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미션 받아서 작업한 소설임


*바이오로이드들의 제약을 풀어 인간으로 만들어주고 싶어한 사령관이 인간이 되는 약을 만들고 난 후의 이야기를 시리즈로 다루고 있음


*중간에 삽화는 신청자가 다른 분한테 부탁해서 받은거임



"오."


어두컴컴한 사령관실에서 어딘가 조금 맹한 여자아이의 자그마한 감탄소리가 작게 울렸다.


"재밌어 에밀리?"


사령관은 간이 냉장고에서 가져온 과자와 주스를 티비 앞에 쪼그리고 앉아있는 X-05 에밀리에게 내밀며 말했다.


"응."


에밀리는 티비 안에서 방영되고 있는 애니메이션에 푹 빠진 듯 사령관 쪽을 돌아보지도 않은 채 대답하며 그가 건넨 과자를 받았다.


'확실히 흥미를 보이긴 하는구나.'


티비 속으로 빨려들어갈 듯 애니메이션을 보고 있는 에밀리를 본 사령관이 속으로 중얼거렸다.


정신적으로는 아직 미숙한 에밀리를 위해 교육담당 알렉산드라와 캐노니언의 자매들이 머리를 맞대고 만든 특별 교육프로그램.


그건 바로 에밀리가 좋아할만한 활동들을 통해 그녀가 쉽게 지성과 감성을 키울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


그 일환으로 제시된 것이 바로 이 '고전명작 애니메이션 감상하기.'


멸망 전 인간들 시점으로도 매우 오래 전에 제작되었지만 뛰어난 작품성으로 불후의 명작이 된, 동화를 애니메이션화 시킨 영화는 확실히 에밀리가 좋아하는 것이었다.


평소에는 금방 다른 것에 흥미를 가지고 나풀나풀 떠나가던 에밀리가 벌써 1시간이 넘도록 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것이 바로 그 방증이었다. 


''미녀와 야수'라......'


사령관이 보기에도 제법 재밌어 보이는 이야기이긴 했다.


저주로 인해 흉측한 야수가 되어버린 왕자가, 한 여자의 진심어린 사랑으로 다시 인간이 되어 행복한 결말을 맞이하는 이야기.


어찌보면 뻔한 이야기였지만, 


'그런 뻔한게 또 좋단말이지.'


자기마저 동심(그에게 동심이라고 할만한 과거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으로 돌아간 듯한 느낌을 받으며 에밀리와 함께 티비를 보고 있던 그때, 책상 위에 있던 태블릿에 불이 들어왔다.


'연락인가?'


단말기에 온 메시지를 확인한 사령관은 여전히 동화 속 세계에 푹 빠져있는 에밀리를 힐끗 바라보았다. 


"......잠깐 갖다온다고 문제될 건 없겠지."


그렇게 중얼거린 사령관은 에밀리에게 방해되지 않도록 슬며시 사령관실을 빠져나왔다. 



*



"......끝났다."


어느새 엔딩크레딧이 올라가고 있는 화면을 멀뚱히 바라보던 에밀리가 중얼거렸다. 


"......"


멍하니 올라가는 수많은 이름들을 바라보는 에밀리는 아직 화면 속 이야기에서 완전히 헤어나오지 못한 듯한 표정이었다. 


엔딩크레딧이 완전히 올라갈 때 쯤 되어서야, 에밀리는 슬며시 일어나 사령관실 불을 켰다.


"......사령관, 없네."


그제서야 사령관의 부재를 확인한 에밀리는 여전히 조금 멍한 표정으로 사령관실을 이리저리 멤돌았다.


사령관을 찾으러 갈까 잠시 생각했었지만, 사령관 말 잘 따르고 얌전히 있으라는 레이븐 언니의 말이 떠올라 금세 포기했다.


그렇게 에밀리는 사령관실을 빙글빙글, 침대에서 뒹굴뒹굴, 사령관석에서 멀뚱멀뚱, 방금 전 본 영화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자신만의 세계를 머릿속으로 만들어가며 시간을 보냈다. 


