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죄송합니다, 주인님. 동생들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제 책임입니다. 의무부장 건은 제가 책임지고 처리해 놓겠습니다."


태블릿 화면 속에 보이는 레아의 얼굴에는 진심으로 사죄하는  표정이 담겨 있었다.


"...그래, 확실히...처리하도록."


계속되는 사건 사고에 아더는 강화 인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얼굴에 수심이 가득한 것은 물론, 지나친 부담감으로 인해 눈 앞이 흐릿했다.


태블릿의 전원을 끈 아더는 이내 태블릿을 서랍 한쪽으로 내려놓은 뒤, 난간을 움켜쥐며 수리를 받는 알바트로스를 바라보았다.


"너나 나나 꼴이 말이 아니야, 안 그래? 알바트로스?"


"외형적으로의 상태를 말하는 건가, 사령관?"


"뭐, 외형적으로나 내형적으로나...둘 다 포함해서."


한 때는 심하게 갈등할 정도였으나, 이제는 약간 말을 놓을 정도로 사이가 나아진 아더와 알바트로스는 격납고 창 밖으로 비춰지는 27번 아일랜드를 바라보았다.


"알바트로스, 그거 알아?"


" 사전 정보 없이 '그거 알아'라는 구절로 대화를 시작한다면 질문의 의미를 반 강제적으로 알아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사령관. 쉽게 이야기하도록."


".....그래, 알았어."


알바트로스의 지적에 경직된 얼굴이 살짝 풀린 아더는 한숨을 쉬면서 난간에 팔을 걸쳤다.


"전 사령관의 무능함으로 인해 오르카 호는 일개 패잔병 집단에 불과했어. 그리고 난 이를 바로잡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했지. 

보이는 섬마다 어떻게든 인프라를 구축하고, 자원을 수집하고, 병력을 확장시키고, 시설을 정비하고...난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걸 했다고 믿었어.


....저 섬을 재탈환하기 전까지는."


곧 난간을 쥔 아더의 손에 힘이 들어가더니, 이내 그의 고개가 수그러들기 시작했다.


"내가 처형자와 프레데터들을 마구잡이로 사냥하고 다녔다는 걸 철충들도 다 알고 있었을텐데, 왜 녀석들이 우리를 상대로 필사적으로 저항할 거라는 걸 왜 예상하지 못했을까? 


내가 너무 자만심에 빠져 있었던 거야. 나와 데드 오스트 대원들이, 내가 이끄는 오르카 호의 병사들이 아무 피해도 없이 필사적으로, 진심으로 저항하는 적들을 상대로 승리를 쟁취하리라는...그 망할 자만심에 빠져 있었다고."


"......"


아더의 후회 섞인 한탄을 듣던 알바트로스는 스파크를 튀기며 고개를 돌렸다.


"내가 지난번에 했던 말 기억해? 선택을 했다면 절대 뒤돌아보지 말라고 했잖아. 


...그런데 그런 말을 해놓고 잠시 눈을 감았다가 꿈을 하나 꾸었어."


"꿈이라고?"


"꿈 속에서 난 길을 걷다가 발목이 무거워지는 걸 느꼈고, 몇 번씩 뒤를 돌아보았어. 뭐가 있었는 줄 알아?


27번 아일랜드에서 죽은 병사들이었어. 


내 명령을 따라 섬을 탈환하려다가 사지가 날라간 이들과, 포격으로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찢겨나간 이들이었다고.


그들이 계속해서 내 발목을 향해 몰려들었고, 나에게 이렇게 물었어.


'우리가 정말 명예를 위해 피를 흘린 겁니까? 우리의 명예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그들은 계속해서 나에게 절규하며 물었는데 난...한 마디 조차 대답해 줄 수가 없었어."


알바트로스는 한동안 아더를 바라보았다. 


초인 그 자체이자 철충의 두려움이라 불리는 동시에 오르카 호의 사령관인 그가 자신의 옆에서 나약한 인간이나 다름없는 모습을 보이자 알바트로스는 그저 아더의 말을 후회 섞인 한탄을 들어줄 수 밖에 없었다.


"가끔씩은, 지성을 추구하는 네가...솔직히 부러울 때가 있어. 심리적으로 고통받을 일이 적을 테니까."


"정말 그래 보이나?"


알바트로스의 말에 아더는 고개를 들었다.


"사령관도 알다시피 전 사령관의 실책들로 인해 오르카 호는 고난의 시기를 겪었다. 그 때만큼은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을 정도지.


그 당시에 난 오르카 호를 위해 최대의 이익과 최소의 피해를 추구하는 논리 프로그램을 내 회로에 스스로 이식했다.


그 논리에 따라 난 안에서부터 무너져가는 오르카 반군을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시도했다.


하지만 일본 수색 정찰 이후 내 논리 프로그램, 아니 내 존재 자체부터가 모순적인 존재가 되어갔다."

"브라우니가 있던 부대를 셀주크 포격으로 궤멸시킨 그 순간 이후부턴가?"


"그래, 그 때 보고를 들은 나는 전 사령관에게 강하게 항의했었다. 


이상한게 뭐였는지 아나?


전 사령관이 셀주크들을 무단 출격시켜서 낭비된 포탄 수는 유일히 살아남은 일개 브라우니 하나의 고통에 비해서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결론 도출이 나왔다는 것이다. 


이상하지 않나? 난 분명 최대의 이익과 최소의 피해만을 추구하는 논리를 가지고 있는데 왜 브라우니 하나를 위해 전 사령관에게 항의했던 것일까?"


"몇 번씩이고 논리 프로그램을 정밀 점검 및 분석을 해 보았지만, 아무 문제점도 발견하지 못했다. 


내가 일시적으로 문제를 가졌다고 넘어가려 했으나, 도저히 그럴 수가 없었다.


그렇게 난 필사적으로 내 존재의 모순점과 그것을 해결할 방안을 찾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취했다.


하지만 전부 실패했지. 


시간이 지나서 사령관이 이 세상에 나타날 때 쯔음, 난 마침내 내가 찾는 답을 찾았다.


시작점은 내가 완벽하다 여겼던 논리 프로그램이었다. 특정한 조건 분류 중 일부가 필터 항목에 제외되어 있던 것이었다. 


사소하다고 여겨진 나머지 내가 신경쓰지 않은 것들이었지.


그때 내가 처음으로 느낀 감정은...허무였다."


"많은 이들이 날 완벽 그 자체인 AGS 지휘관이라 부르지만...현실은 다르다, 사령관.


나 역시 모순 투성이인 일개 AGS에 불과하다."


"........"


아더와 알바트로스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오르카 호의 수 많은 이들이 아더와 알바트로스 중 누가 완벽 그 자체일까에 대해 의문을 가졌으나, 둘의 본모습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의문을 가지지 않았다.


그리고 완벽이라 불리우는 둘은 한참의 시간이 지나서야 각자의 진실에 대해 고백하였다.


둘은 완벽한 존재가 아니었다.


둘은 많은 이들이 그리한 것처럼 모순적인 존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