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 작업물 보수 언제 줄거예요! 기일 지났어요!"


아침 일찍부터 메리는 부지런하게 일어나 스카이나이츠 숙소로 찾아가 문을 쾅쾅 두들기고 있었다.


"슬레이프니르 언니! 거기 있는거 다 알아요! 저 참치 급하다구요! 지금 신용참치 할부금 밀렸단말야!"


목이 터져라 부르짖으며 문을 두들기는 통에 뭔일인가 싶어 스카이나이츠 주변의 방에서 빼꼼하게 머리를 내밀며 메리를 쳐다보았음에도 정작 메리가 부서져라 두들기는 숙소문은 반응도 없었다.


"언니 그렇게 나온다 이거지?"


메리는 분에 못이겨 한참을 스카이나이츠 숙소문을 바라보며 씩씩대었다.


"좋아, 나도 생각있다 이거야. 후회 할 걸!"


메리는 마치 라비아타가 된 것 마냥 발걸음을 쿵쿵 대며 자기 숙소로 돌아갔다.


그리고 한참 후, 스카이나이츠 숙소문이 빼꼼히 열리며 그리폰의 머리가 살며시 튀어나와 복도를 살폈다.


"전대장, 메리 갔어. 근데 언제까지 이럴거야?"


그리폰은 다시 숙소 문을 닫았다. 그리곤 자기 침대 속에서 이불을 머리까지 뒤집어쓰고 누워있는 자기 전대장을 흘겨보았다.


"아, 버...벌어서 갚을거야! 생각보다 이익을 보는 기간이 길뿐이야."


"그럼, 사정이라도 메리에게 얘기라도 해놔요. 언제까지 메리 피해다닐거예요?"


블랙하운드가 머리를 빗으며 물었다.


"지금은 나도 갚을 참치 없어. 만나봤자 할말도 없구...잠시만...잠시만 시간을 벌면돼."


프로젝트 오르카 아이돌 공연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은 때였다.


아이돌의 여운을 못이긴 슬레이프니르는 자신을 모티브로 하는 굿즈를 잔뜩 만들었다.


문제는 슬레이프니르의 머릿 속에는 멸망 전 인간들도 감히 굴리지 못할 행복회로가 오버클럭하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이미 최신 스카이나이츠 테크놀러지 기술로 제작한 1땡컨 코어 고성능 연산프로세서 모듈은 수천번의 자체 시뮬레이션을 통해 굿즈 출시시 모든 굿즈 완판 200% 확정으로 결론 지었다. 슬레이프니르는 잠자리에 누워서도 잠들지도 못하고 자신이 상상가능하던 모든 종류의 굿즈를 구상했고, 구현을 위해서 오드리나 아자즈, 메리 등등 오르카에 살고있는 모든 창작용 바이오로이드에게 작업을 수주했다. 내노라하는 오르카 전문 창작자들에게 수주하는 금액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슬레이프니르는 누구보다 망설임 없는 빠른 판단으로 여태껏 모아두었던 자기 참치 적금 전부에 전대장 활동을 통해 얻은 인맥들에게 참치를 꾸었다. 스카이나이츠의 모든 동료들이 슬레이프니르를 걱정하며 만류했지만 그녀가 스카이나이츠 공금까지 몰래 손을 대었다는 것을 알았다면 그녀들은 즉시 오르카 근해에 이름없는 땡컨 표류물을 만들고 아무일 없다는 듯 스카이나이프의 새로운 전대장을 찾아 나설 터였다.


사실 굿즈가 아주 안팔린건 아니어서 간신히 오드리와 아자즈의 작업물 대금은 제때 갚았다. 물론 이 과정에서 땡컨의 참치 마이너스 통장은 다시한번 바닥을 뚫었지만. 슬레이프니르로서도 오드리나 아자즈는 무서웠다. 그녀들이 제때 보수를 받지 않았을 때 내보일 반응은 상상하고 싶지 않았다. 분명... 입이나 엉덩이에 재봉질을 해놓거나 몸뚱이 모듈이나 슬레이프니르의 소중소중한 비행장비를 분해해 버릴지도 몰랐다.

때문에 무리를 해서라도 둘의 대금은 제때 갚아버린 것이었다.

하지만 메리는 보기에도 어려보이고 성격도 만만해 보였기 때문에 슬레이프니르의 머릿속에서 우선권이 한없이 낮았다. 그렇게 메리에게 줄 대금 참치는 하루하루 입금이 뒤로 밀렸고 참다 못한 메리는 매일 아침 스카이나이츠의 숙소에 찾아와 문을 두들기게 된 것이었다.


"좀...더 굿즈 들이 많이 팔리면 반드시 갚을거야..."


그렇게 며칠이 흘렀다. 오르카 내에서 슬레이프니르를 놀림거리로 만드는 묘한 풍자화가 흘러다녔다. 처음엔 가벼운 농담처럼 지나갔지만 시간이 지나자 오르카 내 가십을 주름잡는 밈으로 성장하자 슬레이프니르 본인으로서도 반응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당연히 슬레이프니르는 격분했다.


"어떤년이야 이딴 걸 그린 년은!"


슬레이프니르는 최신 스카이나이츠 테크놀러지 기술로 제작한 1땡컨 코어 고성능 연산프로세서 모듈을 통해 누구보다 빠르게 출처가 메리임을 간파하고 본인을 찾아가 따지다못해 다툼이 오르카 법정까지 가게 되었다.


"정숙, 본 법정에서는 정숙 하시오."


