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전편 모음 https://arca.live/b/lastorigin/52141864 






-지금까지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갑자기 걸려 온 전화를 받으니 걱정 섞인 닥터의 호통 소리가 들려왔다.


"말하자면 좀 긴데"


-일단 빨리 설명부터 해봐-


나는 하나하나 있었던 일을 설명했다.


접속하고 난 뒤 있었던 몸의 이상, 문제를 해결해 준 누군가, 그리고 이 서버 안에 나와 비슷한 형태로 살아있는 상태의 사람


일의 전말을 들은 닥터는 잠시 침묵하더니 침을 삼키고 이야기했다.


-첫째로... 미안해 아저씨, 나 때문에 큰일 날 뻔했잖아-


"그건 나름대로 해결되었으니까, 상관없어"


-후... 진짜 사람이 너무 좋다니까, 죽을 뻔 한걸지도 모르는데 그렇게 넘어가도 되는 거야?-


"몰랐던 일이고, 이미 벌어진 일이야. 당장 시간적인 딜레이가 생긴 것 외에는 큰 문제는 없잖아."


-고마워-


"고맙긴 뭘, 여튼 두 번째는?"


-오빠가 경찰에 잡혀갔어-


"뭐?!"


이번에는 닥터에게서 전말을 듣기로 했다.


사령관이 지금 하토모리 중의원의 살해 혐의로 인해 구속되어 조사중 이라는 내용과 현재 갇혀있는 경찰서의 위치 그리고 기술팀이 사령관이 나오는 시간에 맞춰 연락을 줄 예정이라는 이야기 등, 앞으로의 계획들을 들었다.


"그럼, 굳이 거기에서 기다릴 필요는 없고 적당히 근처에서 몸 사리면서 지내면 된다는 거지?"


-요약하자면 그런 셈이지-


"접속 시킬 때 돈이라도 좀 넣어줬으면 시간 때우기 좋았을 텐데"


-하하핫, 이럴 땐 또 농담도 잘한다니까. 아무튼 기다리고 있으면 사령관 나올 때 연락 줄게-


이 말을 끝으로 통화가 끊겼다.


"농담 아닌데..."


휴대폰을 정장 주머니에 쑤셔 넣고 뭔가 있을까 싶어 주머니를 뒤적거렸다.


"음...? 이건 뭐지?"


안주머니에 들어있던 무언가를 꺼냈다.


지갑이었다.


"닥터가 이런것까지 챙겨주지는 못한다고 그랬지 않았나?"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지갑을 펼치자 소름이 끼쳤다.


신분증, 카드, 현금... 그리고 인식표.


전부 내 이름이 쓰여있는 익숙한 물건들이었다.


단순히 어딘가의 지갑이 아닌, '내' 지갑이었다.


"이건 뭐... 아까 그때 내 머릿속도 같이 뒤져봤나 보네"


지갑 속의 현금도 꽤나 두툼하게 들어가 있었다.


'하나, 둘, 셋...'


"8만엔?"


지갑 속에는 8 만엔 이라는 거금이 들어있었다. (2022년 7월 초 기준 현재 가치 약 76 만원)


"거 참, 두둑하게도 넣어줬네"


꽤나 거금이 들어있는 지갑을 내려다보고는 씨익 웃었다.


"대충 좀 쉬어볼까"


나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실외기가 잔뜩 붙어있는 골목에서 큰길로 나아갔다.




이미 도시는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검은 빛을 띈 하늘색을 가진 구름 밑으로 노을이 비쳐 분홍 빛의 주름이 새겨진 구름과 주황빛의 하늘 아래로 네온사인과 반짝이는 도시는 분명 다른 나라이긴 해도, 향수를 불러오는 느낌이었다.


'뭐가 이리 갑자기 울컥한 기분이 드는 건지...'


아무도 아는 이가 없는 거리를 걸으며 느낀 건, 의외로 고독이었다.




도시 한구석의 술집이 즐비한 거리에서 발걸음이 멈췄다.


"한잔 마셔볼까..."


가상현실이니 큰 기대는 하지 않지만, 분위기를 낼 수 있는 것만으로도 내게는 감지덕지다.


옛날에나 들어봤을 법한 재즈 음악이 들려오는 바에 들어섰다.


아직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손님은 나 혼자뿐인 듯했다.


"어서 오십쇼"


바텐더가 내게 인사했다.


'일본어가 아니네?'


가상현실이라 그런지 자동으로 번역되는 듯하다.


'편리하군'


"주문하시겠습니까?"


"스카치위스키, 온더락"


"선호하는 브랜드는 있으신지요?"


"그냥 싼 거로 하나 주쇼"


"예"


바텐더는 바 아래의 냉동고에서 얼음을 꺼내 잔에 담은 뒤 뒤돌아 등 뒤에 진열된 병들 중 수수해 보이는 병 하나를 집어 들고 뚜껑을 연 뒤 잔에 따랐다.


"여기 있습니다."


잔을 집어 들고 살짝 흔들었다.


기분 좋은 달그락 소리가 작게 울렸다.


잔을 들어 입에 한 모금 물고 향을 느낀 뒤 넘긴다.


깨어난 뒤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익숙한 느낌이 목을 타고 내려간다.


'여기 누가 만든 건지 몰라도, 제대로 만들었네'


두어 번 홀짝이며 넘기자 취기가 조금씩 올라오는 것에 감탄했다.


잔을 비우고 만족한 뒤 3000엔을 내고 밖으로 나왔다.


이미 해는 저물어 하늘은 제 황혼을 마지막으로 비추며 별들에게 자리를 내어주고 있었다.


난잡하게 걸린 네온사인과 간판들 사이의 거리를, 나는 천천히 걸어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