"목말라."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문득 갈증이 느껴진 에밀리 시야에 마침 사령관의 책상 위에 놓은 음료가 들어왔다.


에밀리는 단 1초의 망설임도 없이 그것이 담긴 컵을 들어 단숨에 꼴깍꼴깍 마셨다. 그것 또한 사령관이 꺼내뒀던 주스 중 하나라고 생각하며.


신기하지만 나름 먹을만한 맛의 음료를 마시며 에밀리는 생각했다.


자신에게도 동화 속에 나올법한 신비로운 일이 일어났으면 좋겠다고.


현실에서 그런 신비로운 일은, 당사자가 알아차리기 전에 일어난다는 것을 알지 못한 채.



*



가장 먼저 괴리감을 느낀 것은 에밀리 본인이었다. 


"미안 에밀리. 일이 생각보다 조금 오래 걸렸네."


"사령관."


사령관이 문을 열며 들어오자, 에밀리는 습관적으로 쪼르르 사령관에게 다가갔다.


하지만,


"어."


평소처럼 사령관에게 안기려고 팔을 벌리던 에밀리는 짧은 단말마를 흘리며 우뚝 멈춰섰다.


"에밀리?"


에밀리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사령관이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에밀리는 여전히 눈만 크게 뜬 채 사령관을 멀뚱히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사령관이 안 느껴져."


그렇게 말하는 에밀리의 눈이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에밀리, 그게 무슨 말이야?"


사령관 또한 에밀리의 표정을 보고 조금 진지하게 물었다.


"사령관의……사령관의 마음이 안 느껴져. 평소처럼 사령관이 보이는데, 사령관 안에서 느껴지던 그게……갑자기 안 느껴져."


에밀리가 떨리는 손으로 스스로를 껴안았다. 마치 무너져내리는 자신을 붙들려는 듯이."


"이, 이상해 사령관. 나 지금 조금 이상해. 나……"


"에밀리."


사령관은 에밀리를 얼른 자신의 품에 꽉 안았다. 오들오들 떨고 있는 에밀리의 머리를 쓰다듬던 사령관은, 문득 자신의 책상 위에 놓인 빈 병을 발견했다.


그 순간 사령관은 소름과 함께 모든 것을 이해했다. 


"……에밀리, 혹시 내 책상 위에 있던 거 마셨어?"


사령관이 나지막하게 물었다. 


"응. 마시면 안되는 거였어? 사령관이 나 마시라고 꺼내놓은 건 줄 알았는데……"


"으응, 아니야. 괜찮아."


괜찮아. 그렇게 되뇌이며 사령관은 에밀리가 진정될 때까지 그녀의 머리를 계속 쓰다듬었다. 


머리 속으로는 온갖 복잡한 생각들이 오갔지만, 그것을 에밀리에게 들키고 싶지는 않았다. 



*



에밀리가 조금 진정되고, 자신의 생각도 정리한 사령관은 에밀리를 소파에 앉혀놓고 조용히 말했다.


"에밀리, 네가 방금 먹은 건 말이야, 바이오로이드를 인간으로 만들어주는 약이야."


"인간으로……?"


"정확하게는 바이오로이드들에게 걸려있는 제약을 풀어주는 약이지만 말이야. 에밀리가 내 뇌파……그러니까 내 마음이 느껴지지 않았다고 한 것도 그것 때문이야."


"그럼,"


에밀리는 아직 잘 이해가 안 간다는 듯이 천천히 되물었다. 


"나는 사령관처럼 된 거야? 인간님이 된 거야?"


정확히 인간이 되었다고는 할 수 없다. 제약이 풀렸다고 해도 다른 바이오로이드들에게 명령을 내릴 수 없을 뿐더러, 다른 바이오로이드들에게는 여전히 같은 바이오로이드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사령관은 오히려 그것이 좋다고 생각했었다. 애초에 그가 이런 약을 만들어달라고 부탁했던 것은, 더 이상 차별과 복종을 강요받던 그들을 해방시키고 싶어서였으니까. 해방이 또다른 차별과 복종체계를 만들어서야 안될 일이었다. 


