 견적을 잡고 있어요.


이제 사령관님의 명령에 따라 재단장을 시작할게요."


"그렇단 말이지...."


아더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결심했다는 듯이, 고개를 들고는 지휘관들과 화면에 보이는 레아를 차례로 바라보았다.


"27번 아일랜드를 요안나 아일랜드로 개척하는 동시에 전사자들을 위한 기념관을 창설하는 계획으로 추진하겠다. 다들 어떻게 생각하지?"


"........"


슬레이프니르와 메이는 이번에도 둘의 의견이 묵살당한 것에 표정이 다시 굳어가기 시작했지만 그렇다고 아더의 눈 앞에서 대놓고 드러낼 수는 없었다.


"대형 요안나 아일랜드 개척과 전사자 기념관 창설이라...괜찮기는 하지만, 지금 피해 복구에 전념하고 상황 속에서 과연 이 둘을 동시에 수행할 여유가 있을 지 모르겠습니다."


"일단 해보면 알겠지. 난 찬성하겠다."


마리는 반쯤 우려의 의사를 보였으나, 아스널의 대답에 반쯤 동의하는 듯 했다.


"내 의견을 들어줘서 고마워, 달링. 절대 후회하지 않을거야."


"내 의견도 같다고 말하지 않았나? "


".....그래, 칸도 포함해서."


"기억해줘서 고맙군."


이상하게도 레오나와 칸 사이에서 어색한 분위기가 맴돌았지만 아더는 그저 기분 탓으로 넘겨짚었다.


"좋아, 그럼 이번 회의는 여기까지. 난 잠깐...수복실에 좀 다녀오겠다."


수복실에서 문제가 생겼다는 알림이 태블릿에 뜨자 아더의 표정은 점차 굳어갔고, 지휘관들보다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 수복실을 향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브라우니, 어떻게 된 일이지?"


"수복실에 배치된 페어리 의무부장인 리제와 부상자들 사이에서 충돌이 있었습니다."


"....치료 우선권을 두고 충돌이 생긴건가?"


"반 쯤은 그렇습니다. 게다가...부상병들이 계속해서 밀려들어오는 지라 의무병들의 정신 상태 또한 그리 좋지 않습니다. 

그 와중에...서로 고성이 오가더니 충돌이 생겼습니다."


아더는 그저 이를 앙다물 수 밖에 없었다. 선택으로 인한 결과가 마치 나비효과처럼 한번에 밀려옴으로 인해 불미스러운 사태까지 일어났기에 오르카 호의 사령관으로써 아더는 이를 수습하고 대처해야만 했다.


"레프리콘과 노움은?"


"일단 의무실에서 의무부장을 제압하고 창고에 구금시켜 놓았다고 합니다. 자세한 사항은 가서 설명해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