이번 오르카 법정의 판사를 맡은 무적의 용은 법봉을 두들기며 법정을 정숙 시켰다. 무적의 용은 사실 이런 역을 맡기 싫었다. 사령관이 직접 판결한다면 또 물렁한 판결로 오르카의 질서를 문란하게 만들 것이기에 이 자리에 어울리지 않았다. 라비아타도 이런 어려운 자리는 고사했다. 뇌까지 근육으로 되어있는 그 무투파 근육덩어리에겐 이런 자리는 무리겠지. 결국 신조차 모독하는 천재적인 판단력을 가진 자신이 나서야 했다. 이러한 사명감을 다지며 무적의 용은 재판시작을 선언했다.


"원고 슬레이프니르는 피고 메리가 자신을 비방하는 선전포스터를 제작하여 모욕을 주었기에 피고에게 정신적 피해보상금을 포함해 피고에게 빚진 참치 전액을 탕감받길 원한다고?"


무적의 용은 원고가 스스로 공소소추에 판결선고 내용까지 요구하는 통에 어처구니 없었지만 어차피 오르카 내의 법률은 교주 사령관과 그 추종자들로 이루어진 사이비 종교단체의 교리만도 못했기 때문에 그러려니 했다.


"그리고, 피고 메리는 모욕이 아닌 사실 적시라고 주장하고 있다라..."


메리의 문제작 슬레이프니르 풍자화는 어느 설명문도 쓰여있지 않은 4컷짜리 그림이었다. 그냥 4컷동안 슬레이프니르가 굴로 변해갈 뿐.

무적의 용은 이 한심한 재판을 빨리 끝내버리고 싶었다. 어차피 상황을 보아하니 메리가 슬레이프니르에게 모종의 악감정으로 의도적으로 풍자화를 그려 뿌린것이 분명해 보였기에 메리에게 적당한 처벌을 하는 선에서 판결을 내려는 때에 메리가 의의를 제시했다.


"재판장님, 제가 그린 이 그림을 보시고 제가 원고를 모욕했다 판단 하십니까?"




메리는 자신의 풍자화 1컷을 커다랗게 인쇄하여 재판정에서 펼쳐보였다. 재판정에 있는 누구라도 볼 수 있도록 작정하고 준비한 것이 틀림없었다. 그 그림에는 그냥 슬레이프니르가 반쯤 누워있는 자세로 그려진 데포르메였다. 어패류 껍데기를 닮은 뒤의 무언가가 신경 쓰였지만.


"그 누구도 이 그림이 원고를 모욕한다 여기지 않을 것입니다. 그럼 이 그림은요?"




메리는 풍자화 2컷을 보였다. 슬레이프니르의 윤곽이 조금 찌그러지고 색도 뭉개져있었지만 1컷과 닮은 그림이었다.


"그럼 전 그림을 닮은 이 그림은요?"






메리는 이어 3컷과 4컷을 연달아 보여주었다. 3번째 그림은 2번째 그림과 닮아있었지만 거의 굴이었고 4번째 그림은 그냥 굴이었다.


"야이 시X년아!."


굴은 참지 못하고 메리에게 욕을 했다.


"풉."


방청석에서 재판을 구경하던 사령관이 웃음을 참지 못하고 뿜어 버렸다.

나름 재판정이라고 무게잡으며 무표정으로 웃음을 참던 바이오로이드들의 눈이 사령관을 흘겼다.

메리는 모든 반응을 무시하면서 말을 이었다.


"4번째 그림이 굴을 닮았다고 처벌을 받는다면 3번째, 2번째 그림도 죄가 됩니다. 그럼, 가끔 굴을 먹는 저희 오르카 여러분들은 모두 원고에 대한 모욕죄로 처벌 대상입니까? 그렇다면 굴을 요리하고 배식한 소완님 이하 주방담당자들을 모두 처벌하고 오르카 내에 모든 굴 식재료와 요리를 잡아들여야 마땅합니다!"


메리는 당당하게 선언했다. 그 이후 원고석을 넘어 메리의 멱살을 잡으려는 굴과 말리는 스카이나이츠 대원으로 소란스러웠다.

어느정도 재판정 분위기가 조용해지자 무적의 용은 대충 근거 불충분 무죄판결을 내었다. 당연히 굴이 요구했던 부채탕감은 없는 것이 되었다.


"원고 굴은 인정하십니까?"


"굴이라고 하지 마!"


굴은 서러움에 눈물까지 흘리며 대꾸했다. 그 때 굴의 눈에 자기 턱 아래로 쑤욱 들어오는 컵이 하나 보였다. 소완이었다. 자신에게 위로차 주는 음료라고 생각해 마시려고 하니 빈 컵이었다. 소완은 정갈한 미소를 보여주었다.


"흘리지 마옵소서, 생굴소스는 참으로 귀한 식재료이기에."


"야이 시X년들아!."


어처구니 없는 재판이 끝나고 메리의 신상 굿즈 '플라잉 오이스터'는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어찌나 인기를 끌었던지 굴의 숙소로 싸인 요구 빗발치고 영감을 받은 오드리가 관련 의상을 낼 정도였다. 메리는 굴에게 받아야 할 작업비의 수배의 참치를 벌었고, 돈이 궁한 굴과 관계 개선 겸 둘이 작당 해서는 한정판까지 내자, 굴에게 돌아가는 수익으로 굴은 자신이 빌렸던 부채 전부와 횡령한 공금 참치까지 모조리 채워 넣을 수 있었다.

그 대가에 비하면 땡컨에 이은 새로운 별명은 값싼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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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은 샤를 필리퐁의 '배' 라는 풍자화와 관련 재판사건임. 관심있으신 분은 검색해보면 되빈다. 현실이 더 재밌음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