에밀리가 그것을 먼저 먹어버린 것은 예상 외였다. 하지만 아이들이야말로, 가장 자유로워야 하는 존재들이 아닌가.  그렇기에 사령관은 에밀리에게 조심스레 그녀가 어떻게 변했는지를 가르쳐주었다. 


"어때? 에밀리는 이제 자유야. 아직 철충들과의 싸움이 많이 남아있기는 하지만, 에밀리는 이제 원하는 대로 마음껏 살 수 있어."


하지만 사령관의 예상과는 달리 에밀리의 표정에서 드러나는 감정은 즐거움, 흥분, 희망 같은 것이 아니었다.


"……싫어."


"에밀리?"


"나는, 사령관하고 떨어지기 싫어. 인간이 되면 사령관의 나로는 남아있을 수는 없는 거야? 그럼 난 인간 안할래. 하기 싫어……"


"저기 에밀리. 인간이 되었다고 해서 무조건 나를 떠나야 하는 건 아니야. 에밀리가 원하면 이대로 남아있는 것도……"


"싫어. 나는……나한테 그런 '가능성'이 있다는 게 싫어."


애원하듯이 그렇게 말하는 에밀리를 보며, 사령관은 가슴 한 켠이 저며오는 감각과 함께 한 가지 의문이 불쑥 떠오르는 것을 느꼈다. 


단순히 자유를 주는 것만이, 정말 이들을 위하는 일인걸까?


사령관은 철충에 침식되어 있었던 자신을 처음 발견했을 때의 충격을 떠올렸다. 


지금까지 생각했던 자신에 대한 정체성이 부정당하는 것은, 생각 이상으로 괴로운 일이었다. 


그렇기에 그저 자유를 주는 것만으로 끝나서는 안된다. 사령관은 그렇게 결론 내렸다. 


그들이, 특히 에밀리처럼 순수한 아이들이 이 자유를 잘 받아들일 수 있도록 이끌어줘야한다. 


그것이 인간이자, 어른으로서의 의무라고 사령관은 생각했다. 


"에밀리."


사령관이 오들오들 떨고 있는 에밀리를 꼬옥 안아주었다.


"괜찮아. 괜찮아."


"사령관?"


"에밀리. 에밀리는 내가 어떤 모습이 되거나, 변해버리면 어떡할거야?"


"......그래도 난 사령관이 좋아. 사령관은 사령관이니까."


"응. 나도 마찬가지야 에밀리. 에밀리가 어떻게 변해도, 나는 에밀리가 에밀리니까 좋아."


"정말로?"


"그렇다니까? 오히려 바뀌어서 더 좋을지도."


"왜?"


에밀리가 나지막하게 물었다. 


"왜냐하면 이제 에밀리에겐 선택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으니까."


에밀리가 사령관의 품에서 조금 떨어져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항상 도화지처럼 맑은 그녀의 얼굴은, 의문으로 조금 혼란해하는 표정을 띄우고 있었다. 


"......잘 모르겠어."


사령관은 찬찬히 머릿속에서 에밀리에게 전하고 싶은 말을 정리했다. 


"그거 알아 에밀리? 난 사실 처음에는 두려웠어. 너희들이 나를 좋아해주는 게."


"우리가 사령관을 좋아하는 걸?"


"응. 왜냐하면 나는 너희들이 어쩔 수 없어서 나를 좋아해주는 줄 알았거든."


사령관이 쑥쓰러운 듯이 머리를 긁으며 웃었다. 


"나는 인간이었고, 너희들은 원래 인간을 기본적으로 좋아하도록 만들어졌으니까. 그래서 너희들이 선택의 여지없이, 어쩔 수 없이 유일한 인간인 나를 좋아하는 줄 알았어."


에밀리는 무표정한 얼굴로 사령관의 이야기를 듣고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사령관은 일단 에밀리가 자신의 말을 따라오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웃긴 일이지? 나도 이렇게 약한 인간일 뿐이야."


"사령관은 안 약해. 사령관은 강하고 멋진걸."


"......고마워 에밀리. 다른 사람들이 에밀리처럼 그렇게 말해준 덕분에, 이제 나는 그런 생각을 하지 않게 되었어. 내가 그저 유일한 인간이라서가 아니라, 내가 '나'이기 때문에 나를 좋아해주는 거라고."


