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을 바삐 움직이며 서류를 갈무리 하는 그에게 툭 던지듯 말한다. 평소 갖고 있던 의문을 말하는 것에 이토록 고민한 적이 있을까 생각하면 스스로도 웃음이 나왔지만, 궁금한 것을 계속 끙끙 앓으며 참는 것 보다는 이렇게 직접 말하는 편이 좋겠거니 생각하려 했다.


"내가 별종이라고?"

"응."


의외의 말을 들었기 때문인지 그의 눈이 조금 커져 있었다. 그러나 이내 그 특유의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다시금 처리하던 서류로 시선을 내리 깔며 업무를 시작했다. 능숙하게 대화를 하면서도, 눈과 손은 계속 서류를 향해 있는 그의 모습은 정말 신기한 모습이었다.


"그도 그럴게, 핫팩. 넌 우리들을 동등하게 대해주잖아?"

"그렇지?"


그의 대답은 당연하다는 듯한 어조였지만, 그래서 더 의문이다. 그는 인간이다. 명백하게 인간과 인간이 결합하여, 잉태되고 탄생한 생명체. 그에 비해 우리들은 창조 되었다. 그들 인간에 의해서. 그러니 우리들은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도구에 불과할 뿐이다.


"뭐 옛날에도 바이오로이드에 애착을 갖는 별종들이 있기는 했지..."


홀로 중얼거린 내 의문에 그의 눈이 조금은 차갑게 가라앉았다. 그는 싫은 기색을 숨기는 것에 약하니까.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난 너희들을 도구로 생각하지 않아."

"어머! 난 도구라는 말은 하지 않았는데?"


순간 그의 눈초리가 날카롭게 빛났지만 이내 시들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서며 서류를 대충 정리하고 내 곁으로 다가와 털썩 앉으며 머리를 쓰다듬기 시작했다. 그의 손길이 머리카락을 헤치며 머리를 어루만지자, 자연스레 눈이 감기고 그의 어깨에 몸을 눕혔다.


"내가 딱히 성인군자 라거나, 엄청난 인격자라 너희들을 소중히 하는 것은 아니겠지. 그건 나 스스로가 잘 알고 있어"

"핫팩..."


별다른 대답을 하지 못했음에도 그는 애초에 대답을 들을 마음이 없었던 것인지, 신경쓰지 않고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만약 나도 멸망 전에 태어났다면 그들과 똑같이 너희들을 도구로만 여겼을지도 몰라. 인간이란 자라난 환경에 따라 가치관이 박히는 법이니까."


그래, 이 점이 그와 내가 다른 점일지도 모른다. 우리들은 그저 창조 되면서 몸에 심어 넣은 칩에 기인한 가치관을 갖고 만들어진다. 그런 우리들에게 후천적 학습이란, 그저 약간의 경험을 더해주는 것일 뿐, 큰 영향을 끼치진 못한다. 


그러나 인간들은 하얀 백지로 태어나 살아가며 그 백지에 자신만의 그림을 그려 넣는다. 부모와, 친구들, 스승들, 동료들을 만나며 자신만의 그림에 색을 넣고, 모양과 구도를 잡으며 완성해간다. 그렇기에 개개인의 가치관이 다른 것이리라.


"하지만 난 눈을 떠보니 세상이란 이미 망한 후였고, 내 주변에 남은 이들이란 너희들 말고는 없었어. 처음 며칠은 스스로 옷도 갈아입을 줄 몰랐었지. 씻는 것 역시 도움을 받아야 했을 정도니까."


그의 하얀 캔버스에는 우리들이란 물감으로 그림이 그려졌다. 그렇기에 그는 우리들을 도구로 여기지 않는다 말하고 싶은 것일까.


"그러니 나에게는 과거의 가치관은 중요하지 않아. 중요한 건 지금이야. 지금 내 주변에 있는 이들을 지키는 것이 가장 중요해."

"그럼 핫팩은 다른 세력의 바이오로이드는 상관 없다는 걸까?"


조금의 장난을 담아 그에게 대답하자 그는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솔직한 내 생각은 생명은 평등하지 않다는 거야. 내가 사랑하는 이들을 지키기 위해 나와 관련 없는 생명들을 다수 죽여야만 한다면 난 망설임 없이 너희들을 지키는 방향으로 나아가겠지."

"헐~ 핫팩은 생각보다 냉정하네.."

"그래서 난 별종이 아니라고 생각해. 인간은 보편적으로 이기적이니까, 오히려 나는 보편적인 인간에 속하겠지."


스스로를 이기적이라 말하며 자조적인 미소를 띄는 그를 바라보자, 나의 차가운 심장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단순하고 멍청한 생각일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그는 이기적으로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모든 것들을 내걸고 우리들을 지키려 노력하는 모습이 대범하게 느껴졌다.


우리들을 지키기 위해서 다른 이들을 희생 시킬 수 있다는 말을 하며 그는 일 순간 슬픈 눈초리를 보였다. 그럼에도 말에는 망설임이 없었고 이내 굳게 결의한 표정으로 돌아가 있었다. 그것은 그는 내심 그런 일을 원하지 않지만, 우리들을 위해서 라면 해내겠다는 의지 표현의 발로였다.


'정말, 거짓말을 잘 못한다니까.'


그렇기에 그에게 빠져든 것일까. 그의 고뇌를 덜어주기 위해서 라면, 나 역시 못할 일은 없으니. 그의 앞에서는 착한 친구 같은 존재로 남아있는 주제지만, 정말 필요하다면 언제든 그의 사냥개가 되어 적들의 목덜미를 물고 늘어질 것이다.


"나도 사랑하는 너를 지키기 위해서 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어."


아마 이런 심정은 모두 마찬가지겠지. 도구로 만들어진 우리들을 진정으로 사랑해준 그를 위해서 라면, 모두들 같은 심정으로 무기를 들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을 도구로 여기지 않는 그와는 언제나 의견이 평행선을 그리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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