사령관은 에밀리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을 이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내가 너희들에게 무언가를 해주고 싶었어. 너희가 진짜로 자유로워졌으면 했어. 과거로부터도, 족쇄로부터도."


에밀리는 흔들리지 않는 눈빛으로 사령관을 바라보았다. 그가 조심스레 건네는 진심에, 서툴지만 같은 진심으로 받아주고 싶다는 마음이 그 눈으로 전해졌다. 


"......만약 자유로워져도 말이야 사령관."


한참을 생각하던 에밀리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내가 그 자유를, 사령관이 준 그 가능성을 버리겠다고 하면, 어떻게 할 거야?"


"그건 에밀리의 선택이니까, 존중해줘야지."


사령관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중요한 건 그걸 에밀리가 선택할 수 있었느냐 없었느냐의 문제야. 결과는 같아보이지만, 그것 하나가 중요한 차이를 만드는 법이거든."


에밀리는 다시 생각에 빠졌다. 사령관은 이번에도 그녀를 기다려주었다. 


졸린 듯이 조금 처진 귀여운 눈매에 자수정처럼 빛나는 보라색의 눈. 신비로움마저 느껴지는 연회색의 머리카락이 사락, 흘러내렸다. 


"응."


마침내 마음을 정한 듯, 에밀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무섭지 않아."


에밀리의 말에 사령관이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다행이다."


"응. 그래도 사령관."


"왜 에밀리?"


"나, 자매들을 만나러 가고싶어."


"캐노니어를?" 의외의 부탁에 사령관이 물었다. 


"응. 자매들한테도......얘기해주고 싶어."


이렇게 큰 일이라면, 어차피 에밀리의 가족과 같은 캐노니어들에게도 말해주는 게 맞겠지.


그렇게 생각한 사령관은 고개를 끄덕였다. 


"응. 가자."



*



"......그대는 항상 말도 안되는 무모한 짓을 너무 당연하게 해버리는군."


캐노니어의 숙소에서 로열 아스널이 가장 먼저 꺼낸 말이었다. 


숙소로 도착한 사령관은, 에밀리와 노는 것이 익숙한 파니와 레이븐에게 에밀리를 맡겨두고 비스트헌터와 아스널과 일어난 이 사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사령관과는 달리, 바이오로이드들은 제약이 사라진 에밀리에게도 이전과 똑같이 인식되었기 때문에 에밀리는 훨씬 더 편안한 모습이었다. 


그런 에밀리를 숙소 한 구석에서 바라보며 사령관은 면목없다는 듯이 말했다. 


"미안, 내가 좀 더 간수를 잘했어야 했는데."


"뭐, 그대를 탓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감사해야 할 일이지."


아스널이 슬쩍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만들어지면서부터 우리가 가지고 있었던 족쇄를 풀어주겠다니. 나는 물론이고,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다."


"하지만 사령관님."


비스트헌터가 근심가득한 목소리로 끼어들었다.


"저도 사령관님의 계획에는 찬성하지만, 그 첫 대상이 꼭 에밀리여야 할 필요는......잠깐 동안만이라도 되돌리는 방법은 고려해볼 수 없는 겁니까?"


"에밀리가 괜찮다면 우리가 굳이 손댈 필요는 없지."


아스널이 사령관 대신 대답했다. 


"사령관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 아닌가?"


"응. 하지만, 그래도 예기치 않게 갑작스레 진행되어버린 거니까, 에밀리랑 가까운 너희들이 조금 더 신경 써줬으면 좋겠어."


"그런 건 말하지 않아도 잘 알고 있다."


아스널이 씨익 멋진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러고는 문득 뭔가 생각난 듯이 덧붙였다. 


"그러고보니 에밀리가 그 약을 먹기 전에 보고 있던 게 멸망 전의 고전 만화영화라고 했었나?"


"응. 왜?"


사령관의 대답에 아스널의 미소가 더 커졌다. 


"하하, 좋은 생각이 떠올라서 말이야. 잠시."


그렇게 말하며 저벅저벅 에밀리에게 다가가는 아스널.


무릎을 살짝 굽히고 소곤소곤 에밀리와 대화하는 아스널을 보던 비스트헌터가 슬쩍 사령관에게 말했다. 


"대장이 저런 표정을 하고 있을 때 불안해지는 건 저 뿐만은 아니겠죠?"


"......나도 좀 그런데."


서로 불안한 눈빛을 교환하고 있을 때, 아스널과의 대화를 마친 에밀리가 뽀르르 사령관에게 다가왔다. 


"사령관."


"어, 어?"


자기 앞에 척, 하고 서서 자기를 부르는 에밀리의 모습에 사령관은 자기도 모르게 말을 살짝 더듬었다. 


"나는 약을 먹고 변해버린 거야. 맞지?"


"그렇지?"


대화가 어디로 가려는지 몰라 사령관은 일단 에밀리의 말에 맞춰주기로 했다. 


"그런데 나는 이전처럼 여전히 사령관을 사랑하고 싶어."


"어......그런데?"


아스널과 막 대화를 마친 에밀리의 입에서 '사랑'이란 말이 나오자 사령관의 불안감은 더욱 커져만 갔다. 


사령관의 대답을 들은 에밀리는 밑으로 살짝 쳐진 눈을 반짝이며 사령관을 향해 두 팔을 뻗었다. 


"그럼 키스해줘."


"갑자기 왜 그 얘기가 나오는지 잘 모르겠는데?!"


결국 불안한 예상이 현실이 되자 사령관이 당황하며 외쳤다.


하지만 에밀리는 언제나처럼의 나른한 목소리로 당당하게 선언했다. 


"사랑의 키스. 아까 본 만화에서도 그랬어. 진정한 사랑의 키스가 야수를 원래 모습으로 되돌려준다고."


"뭔가 이상한 점이 한두 개가 아닌데......"


야수가 되어서가 아닌 인간이 되어서 사랑의 키스를 요구하는 에밀리. 


그 키스의 상대는 아름답고 마음씨가 착한 여자주인공이 아닌, 평범한 그저 한 사람인 사령관. 


원작과는 안 맞아도 너무 안 맞았다. 


"......"


하지만 사령관은 왜인지 알 수 있었다. 에밀리가 왜 자신에게 키스를 요청했는지. 


그녀도 아마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에밀리 또한 확인받고 싶었던 것이다. 


자신이 여전히 사랑받고 있다고, 그렇게 안심받고 싶었던 것이다. 


"정말이지 곤란하네."


사령관이 피식 웃음을 흘렸다.


원작과는 안 맞지만, 이게 우리만의 이야기인 거겠지.


그렇게 생각한 사령관은 자신을 빠안히 바라보고 있는 에밀리의 허리를 와락 껴안고는, 고개를 돌려 그녀의 아담하고 촉촉한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 


"......!"


갑작스러운 키스에 에밀리가 놀란 듯 숨을 들이켰다. 하지만 사령관은 그녀를 안정시키려는 듯 잔뜩 경직된 에밀리의 몸을 더 한껏 껴안았다. 


곁에서 레이븐과 파니가 뭐라 하는 소리는 애써 무시했다. 안그래도 부끄러워서 얼굴이 화끈거렸으니까.


그렇게 두 사람은 입술을 떼지 않고 그대로 있었다. 마치 시간이 멈춘 듯, 서로의 품과 입술의 감촉을 느끼며.



잠시후, 긴장이 풀린 듯 몸이 조금 부드러워진 에밀리를 놓아준 사령관은 에밀리의 눈을 한참 바라보다, 어색하게 웃으며 물었다.


"어때?"


"어......"


에밀리의 한동안 멍한 표정으로 사령관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이내, 에밀리는 봄날의 피어나길 준비하는 꽃처럼 웃음을 옅게 피어보였다.


"응. 좋은 거 같아."


동화 속 주인공처럼 활짝 웃는 얼굴은 아니었지만, 그 어떤 동화의 주인공보다도 예쁘게 빛나는 얼굴이라고, 사령관은 그렇게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